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한지운 헌터가 마지막이네요.”
지화연 씨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형을 발견하곤 중얼거렸다. 뒤이어 유아한 씨가 말했다.
“어차피 같은 내용이겠죠?”
같은 내용. 뒤이어 온 유아한 씨와 류천화 씨 역시 마찬가지로 클리어 조건으로 생각되는 것을 찾아냈으나 보기 좋게 훼손된 상태였다고 했다. 모두가 그런 상황, 당연히 형도 그러리라 생각하는 건 당연했으나.
“한지운 헌터. 뭐 얻으신 것 있으십니까?”
승현 헌터의 말에 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승현 헌터가 물었다.
“훼손이 덜 된 것을 찾으신 겁니까?”
“훼손이라뇨?”
형의 물음에, 승현 헌터가 되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찾으신 힌트들이, 전부 훼손되어 있지 않으셨습니까? 저희가 찾은 힌트는 모두 그랬는데요.”
“…아뇨. 훼손되었다고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형의 말에 다른 사람들의 눈빛이 빛났다. 아무 실마리조차 없던 상황에서 형의 말은 그야말로 한 줄기의 빛이나 다름없었으니.
형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듯싶다가 곧장 표정을 풀고 말했다.
“시계가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면 종이 울리는데, 그때 이곳의 감시자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 감시자를 죽이면 되는 겁니까?”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쉽네.”
그 말을 듣고, 나는 시계탑으로 시선을 옮겼다. 네 개의 기둥 위에 종형 지붕이 올라간 형태였다. 지붕 아래쪽에는 거대한 종이 대롱 매달려 있고, 지붕면에는 둥근 시계가 박혀 있었다.
꼭대기에 있는 둥근 시계를 바라보다, 문득 든 생각에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시계가 가운데에 위치한다는 건 정오를 뜻하는 걸까요, 아니면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시계를 반으로 가르는 6시를 뜻하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시간을 뜻하는 걸까요?”
내 말에 사람들이 입을 벙긋거렸다. 가운데. 평범히 생각하면 정오이겠지만, 정오는 되레 가운데라는 말에 맞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시간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었다. 시계가 가운데에 위치하는 거지, 시간이 가운데 위치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아니라 시계잖아요. 시간이 가는 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저희가 시계를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닐까요?”
“한지언 헌터, 이 시계탑은 도시의 가운데에 있어 시계를 움직인다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그건 그렇죠. 그런데, 시계탑이 정말 시계탑일까요?”
내 말에 유아한 씨가 답했다.
“한지언 씨의 말은, 저희의 관점에서는 이 건축물이 시계탑이지만, 이곳에선 시계탑이라 정의를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이죠?”
“네. 맞아요.”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셨네요. 저도 시계가 가운데에 위치하게 된다는 말 자체가 뭔가 어색했었거든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곳에서 시계는 보편적인 저 시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의 명칭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몬스터라든가?”
“몬스터요?”
몬스터는 생각 외였다. 나는 다른 물체라고 생각했는데.
“뭐, 여기선 몬스터를 쓰레기장이라고도 말하잖아요. 그럼 몬스터의 이름이 시계일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싶어서요. 그 시계가 이곳, 시계탑 밑으로 오면 감시자가 소환되는 거고요. 감시자를 부르기 위한 일종의 연락망 같은 거 아닐까요?”
“꽤 신빙성 있는 말이네요.”
“문제는 이 추측이 맞는다면 시계라는 존재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시계라.
대화를 가만히 듣던 지화연 씨가 말했다.
“그렇다면, 재수색을 해야 하겠네요.”
“그것보단 더 좋은 방법이 있지.”
류천화 씨가 불쑥 형에게 다가가 물었다.
“한지운 헌터. 그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지?”
“…어느 몬스터가 알려 주었습니다.”
“그럼 일단 그 몬스터에게 다시 가면 되겠군.”
그 말에 형이 고개를 저었다.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
“예. 불쑥 튀어나와 제게 그 말을 남기고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그럼 더욱 찾아야겠네요.”
지화연 씨가 말을 이었다.
“우선 몬스터와 대화가 통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몬스터들에게 수소문이라도 해서 시계에 대해 알려 준 몬스터를 찾는 방향으로 재수색하죠? 한지운 헌터, 그 사실을 알려 준 몬스터는 어떻게 생겼나요?”
“…낡은 갈색 망토를 뒤집어썼습니다.”
그리고 대화가 끊겼다. 조용한 상황에 승현 헌터가 당황하며 물었다.
“다른 특징은 없었습니까? 생김새나 그런…….”
“아.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
지화연 씨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망토를 벗고 지팡이를 버렸으면 못 찾겠네요.”
재수색하자는 말이 쑥 들어가고,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 거대한 지하 도시를 샅샅이 수색할 생각만 해도 벌써 피곤한데, 못 찾기까지 하면 큰일이니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돌로 가득한 천장을 바라봤다. 그렇게 오랫동안 자세를 고정하고 있자 유주한이 물어 왔다.
“형, 뭐 하세요? 위에 뭐 있어요?”
“아니.”
“그런데 왜 그러고 계세요?”
“…그냥. 감시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을 감시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건… 그렇겠죠?”
“그래서 우리가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고 나와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꽝이네.”
나는 기대했던 마음을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어찌할지 고민하던 사람들은 특별한 해답을 내지 못한 채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재수색을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럼 신호탄을 하나씩 받아 주시길 바랍니다.”
건네받은 신호탄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보니, 어느덧 사람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 역시 유주한과 움직이려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무언가 말하고 싶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유주한이 보였다.
“하고 싶은 말 있어?”
“예? 아니, 그… 저, 이번에는 혼자 다녀 보고 싶어서요.”
“혼자?”
나는 음 하고 침음을 내뱉었다.
그래, 뭐, 어차피 딱히 위협적인 것도 없었으니.
“그럼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만 마.”
“네!”
내 허락에 유주한이 밝게 웃으며 어디론가 슝 달려갔다.
‘나는 어디를 수색해야 하나.’
이미 사람들이 간 쪽으로 가기는 애매했다. 수색했던 곳을 또 수색해 봤자 시간 낭비일 테니.
‘그럼 몬스터들에게 하나하나 말을 걸어 봐야 하나.’
어찌할까 하며 가만히 서 있는 것 자체로 시간 낭비라 느껴져, 우선 걷기라도 하자 싶어 발을 뗀 찰나.
“어.”
낡은 갈색 망토를 뒤집어쓰고 나무 지팡이를 든 무언가가, 몇 걸음 앞에 서 있었다. 뜬금없는 상황에 나는 멍하니 눈앞에 있는 몬스터를 바라봤다.
―홀홀. 신기한 생명이구먼.
그 말에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신호탄…….’
아니, 붙잡고 신호탄을 날려야 하나?
잠깐의 고민을 하고 있자, 몬스터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이보게.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대화부터 하는 건 어떤가.
“…….”
―시간이 많다는 건, 본인도 잘 알지 않남?
“…무슨 뜻이지.”
―이거 신기해라, 신기해라.
툭. 몬스터 한 마리가 망토를 쓴 몬스터를 치고 갔다.
―떼잉. 하여튼 복작복작해서. 대화할 곳이 못 되는구먼.
말을 주절거리며 몬스터가 지팡이를 살짝 들었다가 바닥에 내려놓았다. 딱! 소리가 나며.
“…뭔.”
주변이 느려졌다. 꼭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제야 좀 조용하구먼. 그래서, 이제 대화할 마음이 생겼는가?
“정체가 뭐지?”
―급하기도 해라.
“시계인가?”
내 말에 몬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나를 그렇게 부르지만, 나는 그저 다 늙어 버린 생명에 불과하지. 평범한 노파야.
“어쨌거나 시계가 맞는다는 거군.”
―그래. 자네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지.
“그러니 잡아야 하고.”
―잡을 수 있겠나? 저 재빠른 것도 잡지 못한 이 늙은이를?
“…….”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나. 협박하려는 건 아니니.
“그럼 왜 나한테 말을 걸어온 거지?”
―대화를 해 보고 싶어서라네.
“무슨 대화?”
노파는 가만히 서 있었다. 망토에 뒤덮여 보이지 않는 눈이, 꼭 가만히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노파가 호탕하게 웃었다.
―엉망으로 꼬인 시간이 그리 얽혀 있는데, 대화를 안 할 수 없잖나!
“…꼬인 시간이라니?”
―말 그대로지. 자네, 시간을 되풀이하진 않았나?
“…….”
―그래서였군. 그래서였어.
“뭐가 그렇다는 거지.”
―왕이, 자네를 주시하고 있어. 아주 매섭게 말이지!
나는 그 말을 곱씹어 봤다. 시간, 그리고 왕. 그렇다면 답은 뻔했다.
“왕이, 내가 겪은 시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가?”
노파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곳에 처음 들어와 겪은 일이 나를 겨냥한 게 맞았다는 건데. 그렇다면… 어떻게?’
그 어떤 회차에서도, 왕이라는 존재는 보지도 못했다. 그렇다는 건 왕의 눈에 우리는 그저 개미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을 텐데, 인제 와서 나를 주시한다고? 갑자기 내가 회귀했다는 걸 알았다고? 이렇게, 갑자기?
아니, 애초에 나를 주시할 이유도 없었다. 회귀하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것도 없었으니까. 겔탄이 말한 대로라면 영혼이 뭐 좀 특별한 정도지. 아니, 그걸 원하는 건가?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원한다고? 뭐, 숙성되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나.
나는 조용히 물었다.
“왜?”
―늙은이가 그걸 다 알 방법은 없어. 다 알고 있다면 내가 왕의 자리에 앉아 있었겠지!
“…그런가. 그렇네.”
그렇다면 회귀와 내가 가진 그릇이 왕이 탐내는 건가?
‘뭔가… 걸리는데.’
우리는 왕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왕은 내 힘을 원한다. 이미 강한 자가 더 큰 힘을 바라는 건 별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겨우 한낱, 내 힘을 원한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그렇다면 회귀를 특별히 보고 있는 건가?
―이봐. 내 충고 하나 해 주지.
“충고?”
―네 몸에 얽혀 꼬인 실은 풀 수 없어. 그러니 앞으로 이어질 실은 꼬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뜻이지?”
―쭉 나아가는 실을, 애꿎이 뒤로 옮기지 말라는 뜻이야.
회귀하지 말라는 건가.
“네 정체가 도대체 뭔데 그리 잘 아는 거지? 관리자인가?”
―말했지 않나. 그냥 다 늙은 생명이라고. 그리고, 네 시간을 본 건 나뿐만이 아닐 터인데? 그러니 난 특별한 게 아니지. 그저 눈이 좀 좋을 뿐이야.
“…….”
―마지막 가는 길에 특별한 걸 봐서 기쁘구먼. 즐거운 대화였어.
터벅터벅. 노파가 나를 향해 가까이 오는 듯싶다가, 내 옆을 지나쳐 시계탑 아래로 쏙 들어갔다.
‘…잠만.’
노파가 지팡이로 바닥을 세게 쳤다.
딱!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걷는 소리가, 말소리가, 공장의 기계 소리가 다시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그건 단순 배경음에 불과했다.
댕―!
시계탑에 대롱 달려 있던 종이 스스로 울렸다. 귀가 울릴 정도로 거대하고, 청아한 소리였다.
갑작스레 울린 종에 노파를 바라보니, 노파는 저를 바라보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 모습도 잠시.
콰장창!
종이 떨어지고, 노파는 그 종에 깔려 그대로 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