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거짓말】
한참을 말다툼했던 사람들도, 구경하던 사람도, 모두 돌변하여 몬스터를 공격했다. 공격당한 유아한 씨마저 그 와중에 반격했다. 공격당한 몬스터는 한쪽 팔이 잘린 채 뒤로 물러났다.
‘사마귀?’
어린아이가 색칠한 것만 같은 알록달록한 거대 사마귀의 모습을 한 몬스터였다. 그 밖에도 꽤 많은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대화를 뒤로 미루고 몬스터 처리를 우선하였다.
“탁 트인 곳으로 나오자마자 환영식을 해주네!”
지화연 씨가 형한테 내려던 화를 몬스터에게 풀었다.
빠르게 없어져 가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언뜻 보기엔 우리가 압도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그래. 보통 때 같았으면 이 정도의 몬스터들을 상대로는 별 타격을 입지 않았을 것이고 상처도 몇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 때의 상황이 아니었다. 탑에 들어온 이후 시간은 흐르고 흐른 뒤였고, 능력은 사용할 대로 사용한 상태였다.
간단히 말해서, 몬스터를 전부 처리하고 난 뒤에 보인 사람들의 모습은, 꽤 좋지 못했다. 모두 자잘한 상처가 한가득했다.
‘확실히… 정신적으로 지칠 때가 되긴 했지.’
보통 던전을 돌 때는 지체되면 휴식을 취했다. 탑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조금이지만 휴식을 취하긴 했었다.
그러나 지금 들어온 검은 탑에선 아니었다. 하나를 마무리하면 하나가 터지고 또 하나를 마무리하면 다시 하나가 터지니 쉴 틈 따위는 전혀 없었다. 끽해야 이동할 때에나 조금 휴식을 취했을까. 능력을 사용하진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얼추 눈치채고 있었다. 본인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본인이니 당연하겠지만.
그러나 쉽게 멈출 수는 없었다. 다른 탑들과 달리, 이번 검은 탑엔 우리밖에 없었으니까. 또한 바깥에서 계속 몬스터가 쏟아지는 상황이니 더더욱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걸 너무나 잘 알았기에, 누구도 휴식이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몬스터는 더 이상 몰려들지 않는 듯합니다.”
승현 헌터가 로프 다트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방금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저희가 있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가 숲인 것으로 보아, 저번처럼 수색해야 다음으로 향하는 길이 나올 듯합니다.”
“움직이죠.”
유아한 씨가 숨을 들이마시며 답하고, 승현 헌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 역시 조용히 움직였다.
나는 움직이며 사람들을 확인했다.
승현 헌터는 얼핏 보기에 멀쩡해 보였다. 수색을 돕는 물고기도 소환한 상태였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만이었다. 자세히 보면 로프 다트를 쥔 그의 손은 피가 몇 방울 떨어질 정도로 꽉 쥐어진 상태였고, 미세하지만 뺨에 식은땀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 손에는 마석이 쥐어져 있었다. 세 번째 탑을 클리어하고 곧바로 검은 탑 공략에 나섰으니, 아마 가장 힘든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유아한 씨는… 통 무슨 티가 안 나는 사람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아까 큰 타격을 입기도 했으니, 기력이 빨리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힘들 것이었다.
류천화 씨나 지화연 씨는 평소에 싸우고 나면 꼭 머리칼을 정돈하는데, 이제는 머리칼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더욱이 지화연 씨는 방금까지 형에게 화를 낸 뒤여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기력 회복이 더딜 것이었다.
형은, 알아서 잘하겠지.
‘가장 문제는…….’
나는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유주한. 지친 모습이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헌터가 된 지 나름 시간이 지났다 해도, 유주한은 어렸다. 금방 회복되지만, 쉽게 지치는 나이다. 탑에 들어오고 나서는 쉽게 지치기만 했지 회복은 못 했을 터. 그런데도 본인이 들어온다고 한 탑이라 유주한은 여태 힘들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밝은 모습을 보여 왔지.
“…….”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자리에 멈춰 섰다. 내 행동에 유주한이 나를 불렀다. 유주한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 역시 멈춰 서 나를 돌아봤다. 나는 맥없이 말했다.
“휴식했다가 다시 움직이죠. 보아하니 저기, 저 나무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지만 저기 보이는 건물에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들어가면 또 뭐가 나올지 모르잖아요. 이참에 대비하고 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류천화 헌터가 답했다.
“한지언 헌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근데 그 공략의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잖아요. 끝을 모르는데. 왕이 나올 기미도 없고. 바깥이 조금 문제긴 해도, 지금까지 잘 버텼으니 10분 정도는 괜찮겠죠. 이러다 저희가 다 죽으면 다시 처음부터 탑을 공략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좀 쉬어라, 이 인간들아. 세상을 구하는 것도 쉬엄쉬엄해야지, 너무 몰아붙이면 자신이나 세상이나 둘 다 놓치는 격이었다.
류천화 씨가 제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헤집으며 말했다.
“왕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쉬는 게 낫긴 하겠군.”
승현 헌터가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면 20분 정도만 휴식하고 다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유아한 씨가 먼저 폭 자리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둘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주한은 머뭇거리다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나 역시 앉으려 몸을 움직인 순간, 형이 걸음을 옮겼다.
“…저는 숲속을 더 수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나는 앉으려던 다리를 일으켰다.
‘표정이…….’
익숙한 표정이었다.
‘왜.’
뭔갈 저지르려는 듯 비장한 표정. 이전 회차에서도, 자주 봤던 표정.
형이 곧장 숲속으로 사라져, 나는 우선 승현 헌터가 따라가려던 걸 가로막았다.
“제가 따라가 볼게요.”
“…조심하십시오.”
“뭐 별것도 없는데 조심할 게 있을까요.”
말을 끝낸 후, 나는 곧장 형의 자취를 따라 이동했다. 턱. 턱. 나무를 때리며 내가 쫓아가는 것을 형이 눈치채게 했다. 그렇게 얼마쯤 가자 멈춰 선 형이 달려가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따라왔어.”
“형.”
나는 걸음을 멈춰 형을 바라봤다. 그리고 옆에 있는 건물을 흘끗 바라보다 숨을 내쉬며 물었다.
“뭐 하려고.”
“뭐?”
“뭐 하려고 이 건물 앞에 왔냐고.”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 빠른 속도로 가서 겨우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는 건 어색했다. 형의 수색 속도는 무척이나 빠르니까.
나는 눈을 굴려 건물을 살폈다. 건물은 작은 신전처럼 생겼……. 어, 잠만. 이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아.’
그것은 돌로 된 몬스터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거대 신전과 비슷했다. 가짜 임하늘을 만나기 전에 사람들과 있었던 그 거대 신전 말이다. 아마 그 신전이 작아지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우연일 리는… 없고.’
나는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을 머릿속에서 굴렸다.
형이 망가뜨려 놓은 글에서 겨우 얻은 글. 손 조각. 신전.
“…….”
손 조각. 그것은 꼭 무언가를 향해 손을 쫙 편 것 같았다. 무언가에 닿으려는 듯 말이다. 그래, 신전에 있던 석상처럼.
문제는 아래를 향해 뻗은 손이냐, 위를 향해 뻗은 손이냐는 것이었다. 부서진 상태라 알 수 없었지만, 쉽게 생각하면 답이 나왔다.
사람들이 손을 위로 뻗고 있는 석상은 우리를 이동시켰으니, 아마 그것으로 석상의 능력을 다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밖에 없지.’
부서진 손은 바닥에 있는 성배에 닿으려는 석상, 형이 함정이라 했던 그 석상의 일부. 혹은 레플리카일 것이었다. 왜 거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감시자가 힌트를 숨기려고 뒀겠지.
‘그리고 죽음과 관련 있는 글들이… 석상과 관련돼 있는 거라면.’
이미 석상에 대해 알고 있는 형이, 곳곳에 쓰여 있던 글들을 지워 놓는 이유가 됐다. 이미 지하 도시에 석상에 대한 증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면, 더욱. 알고 있으니 숨길 수 있던 거겠지만. 어떻게 알았을까. 감시자가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니, 이 전에는 안 숨겨져 있을 확률이 높았다. 뭐 이건 형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있었을 확률도 높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숨겼는가.
‘죽음, 숭고한……. 사실 이 두 단어만 봐도 대략 알 수 있지.’
죽음이라는 단어 뒤에 숭고하다는 말이 나온다. 죽음과 연관된 숭고함은… 희생밖에 없지. 그리고 손끝? 이건 석상의 손끝에 있는 성배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전부 추측이지만, 참으로 웃기게도 전부 맞아떨어졌다. 형의 성격상 숨기는 것도 말이 됐고.
그리고,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형이, 이 신전에 석상이 있는 걸 알아서 이곳으로 온 것이라면. 그리고 무언갈 하려는 조금 전의 그 표정이 희생과 관련되어 있다면.
나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 석상에 가서 희생이라도 하려고?”
“…네가 그걸 어떻게…….”
“찍었는데.”
“…….”
“맞았나 보네.”
나는 고개를 느리게 움직여 신전을 바라봤다.
희생하면, 이게 다 끝나나. 저 석상에 무슨 효과가 있어서. 저 돌덩어리가 뭐라고?
“형. 희생하면 왕이 죽어?”
“…….”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힘이라도 상승시켜 주나.”
“…….”
“입이 달렸으면 말을 해. 한지운.”
형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코앞인데. 왕이, 던전의 끝이 이곳에 있는데. 형이 죽으면, 다시 돌아간다.
‘그건, 안 되지.’
나는 말했다.
“형. 희생하면 뭐가 이득이냐니까. 내가 할 테니까 말해 줘.”
“뭐?”
“내가 희생할 테니까, 희생하면 뭔 이득이 있는지 말하라고.”
“아니, 네가 희생할 이유는 없어.”
“그럼 형은?”
“나는…….”
형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나 너무 소리가 작아 내 귀에는 닿지 못했다.
“형. 죽으면 끝이잖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 말에, 실소가 튀어나왔다.
“뭐, 죽는 거쯤이야.”
“…뭐?”
“형보다 내가 죽는 게 더 낫잖아. 형은 강하고, 나는 약하니까. 혹시 내 희생에도 왕이 안 죽으면 형이 죽여야 할 거 아니야. 나는 죽일 수 없으니까.”
그릇이야 어찌 됐건,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난 약하니까.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지.
내 희생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으면, 난 몇 번이고 시도할 수 있었다.
‘…지금껏, 구한 적도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구할 수 있다면야.’
그리고, 이곳은 어차피 소설 속이었다. 그것도…….
“형. 주인공이 죽는 소설은 재미없어.”
“…뭐?”
형이 중심인 소설 속.
“…대단해, 참. 빙의한 거짓된 세상을 이렇게 목숨 걸고 구하려 드는 게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야.”
“글쎄. 형이 생각한 대로인 거 같은데.”
“…….”
“반박 안 하네.”
형이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나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당황한 티를 내는 형을 보며 말했다.
“형. 나도 처음에는 영웅이 된 것만 같았어. 내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내 앞에서 멸한 세상을, 다시 돌리는 것만으로 영웅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근데 도저히 내 손으로는, 내 힘으로는 불가능했어. 그리고, 이제는 내가 세상을 구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노력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딱히 관심이 없는 걸 수도 있고.”
지금의 나는, 만약의 만약을, 그리고 또 그 만약을 맹신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저물어 갔다. 감정도, 책임감도.
그래서 회귀해 기억이 돌아온 날 형이 빙의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형이 미치도록 미웠다. 한평생 알던 형이 없어져 버려 그랬던 것도 있었지만, 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렇기에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나는 조연이었다.
형이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넌 도대체…….”
“글쎄. 형이랑 비슷하지.”
나는 세상 밝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니까 형,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를 대신 희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미쳤어?”
“아니. 정상인데. 희생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랑, 방법만 알려 주면 돼.”
“싫어……!”
“…꼭 싸워야겠어?”
“안 싸워. 네가 나를 때리든 뭘 하든, 죽어도 말 못 해.”
형이 입술을 짓이겼다. 불안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왜 습관까지 똑같아서.’
나를 더 좀먹는가.
나는 낫을 쥐었다. 손을 작게 움직이자 별들이 사방에 생겨났다.
“꼭, 이렇게 해야 알려 주는구나.”
“아니, 어떻게 해도 말 못 해.”
“글쎄. 그건 맞고 나서 다시 생각해 봐.”
사람은 죽기 전엔 바뀌는 법이니까.
그렇게 형을 향해 한 걸음, 향한 순간이었다.
“커헉.”
숨이 덜컥, 막혀 왔다. 심장이 억죄어졌다.
‘왜.’
익숙했다. 이건, 단말마의 고통이었다.
더는 생각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툭, 눈이 감겼다.
♧♣♧
눈이 떠졌다. 바닥에는 스산한 안개가 깔려 있었고, 사방이 어두침침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풍경에 나는 조용히 생각을 곱씹었다.
‘죽진 않았네.’
그럼 여긴 어디지.
나는 주저앉혀져 있던 몸을 일으켜 앞을 바라봤다. 그 순간,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
나는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불렀다.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