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그래. 언제 나오나 했다.”
왕의 유흥으로 만들어진 존재들. 그리고 이곳은 왕이 있는 탑. 괴인이 나오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한 상태였다.
“그래서, 널 죽이고 지나가면 되는 거지?
“엉?”
나는 낫을 가볍게 쥐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듯 제자리에서 두 번 뛴 후 말했다.
“빨리 끝내자.”
쾅! 나는 자리를 박차 겔탄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곧장 낫을 휘둘렀다.
“대화할 시간 정돈 줘야 하는 거 아냐?”
“대화할 게 뭐 있다고.”
겔탄은 반격 없이 내가 휘두르는 낫을 이리저리 피했다. 이전에 싸웠을 때와 똑같은 양상이었다. 나는 잡히지도 않는 것을 잡으려 애쓰고, 잡히지 않는 것은 끝까지 잡히지 않으려 하고.
휘릭. 겔탄이 내가 휘두른 낫을 피해 내 어깨를 잡고 뒤로 넘어갔다. 그 행동을 예상한 나는 낫을 놓은 뒤 두 팔을 뒤로 넘겨 곧장 겔탄의 후드를 붙잡고 바닥에 그대로 메다꽂았다.
그러곤 곧장 얼굴에 주먹을 꽂으려 했으나 손쉽게 막히고, 겔탄의 발 차기에 도리어 날아갔다.
날아가는 와중에도 능력을 사용했다. 별 무리가 겔탄을 단숨에 빙 두르며 터져 나갔다. 겔탄은 위로 뛰어올라 그것을 간단히 피해 냈다.
“그렇게 피하기만 해도 되는 건가? 왕이 보고 있지 않아?”
“…네가 강한걸.”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래.”
나는 하늘 위로 손을 뻗었다. 곧이어 새까맣던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수를 새기듯 생겨났다. 나는 재빨리 팔을 아래로 내렸다. 하늘에 떠 있던 별들이 한곳으로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별을 쏟아 낸 자리. 겔탄이 몸을 꼬리로 막은 채 구부려 앉아 있었다. 나는 별이 떨어진 흔적들이 사라지기도 전에 겔탄에게 달려가 낫을 휘두르는 척 겔탄의 뒤로 능력을 사용했다.
“우악!”
갑작스레 터진 능력에 몸이 기울어져 겔탄이 공중제비를 시도하려던 차, 나는 재빠르게 몸을 날리며 낫을 휘둘렀다.
“잡았다.”
나는 다리로 가격당해 바닥에 널브러진 겔탄의 얼굴 옆에 낫을 고정했다. 방금 전 내가 낫을 휘둘렀던 겔탄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이어, 겔탄의 검은 안대가 찢어져 벗겨졌다.
“내가 이겼어.”
안대가 사라진 자리. 겔탄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머리카락 색과 같은 풍성한 속눈썹과 그 아래 호박빛 홍채와 세로 동공. 화려했으나 생각했던 것보단 평범했다.
겔탄이 두 눈을 내게 고정하며, 제 얼굴을 더듬었다. 나는 몸을 움직여 겔탄에게서 떨어졌다. 겔탄이 한참을, 눈을 크게 떠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말했다.
“내 안대가 뭔 줄 알고 그렇게 베.”
“글쎄. 나야 모르지. 그런데 반응을 보니 정답인 거 같네.”
“정답이라니?”
“눈이 가려져 있어서 잘 못 본다. 그건 아마 시야를 뜻하는 게 아니라 더 깊은 무언가를 의미했을 거야. 그래서 내가 안대를 벗으라 했을 때도 안 벗었고. 아니, 그건 못 벗었다고 보면 되나?”
“그게 왜?”
“아무튼 안대가 네가 볼 수 있는 것들을 막는다고 생각해서 잘라 냈다는 얘기야. 이유는 또 있어.”
“또 있다니?”
겔탄은 지금까지,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왕의 눈을 피해 자신과 같은 존재를 숨기거나, 우리 쪽으로 넘어오거나. 적어도 왕에게 허락을 받은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왕이 겔탄을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윤시아의 얘기를 대강 들었을 때, 왕은 아마도 폭군인 것 같았으니. 아니, 본인의 얘기를 하지 못하도록 모두의 입을 봉인시켰으니 명백한 폭군이었다.
그런데 겔탄은 이상하리만치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다른 이들은 영혼이 봉인되었다느니 어쩌니 하였음에도.
그러나 동시에, 어떨 때는 자유롭지 않았다. 나를 공격해 온 지금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감시까지는 어려우나 명령을 듣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리라.
“…안대. 왕이 네 행동을 억제하려고 씌운 거 아냐? 넌 그걸 네 의지로 벗지 못했던 거고.”
“내 의지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의 손으로도, 공격으로도 불가능하지.”
“그러냐.”
“그런데 넌 됐네.”
“그러네.”
“어떻게 한 거야?”
“내가 알 리가. 그냥 낫을 휘두른 거뿐인데. 그래서, 안대는 무슨 역할이었는데?”
“…네가 생각하고 말한 그대로일 거야. 왕은 내 영혼을 봉인시키지 못하거든. 그래서 안대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준 거지. 다만 안대의 구속력은 영혼을 봉인시키는 것보다는 약해.”
“그래서 네가 그렇게 칠렐레팔렐레 다닌 거겠지……. 잠만. 근데 왕은 왜 네 영혼을 봉인시키지 못하는 거야?”
“…예전에 내 정체에 대해 알려 줬던 거 기억해?”
“뭔지 모를 것을 만들다 만 거라는 거?”
겔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거 거짓말이야.”
“뭐?”
“난 정확히는 실패작이지.”
“무슨 실패작인데.”
“…왕의 후계.”
“후계?”
“겨우 살아남았지. 가장 근접했던 존재여서. 결과적으론 후계는 아니야. 그럴 뻔했던 거지.”
난 뭐 최종 병기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더 어처구니없는 거였다. 뭔 후계를 만드는 데 그런 슬라임 같은 재료가 들어가?
“뭐, 그래서 네가 자유로웠던 건 후계에 가까웠던 존재이기에 가능했다?”
“응. 왕의 피를 물려받은 존재는 왕과 같은 영혼이면서 동시에 다른 영혼이 되거든.”
“뭔 소리야.”
“음. 그러니까, 난 왕이면서 왕이 아니야!”
“…….”
“…뭐라 설명하기 어려워. 나도 다 아는 건 아니라. 어쨌거나 왕과 같은 영혼이니 내 영혼을 봉인하면 왕의 영혼도 봉인돼. 그래서 왕이 내게 안대를 씌운 거야. 그건 영혼이 아닌 지금 움직이고 있는 이 몸을 봉인시키는 거라. 뭐, 둘 다 말을 못 하게 하는 건 비슷해. 다른 점은 안대를 씌운 정도로는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 확인하지 못한다는 거지.”
“그래서 자유로웠다?”
“정답! 뭐… 그것도 왕이 내 몸에 아무런 짓도 안 했을 때만 가능한 얘기지만 말이야.”
“그러냐.”
겔탄이 제 팔을 쭉 폈다.
“원래는 나도 처분해야 하는 존재였는데, 왕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쓸모 있겠다 여기고는 이렇게 이용했지. 해방돼서 무척 기뻐!”
“…….”
“고마워!”
“뭐, 그건 알 바 아니고. 난 궁금한 게 있어서 네 안대를 벗긴 거뿐이야.”
“궁금한 거?”
“내 힘. 눈이 가려져서 못 본다고 했던 거. 난 약한데 자꾸 특별하니 강하니 했잖아. 아 그리고, 그 슬라임들을 왜 죽여달라고 한 거야.”
“그건… 왕에게 죽으면 그 애들의 영혼이 왕에게 흡수되거든. 그래서 그랬어. 그리고…….”
겔탄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이걸.”
“뭔데.”
“설명하려면 꽤 긴데. 음. 우선, 사람마다 능력을 담는 그릇이 있다고 하자. 그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담을 수 있는 능력이 한정되는 거야. 대부분은 능력이 그 그릇에 꽉 채워져 있고.”
“그래서.”
“근데 넌, 그릇이 커!”
“…겨우 그 이유야?”
“아니, 엄청 커! 엄청! 그래서 제트리스가 그 큰 그릇에 담긴 힘을 맛보고 미쳤었지.”
첫 번째 탑의 마지막 층. 제트리스와 싸울 때 제트리스가 꽃밭의 힘뿐만 아니라 내 힘까지 가져갔을 때를 얘기하는 듯했다. …아니, 그전에. 보고 있었냐? 아니 그리고 설명이 왜 이리 허접해.
“…….”
“낫 들지 말고! 아직 말 안 끝났단 말이야!”
“계속해.”
“그러니까, 이때 그릇에 담긴 능력을 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릇을 만지는 건 불가능해. 손으로 꺼내는 것도 불가능하고.”
“도구가 필요하겠지.”
“맞아. 그 도구를 숟가락이라 가정하자. 그릇에 담긴 능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 약한 능력이 담겨 있을 수도, 강한 능력이 담겨 있을 수도 있지. 그러나 그 능력을 사용하려면 어느 쪽이든 간에 숟가락을 이용해야 해. 능력을 퍼내야 하니까. 보통은 그릇에 능력이 꽉 차 있으니, 대부분 손쉽게 퍼낼 수 있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넌 아니야.”
“…그게 무슨 뜻인데.”
“네 그릇은 너무 거대하지만 담긴 능력은 그릇의 바닥을 겨우 덮을 정도야. 숟가락으로 긁어모아야 간신히 퍼낼 수 있지. 그런데 그렇게 해서 긁어모을 수 있는 능력도 겨우 한두 방울이야. 숟가락질하는 데는 남들의 몇 배는 되는 기력이 소모되는데 말이야. 그런데 너는, 그 한두 방울로도 그 정도의 힘을 내.”
“…….”
“그래서 왕이 탐내는 힘이라 한 거야. 아니, 정확히는 왕이 탐내는 영혼이라 볼 수 있지.”
“…그릇이 아니라?”
“그릇과 능력은 곧 영혼이거든. 아무튼 넌 강해.”
“…글쎄. 그릇이 텅 비었는데 그걸 강하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걸 채우는 건 네 몫이지.”
“능력은 곧 영혼이라며? 말하는 걸 보니 둘이 한 세트인 거 같은데. 바뀌는 건 불가능할 거 같고. 그럼 약한 게 맞잖아?”
“…말 안 해!”
겔탄이 고개를 휙 돌렸다.
“뭐?”
“기껏 힘들게 설명해 줘 봐야, 결국 네 멋대로 판단하잖아!”
“아니, 맞잖아. 그릇에 능력이 꽉 차 있는 것도 결국 본인이 타고나길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내가 설명한 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기준이야. 너희랑은 좀 달라.”
“뭐가 다른데.”
“…흠. 비밀!”
그 말에 내가 곧장 낫을 휘둘렀으나, 겔탄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낫을 피해 냈다.
“나는 알려 줄 거 다 알려 줬어! 나머진 네가 스스로 알아내야지. 다 알려 주면 재미없거든!”
“재미없어도 되니까, 그냥, 말하라고!”
“싫어!”
턱. 겔탄이 내가 휘두른 낫을 피하다 바닥에 착지했다.
“그래서, 궁금한 건 이게 끝이야?”
“…더 자세히 알려 달라고 해 봐야 어차피 알려 주지도 않을 거잖아?”
“응!”
겔탄이 꼬리를 살랑였다. 저 꼬리도 좀 떼어 낼 순 없나.
겔탄이 밤하늘을 바라보다 말했다.
“사실 바로 도망쳐야 했는데, 네가 마음에 들어서 나도 최대한 시간을 낸 거야.”
“그거 참 고맙네.”
“그치? 근데 이만 가 봐야 해. 그래서 그러는데, 정말 더 궁금한 거 없어?”
어차피 알려 주지도 않을 거 왜 자꾸 물어보는지 모르겠……. 아.
“하나 있다.”
“뭔데? 뭔데?”
“네 진짜 이름. 겔탄 그거 가짜 이름이잖아.”
“…그건 또 어찌 알았대.”
“여간 티를 냈어야지. 게다가 다른 애들이 널 겔탄이라 부른 적도 없었고.”
“음 내 진짜 이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 대신 겔탄이라는 이름의 뜻이라도 알려 줄까? 꽃이 지는 날 밤이라는 뜻이야. 이쁘지?”
“진짜 이름은.”
“…아이릴 룬.”
“뭔 뜻인데.”
“쓸모없는 덩어리.”
“진짜 별로긴 하네.”
“그치? 그러니까 겔탄으로 기억해 줘. 내가 나에게 직접 지어 준 이름이니까.”
“널 굳이 기억할 필요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너무하네!”
겔탄이 눈이 보이게 된 이래 처음으로 웃어 보였다.
“그럼 진짜 갈게. 내가 왕한테서 잘 도망쳐서 자유롭게 살길 빌어 주라.”
“별걸 다 바라고 있네. 내가 안 죽이고 도운 걸 고맙게 생각해.”
“그래, 고마워. 그럼 가 볼게. 안녕. 기회가 닿으면 또 봐.”
겔탄이 손을 흔들며, 천 자락 흩날리듯 팔락대다 사라졌다. 나는 겔탄이 사라진 자리를 잠시 바라보다 몸을 틀어 물기둥이 솟아올랐던 곳으로 걸음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