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바다의 왕】
‘…아니.’
첫 번째 탑에서도 그랬듯이, 저것도 환영이나 잔흔일 확률이 높았다. 그 추측을 뒷받침하는 건, 행동. 본래의 이곳 탑주 성격이라면 우리를 보자마자 죽이려 들겠지만, 저것은 가짜이기에 가만히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놀랐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기를 강하게 쥐어 공격에 대비했다.
고요한 상황. 승현 헌터가 겨우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옵니다.”
그 말을 신호로,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얌전했던 귀걸이가 짤랑이고, 붉은 눈이 잠시 감겼다 뜨였다.
이윽고 완벽히 일어난 뒤, 왕이 입이 찢어질 것같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의아해하기도 잠시.
콰아앙! 거대한 손이 우리를 덮쳤다. 박주완과 승현 헌터가 가까스로 막아 냈다.
“모두 흩어지십시오!”
그 말에 신서하를 제외한 나머지가 사방으로 흩어져 왕을 공격했다. 왕은 잠시 물러나는 듯싶었으나 이내 양손을 교차했다가 매섭게 폈다. 동시에 물살이 거세지며, 몸이 벽으로 밀려났다.
마허윤이 활을 쏘았지만 거대한 왕의 손엔 나뭇가지보다 못한 공격이었다. 뿌득. 화살을 부러뜨린 왕이 마허윤을 응시하다 입꼬리를 기괴하게 올려 웃었다.
“마허윤!”
곧장 소리를 질렀지만 마허윤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벽에 짓눌렸다. 미동도 없이 짓눌리고 있는 걸로 보아 기절한 듯했다.
강희민의 나무가 왕의 팔을 타고 자라나며, 윤시아가 그 틈을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나 역시 곧장 팔을 공격했지만 끄떡도 없었다.
쏴아아. 왕이 한쪽 팔을 휘두르자 다시 한번 거센 물살이 몸을 밀어냈다. 다행스럽게도 왕은 기절한 마허윤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신서하가 그 틈을 타 마허윤을 데려갔다.
“무슨 강한 애들밖에 없어!”
터어엉! 겔탄이 다리로 왕의 머리를 찼다. 왕은 끄떡없다는 듯 겔탄을 붙잡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다음으로 승현 헌터가 능력을 사용해 왕을 공격하려 했으나, 왕이 비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승현 헌터의 능력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형이 왕의 뒤에서 뛰어올라 검을 휘두르자, 왕이 팔로 막아 냈다. 피부가 강철이기라도 한 건지, 검과 팔이 부딪쳤다기엔 믿기지 않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왕의 팔에 옅은 흠집이 났다. 겨우 흠집이었다. 그렇게 강한 공격에도 겨우 흠집밖에 안 났다.
형이 왕과 대치하는 동안 사방에서 제각각 할 수 있는 공격을 했다. 그러나 그 역시 작은 흠집밖에 내지 못했다.
‘기사랑 달리 무기 같은 것도 없고.’
특별한 힌트도 없어, 기사처럼 미친 듯이 공격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힌트라 볼 만한 건 없었다.
‘기사를 상대할 수 있는 힌트를 준 이유가… 어차피 여기서 죽을 걸 알아서인가?’
아니. 아마 그건 아닐 것이었다. 탑은, 하나의 해결 방법은 마련해 두니까.
‘문제는 그게 무엇이냐지.’
밀리다 못해 과연 이게 싸우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가는 상황. 윤시아가 대뜸 전에 찾았던 책에 머리를 박고 글을 읽어 내렸다. 그러다 책에서 머리를 떼고 나에게 책을 보여 주었다.
“한지언 헌터! 여기에 적힌 거!”
“예? 갑자기 무슨…….”
“여기! 읽어 봐요! 빨리!”
나는 윤시아가 건넨 책에 적힌 글을 읽었다. 시처럼 되어 있는 글이었다.
왕은 바다고, 바다는 곧 왕이니. 이 글을 읽는 이라면 아마 봉인된 왕을 깨운 것일 터. 왕을 상대하는 최고의 방법은 봉인하는 것이나, 그러지 못하겠다면 바다를 꿰뚫는 왕의 두 눈을 가려라.
“두 눈을 가려?”
“왕, 저 왕 맞죠?!”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도해 볼 필요는―”
콰아앙! 왕이 우리를 향해 공격해 책을 놓쳤다. 책이 바닥을 뒹굴며 페이지가 넘어갔다. 나는 책을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두 눈을 가리는 게 약점이라 적혀 있었어요!”
“적혀 있다니, 어디에 말입니까?”
“아까 마구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던 책에 왕에 관한 내용도 있었어요.”
“두 눈을 가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형이 말을 끝내며 검은 안개를 흩뿌렸다. 왕이 지느러미를 움직여 사방을 휘젓자 안개가 흩어지는 듯했으나, 안개는 이윽고 위로 솟아나며 왕의 붉은 두 눈을 뒤덮었다.
‘저거면 된다고?’
의아했던 마음도 잠시. 쿠르릉! 왕의 양손 위로 거대한 구가 생겨나 주변을 휩쓸었다. 기절했던 마허윤이 어느새 일어나 황당하다는 듯 외쳤다.
“이게 뭔 난리야!”
그러게나 말이다.
승현 헌터가 외쳤다.
“눈을 가리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 눈을 집중해서 공격해 주십시오!”
“그냥……!”
윤시아가 물결에 휩쓸리듯 왕에게 다가가다 그대로 뛰어올랐다. 그러곤 칼을 내려 잡았다.
“찔러 버리면 되잖아요!”
왕이 위에서 공격하려는 윤시아를 향해 두 구를 쏘려는 듯 팔을 뻗었다. 강희민이 곧장 뛰어오른 윤시아의 밑으로 나무를 자라나게 하고, 쏘아진 구를 피해 낸 윤시아가 왕의 얼굴에 그대로 낙하하며, 스르릉, 왕의 한쪽 눈을 찔렀다. 왕이 피가 흐르는 한쪽 눈을 부여잡으며 입을 벌리더니.
―끼이이이이이이익!
쇠를 긁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범히 소리를 지르는 것임에도 어딘가 기이했다. 동시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비명을 내지를 정도라면, 통하긴 했다는 건가.’
왕의 비명에 A급 헌터들이 귀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윤시아도 왕의 뒤에서 주저앉았다.
왕이 분노에 찬 얼굴로 뒤에 있던 윤시아를 내려찍으려는 찰나, 강희민이 지팡이를 들고 겨우 능력을 사용해 윤시아의 위로 나무를 자라나게 했다. 그러나 임시방편일 뿐, 거대한 손은 자라난 나무들을 손쉽게 부서뜨렸다. 그 틈을 타 승현 헌터가 곧장 윤시아를 붙잡고 멀찍이 떨어졌다.
“눈만 찌르면 되는 건가.”
옆에 있던 형이 귀를 막고 있던 손을 풀고 검을 쥐었다. 그러곤 단숨에 왕에게 뛰어올랐다가 이내 내려왔다. 곧이어.
―끼에에에엑!
왕이 두 눈을 부여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왕의 두 눈에서 피가 멈출 줄을 모르고 흘러내렸다. 계속되는 비명에 귀가 나갈 것 같았다.
“아까 기사보다 간단한데.”
형이 바닥에 내려오며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귀를 틀어막았다.
왕이 주저앉았다. 울부짖던 목소리가 점점 옅어져 갔다.
‘끝이라고?’
형의 말대로 너무 쉬웠다. 물론 윤시아가 약점을 알린 덕이 컸지만, 그렇다 해도 부하인 기사보다 훨씬 약한 것 같았다.
“다들 무기를 드십시오. 지금이 기회입니다.”
옅어진 왕의 목소리에 승현 헌터가 로프 다트를 쥐고 앞장섰다. 형이 검을 고쳐 들었다. 그러곤 움직일 기색이 없는 왕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형이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멈춰라.
퉁.
몸이 돌이 된 것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떨고 있을 수도 없었다. 몸이, 멈췄다. 겨우 멈추라는 한마디에, 모두의 몸이 굳었다.
―너희는, 누구지?
그러며 왕이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를 흘렸던 두 눈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졌다. 그러나 아까와 달리 흰자가 붉지 않았다.
―누구냐고 물었다. 왜, 습격한 거지?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저 경직된 몸에 식은땀만 흘렸다. 그 모습에 왕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번 더 묻겠다. 왜, 이곳을 습격한 것이냐. 왜 대지를 뛰는 너희가 바다까지 들어와 이 난리를 피웠느냐!
“다음 층으로… 올라가려고.”
형이 지끈한 머리를 짓누르며 답했다. 여전히 검을 쥔 채였다.
―다음 층?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너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그저 세상에 생겨난 탑을 없애려고 온 것뿐이다.”
―세상? 탑?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잠깐.
휙. 왕이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다 곧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절규했다.
―아, 왜……. 어째서, 바다가……. 나의, 아이들이……. 왜…….
왕을 기준으로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휩쓸리지 않으려 두 다리에 힘을 주었지만 점차 강해지는 물살에 결국 휩쓸리기 전, 윤시아가 소리쳤다.
“네가 그랬잖아!”
―그게, 무슨 소리더냐.
“밖의 기사가 보여 줬어! 네가 폭주했다고! 네가 다 죽였다고!”
―그게… 무슨……. 내가…….
후욱. 소용돌이가 멎었다. 왕이 한 손으로 제 머리를 쥐었다. 그러곤 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던 건가. 그래서 이 손으로, 바다를…….
주변의 기운이 온화해지는 듯 느껴졌다. 지금 왕을 노리면 죽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단단한 피부를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무기를 내려놨다.
―아니, 잠들어서가 아니다. 난 잠든 적이 없어. 그저 기억이 멎었어. 기억이…….
이내 왕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말했다.
―나는, 가짜구나.
그 말에 나는 순간 손끝을 떨었다. 만들어진 것들이 자신의 정체가 거짓된 것이라는 걸 아는 예는 없었으니까.
―그래. 나는, 예전에 잠든 모양이구나. 바다가 너무 오래 잠들어, 바다의 아이들이 갈 길을 잃고, 결국 분노한 바다와 같아진 모양이구나.
왕이 두 눈을 부여잡으며 작게 속삭였다.
―내가, 너무 늦었구나.
그 말을 끝으로 주변이 고요해졌다. 이걸 공격해야 해 말아야 해 하는 표정으로 다들 시선만 맞추었다.
고개를 푹 숙였던 왕이 이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검은 검을 든 자야.
정확히 형을 보고 말했다.
“…날 부른 건가?”
―그래.
“뭐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을 테니, 날 죽여라.
“뭐?”
형이 보기 드물게 당황했다. 하기야, 자기를 죽여 달라는 몬스터는 여태 없었으니.
―지금 모든 보호를 해제하였으니, 네 검은 쉽게 내 심장에 닿을 거다. 날 죽여.
“진심인가?”
―난 가짜야. 바다가 아니지. 가짜가 아니라 해도 바다가 이 상태가 되도록 놔두었다. 용서할 수 없는 짓이지.
“그런가. 그럼 바라는 대로 해 주지.”
형이 검을 치켜들었다.
왕이 눈을 감았다. 죽음을 앞둔 생명치고는 평화로워 보였다. 이미 죽음을 받아들여서인지는 왕의 태도는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검을 치켜든 형이 검을 휘두르려 하자.
“주, 죽기 전에 원하는 거 있어요?!”
“윤시아 씨?”
윤시아가 대뜸 왕에게 물었다. 옆에 있던 강희민처럼 다른 사람들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윤시아를 쳐다봤다. 지금이 기회인데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 거지.
―원하는 것… 말인가.
왕의 긴 속눈썹이 반쯤 내려왔다. 이윽고 눈이 완전히 접히며, 왕의 얼굴 위로 옅은 미소가 퍼져 나갔다.
―멀리서 지켜보았던 세계수를, 한 번이라도 좋으니 가까이서 보고 싶구나.
세계수라면, 나무 말하는 건가? 나무라면…….
나는 강희민을 쳐다보았다. 전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건지 일제히 강희민에게 시선이 쏠렸다. 강희민이 당황하며 말했다.
“저는 그냥 나무인데요?”
“그냥 해요!”
윤시아가 등을 밀자, 강희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지팡이를 살짝 들어 왕의 앞에 거대한 나무를 만들어 냈다. 나뭇잎을 만드는 능력은 없는 강희민인지라 나무에는 길게 뻗어 나간 나뭇가지만 있었다.
그러나 왕은 나무를 보며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다에서 나무를 볼 수 있다는 데 놀란 모양이었다.
―이걸로 됐다. 고맙구나. 너희는 참으로… 갸륵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이군. 지금 만났다는 게 한이야. 조금 더 바다 위를 볼 걸 그랬어. 이만 됐다.
형과 왕이 시선을 맞추었다. 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형 역시 고개를 끄덕이곤 가볍게 움직여 왕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렇게 들어가지 않았던 칼이, 손쉽게 왕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유혈은 일어나지 않았다.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왕의 얼굴에 미소가 머무른 채, 왕은 그대로 바다와 하나가 되듯 흩어졌다.
왕이 사라진 자리, 바다를 담은 것 같은 마석 하나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