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일대일】
꾸드득. 어두운 바깥에서 무언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작은 구멍이 생겨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구멍이 점점 거대해져, 몸이 빠져나갈 정도가 됐다.
‘알에서 태어나면 이런 기분이겠네.’
나는 거대해진 구멍을 통해 빠져나와 찌뿌둥한 몸을 쭉 폈다.
‘역시나 이동됐고.’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넓은 초원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 나무가 빼곡히 자라난 숲이 보였다.
‘별거 없으니 숲으로 가면 되려나.’
드넓은 초원엔 아무것도 없었다. 끽해야 드문드문 난 나무 정도? 그것 말곤 아무것도 없…….
‘…진 않네.’
드문드문 난 나무 중 한 그루. 그 아래에 하얀 머리카락이 넘실거렸다.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 그 정체를 확인하니… 그것은 명백히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어린.
긴 하얀 머리칼에, 갈색 양 뿔, 검은 드레스 차림의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것이 나무 아래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를 눈치채지 못한 건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그것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더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성큼성큼 그것에게 다가가 보았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여야겠지.’
생김새로 보아 누가 봐도 우리 쪽 세상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높은 확률로 괴인일 터.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이는 걸 보니 죽이는 건 쉬울 것이었다. 그럼, 죽이는 게 맞았다.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면 높은 확률로 걸림돌이 될 것이었다. 지금이든, 나중이든.
스릉. 나는 낫을 하얀 머리 앞에 겨누었다. 소리에 흠칫 놀란 괴인이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 반대로 생각하면, 이건 어쩌면 중요한 열쇠일 수도 있었다. 이곳의 왕이, 유흥을 위해 준비해 둔 우리의 열쇠.
나는 한숨을 내쉬며 낫을 치웠다. 그러곤 아이의 옆에 푹 앉았다. 내가 앉으니 아이가 옆으로 꼼질꼼질 피했다. 훌쩍이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사람을 달래는 건 진짜 내 적성 아닌데.’
미래를 생각해서,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이 울음을 그쳐 미래에 도움이 된다면… 일단 뭐든 해 보는 게 맞겠지.
나는 하얀 머리를 쿡쿡 눌렀다. 화들짝 놀란 아이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슬며시 얼굴을 들었다. 새하얗고 풍성한 속눈썹과 세로 동공에 호박빛 눈동자가 꽤 인상 깊은 얼굴이었다.
나는 날 빤히 쳐다보는 아이를 보다가 밤하늘을 바라봤다. 별이 몇 개 떠 있는 평범한 밤하늘이었다. 특별히 이쁘진 않았다.
나는 손을 하늘 위로 뻗어 작게 움직였다. 자취를 남기듯 별들이 생겨났다. 이윽고 그 수가 늘어나, 아이가 기대어 앉은 나무를 둥글게 감싸고 춤추듯 움직였다.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뚝 눈물을 그친 눈으로 사방에서 움직이는 별들을 바라봤다. 큰 눈망울에 별이 비쳐 보이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어린애 눈물을 그치게 하는 덴 다른 것에 시선을 두게 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지.’
문제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냐는 건데.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하나? 왜 울고 있었냐고? 아니면 넌 누구냐고?
아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내 능력을 보고 표정이 풀렸었으나,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얼굴이 경직됐다.
‘…아무 말도 못 할 거 같은데.’
고개를 틀며 목덜미를 쓸어내리는데, 솨아아,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물기둥이 나무 사이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저건 승현 헌터의 능력인데.’
그럼 내가 이동한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건데, 그렇다기에는 승현 헌터가 물기둥을 쏘아 올린 숲이, 아까의 숲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나무의 크기라거나 뭐 그런 것들이 말이다. 승현 헌터도 이곳으로 이동된 건가.
‘저기에 뭐가 있나? 아니면 사람들을 모으기 위함?’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컸다.
‘…어쩌지.’
승현 헌터의 위치도 확인됐으니, 우선 저기로 가야 했다. 모이는 게 먼저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아이를 놓친다. 그렇다고 데려가기엔, 겁을 많이 먹은 상태이고.
‘대화라도―’
어. 옆을 바라보니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역시 뭔가 있었나…….”
그렇다면 놓친 거다. 이런.
‘뭐, 고민거리도 없어졌으니, 움직여야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멀디먼 숲을 향해 걸었다. 물기둥은 여전히 높이 솟아올라 제 위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속도를 내어 가려던 차.
쾅! 누군가가 바로 앞을 가로막으며 땅을 갈랐다. 쩌적. 금이 가는 땅에 나는 곧장 뒤로 물러났다. 충격에 폴폴 피어오르던 연기가 점차 옅어지고, 내 앞을 가로막은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랑이는 꼬리와, 검은 안대.
“…겔탄.”
“오래간만이야.”
겔탄이 등장함과 동시에, 솟아올라 있던 승현 헌터의 물기둥이 뚝 꺼졌다.
♧♣♧
한지운은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뒤에는 거대한 암벽이 존재했고, 그 앞으로는 드넓은 초원이 있었다. 더 너머에는 숲이 존재했다.
한지운은 작게 숨을 내쉬며 곧장 뒤로 검을 휘둘렀다. 검이 휘둘러진 자리, 날카로운 바람이 불며 암벽에 부딪쳤다. 암벽이 깊게 베이며 돌무더기가 줄줄이 떨어지다 멈췄다.
펄럭. 검이 휘둘러진 자리 바로 위에서 하얀 날개가 살랑이며 허공을 날았다. 날개의 주인이 한지운을 보며 말했다.
“세 번째군.”
“…….”
“지금이라도 기회를 주지. 난 네가 꽤 마음에 든다.”
한지운은 말없이 검을 휙휙 돌리다 쥐고,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쐐액! 이번엔 검의 궤적을 따라 검은 구름이 쏟아져 나갔다. 크랄르가 높이 날아올라 피하려 하였으나, 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크랄르를 붙잡았다.
한지운이 손에 감긴 듯 몽글거리는 안개를 쭉 잡아당기자 크랄르는 속절없이 그에게 끌려갔다. 단숨에 한지운 쪽으로 끌려간 크랄르의 앞으로 검이 겨누어졌으나.
팔락! 날개가 한지운 쪽으로 펄럭이며, 거센 바람이 불었다.
“내가 그런 하찮은 술수에 걸려들 거 같나!”
한지운은 말없이 제 몸에 생긴 상처를 살피다 검을 고쳐 쥐었다. 크랄르가 그 모습을 보며 실소를 툭 내뱉고 팔을 휘둘렀다. 크랄르의 위로, 여섯 개의 검이 생겨났다.
“살려 달라 빌어도 이젠 소용없다!”
“…그럴 생각 없는데.”
텅! 텅! 한지운의 검은 검과 허공을 나는 검들이 부딪쳤다.
“공격을 받기만 하니, 참으로 불쌍한 모습이구나!”
“…….”
한지운은 반격 없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괴인들이 간 건가?”
“겨우 묻는 것이 그건가? 그래! 우리가 모두 나섰지! 너희를 끝내기 위해!”
“그래.”
그럼 빨리 가야겠네. 끝말은 속삭이듯 말해, 크랄르에겐 닿지 않았다. 그러나 그 끝말은 곧 반격의 신호였으니.
쾅! 한지운이 높게 뛰어올라 단숨에 크랄르의 앞에 당도했다. 크랄르는 잠시 당황하다 곧장 검 하나를 한지운의 머리에 던졌다.
한지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 자신에게 쏘아진 칼날을 붙잡아 다른 한 손으로 크랄르의 배를 찔렀다. 크랄르는 검을 빼내 피하려 했으나, 한지운의 떨어지는 힘이 더욱 강했다.
쾅! 크랄르가 한지운의 발밑에 깔렸다. 한지운은 크랄르의 배에 꽂았던 검을 빼내 그의 목에 겨누었다.
“…불쌍한 모습이네.”
무표정으로 중얼거린 한지운의 말이 크랄르에게 닿았다. 크랄르는 잠시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다 이내, 쿵! 전신이 검어지며 몸이 폭발하듯 터졌다. 머리카락은 물론이요, 손과 발, 옷 전부가 검어졌다. 검어지지 않은 건 붉어진 그의 눈동자뿐이었다.
폭발에 뒤로 물러난 한지운이 크랄르를 바라봤다. 날개가 더욱 많아지고 검어진 것 말고는 별 볼 일 없었다.
“그게 최대인가?”
“감히, 나를, 이 나를 우롱해? 겨우, 한낱―”
콰앙! 단숨에 크랄르의 곁으로 간 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터졌다. 폭발의 흔적을 여실히 드러내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안쪽에서 크랄르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감히―”
연기가 걷혔다. 바로 그 앞으로 작은 안개가 몽실거리며 크랄르의 얼굴에 닿았다. 픽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는 작은 수영장 정도 되는 크기의 구멍이 생겨났다. 소리 없이 단숨에 터진 공격이었으나 그 안에 크랄르는 없었다.
한지운은 잠시 땅을 바라보다, 하늘을 바라봤다.
“너는, 말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죽을 것이다.”
크랄르가 검은 손을 한지운에게 뻗었다. 그 행동이 신호가 되며, 하늘에 수없이 많은 검이 생겨나 빛났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검이 한지운에게 쏟아지려 하기 직전. 한지운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일전에 제 동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광역 능력도 잘 못 쓰면서 광역 능력을 쓸 생각을 해?」
“…못 쓰진 않는데.”
한지운의 손가락이 유연하게 움직이자, 하늘에 뜬 검 바로 아래. 검은 꽃 한 송이가 옅은 연기를 일렁이며 생겨났다. 곧이어 꽃이 시들듯, 안개로 이루어진 꽃잎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떨어지는 검과 부딪쳐 폭파했다.
“범위 조정이 힘든 거뿐이지.”
꽃잎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 땅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단숨에 크랄르의 공격을 무너뜨린 한지운의 공격은 크랄르의 정신을 나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죽어! 죽으란 말이다! 너 같은 것은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네가 내 앞으로 온 거잖아. 스스로 와 놓고 왜 나한테 장애물이니 뭐니 하고있어.”
“네 동생은, 나의 뛰어남을 돋보여줄 완벽한 것이었거늘! 너는, 너는―!”
동생. 그 한마디가 나오자마자 한지운의 속도가 단숨에 빨라져, 눈 깜짝할 새 크랄르의 앞으로 향했다.
한지운이 단숨에 팔을 뻗었다. 크랄르는 본능적으로 방어하려 바람을 이용했으나, 이미 뻗어진 한지운의 팔은 상처가 난다 한들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덥석. 크랄르의 목이 붙잡히며,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계속해서 공격하는 바람과 검이 한지운의 몸에 상처를 남겼으나 한지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크랄르의 날개를 잡았다. 여러 개 달린 날개가 단숨에 한지운의 손에 의해 뜯겨 나갔다.
“난, 내가, 내가 가장! 위대한―!”
“입 열지 마. 네 입에 내 동생도 담지 말고. 그냥, 사라져.”
뚜둑. 마지막 날개까지 뜯어지자, 크랄르의 반항하던 힘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검었던 몸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 더 볼품없어 보였다.
크랄르는 엉금엉금 기어가, 바닥을 나뒹구는 제 날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한지운은 그런 크랄르의 손을 콱 밟은 후 검을 휘둘러 찬란하던 그의 머리카락과 목을 그대로 동강 냈다.
더 이상 움직임이 없자 한지운은 미련 없이 방향을 틀었다가 우뚝 멈춰 섰다.
“아, 맞아.”
그러곤 바닥을 나뒹구는 날개를 주워, 시계 모습을 한 인벤토리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이젠 필요 없으려나?”
그래도 챙기면 좋아하겠지 싶어 한지운은 마지막 날개까지 꾸역꾸역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후 다시 갈 길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