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지화연은 우거진 숲속 안을 조용히 걸었다. 생명체 하나 존재하지 않는 듯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음에도 지화연은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걷던 와중, 그녀는 거대한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물기둥?”
그것이 우연히 생겨난 물기둥일 리가 없다고 판단한 지화연은 사뿐히 방향을 틀었다.
“승현 길드장 말곤 없지.”
판단을 끝낸 지화연은 곧장 달려 물기둥이 솟아올랐던 곳으로 향했다. 거리가 꽤 멀었기에 몇 분은 달려야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러다 얼마 안 가.
사락. 흙만 밟혔던 바닥에, 이상하리만치 꽃이 가득했다. 인위적으로 심어진 듯한 느낌에 지화연이 꽃에 손을 가져가려던 찰나.
“드디어 만났네?”
“으음?”
꽃밭 위로, 투명한 날개가 살랑였다. 동시에 나타난 붉은 드레스가, 연둣빛 머리칼이, 꼭 꽃을 연상시켰다.
꽃밭에 내려온 여성을 보며 지화연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구면이네요, 우리?”
“엄청 기다렸어, 너를. 이번에야말로 재밌게 놀자고.”
“이거 영광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글쎄요. 당신이 누구든 별 쓸모는 없을 거 같네요. 그러니 영광은 아닌 거로 알게요.”
“…허?”
“요릴리아. 요정들의 왕. 독 능력이 있으며, 꽃밭을 이용해 기력, 혹은 힘을 흡수. 맞으신가요?”
“그래. 내가 요정들의―”
“요정도 뭐, 별거 없네요.”
“…….”
요릴리아가 눈을 번뜩 뜨며 지화연을 바라봤다. 명백한 살기에도 지화연은 웃음을 잃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요정들의 왕이라는 호칭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지 뭐예요? 나름 ‘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느 군주들보다 뒤떨어지고, 그렇다고 괴인들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 어이쿠.”
지화연은 순식간에 제 발밑으로 처박힌 날 선 투명 날개를 피해 내며 꽃밭 바깥으로 나갔다.
“꽃밭 바깥으로 나가면 남의 힘을 빼앗지도 못하죠? 그렇다고 꽃밭을 늘리실 수도 없고요. 한지언 씨의 능력이 훨씬 월등하네요. 그거 아시나요? 한지언 씨는 모든 S급들을 통틀어서 가장 약하신 분이에요. 그런데 그런 분보다 뒤떨어―”
쾅!
요릴리아의 날 선 손톱이 지화연의 눈을 파고들기 직전 멈췄다. 지화연은 붙잡은 요릴리아의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반대쪽 손을 이용해 레이피어로 요릴리아의 어깨를 찔렀다. 찌른 자리를 기점으로, 요릴리아의 피부 위로 붉은 혈관이 일어났다. 텅! 요릴리아가 뒤로 물러났다.
“말 하나하나에 발끈하는 모습이 꽤 재밌네요.”
“계속 떠들어 봐. 그 고운 입부터 내가 없애 줄게.”
“고운 입이라 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없앤다니, 입을 찢으실 건가요? 그래도 말은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
촤아악. 요릴리아의 각 날개가 세 갈래로 갈라지며 요리조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화연은 가볍게 움직여 요릴리아의 공격을 피해 내다, 발밑에 요릴리아의 날개가 박히자 그 날개를 타고 요릴리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곤 팔을 뻗는 요릴리아의 뒤로 폴짝 뛰어 넘어가 그대로 요릴리아의 목에 레이피어를 꽂았다.
“풀벌레처럼 참으로 잘도 피하는구나.”
꾸드득. 요릴리아의 목이 돌아가, 제 등 뒤에 선 지화연을 바라봤다.
“…꽃밭을 없애지 않는 이상, 죽이긴 어렵다고 했던가.”
텅! 지화연이 요릴리아의 등을 발로 차자 요릴리아의 몸이 앞으로 날아가던 와중 멈췄다. 요릴리아의 꺾인 목이 돌아가며,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깟 잔재주 가지고 날 어쩌려고? 네 힘으론, 내 꽃밭을 무너뜨리지 못해!”
“그건 그렇죠.”
한지언 말고는 요릴리아의 꽃밭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건 지화연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꼭 무너뜨려야 하나요?”
“뭐?”
“저희 실험 하나 해 볼까요?”
주욱. 지화연이 제 팔을 긁어, 피가 흘러내렸다. 바닥으로 흘러내린 피가 꽃밭의 테두리를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무슨 잔재주를 부리려고? 너무 느린 거 아니니?”
지화연이 무언가를 하던 와중, 요릴리아가 단숨에 다가가 지화연의 목을 붙잡았다. 지화연은 요릴리아를 무시한 채 움직이는 제 능력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맞아요. 이 능력은 좀 느린데,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뭐? 무스―”
꽉. 꽃밭 바깥으로 테두리를 만들어 낸 지화연의 혈액들이 단숨에 솟아올라 요릴리아의 몸을 묶었다.
“…뭐야, 이건.”
“이런 거죠.”
짝. 지화연이 손뼉을 치자 그녀의 목을 붙잡고 있던 요릴리아가 뒤로 잡아당겨졌다. 자신의 힘이 아닌 힘에 의해 꽃밭 중앙까지 간 요릴리아가 웃으며 물었다.
“뭐 어쩌려고? 내가 이깟 거 하나 못 풀 거 같아?”
“풀 수 있으셨으면, 진즉 푸시지 그랬어요.”
터엉! 요릴리아의 몸이 단숨에 띄워지며, 그 옆으로 따라 뛴 지화연이 요릴리아의 몸을 뻥 차 날렸다.
꽃밭에서 꽤 먼 거리까지 날려진 요릴리아가 곧장 몸을 멈추었으나, 폴짝! 어느새 달려와 뛰어오른 지화연이 바로 눈앞에서 날고 있는 요릴리아에게 칼을 꽂아 그대로 낙하시켰다.
요릴리아는 반격을 위해 날개를 이용해 지화연을 떼어 내려 하였으나, 지화연은 그걸 예견한 듯 요릴리아와 같은 날개를 만들어 내 요릴리아의 저항을 막아 냈다.
쿵! 땅에 떨어진 요릴리아의 몸 위로, 수없이 많은 붉은 검이 꽂혔다.
“한번 움직여 보실래요?”
“뭐? 지금 날 무시―”
흠칫. 고개만 빼꼼 들어 올린 요릴리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제 몸에 박힌 검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게 진즉 눈치채지 그랬어요.”
요릴리아의 옆에 쭈그려 앉은 지화연이 움직이지 못하는 요릴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릴리아의 몸 전체에는 붉은 혈관이 피어오른 상태였다. 그것은 재생을 못 하게 하는 능력이었으나, 더 나아가 당한 채 시간이 지체되면 몸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나면 풀리겠으나, 다시 걸면 그만이었으니.
요릴리아의 방심이, 그녀를 죽였다.
“꽃밭이 아닌 곳에서 피를 이렇게 흘리면, 어떻게 되시나요?”
“죽여 버릴 거야!”
숲에 요릴리아의 비명이 울려 퍼지다 끊겼다.
♧♣♧
류천화는 자신이 이동된 곳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곳이 그새 무너지기라도 했나.”
지붕이 뻥 뚫려 무너진 신전이었다.
“그건 아닌가.”
건물의 구조를 살핀 류천화는 무너진 신전 바깥을 바라봤다. 우거진 숲속. 아까와 다른 곳임이 확실했다.
“흩어지는 것 좀 그만했으면 좋겠거늘. 왕의 탑도 별거 없군그래. 안 그런가?”
류천화가 어둠에 물든 기둥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둥 뒤에서 새하얀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간만이군.”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자가 금빛 귀걸이를 찰랑거리며 류천화를 향해 걸어왔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걸 보니… 꼭 처음 보았던 그 던전 때와 같군그래.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괴인들이 갔을 확률이 높고.”
“…….”
“떠들 생각은 여전히 없는 건가? 여전히 재미없는 존재군.”
키잉. 하얀 머리가 한 손을 내밀자 그 위로 테두리만 있는 금빛 정사각형이 만들어졌다. 곧이어 그것과 같은 모양이 하늘 위에 수놓이듯 만들어졌다. 어두웠던 폐허가 등이라도 밝힌 듯 밝아져 류천화는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능력 한번 화려한 건 여전하군.”
쾅! 쾅! 쾅! 금빛 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와 밝게 빛났다. 무언갈 계속해서 준비하는 모습에 류천화는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성큼 하얀 머리에게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난 상대가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려 줄 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야.”
뻐억! 류천화는 단숨에 하얀 머리에게 다가가 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하얀 머리의 얼굴까지 다다른 발 차기는 끝내 하얀 머리에게 막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하얀 머리가 막은 발을 튕겨 내고, 곧장 바닥에 손을 가져가 중얼거렸다.
“성역 전개.”
파아앗. 바닥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이건 새로운 기술인가 보지.”
세 번째 탑에 관한 얘기를 듣지 못한 채 탑으로 들어온 류천화는 이 기술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런데 이거 유감스럽군.”
저벅. 류천화가 발이 묶이지 않은 채 움직였다. 그 모습에 하얀 머리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기술이 류천화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 성역을 해제했다.
“뭐 다른 기술은 더 없나? 궁금한데.”
촤악! 하얀 머리가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방에 생겨났던 기둥이 더욱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너희는 왕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지.”
“함부로 떠들지 마라.”
“맞지 않나? 어디까지나 유흥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들이니까.”
“난 본래부터 왕의 총애를 받던 존재.”
“…체스라는 게임을 아나?”
“…….”
“체스판 위의 말을 가지고 조종하여 하는 게임인데―”
“시끄러워.”
“모르는 것 같아 유감스럽군. 이 게임이 꼭 너희들을 닮았는데. 네가 먹히면 죽는 게임에 아무것도 모른 채 왕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체스 말 같아서 하는 말이야.”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마.”
쩌엉! 기둥이 기둥과 연결되어 의미를 알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 모습은 꼭, 링과도 같았다.
“…뭘 하든 소용없을 텐데.”
휙! 날아든 주먹을 가볍게 피한 류천화가 물었다.
“이름이 궁금한데, 말해 줄 때도 되지 않았나?”
“그리스핀 도아문 헤이라. 이제 그만 조잘거려라.”
“길군. 귀찮으니 헤이라라고 칭하지.”
“남의 이름을 함부로 줄이지 마라!”
“그거 아나, 헤이라? 왕은 씨앗을 심기 위해, 군주들을 우리 쪽으로 보내 죽였어. 군주들도 겨우 그런 용도로 사용되어 죽었는데, 너희는 과연 어떨까?”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이미 아는 건가? 이미 알면서 그러는 것이면 참으로 충성스러운 개군. 짖어 보는 건 어때?”
“입 닥치라고……!”
“신성해 보이는 외형에서 그런 상스러운 말이 나오니 참으로 무섭군. 그나저나 이 기둥에는 무슨 능력이 있는 거지? 아무런 효과도 작용하지 못하는 거 같은데. 이거 네가 나에게 온 게 참으로 안타깝군.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니 말이야.”
“반드시 죽―”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면, 몸이라도 잘 움직였어야지.”
꽈득. 공격을 주고받던 헤이라의 팔이 류천화의 손에 붙잡혀 잡아당겨졌다. 류천화가 무릎으로 헤이라의 배를 가격했다. 그러곤 금빛으로 빛나는 기둥에 던지자, 기둥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류천화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제가 날렸던 헤이라를 다시 붙잡아 그대로 하늘 높이 던졌다. 류천화 역시 마찬가지로 하늘 높이 뛰어올라, 그대로 헤이라의 몸을 낙하시켰다.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는 그 화려한 능력, 차라리 나에게 양도하는 건 어떻지? 내가 원거리 능력이 없어 슬퍼서 말이야.”
키이잉. 헤이라가 손에서 작게 빛나는 금빛 박스를 만들어 냈다. 류천화는 피하지 않고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류천화가 어찌하든 헤이라는 박스를 만들어 내, 그대로 그것을 류천화의 얼굴에 쏘았다. 류천화의 얼굴에서 박스가 터져 류천화의 얼굴에 흠집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류천화는 떨어질 생각도 하지 않고 헤이라의 멱살을 붙잡았다.
“내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이거 흉이라도 지면 큰일 나겠는데.”
“시끄럽―”
“시끄럽다니, 그럼 조용히 하고 떨어져 주지.”
뻐억! 류천화가 헤이라의 몸을 바닥으로 세게 밀었다. 헤이라가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고 착지하려 고개를 든 순간.
푸우욱.
무너졌던 기둥의 뾰족한 부분이 헤이라의 몸통을 파고들었다.
“이런, 어떻게 만든 그림인데 함부로 빠져나오면 안 되지.”
류천화는 그러며 힘없는 기둥을 툭 밀어, 헤이라가 있는 곳에 그대로 기둥을 떨어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기둥을 떨어뜨린 류천화는 이내 그 아래서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콧방귀를 뀌며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