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지언아,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
“내 말은, 비밀이 있어도 괜찮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 나랑 같다는 게 아니라…….”
안색이 검게 물든 듯한 형이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아니, 형이랑 다르지, 그럼.
‘내가 도대체 왜 형을 믿는다는 생각을 했을까.’
아무런 노력도 없이 모든 것을 가져간 사람을,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저 껍데기 하나만 보고… 아니, 생전 처음의 이변이라고 생각해서.’
첫 이변이라 기뻤다. 분명 영원히 반복되리라 생각했던 생에, 처음으로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이었으니까. 나는 지독하게도 많은 반복을 해 온 인간이라, 그 반복이 너무 지겨워졌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알면서도 스스로를 속인 걸 수도 있었다. 단지 이변이라는 이유로…….
아니, 잠만. 무엇이 더 있었던 거 같은데. 뭐였지.
‘분명, 뭐가 더 있었을 텐데……. 지금이 아닌 더 이전에…….’
분명, 살아갈 의욕을 준 무언가가.
‘기억 안 나는 거 보면 특별한 건 아니었나 보네.’
나는 여전히 횡설수설하는 형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형에게서 돌아서자, 형이 다급하게 말했다.
“사람들한텐, 내가 잘 말해 둘게.”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
시간이 조금 흘러,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이후 큰일은 없었다. 늘 같은 날, 같은 하루.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한국의 S급 헌터들이 거의 단체로 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미처 다 처리 못 한 S급 던전을 팀원들과 처리하는, 그런 하루.
주변을 탐색하던 신서하가 말했다.
“주변에 위험한 건 없어요.”
“그럼 잠시 쉬도록 하죠.”
“이게 몇 번째 S급 던전이야!”
마허윤이 벌렁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그런 마허윤을 보며 말했다.
“이제 겨우 세 번째야.”
“겨우? S급 던전 클리어 시간으로 따지면 겨우는 아니지! 어, 야! 너 자꾸 그런 눈으로 쳐다볼래?! 너 없을 때 강희민이 자꾸 따라 하잖아!”
“허윤 형,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그렇게 보게 돼요.”
“너 진짜 따라와. 한판 뜨자.”
“감당 가능하세요?”
둘이 많이 친해졌군.
“기력을 소모할 정도로 싸우진 말고. 난 정찰하고 온다.”
“한지언 헌터, 그런 일이라면 제가…….”
“매번 박주완 헌터가 하셨잖아요. 이번엔 제가 할게요. 쉬고 계세요.”
나는 나 대신 정찰을 하려는 박주완을 자리에 앉히고 유유자적 주변을 탐색했다. 회색빛 하늘에 피어오른 나무와 꽃들이 우중충해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더욱 그래 보였다.
그렇게 몇 걸음 걷다, 우뚝. 아까부터 따라오던 기척에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정찰은 제가 할 테니 쉬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윤시아 헌터.”
“역시 눈치채고 계셨네.”
“기척을 숨기긴 하셨고요?”
“아무 말 없길래 모르시는 줄 알았죠.”
“그래서, 왜 따라오셨어요.”
“음…….”
잠시 먼 산을 쳐다보던 윤시아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민이 있으신 것 같아서요.”
“고민이요?”
“네.”
…요즘 들어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부쩍 는 거 같은데. 물론 늘었다 해도 이제 두 명이지만.
‘내가 표정 관리를 그렇게 못하나?’
그건 아닐 텐데. 가끔 지나치는 거울을 통해 봤을 때도 멀쩡했고.
‘밝은 사람들이라 자신과 상반되는 사람을 잘 알아보는 건가?’
나는 멋쩍게 웃었다.
“별일 아니에요.”
“아닌 거 같은데요. 별일 없다고 하는 사람 중에 그렇지 못한 사람이 팔 할이에요!”
“…그건 어디서 나온 수치예요?”
“잇츠 인 마이 머릿속!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말해 봐요. 저 고민 상담 잘해요.”
그러며 언덕 바닥에 푹 앉은 윤시아가 옆에 앉으라는 듯 제 옆의 바닥을 툭툭 쳤다. 나는 그 모습에 물었다.
“고민 상담을 잘한다는 사람이 그렇게 남의 고민을 막 캐물어요?”
“앗.”
제 입을 막는 윤시아의 모습에 나는 작게 실소했다. 그러고 윤시아의 옆에 앉아 말했다.
“별거 아녜요. 그냥…….”
나는 입을 달싹였으나 말을 더 이어 나가지는 못했다. 그 모습에 윤시아가 은근한 태도로 재촉했다.
“그냥?”
“…그냥, 제가 어떤 사람을 좀 많이 미워해서요.”
“마허윤 헌터요?”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면 결론이 그렇게 돼요. 마허윤은 아녜요.”
“그럼 그 사람을 왜 미워하시는데요?”
“…그냥, 멀리서 보면 저랑 비슷한데, 가까이서 보면 너무나 달라서요.”
“달라요? 뭐가요?”
“노력의 크기요.”
“그 사람은 노력을 안 했어요?”
“…글쎄요. 그 사람 딴에는 노력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 눈에는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네요.”
“한지언 헌터의 눈에만 그리 보이는 거예요?”
“아마도.”
“또요?”
“또……. 글쎄요. 그냥, 좀 많이 밉네요.”
“그렇구나.”
윤시아의 붉은 눈이 회색빛 하늘에 대비되어 더욱 선명히 보였다. 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싶던 윤시아가 이내 입을 열었다.
“한지언 헌터는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아요?”
“알면서도 몰라요.”
“그거 난제네요.”
윤시아가 침음을 내뱉다가 문득 무언가 깨달은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아는 거랑 모르는 거랑 둘 중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쪽은요?”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쪽이요? 어……. 아마 모른다는 쪽이 더 가깝지 않을까요?”
“그렇구나. 근데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 미워해요?”
“…그렇네요.”
“그럼 반대로, 그 사람은 한지언 헌터에 대해 얼마나 알아요?”
“…글쎄요. 저와 똑같을 거 같은데.”
“그럼 그 사람도 한지언 헌터에 대해 잘 모르는 거겠네요.”
그러며 옆에 피어난 붉은 꽃 한 송이를 꺾은 윤시아가 그것을 불쑥 내게 보여 주며 물었다.
“한지언 헌터는 이 꽃의 이름을 아세요?”
“예? 아뇨? 던전에서 피어난 꽃의 이름을 알 리가……. 윤시아 헌터는 아세요?”
“아뇨? 저도 몰라요.”
“그런데 왜…….”
“한지언 헌터랑 그 미워하는 분의 관계는 딱 이 정도예요.”
“…꽃이랑 사람의 관계요?”
“네. 정확히는 모르는 꽃이죠. 우리는 이게 꽃이란 걸 알아요. 하지만 이 꽃의 이름이 뭔지, 무슨 효능이 있는지, 혹은 무슨 독이 있는지는 잘 모르죠.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고 있어요. 그렇다고 말 못 하는 꽃이 먼저 저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 줄 리도 없고요. 아니, 어쩌면 말을 할 수는 있는데 꽃이 입을 닫고 있는 걸지도 모르죠.”
“꽤 참신한 발상이네요.”
“그러니까, 한지언 헌터와 미워하시는 분의 관계는 딱 이런 상태예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면서 서로 굳이 알려고 하거나 알려 주려고 하지 않는 상태. 아니, 한지언 헌터는 상대가 모르는 걸 아신다고 하셨으니, 한지언 헌터를 모르는 상대에게 한지언 헌터에 대해 말해 주실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상대가 모른다고 하셨으니, 말을 하시진 않은 것 같고.”
“…그렇죠.”
“두 분이 서로에게 무엇을 숨기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결론은, 두 사람 다 서로를 숨기고 있는데 당연히 대화가 될 리가 없고… 서로가 서로를 모르면 미워하기가 쉽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기가 어려우니까요.”
윤시아가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고민하신다는 건 적어도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거잖아요? 상대가 다가올 생각이 없어 보이면 먼저 다가가세요. 관계를 개선하고 싶으시다면요.”
“…뭔가 되게 당연한 소리네요.”
“맞아요. 당연한 소리인데 누가 말해 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는 실천하기 어렵죠. …인제 와서 드는 생각인데요, 저 너무 참견이 심했나요?”
“예?”
“아니, 고민 있냐고 캐물은 것도 그렇고, 고민에 대한 답을 너무 멋대로 내린 것 같아서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아, 역시 너무 오지랖이었나?”
“…아녜요. 도움이 됐어요.”
나는 윤시아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
가끔 느끼는 건데, 윤시아라는 사람은 이번 생에 처음 만나는 사람임에도 믿을 수 있는 기운을 내뿜었다. 평소엔 가벼우나 본인의 일에선 확실한 실력을 지녔고, 남을 배신하려 하지 않고, 버리려 하지도 않는, 나보다 더 많은 생을 산 성인군자 같았다.
‘형보다 더 믿음이 간다는 게 웃기다만.’
그만큼 나와 형의 사이가 갈라졌다는 뜻이겠지.
그 소설만 아니었어도…….
‘…소설이 아니었다면, 이변도 안 일어났겠지.’
하지만 소설이 없었다면, 형과 사이가 갈라질 일도 없었겠고.
‘난제네.’
윤시아가 말했다.
“그럼 두 분의 사이가 좋아지길 빌게요! 파이팅!”
“…….”
나는 아무 말 없이 웃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사이가 좋아지기는, 이미 글렀다. 난 에게 사실을 말할 생각이 없으니까.
아니, 애초에 말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가 형과 나 사이에 놓여 있었다. 형 말대로 모든 게 끝나고 나서 얘기하는 게 아닌 이상 우리가 서로 마음을 터놓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빨리 와요! 사람들 기다려요!”
“네, 가요.”
언젠가 풀리리라 막연히 생각하는 문제를 옅게 부는 바람과 함께 날리며, 나는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쉬고 있던 곳으로 돌아오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안절부절못하는 네 사람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의아해 물었다.
“왜들 그러고 계세요?”
“아, 형! 다름이 아니라 윤시아 씨가―”
“저 왜요?”
내 뒤에서 윤시아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튀어나왔다.
“윤시아 씨? 어디 계셨어요?! 갑자기 사라져서 어떡해야 할지 고민했다고요!”
강희민의 말에 상황이 파악됐다. 그러니까, 내가 순찰 간 사이에 윤시아가 사라져서 유주한, 강희민, 마허윤, 박주완이 당황한 표정으로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거군.
파악을 마친 나는 윤시아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 안 하고 오셨나요.”
“그게… 서하 헌터한테는 말했는데…….”
“…자고 계시네요.”
말 그대로, 신서하는 나무에 기대어 쪽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신서하가 자는 모습에 윤시아가 머쓱해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서하 헌터가 비몽사몽인 것 같아 보이긴 했는데 잘 줄은 몰랐죠, 저도…….”
“아무튼,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저번처럼 다른 곳으로 끌려간 줄 알았네요.”
“아하하. 다음부턴 모든 사람한테 말하고 갈게요.”
대화가 마무리되는 듯싶어 나는 그만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이동하도록 하죠. 윤시아 헌터, 신서하 헌터 좀 깨워 주세요.”
“네~”
윤시아의 깨움에 신서하가 눈을 끔뻑이며 일어났다. 여전히 졸려 보이는 모습에 윤시아가 신서하에게 물었다.
“어제 잠 못 잤어요?”
“일이 좀 있어서…….”
신서하의 반말에 잠깐 놀라 쳐다봤다. 반말을 쓰던 걸 본 적이 없는데, 그새 친해진 모양이네.
윤시아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일이요?”
“내 길드가 감정이나 정보에 특화된 길드잖아.”
“그… 코스모스 길드였나요?”
“응. 그런데 최근 길드에 감정 요청이 들어온 게 좀 많아서…….”
“아이템이요?”
“그것도 많고… 탑을 클리어할수록 이상 현상이 보여서 그거 조사하느라 잠을 못 잤어.”
그 말에 이번에는 내가 끼어들어 물었다.
“이상 현상이라뇨?”
“에? 한지언 헌터 모르셨나요?”
“처음 듣는 소리인데요.”
“이상하다. 비밀 유지 계약은 안 했는데…….”
“그래서, 이상 현상이 뭔가요?”
“별거 아니에요. 한국에 오로라 비슷한 현상이 자주 보여서…….”
“조사해 보니 오로라였나요?”
“아니요. 오로라가 아닌 건 명확하지만… 정확히 알아낸 건 없어요.”
그 말에 윤시아가 물었다.
“신서하 헌터의 능력으로도요? 사전 능력인데?”
“…내 능력이라고 만능은 아니야. 애초에 내 능력은 감정 같은 게 아니니까.”
“감정이 아니었어요? 몬스터를 보기만 해도 몬스터에 대해 알아내잖아요?”
“내 능력은… 알아낸다기보단 정보를 조합하는 방식이야. 내가 한 번이라도 본 모든 정보를 조합해 결과를 도출하지. 다시 말해, 내가 모르는 정보에 대해선 알 수 없어.”
“까다로운 능력이었네요. 그럼 협회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정보 맨날 보시겠네요.”
“그런 편이지.”
신서하의 능력을 토대로 오로라에 대해 판단하자면, 어쩌면 정말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신서하가 생전 처음 보는 현상이라면…….
‘어쩌면 위험한 거일 수도 있겠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그게 아니었다. 오로라와 비슷한 현상에 대해선 나가서 확인해 보기로 하고, 나는 일단 던전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