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궁전 안은 조용했다. 문 너머에서는 분명 싸움이 일어나고 있을 터임에도 고요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 속, 신서하가 조용히 말했다.
“꼭 영화의 한 장면 같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박주완이 신서하의 말에 동의하듯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말에는 공포심이나 그런 감정은 들어 있지 않았다. 순전히 주변 풍경에 감탄하는 말투였다. 그럴 만도 했다.
궁전 안으로 들어오는 푸르스름한 빛. 물속임에도 흐릿하지 않고 뚜렷이 보이는 주변 모습. 지금은 보기 힘든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 티 하나 묻지 않은 신성함.
넓은데 길기까지 한 복도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문 없이 뻥 뚫린 입구가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그 너머, 복도의 몇십 배는 되는 궁전의 메인 홀이 환하게 빛을 내며 자신의 화려함을 뽐냈다.
‘다 돌아보려면 반나절은 필요할 거 같은데.’
메인 홀 옆 복도. 복도 옆 복도. 복도에 딸린 방들. 그런 광막한 모습에 벌써 지칠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던 승현 헌터가 말했다.
“둘씩 흩어져 수색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무언가를 찾으셨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이곳, 메인 홀까지 나온 뒤에 소리쳐 주십시오. 혹여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자리에서 소리쳐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제가 혼자 다닐게요!”
윤시아가 손을 번쩍 들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 한지언 헌터는 분홍색이랑 같이 다녀야 해서 한 사람이 남잖아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하죠! 그리고 저 목청 커요.”
주변에 위험하다 싶은 건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승현 헌터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다른 분들은…….”
윤시아가 말했다시피 나는 겔탄과 함께 다녀야 하는 신세였기에 둘씩 나누는 과정에 낄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는, 못 하는 거지만.
합리적으로 짝을 나눈 후 이번에는 어디로 갈 것이냐에 대해 말하려던 승현 헌터의 말을, 이번에도 윤시아가 나서서 막았다.
“어차피 어딜 가든 싸우거나 안 싸우거나일 텐데, 그냥 아무 데로나 가죠!”
그러며 윤시아는 도망치듯 어디론가 달려갔다. 승현 헌터가 곧장 잡으려 했으나 윤시아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버린 후였다. 승현 헌터는 이내 포기하고 각자 중복되지 않게만 움직이라 했다.
나는 메인 홀의 중앙 복도를 골라 이동했다.
“둘만 있으니 물어보는 건데,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거 맞아?”
“진짜라니까.”
“네 행동은 전혀 아닌 것 같던데.”
“우연이라니까~”
“왕과 관련되어 있어 말을 못 하는 거겠지.”
“…….”
“아는 건 있고.”
맞나 보네.
‘언약을 해도 이리 쓸모가 없어서야.’
결국 모든 건 왕과 관련이 있으니 얻을 수 있는 건 인력뿐이었다. 그 인력도 제대로 사용할 일이 없으니 결국 남은 건 짐덩이.
‘생각을 잘못했나.’
나는 긴 복도에 놓인 방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방을 살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이 달리지 않아 뻥 뚫린 입구를 통해 방 안을 한번 훑어보기만 하면 됐다. 성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별로 볼 게 없었다. 끽해야 책상이나 의자, 장식품 정도니까.
그렇게 긴 복도를 걸은 끝에, 길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여기가 끝인가 보네.”
“그러게.”
복도 끝에는 붉고 거대한 문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안 열리네.’
손을 짚어 밀어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이리 큰 문이 그냥 열리지는 않겠다 싶어 한숨을 내쉬며 문을 쓸어내리던 중 무언가가 손바닥에 걸렸다.
“응?”
손을 떼고 보자 웬 홈이 있었다. 다섯 개의 홈은 무언가 끼워져 있었기라도 한 듯 다른 곳에 비해 특히 깔끔했다.
‘뭘 끼워 넣어야 문이 열리려나.’
뭘 끼워 넣는 걸까. 그건 알 방도가 없었다. 내가 천재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아냐.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를 해 봐야 하나.’
혹시 몰랐다. 다른 곳에 이 문에 대한 실마리가 있을 수도.
“겔탄. 돌아가자.”
“더 안 봐?”
“볼 거 없어.”
그렇게 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윤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어요!”
그 소리에 곧장 메인 홀로 돌아가자, 웬 책을 품에 안고 있는 윤시아가 보였다.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서둘러 돌아왔다. 전부 돌아온 걸 확인한 윤시아가 입을 열었다.
“제가 간 곳에 도서관이 있었는데, 이런 책이 있었어요!”
그 말에 승현 헌터가 물었다.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까?”
“그럼요! 이 책만 유일하게 방수인걸요?”
즉 다시 말해 다른 책은 다 물에 젖어 쪼그라들었는데 저 책만 멀쩡하다는 뜻일 터. 확실히 수상했다.
윤시아가 책을 펼치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 중요한 힌트가 적힌 글이 있는데… 글씨가 무슨 개미 가슴만 하네요. 그냥 제가 읽을게요.”
윤시아가 목을 가다듬더니 평소와 다른 낮은 목소리로 글씨를 읽어 내렸다.
“그 성부(城府)는 잠들었으니. 바다 깊은 곳, 조용한 곳에 잠들어 있으리라. 만약 이곳에 가려는 자가 있다면 동서남북에 흩어진 마구(魔球)를 찾아 문에 끼워 넣어라. 그리하면 성부는 그대를 맞이하리라. 다만,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해 가는 자라면 멈추어라. 그런 자는 마구에 손이 닿는 순간 전부 먹이가 되니. 명심하라. 호기심 깊은 자는 멈추어라. 미를 탐구하는 자는 멈추어라. 성부는 오로지 인정된 자만 받아들이니…라네요!”
승현 헌터가 말했다.
“그렇다면 동서남북으로 또다시 갈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동서남북에 마구가 있다고 하니… 문제는 마구를 얻은 뒤네요.”
“아, 그거라면 제가 아까 홈이 있는 문을 찾았어요. 여기서 중앙 복도로 가면 나와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동서남북으로―”
“저! 동쪽이요!”
“…윤시아 헌터 혼자 말입니까?”
“네! 아까도 별일 없었잖아요! 저 혼자 좋아요. 그리고 바다도 좋아해요!”
“…위험한 상황이 오면 곧장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치십시오.”
승현 헌터는 윤시아를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기야, 이미 마음속으로 다 정한 인간을 어떻게 말리겠냐.
승현 헌터가 입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신서하 헌터만 추가해서 서쪽으로 갈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얘가 강하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며 겔탄을 가리켰으나, 승현 헌터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겨우 수긍했다.
“…조심하십시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신서하와 겔탄을 데리고 서쪽으로 향했다. 메인 홀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향하는 복도를 지나니 뻥 뚫린 출구가 우리를 반겼다. 그러나 그 너머의 풍경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등산해야 하겠네요.”
들쑥날쑥한 지형과 바다를 유영하는 물고기, 넘실거리는 해초. 이 사이에서 마구를 도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걸까.
‘여기가 서쪽이긴 한데, 서쪽으로 더 가야 하나? 아니면 여기를 수색해야 하나…….’
몸을 움직여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디디자, 똑같이 반복되는 지형이 저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잘못 골랐네.”
이런 지형에서는 승현 헌터가 편할 텐데.
나는 일단 아래로 내려가 겔탄과 신서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넓이가 너무 넓어서 여기서도 흩어져야 할 것 같아요.”
“많이 넓은가요?”
“네. 이 장소가 계속 반복된다고 보시면……. 아.”
문득 든 생각에 말을 끊자, 신서하가 의아해했다.
“한지언 헌터?”
“아뇨. 잠깐만요.”
던전에서 반복은, 일종의 눈속임이었다. 만약 마구가 숨겨야 하는 중요한 것이라면 이 장소는 필시 함정일 가능성이 컸다. 무언갈 숨기려면 장소부터 속여야 했으니까. 그렇다면, 반복되는 장소에서 뭔가를 숨길 만한 곳은 끝 아니면…….
“신서하 헌터.”
“네.”
“혹시 이 주변에 수상한 게 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수상한 것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표식이라거나… 적당히 이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거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신서하가 제 몸에 버프를 걸어 재빠르게 움직였다. 플랜 A는 됐으니 다음은…….
“겔탄.”
“응?”
“다 부숴.”
겔탄이 잠시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아마 안대가 없었더라면 멍청하게 눈을 끔뻑이고 있는 걸 봐야 했겠지.
겔탄이 물었다.
“뭐를?”
“알고 있잖아?”
내가 겔탄에게 부수라고 한 것은, 들쑥날쑥 솟아 있는 이곳의 언덕 전체였다. 물론 능력 없이 힘만 좋은 겔탄이 저 언덕들을 전부 부수려면 일일이 돌아다니며 부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굳이 멀리까지 안 부숴도, 무언가 있다면 가까운 곳에서 나올 터이니.
“부숴.”
“이거 노동력 착취잖아.”
“그러게 누가 그런 약속 하래?”
“네 능력이면 바로 빠바방 되잖아!”
“난 따로 할 거 있어.”
“…….”
겔탄이 입꼬리를 최대한 내리며 들쭉날쭉한 언덕들로 다가갔다.
‘플랜 B도 됐고.’
마지막 플랜 C.
‘플랜 C라고 하기도 뭐하지.’
툭툭. 나는 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던전 안 미로에서 지겹게 나오는 패턴. 만약 그게 던전 고유의 규칙이라면, 아마 여기도 그렇지 않을까.
등잔밑이 어둡다. 그런 말이 있다. 무언가를 숨기려고, 바로 이 밑 바닥에 숨기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다리를 적당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강하게 힘을 주어 바닥을 내려쳤다.
쾅! 내려친 곳에 금이 가고, 그 진열이 사방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것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공간이 나타나지도, 무언가 툭 튀어나오지도 않았다.
‘꽝이네.’
그럼 나머지 방법을 믿어야 하나.
바닥을 몇 번 콩콩 두드리고 있자, 신서하가 달려왔다.
“한지언 헌터! 방금 진동이―”
신서하는 내 발밑을 보고 방금의 진열을 이해한 듯 아, 하는 소리를 작게 내뱉었다. 신서하가 멋쩍어하듯 서 있어 물었다.
“제가 말한 건 찾으셨나요?”
“네? 아뇨……. 궁전 벽과 땅, 반복되는 지형들을 모두 살폈는데 특별한 건 없었어요.”
“그런가요.”
도대체 그 마구라는 걸 어디다 숨겨 놓은 건지. 숨겨 놓은 장본인도 찾아야 할 테니 적어도 표식은 있을 줄 알았거늘. 플랜 A도 꽝인 모양이었다.
‘그럼 남은 건…….’
쿵. 쿠르릉. 흡사 산사태가 일어나는 듯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겔탄이 우뚝 솟아오른 언덕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있었다. 꼬리로 쳐 무너뜨린 언덕을 밟고, 다시 그 앞에 있는 언덕에 뛰어들어 부수길 반복했다.
그 모습을 같이 바라보던 신서하가 물었다.
“과연 언덕 안에 있을까요?”
“확실하진 않습니다. 다만 표식도 없고 바닥에도 별게 없다면 남은 건 저 언덕들뿐이잖아요. 반복되는 지형으로 보아 아마 지형을 재구성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그 사람이 일부러 반복되는 언덕들을 만들어 그중 하나에 마구를 숨겼을 확률에 기대 봐야죠.”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요?”
“신서하 헌터의 능력으로도 못 찾으시는 거죠?”
“네. 그냥 평범한 지형이라는 것 말곤 정보가 없어요.”
“그러면―”
“찾았어!”
불쑥. 눈앞에 사람만 한 돌덩이 하나가 내밀어졌다. 그 돌덩이 가운데 붉은 구 하나가 심겨 있었다. 바다임에도 스스로 영롱한 빛을 내는 게, 나 마구예요, 자기소개를 하는 것 같았다.
돌덩이가 바닥에 내려지고 그 뒤로 겔탄이 나왔다. 겔탄이 자신이 대단하지 않냐는 듯 하늘로 솟을 것같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잘했네.”
“그치~?”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서둘러 마구를 뽑아서 돌아가야 했다.
나는 돌덩이에 박힌 마구를 뽑아냈다. 아까 책에 적혀 있던 먹이가 되니 뭐니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손에 쥔 마구는 평범한 원석이었다. 아마 호기심이 없어서겠지.
“돌아가죠.”
그러곤 우리는 궁전으로 걸음을 향했다. 아니, 향하려 했다.
쾅! 거대한 돌이 생겨나 궁전으로 돌아가는 입구가 막혔다. 그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그 그림자가 다가와 우릴 공격했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