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겔탄을 데리고 다녀야 했기에, 팀원들과의 던전 공략은 불가능해 보였다. 겔탄이 팀원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 그렇다고 바깥을 돌아다니기에는 문양 발현자가 겔탄을 인식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승현 헌터. 혹시 근처에 등급이 낮은 던전이 있나요?”
“어느 정도의 등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냥 아무거나요. 얘가 바깥을 돌아다니게 둘 순 없잖아요.”
그러며 겔탄을 가리키자, 승현 헌터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잠시 누군가와 통화를 한 뒤에 내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여기서 10분 거리에 C급 던전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들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리플 길드 소유인가요?”
“네. 마음대로 쓰셔도 됩니다.”
마음대로 쓰라 했지만…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은 리플 길드에 줄 생각이었다. 겔탄을 리플 길드에 맡긴 건 나니까. 승현 헌터가 겔탄을 책임진다 했지만,겔탄에 대한 책임은 내게도 있었다. 아니, 거의 내 책임이 아닐까.
‘…그야 겔탄은 날 보러 온 것 같으니까.’
일부러 내 앞에 나타나기까지 했으니, 그 이유 말곤 특별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던전 공략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네.”
아쉬워하는 사람 반, 내심 기뻐하는 사람 반이었다. 아쉬워하던 사람 중 한 명인 윤시아가 물었다.
“그럼 저희끼리 A급 던전 돌아도 돼요? 유주한 헌터도 아직 던전 돌 수 있는 횟수 남아 있잖아요.”
“상관은 없습니다…만, 혹시 모를 상황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태 저희가 돈 던전이 몇 갠데요~ 혹시 빠질 사람 있어요?”
윤시아가 팀원들을 이끌고 던전으로 향하는 듯 보였다.
얼핏 윤시아가 리더로 보였지만, 윤시아는 어디까지나 분위기를 주도할 뿐 리더로서는 부족했다. 강함으로 따지자면 유주한이 리더여야 했지만, 경험이 부족하니 논외.
내가 마음속으로 선정한 예비 리더는 두 명이었다.
‘신서하나 박주완이 잘해 주겠지.’
두 사람이 어련히 잘해 주리라 생각하며, 나는 겔탄을 이끌고 근처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이번 한 번만이야.”
“응?”
“이번 한 번만 같이 있어 줄 거니까, 이 뒤로 가만히 있으라고.”
겔탄은 말없이 샐쭉 웃었다.
“가만히 안 있기만 해 봐. 콱 죽어 버릴 거야.”
“죽을 순 있고?”
“못 할 거 같냐?”
날아드는 몬스터를 낫으로 가볍게 치자 바로 죽어 버렸다.
“둘밖에 없으니 제대로 답해. 그래서, 갑자기 왜 온 거야.”
“…곧 알게 될걸?”
“곧 알게 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 야!”
겔탄이 갑작스레 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재빠르게 따라갔지만 묘하게 따라잡을 수 없었다.
‘유인하는 건가?’
왜?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되풀이되었다.
그러던 중,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겔탄을 붙잡으려 한 순간.
후욱!
“…여기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떠다니는 섬. 울창한 나무와 잔디. 새빨간 하늘. 하늘의 색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주받은 땅처럼 보였다.
내가 서 있는 곳은, 꽤 가파른 언덕 사이로 흐르는 냇물 옆의 작은 길이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거리, 겔탄이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겔탄이 뒤로 돌아 걸었다.
‘뭘 원하는 거지?’
죽이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디론가 나를 이끄는 듯한 명백한 행동에 의구심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지.’
겔탄은 왕을 높이 모시면서 나를 죽이려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왕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며 내 편을 들었었지. 그 뒤로도, 나의 신뢰를 받으려 온갖 짓을 했다. 물론 내 신뢰를 받지는 못했지만.
찰박. 가파른 언덕이 끝나고, 눈앞에 펼쳐진 작은 풍경 안에 낡은 오두막 하나가 보였다. 정말 급조해서 만든 듯 세워진 벽은 비뚤배뚤하며 지붕은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오두막이었다.
겔탄은 오두막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나는 겔탄의 코앞까지 다가가 입을 열었다.
“날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가 뭐지?”
“보여 줄 게 있어.”
“보여 줄 거라니?”
겔탄이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고 낡은 티를 내며 열린 문 안쪽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어두웠다. 보여 줄 것이 있다고 하기에는 별것 없어 보이는 고요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
“그래.”
겔탄이 오두막으로 쏙 들어간 뒤 아무 일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문에 기대어 안쪽을 살폈다. 안쪽은 휑했다. 보여 줄 것이 있다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겔탄이 바닥 어느 부분을 발로 내려쳤다. 그러자 한쪽 바닥이 들리며 새로운 입구를 드러냈다.
“따라와.”
“널 뭘 믿고?”
“…부탁이야.”
“강제가 아니라?”
“응.”
“거절하면?”
“그때부터 완전히 네 적이 되겠지.”
“네가?”
겔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제대로 싸워 본 적은 없지만, 겔탄은 확실히 강했다. 형이랑 합심해서 싸워야 겨우 이길까 말까 한 수준일 터였다.
어떻게 아냐고? 그냥 직감이었다. 센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어야지.
‘만약 함정이라면 그냥 죽음 되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겔탄의 뒤를 따랐다. 내려가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끽해야 1층 정도의 길이었다.
계단을 모두 내려온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지하였다. 다만 위쪽과 달리 소리는 들렸다. 무언가 꾸물거리는 듯한 괴상한 소리였다.
겔탄이 벽에 붙은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자, 낡은 전구 하나가 지하를 밝게 비추었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건…….
‘…슬라임 공장도 아니고.’
벽은 마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대충 보아하니 보호 차원으로 붙여진 듯했다. 그리고 그 안에 슬라임 같은 몬스터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니, 슬라임보다는 마치 바다 밖으로 나온 블로브피시 같았다.
탁한 색을 가진 젤리처럼 미끄덩한 몸체를 가진 그것들은 제각기 다른 형체를 취하고 있었다. 다만, 그 형체도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나는 겔탄에게 뭐 어쩌라는 냐는 눈길을 보냈다. 겔탄이 한 슬라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랑 같은 존재들이야.”
“너랑 같은 존재라니? 네 원래 모습이 이것들의 모습이랑 같다는 거야?”
“아니. 나는 완성 직전의 존재라 형태가 일정해. 다만 이 애들은 아니지.”
“완성 직전의 존재란 건 무슨 뜻인데?”
“말 그대로야. 만들다 만 존재. 그게 나지.”
“널 만든 건… 왕인가?”
“맞아.”
“그럼 이것들도, 왕이 만든 거라는 건데.”
“맞아. 정확해. 다만 얘들은 실험에 투입되기 직전의 재료들. 대부분 재료가 되기도 전에 죽었어. 그나마 남은 게 이 정도지.”
“왕이 너희들을 만든 이유는?”
“…글쎄. 나도 몰라. 태어나 보니 만들다 만 존재인데, 왕이 내게 그런 걸 알려 줄 리가 있나.”
간단히 말해서, 실험체 같은 거라는 건가.
“그래서, 날 왜 여기로 데려온 건데.”
“널 보자마자 데리고 오고 싶었어.”
“그럼 기회는 많았을 텐데? 왜 인제야 데려온 거지?”
“왕의 눈에 띄면 안 되니까. 말했잖아. 대부분 재료가 되기 전에 죽었다고. 부작용으로 죽은 게 아니야.”
“왕이 죽였다는 거네. 눈에 띄면 안 된다는 건, 왕이 발견하면 죽이려 할 테니까겠고.”
“응.”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의 것들을 겔탄은 마치 가족처럼 쓰다듬었다.
“그래서, 데리고 온 이유는?”
“…….”
겔탄이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이 애들을 죽여 줘.”
“…뭐?”
앞뒤가 맞지 않았다. 왕이 죽일까 봐 숨겨 놓고, 이제는 나에게 죽여 달라고?
“네가 죽이면 되잖아?”
“난 못 죽여. 아니, 이 애들을 죽일 수 있는 건 왕뿐이지.”
“그럼 그냥 왕한테 말하면 되는 거 아니야?”
“…….”
대답하지 않는 겔탄의 모습에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봉인되어서 말할 수 없는 것과 연관된 건가 보네.”
겔탄이 말없이 웃었다.
꿈의 주인은 왕에 관한 발설을 봉인 당했다고 했다. 겔탄이 왕은 자신들의 모든 것이라 했고, 그 이후론 별다른 말을 해 주지 않았으니 거의 확정적으로 겔탄 역시 봉인됐을 터. 왕과 관련된 건 사소한 것도 말 못 하냐? 진짜 쩨쩨하네.
겔탄이 입을 열었다.
“너만이, 이 애들에게 평안을 줄 수 있어.”
“평안?”
“이 애들이 이 애들로서 죽을 수 있는 평안.”
“그건 왕에 대한 게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건가?”
“이건 너에 대한 거니까.”
“…나에 대한 거라니?”
“자세한 건 나도 가려져서 못 봐.”
“그 안대 때문에?”
겔탄이 입꼬리를 최대한 올려 방긋 웃었다. 이유야 말하지 못하는 것이니 그러려니 한다만…….
“이것들을 죽여 주면,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지?”
겔탄이 준비된 듯 말했다.
“더 이상 일부러 귀찮게 안 할 거고, 너의 완벽한 아군이 되어 줄게.”
“완벽한 아군이라니?”
“물론, 왕의 명령이 없는 한에서만이야.”
“…그 말은 즉, 지금까지는 일부러 귀찮게 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아무래도 지킬 존재가 있으니까. 왕의 눈에 띄면 곤란한데 접촉은 해야 하니, 호감이라는 명목으로 너를 졸졸 따라다니는 척을 해야 해서 일부러 귀찮게 행동했지.”
일부러라는 말에 그동안의 귀찮았던 일들이 떠올라 내심 화가 피어올랐지만,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꽤 괜찮았다. 적어도 스파이 비스름한 게 생기는 거니까. 다만.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언약할게.”
언약이라면, 첫 번째 탑의 탑주와 형이 했던 걸 말하는 것 같았다.
‘탑주도 깨지 못할 약속을 할 정도라면, 일단 거짓은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해.”
그래도 언약은 해야 했다. 저쪽 것들의 의식이었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이게 언제 배신을 할지 모르고. 겨우 이번 대화로 온전히 믿기에는, 신뢰할 수 없는 존재였다.
고개를 끄덕인 겔탄이 심장 부근을 매만졌다 손을 떼자 손과 심장 사이로 하얀 진이 펼쳐졌다.
“나는, 한지언이 이것들을 죽여 주면, 왕의 명령이 없는 이상 한지언의 평생의 아군이 된다. 단, 약속을 하고도 죽여 주지 않는다면 끝까지 찾아가서 멸망시킬 거야.”
“…내 이름 되게 자연스럽게 부르네.”
“언약은 끝났어.”
그러며 겔탄은 내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뒤에 서서 나를 지켜보는 모습이 꼭 빨리 죽이라고 종용하는 듯했다.
‘…가족처럼 행동했으면서 죽일 때는 칼같네.’
나야 질질 안 끄니 편하다만.
“그냥 죽이면 되는 건가?”
겔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겔탄의 답을 받은 나는 망설임 없이 손아귀에 별을 만들어 냈다. 후 숨결을 불자 별이 뽈뽈뽈 몬스터들에게 향했다. 그러다 공간의 중앙에서 멈춰 서고, 이윽고.
퍼엉!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몬스터뿐만이 아니었다. 벽을 도배한 마석도, 지하의 천장도, 그 위에 있던 오두막도, 전부 무너져 내렸다.
폭발의 연기가 걷히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몬스터의 흔적도 없었다. 그 흔한 마석도, 아이템도 떨어지지 않았다.
황량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멎기 직전, 나는 겔탄에게 물었다.
“됐어?”
겔탄이 만족한 듯, 처음 보는 웃음을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