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이후 붉은 하늘을, 우리와 비슷한 몬스터를 반복해서 보았다. 틀어진 것 없이 똑같았다. 우리와 만나고, 죽고. 그 반복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광경에 지친 지화연 씨가 짧게 말했다.
“뭘 원하는 건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처음 기둥이 내게 반응해 그다음 기둥도 내가 건드려야 하는가 싶었으나, 그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기둥 사이에 닿자 기둥은 허무하게 반응해 버렸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나야 의심 안 받고 좋았다.
지금이 한 네 번째쯤 됐을까. 저 앞에 있는 기둥을 향해 가려던 찰나, 유주한이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형, 계속 이렇게 반복해도 괜찮은 거예요?”
“응?”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아…….”
사실 똑같은 장면이 반복될 동안 주변을 살펴보고 몬스터들에게 이 짓 저 짓 다 해 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만, 유주한은 반복되는 장면을 집중해 바라보고 있었던 탓에 그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긴, 혹여 유주한이 위험해질까 봐 나는 유주한에게 붙은 채로 고개만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만 조용히 움직였으니 눈치 못 챌 만도 했다.
“이것저것 다 해 봐도 별 소용 없으니 일단 탑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거지, 뭐.”
“언제 다 해본 거… 아니 그러면 그럼 기둥에 뭐라도 해 봐야 하는 거 아녜요?”
“그건 아까 해 봤으니까.”
“그다음으로 나온 기둥들은 이동을 위해 건드리기만 했잖아요.”
같은 기둥인 것을 다 파악했으니 여기서 뭔가를 더 하는 것은 하등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을 어찌 순화하여 설명할까 고민하며 내가 잠시 입을 다문 찰나, 앞에서 걸어가던 유아한 씨가 입을 열었다.
“유주한. 던전에서 지형지물 파악은 필수야.”
“어?”
“무늬, 성질, 크기. 이 모든 게 같으면 굳이 건드릴 필요 없다고. 교육 때 배웠을 텐데?”
“나도… 알아! 근데 혹시 모르잖아.”
“혹시, 라는 건 없어. 던전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규칙적이니까.”
“여긴 탑이잖아.”
“글쎄. 결국 둘 다 본질은 비슷하잖아?”
“그럼 내가 확인해 볼게.”
그러며 유주한이 내 소매를 붙잡고 이끌었다. 뒤에서 유아한 씨가 말했다.
“가운데는 우리가 가기 전까지 건드리지 마.”
“내가 알아서 해!”
다음 기둥까지의 거리는 얼마 안 됐는데, 뛰면 금방일 거리를 유주한은 씩씩 걸어서 향했다. 내 소매를 붙잡은 채 말이다.
“주한아. 살펴봐야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래도 뭐라도 해 봐야죠! 하여튼 요즘 어른들은 의욕이 없어서!”
“뭔가 거꾸로 되지 않았어?”
빠른 걸음으로 걸어 기둥에 금방 도착했으나, 일행들도 곧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뭐 있나 찾아봐요!”
“그래.”
유주한이 폴짝 뛰어 기둥 위로 올랐다. 나는 어차피 아무것도 없을 게 뻔하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기둥 옆으로 가 기둥에 손을 얹었다.
‘대충 찾는 척하면 금방 포기하―’
눈을 한 번 깜빡이자.
훅.
주변의 모습이 무(無)가 되어 사라졌다. 메마른 바닥도, 멀리 보였던 돌산도, 일행도. 모두 사라지고, 흑백의 배경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몇 걸음 뒤로 물러나자 기둥은 건재한 것이 보였다. 새하얀 기둥이어서일까, 흑백으로 뒤덮인 주변으로 인해 더욱 돋보였다. 꼭, 자신을 건드리라는 듯이.
‘또 뭘 하려고.’
나는 기둥 사이로 다가갔다. 이윽고 손을 뻗기만 하면 손이 기둥 사이로 들어갈 듯한 거리에 서서 팔을 뻗어 올리자.
―넌 죽어야 해.
바로 눈앞, 새빨간 액체로 이루어진 사람…의 얼굴이 새하얀 이를 보이며 웃었다.
곧장 뒤로 물러나서 보니, 눈앞에 나타난 것의 모습이 자세히 드러났다. 딱히 별거 없었다. 긴 목에 얼굴이 달린 것뿐이었으니까. 그래, 꼭 일본의 요괴인 로쿠로쿠비(轆轤首)와 같았다. 다른 점은 온몸이 새빨간 액체로 뒤덮여 있다는 거.
기둥 사이가 붉은 액체로 가득 메워져, 그곳에서 주욱 늘어난 목이 기괴하게 움직이며 점점 내게 다가왔다.
―넌 죽어야 해. 죽어야 해. 죽어야 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흰자가 터질 듯이 눈을 부릅뜬 얼굴이 내게 가까워졌다. 이윽고, 그것이 내 코앞에 다다랐을 때.
―죽어.
“…겨우 이러려고 지금까지 그런 걸 보여 준 거였나.”
휘익!
나는 단숨에 만들어져 손에 쥐어진 낫을 휘둘렀다. 그러자 긴 목의 붉은 몬스터가 힘없이 갈라져 붉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몬스터가 사라진 자리.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깔깔깔!
꾸르륵. 사방으로 튀었던 붉은 액체가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금세 발목까지 차올랐다.
“나한테 뭘 바라는 거지?”
나는 답이 돌아올 리 없는 허공에 물었다. 역시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새 허벅지까지 차오른 붉은 액체를 손으로 퍼 올리자 액체가 힘없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답이 들리지 않을 것이 뻔함에도, 나는 다시 한번 더 물었다.
“일행들의 의심? 아니면,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건가?”
아니, 어쩌면.
“내가, 아예 존재하지 않길 바라는 건가?”
지금까지 반복하며 보여 주었던 그 광경. 그곳엔, 날 닮은 몬스터가 없었다. 이 모든 건 이곳, 탑이 만들었으니 모든 건 의도된 것일 터. 붉은 하늘도, 불타는 도시도, 죽는 사람들도 모두.
다만 문제는, 이 탑의 주인인 왕이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
단순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광경은, 내게 지독하리만치 익숙한 그 풍경은, 너무나 실제와 똑같았다. 마치, 경험이라도 한 듯이.
“이상하네.”
그러면 왕은 오히려 내가 아닌, 형이 죽길 원해야 했다. 형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형은 압도적이진 않더라도, 이길 순 없을 정도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왕으로서는 그런 형을 노렸어야 했다. 형이 죽길 바라야 했다.
‘그렇다면…….’
추측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이곳의 주인이 내가 되돌아가는 것을 알고 있거나, 혹은 단순히 그 광경을 원했거나.
그러나, 두 가지 추측 모두 허점은 존재했다. 전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약한 나를 경계할 필요가 더더욱 없다는 것이었고, 후자는 그럼 왜 나를 빼 두었냐는 것이었다.
‘…모르겠다.’
붉은 액체가 턱까지 차올랐다. 이윽고, 시야가 붉게 잠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 역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붉었다.
그리고, 그 붉음과 잘 어울리는 고요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봐주지 않을 것이다.
터엉!
몸을 뒤덮었던 붉은 액체가 터지듯 사방으로 퍼졌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넓게 차올랐던 액체는 어디 가고, 바닥에는 내 팔 길이 정도 되는 웅덩이만 남아 있었다.
웅덩이의 액체가 조금씩 움직이는 듯싶다가 갑자기 뱀처럼 튀어 올랐다.
―살리고 싶다면, 구해라.
휘이익. 그 후 그것은 마치 용처럼 하늘로 솟아올랐다.
“살리고 싶다면 구하라는 건…….”
다른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살리고 싶다면’이라.”
죽일 수 있음에도, 인질극을 벌이는 건가.
손에 쥐어진 거라곤 낫밖에 없는 나에게 무얼 바라는 것일까. 고통? 죽음? 아니.
“유희인가.”
쿵.
쿵.
바닥이 울렸다. 울리는 바닥에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주변을 바라봤다.
붉은 하늘, 불타는 도시, 하늘을 유영하는 검은 재들. 아까와 같은 장소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계 몬스터도, 사람들과 닮았던 몬스터도.
쿠르릉. 거대하고 검은 손이 건물 위에 얹혔다. 그 옆으로 손보다 거대한 검은 얼굴이 드러났다. 검은 얼굴에 하얀 펜으로 누군가 대충 그린 듯한 눈이, 나를 찾아내더니 반으로 접혀 웃었다.
첫 번째 탑주. 페트로논 제트리스였다. 아까와 달리 나를 잘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살리고 싶다면 구하라 했지.’
그리고 타이밍 좋게 이게 내 눈앞에 나타났다는 건… 이걸 처치해야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거군.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가 가라앉았다. 나는 낫을 고쳐 쥐었다.
‘어떻게 이기라고.’
붉은 하늘 아래, 나는 저것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거대한 가시에 몸이 뚫리고, 저 손에 짓눌려 터지고, 한참을 고문당한 후에야 사망했다. 저것과의 기억 중 고통스럽지 않은 기억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저것을 처리하라는 건, 솔직히 말해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낫을 놓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할 수 있어.’
그런 고통의 연속 끝에, 결국 이겼으니까. 상황은 달랐어도, 승기가 내 손에 쥐어졌으니까.
내 능력만 있었다면 아마 그래도 못 이길 것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겐 저것을 이길 수 있는 분명한 수단이 있었다. 들이켠 숨이 폐에 가득 차올랐다가 이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붉은 손톱이 달린 거대하고 검은 손이 내게 뻗어졌다. 흡사 개미가 된 것 같은 시야였다. 나는 재빠르게 물러났다. 쿵! 검은 손이 바닥에 내려앉자 바닥이 진동하며 움푹 팼다.
‘지금.’
텅! 나는 검은 팔을 타고 올랐다. 내 발자취를 남기듯 꽃들이 검은 팔에 피어올랐다.
제트리스가 벌레를 쫓듯 팔을 휘두른 순간, 나는 위로 도약했다. 제트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려 하기 전, 나는 낫을 거세게 휘둘렀다.
후웅! 낫 휘두른 궤적을 따라 하얀 검기가 만들어져 제트리스를 향해 쏘아졌다. 쏘아진 검기가 제트리스의 얼굴에 닿아 그 너머로 사라졌다. 적막도 잠시.
쿠르릉. 제트리스의 얼굴이 반으로 동강 나며 무너져 내렸다. 나는 안전히 바닥에 착지하며 무너지는 제트리스를 바라보았다.
“…하.”
그래. 제트리스는 죽었다. 내가, 이겼기에, 제트리스는 죽은 상태였다. 그래. 이건 가짜다.
‘가짜에 겁먹은 나도 참…….’
멋쩍게 목덜미를 쓸어내리는데 으으 하며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굴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자 유주한이 몸을 비틀며 일어나고 있었다.
“주한아, 괜찮아?”
“형? 여기 어디예요? 뭐야. 또 여기예요?”
“비슷하긴 한데―”
“다르군.”
어느새 다가온 류천화 씨가 산발이 된 머리를 쓸어내렸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지?”
“찾아야 해요.”
“찾아?”
물음에 나는 고갯짓을 했다. 그 끝에는 무너진 제트리스가 있었다. 내 말의 의미를 단숨에 파악한 류천화 씨가 중얼거렸다.
“몬스터를 처리하며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모양이군.”
“예. 정확해요. 정확히는 탑의 주인이었던 것들이지만.”
“그럼 이거 형이 한 거예요? 이게 첫 번째 탑의 주인이고?”
“가짜야, 어차피. 힘도 없어.”
“그래도 완전히 약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그래.”
“형은 가끔 본인이 대단하다는 걸 모르는 거 같아서 그래요.”
“그래. 고맙다.”
유주한의 말을 끝내려 재빠르게 답해 줬더니, 옆에서 류천화 씨가 끼어들었다.
“확실히 한지언 헌터가 대단하긴 하지.”
“봐요, 류천화 헌터도―”
“의문투성이인 제 형보다, 더 의문투성이의 모습을 보여 주니 말이야.”
“에?”
“…….”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의문투―”
“꽤 신기한 조합으로 모였다는 뜻이야.”
“신기한 조합이요?”
그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S급 헌터 중에서 가장 나이 많으신 분이랑 가장 어린 주한이 사이에 껴 있으려니 자연히 그렇게 보이는 거죠.”
“…….”
류천화 씨가 말없이 웃자, 유주한이 옆에서 조용히 물었다.
“몇 살이셔요?”
“네 나이 두 배가 저 사람 나이야.”
“그래요? 제일 나이 많다는 말에 바로 조용해진 것치곤 그리 안 많네요. 딱 얼굴이랑 맞는 나인데요?”
“맞아. 네가 어린 거뿐이지.”
“반응을 안 하니 이젠 뒷담화까지 까는 건가?”
“다 들리잖아요. 그럼 앞담화지. 애초에 그냥 나이 얘기를 하는 것뿐이니까 뒷담화도 앞담화도 아니고요.”
“이렇게 얘기하다간 끝도 없겠어.”
“그러게요. 이쯤에서 끝내죠.”
실속 없다 느끼면 바로 대화를 잘라 버리는 점은 류천화 씨도 나와 똑같았다. 물론 이것도 상대를 봐 가며 해야 하는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