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6
16화
【푸르른】
‘B급 정도 되는 놈은 잠들었으니까…….’
빠르게 움직이면 낫을 못 볼 것이었다.
훅. 나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 손아귀에 낫을 만들어 냈다. 그러고는 막대 부분으로 사람들을 하나둘 치며 동시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렇게 몇 분간 기계적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니 이내 사람의 기척이 전부 사라졌다.
“…….”
자, 이제 이걸 다 묶어야 하는데.
…벌써 하기가 싫었지만 나는 꾹 참고 후드 주머니에 넣어 둔 얇고 기다란 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몸에 실을 감고 기둥에 묶었다.
“됐다.”
은은하게 빛나는 보랏빛의 실은 구속 및 무력화 실로 협회에만 있는 것인데 그걸 빼돌린 모양이었다. 내가 그걸 또 빼돌렸지만.
‘하긴 협회 사람도 매수했는데.’
이놈들의 정체는 날 납치하려던 놈들이었다. 자기들을 밝히고 싶지 않아 협회 사람을 매수한 것이겠지만, 문제는 협회에서도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해 해고당하기 직전이었던 사람을 매수했다는 것이었다. 본래 직장에서도 일을 못 하는 인간을 매수하니, 나를 납치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예전에 내가 분노를 참지 않았을 때는 득달같이 소굴을 찾아내서 다 무너뜨려 버렸었다. 아이템도 많아서 나름 노다지였지만 귀찮기도 하고 전부 불필요한 짓이라서 굳이 오지 않게 되었었는데.
‘마침 잘됐네.’
본래였다면 발가락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B급의 발 앞에 협회 번호가 입력된 휴대폰을 두고 10분 안에 죽을지 끌려갈지 선택하라며 괴롭혔겠지만, 지금은 귀찮기도 하니 그 방법을 쓰지 않을 것이었다.
“무슨 반응을 보일까.”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어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마친 뒤 기다리는 동안 아이템을 뒤지고 있자, 이윽고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했다. 다가온 사람은 형이었다.
“이게 무슨…….”
“그… 심심하기도 하고 문양 조화? 그것도 많이 된 것 같아서 이곳저곳 뛰어다녔는데… 낡고 허름한 곳에 아이템을 잔뜩 짊어지고 들어가길래 뭔가 싸해서 따라 들어왔더니… 그게, 이렇게 됐네.”
형을 흘긋 쳐다보며 눈치를 봤다. 형은 오묘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그래서?”
“막상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협회에 신고하면…….”
“활동 금지 처분 중에 이런 일을 벌인 거라 신고는 좀…….”
한껏 겁에 질린 내 모습에 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가 봐.”
“고마워.”
그리고 형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 길드장들 중 한 명이겠다 싶었지만, 그거까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건, 어디까지나 ‘형이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였으니까.
‘반응을 보니까 예상치 못한 일인 것 같은데.’
그럼 형은 내 시점의 일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정황들로 보면 아마.
‘자기가 주인공인 소설에 빙의한 거겠지.’
당연한 소리겠지만 그렇다는 것은, 이곳은, 세상은 소설이고, 이곳은 오롯이…….
“…….”
괜스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졌다.
‘괜한 짓을 했네.’
앞으로 쓸데없는 짓은 삼가자, 라고 생각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사건은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지나갔다. 당연하게도 길드장들의 귀에는 들어갔겠지만, 어찌 됐건 세간에만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주목되는 건 싫었다. 조용하고 안전하게. 그게 최고다.
…그런 만큼 쉽게 누릴 수 없는 것들이지만.
‘쉴 틈이 없네.’
부웅. 고속 도로 위로 차가 하염없이 달렸다. 그리고 달리는 차 안은 아주 조용했다.
“…….”
나는 창가를 바라보던 눈을 흘긋 옆으로 옮겨 운전대를 잡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세상 고요하게 생긴 외모에, 곱슬머리, 번듯한 차림새의 남자. 이 사람을 설명하자면 S급 길드장 중 한 명, 그리고 또 다른 내 아군이자 동료였던 사람이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승현.
이 사람과 같은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협력 관계 때문이었다. 3대 길드와의 협력 관계에 있어 내가 제공해야 할 대가는 인원수 충당. 즉 다시 말해 인원수가 부족한 일에는 내가 거의 동원된다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이 고요한 차에 탑승하게 된 거였다.
지금껏 조용히 운전만 하던 승현 헌터가 입을 열었다.
“곧 도착하니 작전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만, 딱히 작전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네?”
“제가 먼저 습격해 납치범들의 시선을 끌면 한지언 헌터가 유아한 헌터를 찾아내 구출하면 되는 간단한 일입니다.”
“만약… 유아한 헌터를 찾는 게 늦어지면 어쩌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건물이 넓어도, 바깥에서 난리가 나면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나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건물 안 어딘가, 사람이 있는 쪽이 유아한 헌터가 있는 장소일 테니까요.”
“…네.”
“혹시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이 있을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이해했어요.”
유아한. 현재 우리 둘이 움직이는 목적이며, 내가 승현 헌터와 만나게 된 이유였다.
승현 헌터의 길드 리플의 길드원이며 한국 S급 헌터, 그리고 세계 최초 S급 힐러 헌터. 다시 말하자면 가장 포섭하고 싶은 헌터 1위라는 뜻이었다.
유아한 씨를 찾는 방법은 승현 헌터가 말한 것이 맞기도 했고, 무엇보다 뇌가 기억하고 있는지라 굳이 더 설명을 들을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부웅. 차가 통행량이 없는 한적한 도로만 달리고 달려 어느덧, 한국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폐가 근처에 도착했다.
“우선 문양을 개방하신 뒤 이걸 받아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나는 곧장 문양을 개방한 뒤 승현 헌터가 건네준 것을 받았다.
“저, 이게 무슨?”
손목에 끼기에는 작은 링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만져 보던 나는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승현 헌터에게 물었다. 내 물음에 승현 헌터가 답했다.
“입에 물고 계시면 효과가 적용됩니다.”
“효과요?”
“기척을 숨겨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유아한 헌터는 현재 납치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데, 일단은 S급 헌터인 유아한 씨를 습격한 것이라면 S급 헌터, 그리고 A급 헌터가 다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니 잘 숨어다니셔야 합니다.”
“S급이요?”
“헌터 신고를 하지 않은 외국의 불법 헌터입니다. 밀입국하는 경우가 잦으니, 아마 높은 확률로 이번 납치에 참여했겠죠.”
“…네.”
S급 헌터. 신분 상승하기 딱 좋은 직업인 듯 보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헌터 대우가 좋은 곳에서의 일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괴물이라며 차별을 받거나, 나라의 개가 되어 던전만 도는 기계가 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띡. 자동차에 있던 시계가 아홉 시로 바뀌고.
“그럼 이동하죠.”
나는 차에서 내려 승현 헌터의 등을 따라갔다. 그러다 승현 헌터가 멈춰 서며 말했다.
“한지언 헌터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제가 난동을 피우면 건물에 잠입해 주세요.”
“네.”
내 대답을 들은 승현 헌터는 홀로 건물로 향했다. 기척을 지우지도 않고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렀다.
곧이어 그는 건물 앞에 당도했다. 건물 밖, 경비를 서고 있던 사람들이 승현 헌터의 등장에 무어라 소리를 치더니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아이템을 사용했는지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퐁. 포퐁. 총이 쏘아지기도 전에 승현 헌터의 주위에 물로 된 물고기가 생겨나고, 목에는 물로 된 뱀이 감겼다. 이내 물고기들이 총알을 먹어 막아 냈다.
쿠우웅!
마른하늘의 물벼락. 딱 그 말이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승현 헌터의 능력치고는 작은 규모였지만, 마른하늘에서 물이 솟아나며 건물을 부숴 버렸다.
‘이제 나도 움직여야지.’
나는 입에 링을 물고 조용히 건물로 향했다.
건물 밖 창문으로 내부를 살펴보자 개조한 듯 바깥 풍경과는 다른 깔끔한 내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5층 제일 끝 방이었나.’
나는 건물 바깥을 빙빙 돌며 5층 창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창문이 없는 벽을 찾아냈다.
‘저쪽으로.’
창문이 없는 벽 바로 옆면 창문. 길이가 있는 5층 창문을 바라보다가 뛰고 뛰어 단숨에 5층 창문틀에 대롱 매달렸다.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한 손을 올려 창문에 댔다. 그리고 곧장 능력을 사용해 창문을 녹인 나는 그 틈으로 몸을 끌어 올려 내부로 들어갔다.
들어간 내부는 텅 빈 방 안이었다. 문으로 다가가자 미세하게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리플 길드장이 왔다며?”
“맞아. 근데 혼자니까 아무리 S급이라도 S급이랑 A급 다수를 이기긴 힘들지.”
“A급 다수는 아니지 않냐? 한 세 명?”
“그것도 많은 거지. 지금 인원수로 길드 세우면 딱 좋은데. S급 새끼가 다른 나라 놈이라.”
“처음부터 불법으로 일했으면서 길드는 뭔 길드. 하던 일이나 잘해.”
“그나저나 리플 길드장은 뭔 깡으로 혼자 온 거래? 다른 사람들한테 부탁했는데 거절당한 건가?”
“병신아, S급들이 어떤 놈들인지 모르냐? 걔들은 남들한테 부탁할 필요가 없는 놈들이야. 게네 눈에 우리는 그냥 조무래기라고.”
“몰라서 미안하다, X발. 그나저나 텔포 문능은 열한 시에 오는데 애매하네.”
아홉 시. 애매한 시각. 그렇기에 가장 습격하기 좋은 시각이었다. 이미 이틀이나 납치되어 있었던 터라 지체할 수 없는 점도 있고.
또한 방금 대화 내용처럼 텔레포트를 이용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늦은 밤 열한 시 이후가 제일 적당하니 그 전을 노린 것이었다. 애초에 나라 간 이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텔레포트 능력자는 없었기에 늦은 밤 항구로 텔레포트해 한국을 뜨는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떠난다는, 이미 공공연히 유출된 수법이었다.
나는 문에서 떨어지지 않고 몸을 웅크려 문 아래를 녹여 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붉은색 공을 꺼내 방금 문 아래 낸 구멍을 통해 휙, 굴렸다.
툭. 투둑. 붉은 공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야, 저게 뭐냐?”
“…함정인 것 같은데.”
“그럼 총으로 쏘면 되지, 뭐.”
피슉. 소음이 없는 총으로 쐈는지, 쏘아지는 소리 없이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터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상황.
“야, X발! 저게 뭐야!”
바깥 상황은 보이지 않았지만, 단언컨대 놈이 가리키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었다.
“너 왜 그래?”
“X발! 아악!”
뻐억. 누군가가 주먹으로 다른 누군가를 쳤다.
“X발, 야, 너 미쳤냐?”
“몬스터가……! 꺼져! 아아악!”
쿠당탕! 둘 다 헌터였지만 건물에 피해를 줄 수는 없어 몸으로 치고받고 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저주 아이템. 그것도 아이템을 훼손하면 저주가 발동하는, 지금 상황에 딱 좋은 아이템. 저 중 한 놈이 그걸 총으로 쏘아 훼손해 현재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헉……! X발! 미친 새끼.”
소리로 짐작건대 아마 저주가 걸린 쪽이 죽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뭔데…….”
사람을 죽이고 혼자 남아서인지 경비를 서던 남자가 약간 겁에 질린 투로 중얼거렸다.
‘슬슬…….’
나는 문에서 조금 떨어져 잠시 대기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은 시각.
콰아앙!
“으아악!”
바깥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굉음과 함께 바깥에 홀로 있던 사람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뚝, 소리가 멈췄다.
뚜벅뚜벅. 누군가의 발소리가 점점 내가 있는 문 쪽으로 다가오다 쿵! 문을 부숴 열었다.
“…….”
평범한 검은 단발에 푸른 안쪽 머리칼. 왼쪽 귀에서 찰랑이는 푸른 구슬과 노란 노리개 술.
“아, 그… 한지언 씨, 맞죠?”
일단은 납치됐었던 유아한 헌터였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