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눈앞에 형이 있었다. 형이. 모든 감각이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분명히, 저 사람은…….
“한지언.”
“…….”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다 까먹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겪는 당황스러움과 격한 감정이었다. 나는 날뛰려는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혀, 차분히 말했다.
“형……. 돌아와.”
“…….”
“왜, 왜 사라진 건데.”
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왼쪽 눈, 그리고 두 다리와 오른쪽 팔이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형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걸음을 옮기려 하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왜, 왜 내 인생은 하나같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데.
“형, 나, 진짜 참았어. 없어졌으니 별수 없다고 꾸역꾸역 참았어.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내 앞에 나타난 건데. 왜… 사라져 놓고…….”
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왜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의 형이 사라진 건데. 한 번도 없어진 적 없는 형이 왜 사라진 건데.”
“한지언.”
“수백 번을, 수천 번을, 그 이상을 참았어. 모르는 사람이 형의 몸을 가진 채로 움직이는 걸, 나에게 말을 거는 걸, 상처를 내는 걸. 다 참았어. 그 사람이 형과 똑같은 행동을 할 때마다 다 부서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모두가 한지운이라고, 한지운이 아닌데 한지운이라 해. 저건 한지운이 아닌데. 저건―!”
“한지언!”
형의 부름에 나는 어느샌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형의 표정이 뚜렷이 보이는가. 안개가 스산해 보이지 않던 표정이.
저 표정은, 뭔갈 저지르려는 비장한 표정. 형의 습관과 같은 표정.
“왜…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건데. 아냐, 하지 마. 뭐든 간에 그냥 하지 마.”
“한지언, 똑바로 들어. 나는―”
“하지 마.”
“너의―”
“하지 마!”
형이, 문장을 이었다.
“형이 아니야.”
“…뭐?”
“네 형이 아니라고. 네가 아는 한지운이 아니라고.”
“무슨……. 그게 뭔 헛소리야. 성격이, 표정이,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형이라고 하고 있는데.”
“잘 들어, 한지언. 저 아래에 있는 네 형이 진짜 형이야.”
“아니. 누군가가 빙의된 형은, 겉만 형이야. 진짜 형은, 형이라고.”
“…누군가 빙의한 게 아니라면?”
“…….”
뭐?
“빙의한 게 아니라, 그저 소설이라는 기억만이 있는 거라면?”
“그게 무슨 소리야? 형의 몸을 가진 것이 본인의 입으로 빙의했다고 했어! 그리고 형이랑은 성격이 다른데, 어떻게 그게 빙의한 게 아니야.”
“…아니. 어릴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소설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소설을 읽었다는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네 형이야. 똑같은 형이야. 그저 저번이랑 다르게 소설이라는 기억이 성장하는 데에 영향을 준 거지. 그리고 애초에, 여긴 소설 속 같은 것도 아니야.”
“…무슨 소리야.”
“네 형은, 소설에 빙의한 게 아니라고.”
“…….”
“한지언. 평소에 잘 굴리던 머리를 굴려. 그리고, 기억해 내.”
“…이해를, 못 하겠어.”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지금껏 믿었던 것들이 단숨에 거짓이 되어 갔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어디서부터가 거짓말인 건데. 그렇다면, 빙의한 게 아니라면 왜 형은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한 건데.”
“…본인도 잘 모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
“그럼 형은, 형은 뭔데?”
“난 네 형이 아니라고. 한번 말하면 좀 알아들어라, 멍청아!”
“아니, 이상하잖아. 형이 둘일 리가 없잖아. 형이 분해된 것도 아닌데. 그럼 형은 누군데.”
“난… 일단 너랑은 연관이 없다고 보면 돼.”
“나한테 저 빙의한 형을 받아들이게 만들려고 그러는 거 아니고?”
“빙의고 소설이고, 저 자식도 아무것도 몰라서 지 멋대로 만들어 낸 말이라니까!”
“…….”
“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쟤한테 이것만 물어보면 알 수 있을걸.”
“…뭘.”
“전생의 기억.”
“…….”
“처음부터 빙의했다고만 했지, 전생이나 소설 바깥의 본인에 대한 얘기는 안 했잖아.”
“그건… 내가 안 물어봐서…….”
“본인도 모르니까 그냥 말을 안 꺼낸 거야. 그렇겠지. 전생이건 빙의건 전부 거짓이니까.”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혀져 갔다. 동시에, 혼란이 솟아올라 정신을 덮쳤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좀 믿어라. 널 설득시키려고 겨우 데려왔는데. 꼭 내가 움직여야 기억하겠어?”
“아까부터 뭘 자꾸 기억하라는―”
성큼. 형이 단숨에 내게 다가와, 이마를 검지로 꾹 눌렀다. 그와 동시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붉은 하늘 아래, 쓰러진 형. 그리고.
「지언아. 여긴, 소설 속이야.」
형이 죽기 직전에 했던 말.
“이게 무슨……. 왜… 이걸 내가. 왜…….”
어째서 이걸, 잊어버렸던 거지? 이변의 시작이 이번 회차의 18살 때가 아니라, 이전 회차의 끝 무렵이라는 것을?
아니, 그 전에. 형은 이전 회차에서도 소설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어느 때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처럼 처음은 아니었을 터. 만약 처음부터 형이 소설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행동했거나, 무언가 알고 있듯이 행동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형은 그러지 않았다. 그럼 형의 소설에 대한 기억은 그냥 예지 능력과 비슷하다는 건가? 그렇게 되면…….
형이 소설에 빙의한 게 거짓이 된다. 내가 형으로부터 직접 듣고, 믿었던 것이,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이.
도대체 뭐가 진실인 건가. 내가 뭣도 모르고, 그 말만 철떡 믿어서 형을 미워한 것? 혐오한 것? 증오한 것?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데. 왜, 나는…….”
“왜 네가 그걸 잊고 있었는지는 나도 몰라. …뭐가 됐든, 지금이 가장 최고의 흐름이라 보면 돼.”
“어?”
“너, 끝을 볼 수 있다고.”
“…끝을?”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
그건, 이 세상의 평화를, 모두가 사는 것을 뜻했다. 붉은 하늘과 불타는 도시 같은 게 아닌, 익숙한 푸른 하늘과 화려한 도시를.
“…형이 누구인지 물어봐도, 말 안 해 줄 거지?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있는지도.”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라.”
“그래.”
“이제야 차분해졌네.”
“아니. 혼란스러워, 엄청.”
“그렇겠지. 그런데 그런 와중에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하자.”
“뭔 부탁?”
형이 몸을 숙여 바닥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안개가 걷히며, 바닥에 무언가 투영되었다. 형이 뭔가가 투영되는 바닥을 보며 일어나 말했다.
“네 형 좀 구해라.”
“…구하라니?”
“뭐… 이래저래. 보는 게 빨라.”
화악! 바닥에 무언가가 가까이 비쳤다. 그곳에는, 형이 있었다. 석상 앞에 서 있는 형이.
“저 석상, 소원을 이뤄 주는 석상이야. 단점은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는 거지만.”
“…소원? 뭐든?”
“아니. 사람의 가치는 석상이 낮게 측정해. 끽해야 힘이 좀 강해지는 정도의 소원밖에 못 들어주지.”
“그런데 형은 왜… 겨우 그런 소원을 빌려고 본인을 희생하는 건데?”
“왜겠냐! 저 자식도 아는 게 제대로 없으니까 그렇지!”
형의 화난 목소리에 나는 퍼뜩 몸을 떨었다.
“그래서… 형을 희생 못 하게 막으면 되는 거야?”
“뭐, 그것도 있는데… 내가 네 생각을 고쳐 준 것처럼, 네가 네 형의 생각도 좀 고쳐 줘. 본인이 빙의했다고 단단히 착각하고 계시니까.”
툭. 형이 머리카락 한 올을 바닥에 떨구었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책임져야 한다.] [내가 들어와서 망친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망쳐 버린 것을. 세상을. 동생을.] [뒤바꾸어 버린 것을.] [더 망치지 않게. 여기서, 끊어 내야 해.]“뭔지 알겠어?”
“…….”
“저 생각을 좀 뜯어고치고, 둘이 사이좋게 손잡고 세상이나 구하라고.”
딱. 형이 왼쪽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그러자 내 몸이 안개처럼 흩어져 갔다. 갑작스레 헤어지게 돼 조금 당황했으나, 오히려 그런 행동에서 익숙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젠 그가 형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형.”
“뭐.”
“잘 지내.”
“난 늘 잘 지냈어.”
무엇이 진짜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느껴졌다. 진실이 코앞이라는 것이. 눈앞의 형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 아쉽네. 이젠 형의 그런 성격을 못 보니까.”
“네 형 아니라고.”
“그래. 아니지. 이젠 형이 철들었다고 생각해야겠네.”
새롭게 생긴 믿음이 진실이라면 말이다.
♧♣♧
눈이 떠졌다. 눈앞에서는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형, 괜찮아요?”
“한지언 헌터.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겁니까?”
나는 곧장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신전은 저 멀리 있었다. 형이 쓰러진 나를 데리고 다시 사람들에게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도 형은 보이지 않았다.
“한지언 헌터?”
“…형한테 가야 해요.”
“한지운 헌터 말입니까? 수색하러 가셨는데 갑자기 왜…….”
“그 멍청한 자식이 뭣도 모르고 희생하려 한다고요.”
“…희생이라뇨?”
가만히 있던 지화연 씨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설명할 시간도 없어요. 신전으로 가야 해요.”
“신전이라면…….”
“네. 저 건물이요. 급해요.”
“…형, 많이 급한 거죠?”
“어.”
유주한이 내 대답에 잠시 고민하다, 이내 모습을 변형시켰다. 거대한 늑대가 숲의 나무를 파괴하며 커져 나갔다.
이내, 유주한이 거친 짐승의 소리를 내며 타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나는 그 위에 올라타는 시간도 아까워 유주한의 털을 붙잡고 출발하라는 눈짓을 했다. 유주한이 그런 나를 잠시 쳐다보다 곧장 뛰었다. 몇십 초밖에 안 지났음에도 금세 신전 앞에 도달했다.
“주한아! 부숴!”
주한이가 짐승 소리를 내며 신전을 앞발로 쳤다. 그러나 신전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 광경에 내가 곧장 문을 잡았지만, 문 역시 꼼짝하지 않았다. 미친 듯이 낫으로 벽을 쳐도, 능력을 써도.
“…….”
“한지언 헌터!”
사람들이 뛰어왔다.
“안 열리는 겁니까?”
고개를 까딱이자 다른 사람들이 신전을 살폈다. 창문을 부수려고도 했다. 소용없었다.
“…….”
나는 신전을 멍하니 바라봤다.
책임. 그래. 책임이라 했다. 본인이 들어와 뒤바뀐 것에 대한 책임. 본인의 동생인, 나를 뒤바꾼 책임.
“허.”
누가 누굴?
난 나 스스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곳이 소설이 아닌 이상, 형은 주인공도 아니었다. 형이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러니 아마 세상이 바뀐 건 이변, 또는 기적에 불과하리라.
‘그리고 책임져야 할 건 나야.’
그렇게 오랫동안 회귀를 했으면서도 멸망을 막지 못한 내가, 책임져야 했다. 회귀에 대한 기억을 가진 내가 책임져야 했다. 이 기억이 없었다면 형은 내게 그저 형일 것이었고, 싸울 일도 다툴 일도 없었을 테니까.
책임져야 할 건 누구인가.
‘나.’
그래. 나다.
‘근데 형이 왜 멋대로 책임지려 해.’
퉁. 투둥. 손아귀에서 별들이 멋대로 흘러내렸다. 사방에 별들이 생겨났다.
사람 한 명이 바뀐다고, 결말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게 내가 반복한 이유였다. 나 하나 잘하면 모든 게 바뀌리라 생각한 그런 오만이, 나를 반복 속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겨우 그런 정보 하나 띡 가진 놈이 책임지고 전부를 바꿔? 웃기고 있네.
‘책임 같은, 소리 하고 있어.’
♧♣♧
한지운은 고요한 신전 가운데에 서서 석상을 바라봤다. 아까와 다른 점은, 손을 위로 뻗은 석상 대신 아래로 뻗은 석상이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상태로 그의 눈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한지운을 기다린 듯이.
“전부 내 잘못이니까… 내가 해야만 한다.”
촤악! 검으로 팔을 길게 긋자, 강혈이 바깥으로 흘러내렸다. 한지운은 성큼, 성배를 향해 다가가 그대로 본인의 피를 성배에 담았다. 단숨에 채워진 성배는 이윽고 빛나더니 툭, 쓰러져 한지운의 피를 바닥에 쏟아 냈다.
쏟아진 피가 비이상적으로 움직이며 바닥에 진을 그려 냈다. 그 가운데에 선 한지운을, 고통이 갉작이기 시작했다.
“…….”
한지운은 눈을 질끈 감아 고통을 참아 냈다. 점점 그를 조여 오는 고통을, 단말마의 비명을.
“이거면 된 거야. 이거면.”
책임.
그건 한지운의 몸과 마음을 장악하고 조종하는 단어였다. 오로지 책임만으로, 책임 때문에 한지운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견뎌 왔고, 참았다. 그것이 응당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굳게 믿고. 그것을 진실이라 판단하고.
“나 때문에, 지언이마저 그리됐으니까.”
한지운은 갑작스레 쓰러진 제 동생을 생각했다. 본인이 아니었다면, 빙의한 자신이 아니었다면, 소설의 기억이 있는 자신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으리라.
고통이 한지운의 몸을 잠식해 왔다. 한지운은 숨을 헐떡이다가 입술을 짓이겨 고통을 참았다. 본인이 겪어야 할 고통, 책임에 대한 정당한 고통이라 생각하고 굳게 참아 냈다.
그렇게, 목까지 고통이 차오르던 그 순간.
콰장창!
한지운의 머리 위로, 유리 조각이 흩날렸다. 옅은 빛에 유리 조각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그리고 그런 반짝임 사이로.
“무슨―”
“한지운, 이, 개새끼야!”
한지언이, 부서지지 않았던 창문을 산산이 부서뜨리며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