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눈을 떴을 때 나는 집처럼 익숙한 공간에 있었다. 숨을 옅게 내쉬며, 나는 텅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죽었네.”
검은빛의 밤하늘에 수를 셀 수 있을 정도의 적은 별이 수처럼 놓여 있었다. 그 밑으론 휑한 공간이 펼쳐지고, 더 아래 바닥에서는 잔잔한 물 바닥이 밤하늘을 반사하여 비추고 있었다.
이곳은, 내가 형보다 먼저 죽으면 오는 곳이었다.
“다음엔 어쩌지.”
다음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는 계속 이렇게 당할 거다. 압도적인 존재에게 계속.
“…하.”
나는 마른세수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손을 내리고, 바닥을 발로 두드렸다.
“뭐야. 왜 안 보여 줘.”
이곳으로 오면 쉴 틈 없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그런데 이상했다. 왜 지금까지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는 거지? 원래는 들어오자마자 보여 줬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불현듯 떠오른 기억을 곱씹었다. 왕에게 죽고 나서, 눈을 떴을 때 보았던 그 하얀 천.
‘그건, 뭐였지?’
그건,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몸에 통증도 안 느껴졌고.’
…아예 통증을 못 느낄 정도로 으깨진 건가?
‘아니, 어쨌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확실한데.’
그걸 확인하려면 이 공간이 상황을 보여 주어야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안 보여 주냐고.
“야. 일해. 일하라고. 야.”
소통이 될 리가 없었으나 습관처럼 말하며 바닥을 두드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묵묵부답. 내가 침묵하자, 공간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엉?”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올려, 하늘에 뜬 별의 수를 셌다.
“뭔가 많아진 거 같은데.”
대여섯 개 추가된 것 같은 별에 의문을 품기도 잠시, 어느 별 하나가 다른 별보다 몇 배는 밝은 빛을 내뱉었다. 나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별을 빤히 보았다.
‘아니, 밝아지는 게 아니라 뭔가…….’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툭.
점차 밝은 빛을 내리라 생각하였던 별이, 내 앞으로 사뿐히 내려왔다.
“…하얀 천.”
내가 별이라 생각하였던 것은, 별이 아니었다. 새하얀 빛을 띠는 하얀 천이었다.
나는 주춤 뒤로 물러나며 눈앞에 있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나 더 볼 것도 없었다. 하얀 천과 대비되는 새까만 몸밖에 없었으니.
“넌… 누구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억이 맞는다면, 왕의 앞에 나타나 나에게 자라고 한 그것이 맞는다면 대답할 수 있으리라.
“누구냐고―”
스윽. 검은 팔이 들어 올려지더니, 검지와 중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접은 채 내게 보여 주었다. 그러다 중지를 접어 검지만을 치켜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가만히 지켜볼 무렵.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한 번.”
“뭐? 무슨 뜻이야, 그게…….”
팔을 내리며, 그것은 또다시 침묵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저 꿈 같은 존재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놓칠 수 없었고, 계속해서 질문했다. 몇 번을.
그러나 끝내 돌아온 것은 내 질문과는 상관없는 답변이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의 목소리가 뒤섞인 것 같은 기이하면서도 신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하얀 탑에서 만나.”
“하얀 탑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첨벙!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던 바닥에 몸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하얀 천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그리고 소리쳤다.
“도대체, 넌 누구야!”
“이야기의 끝이 보여.”
“이야기의 끝이라니… 무슨 소리를……. 너, 누구야.”
“…….”
회귀를 아는 존재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이 존재는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혹시―
아까와 달리 짧은 침묵. 곧이어, 하얀 천이 내게 말했다.
“글쎄. 작가라고 해 두자.”
“…뭐?”
첨벙! 나는 누군가 발을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 아래로 빨려들어 갔다. 깊이, 깊이 빠져들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 나는 잠에 들듯 의식을 잃었다.
♧♣♧
눈이 번뜩 떠졌다. 곧이어 으깨졌던 몸이 떠올라 나는 눕혀져 있던 몸을 일으켜 몸을 더듬었다. 멀쩡했다. 생채기 하나 없이.
황당한 상황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 장소로 갔다는 것은 확실히 죽었었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이곳은 다음 회차인가.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다음 회차였다면 적어도 졸업식이어야 했을 터. 난 되살아난 거였다.
‘작가…….’
그 존재는 본인을 작가라 했다.
그러나 안개 속에서 만난 형은 이곳은 소설 속이 아니라 했다. 그럼 작가는 어째서 존재하는가. 애초에, 무엇의 작가이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유아한 씨가 나를 바라보며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유아한 씨?”
“일어나셨네요.”
유아한 씨는 흰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여기가 병원이라는 뜻인데.
“탑은, 탑은 어떻게 됐어요?”
“다 끝났어요. 한 시간 전에.”
“네?”
“음. 어디서부터 설명해 드려야 하나. 일단, 저희는 한지언 씨가 사라진 후에 몬스터들이 끝없이 몰려와 지쳐 죽기 직전이었어요. 그러다 무언가의 도움을 받아, 한지언 씨가 있던 곳까지 갈 수 있었죠.”
“…무언가라뇨? 혹시…….”
“한지언 씨도 알고 계시나 봐요? 한지언 씨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얀 천을 뒤집어쓴 검은 사람의 형태였어요.”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유아한 씨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희가 한지언 씨가 있던 곳으로 갔을 땐,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네?”
“저희가 본 건 왕좌에 앉아 있는 한지언 씨뿐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우선적으로 내린 결론은 ‘한지언 씨가 왕을 죽였다’는 거였고요. 그 후 탑이 무너지고, 쓰러진 한지언 씨는 병원에 입원하셨고요, 다른 사람들은 상황을 정리하러 각자 흩어졌죠.”
“…….”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무엇인가요.”
“저희의 입장에서는 한지언 씨가 왕을 처리했다고 생각돼서 그리 발표할 예정이었어요. 뭐, 이건 예정이고. 확인을 위해 묻겠는데, 여기서 틀린 부분 있어요?”
“…제가 죽인 게 아니에요.”
“다 틀렸네요. 그러면요?”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 왕과 만나고, 죽고, 다시 살아나 봤을 땐 하얀 천이 나타나 왕과 대적 중이었어요. 그 후로 전 다시 기절했고.”
“…죽었다뇨?”
“말 그대로예요. 전 죽었었어요.”
“그런 흔적은 없는데요?”
“그래서 저도 의아해요.”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그 하얀 천이 살려 준 거 아닐까요?”
“아뇨. 확실히 심장이 멎었었어요.”
“…음. 그래요? 신기하네요. 우선 얘기는 잘 들었으니 그대로 전달할게요.”
“전달이요?”
“원래는 한지언 씨가 깨면 우르르 몰려 들어오고 싶어 했거든요. 근데 환자의 안정을 위해 제가 대표로 듣고 전달하기로 했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으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바깥은 어떻게 됐나요.”
검은 탑이 사라졌으니, 아마 쏟아져 나왔던 몬스터는 사라졌을 테다. 그리고 유아한 씨의 대답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검은 탑이 생겨 나타났던 몬스터들은 전부 사라졌어요. 깔끔하게. 사체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죠. 또…….”
“무슨 일이 있었나요?”
“…….”
유아한 씨가 뜸을 들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게이트도 사라졌어요. 전부.”
“…게이트가요?”
“네. 온갖 곳을 다 뒤져 봐도, 던전이고 게이트고 몬스터고, 그 무엇 하나 남지 않고 사라졌어요.”
“…….”
“그래서 다른 분들이 많이 바쁘시죠. 저야 본업이 의사지만, 다른 분들은 이제 길드를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하니까요. 당분간이야 길드가 이어지겠지만, 더 이상 게이트도, 던전도 없으니 사업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옮겨야 할 거예요.”
사라졌다. 내가 그렇게 없애고 싶어 했던 것들이 전부. 단 한 순간에, 이리 허무하게.
‘내 손으로 끝낸 것도 아닌데.’
게이트가 사라진 것은, 멸망의 원인이 사라진 것은 분명 기쁠 일이다. 기쁠 일인데.
‘왜 기쁘지 않지.’
그러나 이유는,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 순간만을 위해 살아온 나였기에. 긴 회귀를 멸망을 막기 위해만 이용해 왔기에. 그래서였다. 더 이상 멸망을 막지 않아도 됐기에.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기에.
그렇다면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때문이었다.
내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자, 유아한 씨가 말했다.
“…한 가지 더 따로 말씀드릴 게 있어요.”
“네?”
“…….”
유아한 씨가 답지 않게 뜸을 들였다. 무슨 일이기에 저러는 것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유아한 씨가 말했다.
“윤시아 헌터가 사라졌어요.”
“…네?”
“마지막 목격자이신 강희민 헌터의 말에 따르면, 탑이 없어지며 윤시아 헌터가 사라졌다고 해요.”
“…….”
“그럼 저는 전달할 말 다 해 드렸으니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편히 쉬세요.”
할 말을 끝낸 유아한 씨가 병실을 나갔다.
‘희민이 괜찮으려나.’
윤시아가 사라진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검은 탑이 사라지면 몬스터도 사라진다. 그건, 윤시아도 마찬가지겠지. 어쩌면 윤시아는 본인의 미래를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어땠는지는 오직 윤시아만이 알고 있었겠지만. 나로선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최후 목격자가 희민이라서 더 걱정되네.’
사라지는 걸 두 눈으로 봤다는 것이니까.
‘…누가 누굴 걱정하냐.’
하지만 그보다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는 나의 미래나 걱정해야 했다.
긴 시간 동안 바라 왔던 일이지만, 막상 다가오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다지 기쁜 마음도 없었다. 한 발자국씩 평화에 다가가던 내게 불쑥 먼저 찾아온 평화인지라. 어찌 됐건 멸망이 엔딩이 아니니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만.
‘왜… 이렇게 찝찝한 거지.’
허무해서? 아니. 그냥 찝찝했다.
‘…뭘 해야 하지.’
내겐 취미도 없었다. 좋아하는 것도 특별히 없었다. 불쑥 찾아온 평화를, 어찌 보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돌려 창문 바깥을 바라봤다. 바깥에선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 아래로 시선을 내려뜨리자 무너진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현실임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회귀를 하며 살아온 나는 헌터로서의 한지언이었으나, 이제는 게이트도 던전도 없었다. 헌터라는 직업은 없어지리라. 그렇기에 아마 나는 앞으로 헌터로서의 내가 아닌, 그냥 한지언으로서의 인생을 영위하여야 한다.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