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던전이 사라진 이래, 한 달이 지났다. 목숨을 위협하던 것이 모두 사라져 앞으로 평화로우리라 생각됐던 세상은 마냥 평화롭진 못했다. 평화로운 세상에, 이물질이 존재했으니.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달이 꼭 일 년처럼 흘러 허송세월한 것만 같았다. 하루가 이리 길었구나, 느끼게 되는 나날들이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소용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속 공허함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할 수 있는 건 많았으나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온몸을 지배당한 채, 그렇게 하루를 허투루 보내곤 했다.
나는 오래간만에 나온 시내를 거닐었다. 그러던 중 어울리지 않는 소음에 고개를 돌리니 웬 문양 발현자가 날뛰고 있었다.
‘…잘 쳐줘도 C급 같은데.’
주변에 특별히 문양 발현자가 없어, 애꿎은 일반인이 말리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성큼, 현장에 다가갔다. 나를 알아본 사람이 무언가 말하는 듯하였으나 가볍게 흘려들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날뛰는 문양 발현자를 살폈다. 내 기척에 문양 발현자가 쓰던 능력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명백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아까보다 더욱 큰 분노에 휩싸여 소리쳤다.
“난, 더, 더 잃을 것도 없어!”
그러며 그는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내게 달려든 몸을 피해, 뒤에서 팔을 붙잡아 꺾어 그대로 제압했다. 쿵! 바닥에 쓰러진 남성이 묶인 팔을 풀어내려 바둥거렸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히 남성을 제압했다.
“…괴물 새끼.”
누가 누굴 보고 괴물이라는 건지. 지금 일반인들 눈에는 제가 괴물 같을 텐데.
“너는, 너는 상급 던전을 제집 마당처럼 드나들었으니까 모르겠지! 나 같은 하급 헌터들은 하급 던전을 아무리 돌아도 아르바이트를 뛰어서 돈을 버는 거랑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
평화로워진 세상의 이물질. 그건, 문양 발현자들이었다.
던전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리라 생각하였으나 문양은 여전히 존재했고, 문양 발현자들의 능력도 건재했다.
…지나치게 건재했다. 헌터가 필요 없는 세상에서.
그때 저 멀리서부터 익숙한 얼굴이 점차 가까워졌다.
“한지언 헌터!”
“아, 박우윤 헌터.”
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내가 제압하고 있던 문양 발현자를 검거했다.
“오래간만이에요.”
“그러게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럭저럭 잘 지냈죠. 박우윤 헌터는요?”
“…잘 지냈다고 하고 싶은데, 사실 꽤 힘들었어요. 날뛰는 문양 발현자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거든요.”
“힘드시겠네요.”
“그래도… 제 일이니까요! 그리고 승진도 했거든요!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어요!”
박우윤이 씩씩하게 웃으며 헌터가 잘 검거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다 중얼거리듯 내게 말했다.
“그 법안이 안 생겼다면, 이렇게 분노하는 사람이 적었겠죠?”
박우윤이 말하는 법안. 그건, 일반인과 문양 발현자의 채용에 대한 것이었다.
던전이 사라지자 길드들 역시 점차 사라졌고, 문양 발현자들은 대부분 실직했다. 그리고 직장을 잃은 문양 발현자들이 가장 빛을 볼 수 있는 분야는 힘을 쓰는 영역의 일들이었다. 그걸 아는 고용주들 역시 문양 발현자들을 위주로 고용을 했다.
그렇게 채용이 이어질수록 일반인이 일할 자리는 자연히 줄어들어 갔다. 그러자 문양 발현자의 채용 비율을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재빠른 속도로 통과되었다. 물론…….
“법안이 안 생겼어도 줄어들진 않았을 거 같네요. 문양 발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졌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라.”
“그렇죠…….”
특히 하급 문양 발현자들의 문제가 컸다. 고용주는 실력이 떨어지는 쪽보다 뛰어난 쪽을 원했으니까.
가뜩이나 던전을 돌아도 큰돈이 모이지 않던 하급 문양 발현자들로서는 아예 갈 길을 잃은 셈이었다. 물론 다른 길도 꽤 있었으나, 던전을 한 번 돌면 모이는 돈의 맛을 이미 아는 문양 발현자들이 다른 길을 고를 가능성은 적었다.
어두워진 분위기에 박우윤이 화제를 전환하려는지 내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순찰하는 일은 없으실 텐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왔어요.”
“헉. 그럼 제가 붙잡아 둔 거였네요! 어서 가 보세요!”
“예? 아니, 그렇게 붙잡아 두신 건 아닌데.”
“아녜요! 어서 가 보세요!”
“예, 그럼… 다음에 또 봬요.”
박우윤이 밝은 웃음을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나 역시 웃음으로 응수하고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웃음을 그쳤다.
한참을 걸어, 나는 어느 카페 앞에 도착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창 안쪽으로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익숙한 얼굴의 주인 역시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미간을 작게 찌푸리다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음료를 주문한 후, 익숙한 얼굴이 앉은 자리 건너편에 앉아 말했다.
“왜 부른 건데.”
“일하다가 심심해서.”
“…….”
그러며 그는 제 노트북을 신명 나게 두드렸다.
커피색 머리칼에 동그란 안경을 쓴 남성은, 고등학교 때부터 연을 이어 온 공화준이었다.
“그래도 시선을 신경 쓰는 너를 위해 가림막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잖아! 이 얼마나 배려 깊은 우애심이냐.”
“…우애심은 얼어 죽을. 그러면 창가 자리를 잡지 말았어야지.”
앉은 자리 바로 옆이 훤한 통창이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서… 용건이 뭐냐고.”
“친구 사이에 뭐 용건이 있어야만 부르냐!”
“너는 그렇지.”
“그렇지!”
“…뭔데.”
“별건 아니고, 죽었나 살았나 궁금해서 불렀는데?”
“…….”
“농담 아니고 진짜거든! 다른 S급 헌터는 다 목격담이 뉴스로 줄줄이 나오는데 너만 없어, 너만.”
“그럼 문자로 끝냈으면 됐잖아.”
“모르는 사람이 네 폰으로 네 행세를 할지 어떻게 아니.”
“…그럼 용건은 끝이니 가 봐도 되는 거지?”
“에헤이! 내 용건이 그걸로 끝일 것 같냐!”
“뭔데.”
“…진짜 이제 던전 안 나타나는 거냐?”
“뭔, 한 달이나 지났는데 그런 소리를 하고 있어.”
“아니, 그,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만약이라는 게.”
“없어.”
지잉.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진동 벨이 사납게 울렸다.
겨우 이걸 물어보려고 날 부른 것인가 싶어 그냥 집에 가야 하나 싶었으나, 설마 공화준의 용건이 이것뿐이진 않을 것 같아 우선 음료를 받아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공화준은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럼 문양은 왜 안 없어져?”
“난들 아냐.”
“좀 알아라! 검은 탑도 들어갔다 왔으면서!”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결과론 몰라, 결과론?!”
“아무튼, 몰라.”
“문양의 원천도?”
“어.”
사실 알고 있지만, 말해 봤자 좋을 거 없다. 몬스터가 몸에 깃든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걸 말했다간 평화로운 세상에 가뜩이나 이물질이 된 문양 발현자들에게 더욱 안 좋은 시선만 생길 것이었다.
“이런 놈이 S급 문양 발현자인 게 말이 안 된다, 말이…….”
“너 내가 뭐로 불리는지 알잖아.”
“AS? 그것도 옛말이지. 너 탑 올 클리어 했잖아. 그거 때문에 칭송하는 분위기더만.”
“그것도 싫은데.”
“하여간 더럽게 깐깐해요.”
“네가 S급 하든가.”
“그건 좀.”
“현실적인 놈.”
공화준은 던전이 생겨난 이래 헌터에 푹 빠진 인간이었다. 정작 본인은 헌터가 되는 걸 별로 원치 않았다만. 아무튼 나도 모르는 정보를 물어다 오기도 할 정도로 팬심이 대단했다. 아니, 거의 정보상에 가깝지, 이젠.
내가 멍하니 창가를 보며 음료를 마시자, 공화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 왜 이렇게 축 처져 있냐?”
“기분 탓이야.”
“어허.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해?”
“기분 탓이라고.”
“내 친히 고민을 들어 줄 테니 어서 말해라.”
“기분 탓이라니까.”
“어허!”
나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말하라니 말해야지.
“…너는 할 게 없으면 뭐 하냐?”
“인터넷.”
“아니, 그거 말고, 그 뭐냐… 목표.”
“목표가 없으면? 아, 너 실직해서 그렇구나!”
“…비슷하지.”
“근데 너 돈 많잖아.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뭔 그런 고민을 해? 돈이 너무 많아도 문제인가?”
“…….”
“음, 글쎄다. 현재 목표를 상실한 거면 과거에 달성 못 했던 목표를 이번에 이뤄 보는 건?”
과거 목표, 과거 목표라.
떠오른 생각에 나는 실소를 내뱉었다.
“그 목표를 이루기에는 이미 늦었으면?”
“늦은 게 어디 있냐. 뭐든 해 보는 거지. 안 해 보고 지레짐작으로 판단하는 건 겁쟁이나 하는 짓이란다.”
“아니, 그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길 자체가 막혀 버린 상태야.”
“너한테 그럴 만한 일이 있나?”
“묻지 마.”
“으음. 심오하구만.”
공화준이 노트북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팔짱을 끼며 침음을 내뱉었다. 그렇게 몇 분을 고민하는 것 같다가, 공화준은 무언가 번뜩 떠오른 듯 말했다.
“뭐 별수 있나. 존버가 답이지.”
“…그럼 그렇지.”
“이놈이. 예로부터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야.”
“글쎄.”
과거의 목표. 그건, 나의 회귀의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멸망이 지속되자 차라리 회귀를 멈추는 게 더 빠르리라 생각하고 온갖 심오한 생각을 해 보았으나, 결국은 멸망이 끝나는 게 더 빨랐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 다르긴 하지.’
작가, 그리고 소설. 이 두 존재가 내 회귀와 관련이 있을 테니까.
그러나 한쪽은 더 이상 모습을 안 보여, 한쪽은 사실인지 여부도 잘 모르겠어, 정확한 게 없으니 뭘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앞으로 한 번이라는 건 또 무슨 뜻인데.’
그래도 겨우 생각을 간추려 나온 게, 작가를 만날 수 있는 횟수가 아닐까 하는 것. 혹은 내 몸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횟수일지도 몰랐다.
‘어려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허무함이 더욱 몸을 갉아먹었다.
“…그래서였나?”
“엉?”
공화준이 내 혼잣말에 고개를 들었다.
“과거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그런 거였나 봐.”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힘내렴.”
내가 힘낸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또 만약이라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건가.’
만약, 나의 허무함을 메꿔 줄 기회가 찾아온다면. 만약, 운명이 내게 길을 인도해 준다면. 이번엔.
나는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았다. 휙! 누군가 빠르게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이 시선에 닿았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곧이어,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마시던 음료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조용히 바깥을 응시했다. 공화준도 소란스러움에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또 문양 발현자가 날뛰나?”
“…아니.”
“어? 그럼 뭐―”
휘익. 통창에 거대한 그림자가 빠르게 지며, 콰장창!
“우아악!”
유리가 산산이 조각나기도 전에 나는 공화준을 뒤로 던졌다. 그리고, 유리창을 깬 정체를 향해 팔을 뻗어 막아 냈다.
우두둑. 손가락을 굽히자 손에 잡힌 것이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공화준을 확인했다. 공화준은 언제 낚아챘는지 모를 노트북을 품에 안고 입을 뻐끔거렸다.
“잘 숨어 있어.”
“뭐야, 이게 무슨 일―”
휘릭. 부분 개방을 하며 낫이 손에 쥐어졌다. 손에 쥔 낫을 반대 손에 쥐어진 거대한 몬스터를 향해 휘두르자 단숨에 몬스터가 반으로 갈라져 땅을 뒹굴었다.
나는 몬스터를 밟고 깨진 창문 바깥으로 나갔다. 나가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은, 익숙하면 안 됐으나 지독하게 익숙했다. 몬스터가 날뛰는 도시. 꼭, 몬스터가 처음 생긴 세상과 같았다.
옅은 웃음이 서린 얼굴을 겨우 가라앉히며, 나는 몬스터를 향해 걸어갔다.
이번엔 나에게 기회를 준 운명에게, 만약에게, 반드시 보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