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김서영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생겨난 검은 탑을 바라봤다.
“한국에 생겨날 줄 누가 알았겠냐…….”
김서영은 지난번 못다 누린 휴가를 이번에야말로 즐기겠노라 선언하고 서울로 올라온 참이었다. 그러나 검은 탑의 등장으로 이번에도 휴가는 물 건너갔다.
“평생 일하라는 하늘의 계시도 아니고.”
몰려오는 몬스터들로 인해 본인이 소속된 대구 협회에 합류하지 못하게 된 김서영은 서울 협회와 합류하게 되었다.
김서영은 제 앞에 있는 남성에게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대구 헌터 협회 시민 안전 팀 소속 김서영입니다.”
“아, 이번에 합류하시게 된 분이신가요? 저는 서울 헌터 협회 비상 안전 팀 소속 박우윤이라고 합니다!”
김서영은 남성의 소개에 살짝 놀랐다가 금세 마음을 가라앉혔다. B급에서 A급이 된 헌터. 그리고 첫 번째 탑 클리어 인원. 이 두 타이틀만으로 금세 유명해진 헌터였으니. 김서영도 그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유명한 분을 뵙네요.”
“아녜요! 김서영 헌터야말로…….”
“이번에 함께 싸우게 돼서 영광이에요.”
“저도, 영광이에요!”
이후 적막.
둘의 이름이 유명하건 안 유명하건, 초면이었기에 어색한 상황이 도래했다. 김서영에겐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우윤은 아니었는지, 우물쭈물하다 입을 열었다.
“한지언 헌터의 교육을 맡으셨다고 들었어요……!”
“아, 네. 우연히 기회가 닿아서요. 한지언 헌터가 대학 후배여서인 것도 있고요.”
“대학 후배라면… 친하신가요?”
“아주 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그런 편이죠?”
“…….”
김서영은 말이 없어진 박우윤의 모습에 부쩍 긴장했다. 혹시 한지언을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
그러나 예상과 달리, 박우윤은 밝은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부러워요!”
“네?”
“제가 한지언 헌터의 굉장한 팬이거든요!”
“아……. 팬이요?”
“정확히는 동경하는 사람이죠!”
“어쩌다 한지언 헌터를 동경하게 되셨어요?”
“그… 자세히는 말씀 못 드리지만, 한지언 헌터가 저를 굉장히 많이 도와줘서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거든요.”
실제로 박우윤은 한지언을 만난 이후 인생이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고, 병원비 걱정 없이 꾸준히 치료를 할 수 있게 돼 가족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또한 번듯해진 박우윤의 모습에 걱정하던 가족 역시 기뻐했으니.
“그러셨군요. 다행이네요.”
박우윤은 초면에 제 얘기를 너무 많이 했나 싶어 멋쩍게 웃었다. 김서영 역시 작게 웃었을 때, 무전기가 울렸다.
―S급 전체, 검은 탑 진입.
“검은 탑 클리어 시작했나 보네요.”
“그러게요……. 밖에 S급이 한 명도 없는데 괜찮을까요?”
그 말에 김서영이 웃었다.
“박우윤 헌터. 저희도 어엿한 헌터예요. 무엇보다 저희는, S급이 없으면 그 빈자리를 대신 메워야 하는 A급이죠.”
“네? 아……. 그, 렇죠!”
자신이 내뱉은 말이 실언이라는 것을 깨달은 박우윤이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불안해하시는 것도 당연해요. S급 헌터가 강하긴 하니까요. 하지만 이거 하난 확실히 알고 계세요. S급 헌터의 뒤에 저희 A급이, B급이, 수없이 많은 헌터가 있기에 그들이 저희에게 뒤를 맡기고 탑으로 떠날 수 있었던 거라는 걸.”
김서영은 협회를 좋아했다. 매번 복지가 안 좋다며 욕했지만, 그러면서도 협회를 좋아했다. 그리고, 헌터가 된 자신에게 만족했다.
“무엇보다 저희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지키는 협회예요. 그런 사람이 그렇게 자존감이 낮으면 어떡해요?”
과거 몸이 약해 소방관의, 경찰관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그녀로 하여금, 남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 했던 그녀로 하여금, 꿈을 이룰 수 있게 하였으니까.
그래서 김서영은 이 모든 일이 좋았다.
“그러니까 자부심을 가져요. 사람을 지키기로 정하셨으면 말이죠.”
“…한지언 헌터의 곁에는 뭔가 굉장한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럼 박우윤 헌터도 그 굉장한 분 중 한 분이시겠네요.”
“네?”
“박우윤 헌터도 한지언 헌터와 아는 사이잖아요?”
“…….”
벙찐 박우윤의 모습에 김서영이 맑게 웃다가, 승현의 능력이 걷히며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향해 창을 겨누며 말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냥 하던 대로 해요. 그게 저희 역할이니까.”
“…네!”
과거 몬스터만 보면 떨었던 박우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수없이 많은 헌터가 각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몬스터를 향해 진격했다.
♧♣♧
후우웅.
탑 안으로 들어서자 모래바람이 눈앞을 가렸다가 사그라졌다. 뒤이어 시야에 들어온 건 가뭄이 난 듯 황폐한 풍경이었다. 생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땅이었다.
“어, 문이 닫혀요!”
유주한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빛나는 문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지화연 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생 저희끼리 클리어해야겠네요. 아니면 죽거나.”
형이 가파른 절벽 끝에 다가가 아래를 살폈다. 그러자 승현 헌터가 말했다.
“한지운 헌터. 말없이 뛰어내리지 마십시오.”
“…이곳에선 따로 다닐 생각 없습니다.”
유아한 씨가 하늘을 빤히 쳐다보다 말했다.
“던전에서 별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그런가요? 음…….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기분 탓이겠지. 애초에 그런 걸 감상할 때인가?”
“할 수도 있죠. 거참 깐깐하네.”
“이동이나 하도록 하지.”
류천화 씨가 말을 끝내며 절벽 끝에 섰다. 옆에 있던 유주한이 물었다.
“길이 있는데 뛰어내리는 거예요?”
“그게 빠르잖아.”
“그건… 그렇죠.”
“그럼 이동하지.”
류천화 씨가 가장 먼저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뒤따라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나는 유주한이 뛰어내리는 걸 확인한 후에 뛰어내렸다.
가장 먼저 뛰어내렸던 류천화 씨의 몸이 땅에 닿기 직전. 콰르릉! 땅이 갈라지며 싱크홀을 만들어 냈다.
“승현!”
류천화 씨의 외침과 동시에 위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첨벙! 순식간에 물이 몸을 감쌌다. 이윽고 거센 물결이 싱크홀 옆, 땅으로 이어져 모두 싱크홀에 떨어지지 않고 안전히 땅에 안착했다.
지화연 씨가 물에 젖은 머리를 다듬으며 말했다.
“역시 평화로운 건 없네요.”
“던전에 바랄 걸 바라야지.”
“F급 던전은 나름 평화롭잖아요.”
“탑이 F급이길 바라는 건 너무 과욕 같은데.”
“가끔은 바라는 게 있을 수도 있는 거죠.”
두 사람에 긴 대화에 승현 헌터가 말했다.
“두 분은 지금 상황에 집중해 주십시오.”
“지금 상황에 집중하라 해도, 주변엔 아무것도 없어. 걸어 봤자 똑같을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를 해야지.”
“그건 맞지만, 우선 돌아다녀 본 후에 결정해도 되는 일입니다. 숨겨진 곳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옆에서 누군가가 팔을 건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유주한이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주한아, 왜?”
“형, 저기… 한지운 헌터가…….”
그 말에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 형은 어느새 혼자 멀찍이 이동한 상태였다.
‘사람 말 좀 들어라.’
내가 걸음을 옮겨 형에게 다가가려는 차, 형이 검을 높이 들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잠만, 형!”
내 부름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형에게로 쏠렸다.
저 모습은, 무언가를 내려칠 때 나오는 모습이었다. 이를 눈치챈 승현 헌터가 곧장 형을 부르며 달려갔지만, 때는 이미 늦었으니.
콰르릉!
형이 땅을 내려치자 사방에서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래바람에 시야가 가려진 것도 잠시. 모래바람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걷혔다.
“한지운 헌터! 함부로―”
승현 헌터가 곧장 형을 타박하려 했으나, 이내 시야에 들어오는 무언가에 입을 다물었다. 보통 사람 키의 열 배 이상은 되는 높이의 거대하고 하얀 기둥 두 개가 눈앞에 갑작스레 생겨났으니.
형이 정확히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휑한 일대에 툭 튀어나온 기둥이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이라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류천화 씨가 작게 웃었다.
“돌아다니지 않는 게 정답이었군.”
“…….”
“이번엔 승현이 틀렸어.”
“틀리고 자시고 저것부터 확인하죠.”
유아한 씨가 선두로 나서 기둥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곤 아무런 대비도 없이 기둥에 손을 가져가 대려 해―
“유아한 헌터!”
승현 헌터가 급히 소리를 지른 것이 무색하게, 유아한 씨의 손은 아무 일도 없이 기둥에 턱 닿았다.
“아무 일도 없네요.”
“…….”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승현 헌터가 미간을 찌푸렸다.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다른 사람들도 기둥에 붙었다. 그러고는 기둥을 부수려 하기도, 능력을 사용해 보기도 하였으나 건축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꽝 아니에요?”
내 말에 지화연 씨가 응답했다.
“그러게요. 한지운 헌터, 아까 뭐 하신 거예요?”
“그냥…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살피다 발견한 걸 친 것뿐입니다.”
“뭘 쳤는데요?”
“꽃 그림이었습니다.”
“꽃이요?”
웬 꽃. 꽃이랑 기둥이 도대체 뭔 상관이 있길래 이러냐. 나는 기둥을 살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수색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유주한이 물었다.
“형은 기둥 안 살펴요?”
“백날 살펴도 아무 일 없을 것 같아서.”
“그래도 한 번은 살펴봐요. 혹시 모르잖아요.”
“내가 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승현 헌터처럼 수색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이 첫 번째 탑에서 사용했던 길을 안내해 주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진 거라곤 그냥 폭파, 녹이기, 어그로 능력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겨우 이거? 왕께서 원하시는 힘이라고!」
폰과 처음 만났을 때 폰이 했던 말. 왕이라는 존재 때문에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힘이 뭐라고.’
토끼 귀가 곧장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폰은 아주 확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뭐, 멍청하니까 별생각 없이 한 말이겠지.
“형?”
“어.”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같이 수색해요.”
유주한이 재촉하자 지화연 씨가 말을 덧붙었다.
“맞아요. 류천화 씨도 수색 중인걸요?”
“노인 공경은 없는 거군.”
“노인은 무슨…….”
힘으로 따지면 내가 더 약자다. 약자 우선이지.
“알겠어요. 할게요.”
말을 끝내고 나는 설렁설렁 기둥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리저리 살피며 혹시 이상한 게 있나 살펴봤지만, 역시나. 없는 건 내가 봐도 없었다.
‘헛다리 같은데.’
그러며 내가 두 기둥 사이에 손을 뻗은 순간.
퉁.
“어.”
팔이 허공에서 잘려 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그리 보였다. 마치 게이트처럼 다른 공간으로 팔이 빨려 들어간 감각이었다. 팔이 들어간 곳을 중심으로 물결이 요동치듯 파동이 일기 시작하더니, 번쩍!
“윽…….”
하얀 시야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동시에 말소리가 들려왔다. 유아한 씨가 말했다.
“여긴… 꽤 기분 나쁘네요.”
“동의해.”
“던전은 저희를 따라 하는 취미가 있나 봐요.”
따라 해?
그때 유주한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형? 왜 눈을 감고 있어요?”
“갑자기 빛을 받아서 잘 안 보여 가지고.”
“엥? 그래요? 저는 멀쩡한데?”
그래. 말소리를 들으니 나만 그런 것 같네.
이내 멀쩡해져 나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싶어 눈을 뜬 후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봤다. 그 광경을…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붉은 하늘. 그 하늘을 유영하는 검은 재들. 무너져 본래의 형태를 알 수 없는 건물. 불에 타는 도시.
“…….”
“형?”
모른 척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이 광경은 내가 지긋지긋하게 봐 온 광경이었고, 내가 바꿔야 하는 풍경이었으며, 나만이 기억하는 세상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