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내가 모르는 이야기】
“지언, 아?”
형이 힘겹게 내 이름을 불렀다. 대충 봐도 꼴이 엉망이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나는 형의 얼굴에 주먹을 한 대 날렸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일어서 석상으로 다가갔다. 성배는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잠깐 보다가, 곧장 낫을 들어 석상을 부서뜨렸다.
쾅! 쾅!
힘차게 내려치니 평범한 돌로 이루어진 석상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뭐 하는 거야!”
석상이 부서지자 바닥에 펼쳐졌던 소름 돋는 진은 바닥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언제 시름시름 앓았냐는 듯, 형이 화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 하냐니. 헛짓거리하는 거 막는데.”
“헛짓거리라니! 이건―”
“헛짓거리 맞아. 형이 무엇을 소원으로 빌었건, 그 이하로 소원이 이루어지고 말 테니까.”
“…어떻게…….”
“형.”
나는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본인을 가짜라 칭하던 형이 형에게 물어보라던 질문.
“전생의 기억, 가지고 있어?”
“…전생이라니?”
“빙의 전의 형에 대한 거. 소설 내용 빼고.”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한데?”
“말하면 알려 줄게.”
“…….”
형이 조용히 입을 닫았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저 모습을 봤다면, 아마 또 뭔가를 숨기려는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없으니까 말 못 하지?”
“…어떻게…….”
“맞나 보네.”
형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하.”
“지언아?”
나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빙의 전에 대한 기억이 없고 소설에 대한 기억만 있다는 건, 그 형이 말한 게 맞는다는 거네. 아니, 애초에 빙의 전의 기억이 없는데 그걸 보통 빙의라 하나? 그리고 겔탄이 영혼은 그릇과 능력이라 했어. 능력이 같다는 건 영혼이 같다는 거고, 그럼 그냥 형이잖아. 무엇보다 이전 회차에서 죽기 전에 소설을 언급했음에도 형에게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형의 몸에 들어가 빙의했던 거라면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멍청하게 난 왜 이걸 놓치고 있었지? 아니다. 빙의라는 말에 원래의 형이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해 더 묻지도 않은 내 죄지.
인정해야 한다. 이게 진실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한지운, 내 형이었다. 처음부터 바뀐 것 없이, 그저 성격이 좀 변한.
“이런 멍청한…….”
“뭐?”
“형한테 한 말 아냐.”
나는 다시 한번 더 한숨을 내뱉으며 얼굴을 가린 손을 치웠다.
의문들이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하다 이윽고 완벽하게 사라지니 그동안 형을 미워했던 감정도 덩달아 쓸려 갔다. 형을 미워했었을 적의 기억을 떠올리니, 형에게 했던 매몰찬 말들을 떠올리니 땅이라도 부숴 버리고 싶었다.
근데 한지운 이 멍청한 자식은, 빙의 전의 기억도 없으면서 왜 빙의했다고 한 거야. 아니, 애초에 왜 빙의했다고 생각한 거지? 겨우 소설이라는 기억이 있어서? 아니, 근데 그것도 순 엉터리잖아. 나랑 똑같이 아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뭘 기억하고 있는 거야.
“야.”
“뭐?”
“뭐.”
“…왜.”
“빙의한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형 빙의한 거 아니라고.”
“어?”
나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는 형 앞에 앉았다. 그러곤 차근히 설명했다.
“형. 빙의 전에 대한 기억이 소설 말곤 없지?”
내 물음에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빙의 전에 읽은 소설의 기억이 아니야, 그거. 태어나면서 갖게 된 정보지.”
“…아니야.”
“뭐가 아닌데.”
“…책을 읽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어.”
그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반응에 형이 눈을 아래로 깔며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내겐 빙의 전에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아.”
“그럼―”
“하지만, 책을 읽었다는 건 분명히 기억해. 생전 처음 보는 손으로, 책을 한 장 한 장 넘겼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A의 말과 B의 말 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이어야 어느 한쪽의 말이 맞는다. 무엇보다, 이전 회차를 떠올리면 형이 빙의했다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돼. 죽기 전에 그런 말을 남겼으니까. 그렇다면 무언가 오류가 있다는 건데.’
그러다 번뜩 든 생각에, 나는 형에게 물었다.
“그 기억이 거짓일 가능성은?”
“어?”
“아니면, 형이 빙의했다는 추측이 잘못된 거라면?”
“잘못됐다면, 책을 읽은 이 기억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건데. 빙의 말곤 없잖아.”
“빙의가 아니라…….”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가, 다시 내뱉었다.
“회귀라면?”
“…회귀?”
“그러니까, 생전 처음 보는 손이었던 이유가 형의 먼 미래의 몸이어서 그런 거라면? 뭐, 형이 경험을 토대로 출간한 책을 읽어서였다던가.”
“…….”
“그렇다면 회귀라는 가정도 어느 정도 타당하지. 그러나 형은 과거로 돌아오는 대신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거고.”
“…하지만―”
“야, 이 멍청아.”
사실 이렇게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책을 읽은 기억이 있건 없건 빙의했다고 할 만한 이전의 삶의 성격이나 기억이 없으니까. 본인이 착각하고 있을 뿐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 아닌 한지운으로서의 기억을 차근히 쌓아 온 형이었다. 그리고.
“잘 들어. 이 세상에서 영혼은 그릇과 능력을 뜻해. 그런데 봐. 형은 소설에서의 형과 능력이 달라?”
“…아니.”
“그래. 아니잖아. 그럼 그게 무슨 뜻이겠어.”
형은, 형이란 뜻이었다.
“…넌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이야기의 출처보단, 지금은 형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봐. 본인이 누군지. 아니다. 그냥 내가 말해 줄게.”
이전에, 처음부터 빙의했다는 형을 억지로 형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빙의도 뭣도 아니었다. 형은 그냥, 미래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된 것뿐이었다. 그로 인해 철이 좀 빨리 든 경우. 그거뿐이었다.
“형은 형이야. 처음부터, 형이었어.”
다만 여전히 드는 의문은, 이전 회차의 형에게 어떻게 소설이란 기억이 있냐는 거였다. 그리고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만약을 따지고 들어 어쩌면 더 이전에도 기억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전 회차의 형에게 물을 수도 없는 일. 여러모로 그냥 묻어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형은 모종의 이유로 소설에 대한 기억을 얻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이번까지 이어졌다. 지금으로선 이게 맞는다. 시작의 근원이 무엇인지까지 따지면 끝도 없었다.
“알아들었어?”
“…….”
“한지운. 형은 소설의 기억으로 인해 성격이 좀 바뀐 한지운이야.”
“너 왜 자꾸 날 이름으로 불러?”
“그래. 한지운이 형 이름이야.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린 게 아니라고.”
감동도 없다. 지금 당장 느껴지는 감정은 빡침과 어이없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까지 꼬이는 거냐. 그간 형을 미워했던 감정과 증오했던 감정에 배신감이 다 느껴졌다. 하필 그 감정들이 먼저 올라와서.
‘…왜 형이 전 회차에 소설 속이라고 말했었던 기억이 없어졌지. 그 기억만 있었다면 적어도, 형이 빙의했다는 말을 의심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어찌 됐건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나가자. 일단은 지금 탑이라는 걸 인지해.”
“그러니까, 내가 석상에 소원을 빌었으면―”
“소용없어. 형의 가치가 너무 적어서 소원도 작게 빌어져.”
“…….”
“내가 형보다 저 석상에 대해 잘 알아.”
“도대체 너…….”
“나중에. 대화하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 움직여야 해.”
나는 내가 깨뜨린 창문을 흘끗 바라봤다. 바깥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신전에 들어왔다는 것은 진즉 알았을 텐데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 결계로 막혀 있거나 해서 못 들어오는 것일 가능성이 컸다. 나만 그것을 뚫고 들어온 것일 터.
형이 엉거주춤 일어나, 내 말대로 움직여 문으로 향했다. 문은 바깥에서 열려고 할 때와 달리 손쉽게 열렸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신전은 우리가 다음으로 가야 할 곳이 아니라는 건데. 그러면 어디로 가야―’
툭. 걸으려던 다리가 멈췄다. 곧이어 팔을 붙잡히고, 온몸이 무언가에 뒤엉켰다.
“…….”
나는 고개를 겨우 내려 몸 상태를 확인했다. 검은 손. 시커멓게 검은 손이 내 몸에 뒤덮여 있었다.
‘또…라기에는 이 기척은…….’
뒤쪽에 무엇이 있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지독하게 검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나를 끌어당겼다.
강한 힘이 단숨에 신전을 가득 메워, 형이 눈치를 채고 뒤를 돌아봤다. 두 눈을 크게 뜬 형이,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다 말고 나에게 곧장 다가왔다.
“…….”
오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검은 손이 목을 뒤틀듯이 붙잡아 말을 내뱉기 힘들었다.
형이 기어코 내 팔을 붙잡았다. 그러곤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나 검은 손은 계속 나를 어디론가 끌어당기며 놓지 않으려 했다.
꽈드득. 검은 손이 방해하는 형을 공격했다. 형이 금세 상처를 입는 게 눈에 보였다. 형의 뒤로 사람들이 곧장 다가오려 했다. 안 된다. 오면 피해만 커진다.
나는 팔을 겨우 움직여, 내 팔을 붙잡은 형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형이 내 얼굴을 보았을 때 중얼거렸다.
놔.
끝내 말은 나오지 않았으나, 형은 뜻을 이해하고 손을 놓았다. 방해하던 형이 없어져 나는 손쉽게, 어디론가 그대로 끌려들어 갔다.
♧♣♧
쿠당탕!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나왔다. 제멋대로 몸을 던진 손들에 의해 나는 어느 붉은 융단 위에 내동댕이쳐졌다.
‘여긴 또 어디야.’
그러고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오래간만이군.
꽈득.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이었다. 목소리를 들은 것뿐임에도 이길 수 없다, 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는 덜덜 떨리는 고개를 억지로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새하얗게 내려온 머리칼. 조각한 것 같은 완벽한 얼굴의 새하얀 속눈썹과 호박빛 눈. 그리고 머리 양옆에 달린 거대한 뿔. 창작물에서 흔히 볼 법한 악마 같은 모습이었다.
외형은 어찌 됐건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절로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만 같은 위압감이었다. 아무런 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나는 절로 차오르는 숨을 겨우 억눌러 물었다.
“…네가 왕인가?”
―그래.
왕.
지금까지 내게 붉은 하늘을 선사한 주범. 그것이, 내 앞에 있었다.
‘…근데 오래간만이라니.’
왕은 내가 회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간만이라는 말을 가능케 할 수는 없었다. 그야, 나는 왕을 만난 적이 없으니까.
나는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모습을 보던 왕이 말했다.
―이상하군. 왜 이리 약해졌지?
그 말에는 무어라 답해 줄 수 없었다. 당최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약해졌다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나는 애초에 약했는데. 아니, 저자가 말하는 게 내가 맞나?
―내게, 왕이냐 물었었지.
왕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얀 속눈썹과 눈꺼풀에 덮여 사라지는 호박빛 눈이 아쉽다고 느껴졌다. 그러다 다시 왕의 눈이 떠져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땐… 몸이, 경직됐다. 움직이면 바로 죽으리라. 내 직감이 그리 외치고 있었다.
―어쩐지 이상했다. 모든 것이.
왕이 천천히 말을 읊조릴 때마다, 내 숨을 조종하는 것만 같았다.
―이제야 알겠군. 이제야.
왕은 말을 더하지 않고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그러다 입꼬리를 올리고, 바람에 천 자락 휘듯 눈을 휘어 웃었다.
―기억을 잃어서 그런 거였군.
…내가? 네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