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끝내 지키지 못한 자】
가만히 텅 빈 손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박주완이 슬쩍 물었다.
“한지언 헌터. 혹시 아무것도 못 받으셨습니까?”
“…그런 것 같네요.”
“뭐? 아무것도 못 받았다고?”
마허윤이 아쉬움보단 기대에 찬 목소리로 다가와 놀리려고 하다 주변의 시선을 느끼곤 걸음을 멈췄다.
“한지언 헌터, 혹시 뭐 잘못했어요?”
“그런 기억은 없는데요.”
“탑한테 차별당하시네요!”
“…….”
상황을 파악한 승현 헌터가 말했다.
“신서하 헌터의 말에 의하면 아까와 같이 일회성 무기지만 부여된 능력이 S급 이상이라 합니다. 보아하니 이걸로 기사를 처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만… 한지언 헌터는 무기를 얻지 못하였으니 후방에 서서 싸움에 참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나같이 맞는 말이었기에 굳이 나서진 않았다. 그래, 뭐, 알아서 처리해 주겠다는데. 뒤에 있지, 뭐.
쿠르릉. 입구를 굳게 막고 있던 쇠창살이 위로 올라가며 입구가 개방되었다.
“복수하러 가요!”
윤시아가 얻은 무기를 위로 치켜들며 앞장서 들어가려 하자 강희민이 붙잡아 막아 냈다. 승현 헌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걸로 보아 아마 따로 부탁한 듯 보였다.
“제가 앞장서 걷겠습니다.”
승현 헌터가 선두로 나서 길을 안내했다.
“아까랑 다르게 엄청 넓네요……. 무늬도 촘촘하고요. 건축물이 이렇게 아름다운 건 처음 봐요.”
아까 밖에서 기다리던 강희민이 주변을 구경하며 감탄했다. 윤시아가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다만 나는 강희민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분명 궁전 내부나 밖이나 아름다움의 표본이라 볼 수 있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이곳은 무너져 있었다. 실제로 건물이 무너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느낌이 그렇게 느껴졌다. 아무도 안 사는 텅 빈 궁전이라 그런가.
아까와 다를 바 없는 궁전 안. 길을 알고 있어서인지기사의 모습을 금방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싸움을 벌였던 장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광이 날 것처럼 깔끔했고, 기사도 묵묵히 동상처럼 서 있었다.
기사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서자, 그제야 기사가 입을 열었다.
―결국, 자격을 갖추고 돌아왔군.
승현 헌터와 형이 말없이 기사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너희는 정녕, 이곳을 지나려는 것인가.
승현 헌터가 입을 달싹이다,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내가 이곳에서 너희를 막는 것은, 어쩌면 너희를 위한 일일 수도 있다. 이 안에 잠들어 계시는 우리의 왕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진귀한 분이시니.
왕이란 말에 순간 손끝을 떨었으나, 기사가 말하는 왕이 탑의 주인은 아닌 듯했다.
―이곳은 한때 우리 종족이 살던 풍요로운 곳이었다. 그러나―
“말이 많군.”
형의 말에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직접 보여 주지. 과거의 이곳을, 그날의 일을. 이곳을 지날 너희는 볼 자격이 되니.
첨벙! 이미 물속임에도 물에 빠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재빠르게 가라앉는 물에 감았던 눈을 뜨자, 아까 보았던 휑한 도시가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아까와 달리 폐허의 모습은 아녔다. 건물 사이사이를 어인들이 활보하며, 물고기들이 춤추듯 도시를 배회했다.
그 도시의 어딘가에서, 어느 작은 어인이 검을 휘둘렀다. 가검이었지만 어인은 어느 진검보다 날카롭게 그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그 어인은 성장하고, 성장해, 이윽고 정식 기사가 되어 다른 어인보다 배는 큰 어인 앞에 섰다.
‘이곳의 왕인가?’
물거품이 일렁여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볼 수 있는 건 거대한 손이 기사를 보듬는 것이었다.
기사는 평생의 충성을 맹세하고, 왕의 뒤를 지켰다. 그렇게 아틀란티스의 평화가 계속되는 듯했으나.
장면이 단숨에 변했다. 건물 사이사이에는 어인들이 아닌 붉디붉은 액체가 일렁였고, 시체가 가라앉고 떠올랐다. 그것 때문일까. 푸르른 바다가 붉게 물든 듯 보였다.
기사가 검을 내린 채 누군가와 대치하고 있었다. 물거품 때문에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사가 그렇게 충성을 바쳤던 왕인 듯했다. 물거품 사이로 절규하는 왕의 붉은 눈이 스쳐 지나갔다.
‘…탑주 맞는 거 같은데.’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죽였던 광기 어린 붉은 눈. 그 붉은 눈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나 평화롭게 도시를 다스렸으면서, 왜 그렇게 성격이 포악하고 더럽게 된 거지. 지금 상황을 보니 왕이 미쳐 제 나라를 파괴하는 거 같은데, 이 때문인가?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왕은 끝내 저 자신을 공격했다. 마치 제 나라를 지키려 자신을 죽이려는 듯 보였다.
왕의 밑으로 진주가 가라앉았다. 어떤 진주는 붉게 물들어 있기도 했다.
기사가 그만하라는 듯 왕에게 소리를 질렀다. 왕은 그 소리를 들은 듯 이내 모든 행동을 멈추고 어떠한 말을 읊조렸다. 그러나 내겐 쇠를 긁는 듯한 기이한 소리만 들려왔다.
왕이 말을 끝내자, 사방에서 사슬이 내려와 왕을 궁전 안으로 이끌었다.
기사는 진주가 떨어진 자리에 한참을 서 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굳게 닫힌 거대한 문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검을 땅에 박고 문으로 다가오려는 자들을 심해로 빠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도시를 물들인 피가 옅어지고, 완벽히 사라질 긴 시간 동안. 한참을.
번뜩. 잠을 잔 것 같은 느낌에서 깨어나 눈을 뜨자, 다행히도 멀쩡히 서 있었다.
“방금 뭐예요?”
강희민이 제 머리를 만지며 물었다.
“영화 한 편 본 것 같아요.”
“감수성 충만한 자식.”
“허윤 형, 눈물이나 닦고 말해요.”
“안 흘렸거든?!”
“안 속네.”
“너 요즘 한지언 닮아 간다고!”
“…….”
난 저런 적 없다. 아마.
형이 물었다.
“그래서, 저 뒤엔 미친 왕이 있다는 건가?”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내 말이 틀린가? 제 손으로 제 나라를 부숴 버리다니, 미쳐 버렸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왕은, 왕은 미친 것이 아니다! 단지, 그저, 바다의 파도가 거세져서, 그런 것뿐이다!
“파도가 거세서 그런 거라면, 날씨가 좋지 못할 때마다 그런다는 건가. 참으로 포악하네.”
―그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 하였다.
스릉― 가검이 아닌 진검이 뽑혀 날카로운 날을 드러냈다. 승현 헌터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왜 굳이…….”
그러나 말을 잇지는 않았다. 추측하건대 아마 왜 굳이 흥분하게 하냐는 것일 테지만, 어차피 싸울 상대이니 흥분하건 말건 똑같다고 생각하고 말을 멈춘 것일 터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했다.
―너의 시체는 바다에 흩뿌려져, 모든 생물의 먹이가 될 것이다.
후욱! 기사가 단숨에 형 앞에 다가와 살기를 내뿜으며 공격을 가했다. 형이 아까 얻은 무기를 이용해 기사의 공격을 막아 냈다. 아마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평범하게 검처럼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형은 기사가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는지 잠시 놀란 듯 표정에 미세한 변화를 줬다가 금세 돌아왔다.
“제 무기 먼저 쓰겠습니다!”
그러며 신서하가 완드를 높이 들어 무기에 부여된 능력을 사용했다. 사방에 포근한 빛이 퍼져 나가며, 이내 우리의 몸에 들어온 빛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감쌌다.
‘보호인가?’
버프를 받고 움직이자, 완드의 능력이 모든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쿠웅! 기사를 향해 화살과 나무가 달려들었고, 박주완이 방패로 짓누르기도 했다. 세 마리의 뱀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거나 물회오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어 검은 안개가 기사의 앞을 막아서기도 했으나, 기사는 끝끝내 그 모든 것을 막아 냈다.
신서하의 버프 덕일까, 적어도 아까 처럼 밀리진 않았다.
강희민이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 무기의 능력을 사용했다. 강희민의 발밑을 시작으로 사방으로 나무의 뿌리가 자라나 기사를 따라가며 공격했다. 그 과정에서 기사의 투구에 금이 갔다.
강희민의 무기가 부러지며 능력이 끝나자, 이번엔 마허윤이 무기를 사용했다.
마허윤이 뒤에서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제 모든 기력을 쏟아붓는 것만 같은 거센 기운과 함께 화살이 만들어졌다. 이윽고, 빛이란 빛은 다 빨아들인 것 같은 활이 기사에게 쏘아지고, 기사의 건틀릿이 무너져 내렸다.
박주완이 그 틈을 노려 하얀 방패로 기사를 짓누르자, 기사의 갑옷에 천천히 금이 갔다. 그러나 곧 방패가 부서지며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박주완이 뒤집어졌다.
승현 헌터가 박주완을 구하려 무기를 사용했다. 바다의 흐름이 승현 헌터를 따라 움직이며 기사의 몸을 묶고 삼켰다. 기사의 지느러미가 반 잘려 나갔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듯 형이 온 힘을 다해 무기를 들고 나섰다. 하얀 검이 새하얀 안개를 내뿜으며 기사의 온몸을 감싸고 억죄었다. 안개 사이에서 나타난 형이 기사의 심장을 향해 검을 꽂았다. 기사의 갑옷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곧이어 심장이 꿰뚫리려 하였으나, 타이밍 좋지 않게 검이 무너져 내렸다. 한번 잡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형이 제 검을 쥐어 기사의 심장에 꽂으려 했다. 그러나 통하지 않고 밀려났다.
소리 없이 기사의 뒤로 간 윤시아가 밀려난 형에 이어 사라지지 않은 하얀 안개를 조종하고 흰 커틀러스를 부여잡아 기사의 머리에 검을 꽂았다. 투구가 갈라져 기사의 얼굴이 드러났다. 굳이 감상 평을 남기자면, 기사의 얼굴은 평범했다.
기사가 검은 눈을 부릅뜨고 윤시아의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피를 흘리는 기사가 목을 긁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는, 절대, 보내지 않겠다!
그 기세에 윤시아의 손끝이 움찔거렸고, 기사는 그 틈을 노려 윤시아를 쳐 냈다. 윤시아가 벽에 부딪치자 두꺼운 벽이 무너져 내려 옆방의 내부를 드러냈다.
―절대, 안 보낸다. 난 절대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더 이상 기사라 부르기 어려운 모습의 기사가 문 앞을 지켰다. 기사는 제 몸을 뒤덮은 피를 사방에 흩뿌리며 공격하고 막아 내길 반복했다.
기사가 신서하를 붙잡고 목을 죄자, 그 뒤로 마허윤과 강희민이 신서하에게 붙은 손을 뜯어냈다. 마허윤이 조금 지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더럽게 질기네! 그냥 좀 보내 달라고!”
여긴 탑이다. 저것은 적이고. 그냥 보내 주겠냐?
쿵! 쿵! 신서하를 겨우 빼내자 기사가 이번에는 강희민과 마허윤을 붙잡고 바닥에 내려찍었다. 1초에 몇 번을 내려치는 건지, 둘이 죽을 것 같아 나는 곧장 앞으로 나서 기사의 몸을 발로 찬 후 두 사람을 던지듯 뒤로 보냈다.
‘이만큼 공격을 퍼부었는데, 도대체 왜 안 죽는 거지?’
아니, 무기의 능력을 사용하면 기사가 죽는다는 건 오롯이 내 생각이었다.
‘무기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했어야 했나?’
쓰러지지 않는 기사가 내 뒤를 덮쳤다. 목을 노리는 검을 곧장 막아서자 기사가 검을 치우고 손으로 목을 잡아 짓눌렀다. 낫으로 몸을 베었지만, 깊이 파고들 순 없을 단단함이었다.
‘이걸 어떻게 죽이라고.’
무기를 잘못 써서 이 꼴이 났나? 아니, 아무리 효율적으로 썼어도 이 자식은 다 피하거나 막았겠지. 아니면 그냥 맞고 버티거나. 이미 생각의 범위를 벗어났다. 기사라는 게 이 정도인데, 저 뒤의 왕은 어떨까.
콰드드득! 기사의 팔 한쪽 뼈가 아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겨우 기사에게서 놓여났다. 동시에 겔탄의 부서진 너클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목이 가벼워지며 옅은 기침이 나왔다.
“저거 왜 안 죽어?”
아직은 아군인 겔탄 역시 기사의 공격을 받고 공격을 했다. 그러나 뭔 짓을 하건 기사는……. 아니, 알고 보니 저 새끼가 왕 아니야?
쿵! 겔탄이 기사의 주먹에 맞아 저 멀리 날아갔다. 곧장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자 기사가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가해 왔다. 결국, 나 역시 밀려났다. 감각 없는 몸이 바닥에 늘어졌다.
‘어떻게 해야 저걸 죽일 수 있지.’
우리의 무기로는 기사에게 흠집이나 겨우 낼까 말까였다. 상어에게서 얻은 무기로 겨우 갑옷을 전부 부서뜨렸다. 그렇다면, 하얀 무기의 능력을 우르르 쓴 게 잘못인가? 하얀 무기로 단순 공격만 해도 통하긴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기가 없었다.
‘망했네.’
나는 무너지기 직전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느껴지는 진동을 보아 다른 사람들은 아직 싸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수가 적은 듯했다. 그렇겠지. 대다수가 기절했으니까.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갈피가 안 잡혔다. 머리를 잘못 부딪쳤는지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허공을 응시하자.
퐁.
하얀 별 하나가 허공에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