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서로가 모르던 이야기】
지화연 씨가 거세게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이번엔 제 몸을 던지듯 소파에 앉았다.
“나타날 거면 검은 탑이 사라진 이후에 그냥 바로 나타날 것이지, 굳이 한 달 후에 나타나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애초에 왕이 죽었는데. 그럼 왕이 죽어 검은 탑이 없어진 것도 다 거짓말인 거잖아요. 이건 저희를 그냥 농락한 거라고요.”
“지화연 헌터.”
“아니, 그렇잖아요? 저희 세상에 굳이 탑을 끌고 와서 온갖 협박을 하는 걸 겨우 죽였는데 이게 무슨 농간이냐고요. 만나면 죽여서 죽 쒀 버릴 잡것들―”
“지화연 헌터.”
“…….”
지화연 씨가 정신을 차린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제 머리를 꾹꾹 짓눌렀다.
“말이 너무 길었네요. 길드의 사업 방향성을 회의하고 온갖 기획안을 보았는데 그게 수포가 될 거라는 생각에 조금 화가 나서.”
그러자 류천화 씨가 답했다.
“그래도 아직 기획 단계이니 그나마 다행인 거 아닌가?”
“당신이랑 저는 달라요.”
“글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저 인간 꾐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이 고생은 안 하는 건데.”
지화연 씨의 중얼거림에 내가 물었다.
“꾐이라뇨?”
“…아녜요.”
더 묻지 말라는 듯한 모습이라서 나는 커지려는 궁금증을 저 멀리 치웠다.
거의 늘어진 듯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던 유아한 씨가 말했다.
“그럼 대화의 주제를 다시 돌려서, 던전이 왜 다시 나타났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왕이 안 죽었다는 게 가장 맞는 말인 것 같죠? 한지언 씨도 본인이 왕을 죽인 게 아니라 하셨으니까요. 그 하얀 천을 뒤집어썼던 존재가, 사실 왕과 짜고 치고서 저희를 살려 준 거죠.”
“짜고 쳐서 살려 준 거라고 하기엔, 우리를 살려 둘 이유가 없어.”
“음, 저희가 재밌었나 보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이야기에,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저 그거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왕이 살아난 게 아니라, 후계가 있었던 거 같아요.”
“…후계 말입니까, 한지언 헌터?”
“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런 말을 한 거겠지?”
류천화 씨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겔탄 기억하시죠? 그 분홍색. 걔가 후계가 될 뻔했던 존재래요. 본인은 실패한 결과물이라나요. 그런데 실패작이 있으면, 성공작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런 얘기는 생전 처음 듣는데. 그걸 왜 이제서야 말하는 거지?”
“세상이 평화로운데 굳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죠.”
지화연 씨가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 갑자기 실소했다.
“그럼 저들이 저희를 농락하는 게 맞네요.”
“어느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한지언 씨의 말을 정리하자면, 탑을 만들고 군주를 통해서 저희와 체스를 한 왕과, 지금 던전을 다시 만든 왕이 다르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몬스터가 세상에 나타난 모습이 4년 전에 몬스터가 처음 나타났던 때의 모습과 꼭 같잖아요.”
“그게 왜요?”
“일부러 똑같은 상황을 연출한 게 되니, 농락이죠.”
아닌 것 같은데 묘하게 맞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이라 딱히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류천화 씨가 말했다.
“우리가 모인 게 이런 토론을 하려 모인 건 아닌 거 같은데.”
“이제 설명할 거예요.”
지화연 씨가 말을 이었다.
“아까 발표했던 대로, 저희가 B급 이상 던전을 탐색하기로 했어요. 혹시 본인은 헌터 일을 그만둘 거다, 하시는 분 계신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지화연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부 탐색하는 걸로 알고 계속 설명할게요. 사실 당장 탐색해야 하는데 방금 화가 너무 나서 사담이 길어졌네요. B급 이상 던전은 각 등급당 두 개씩만 돌면 되는데, 한 명이 한 던전을 담당하기에는 무슨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니 두 명씩 팀을 이루어서 각 등급을 맡으려 해요.”
지화연 씨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형이 냉큼 말했다.
“제가 지언이랑 B급 던전을 돌겠습니다.”
“B급이요? 어… 네, 뭐. 한지언 씨는 그걸로 괜찮으신가요?”
“네. 상관없어요.”
내가 별말 없이 동의하자 잠깐 침묵이 일었다. 왜 그러지 싶어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니, 몇 명이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보였다. 형이랑 내가 B급 던전을 도는 게 이상한가?
“네, 그럼 B급 던전은 한지운 헌터랑 한지언 씨가 도는 거로 하고……. 그럼 저랑 유아한 씨는 A급 던전을 돌게요.”
“나와 승현 헌터는 자동으로 S급이군.”
“던전 위치는 각자 휴대폰으로 전송해 드릴게요. 최대 3일 내로 두 던전을 전부 클리어해야 한다는 점 알아 주세요. 던전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다른 헌터들에게 던전을 돌 수 있는 권한을 준다고 해도 던전을 경매하는 시간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급박하게 진행하는 이유야 뻔했다. 여유롭게 진행하면 던전 브레이크가 우르르 터질 테니.
“전달 사항은 끝이에요.”
그러며 지화연 씨가 제 옆구리에 끼워져 있던 태블릿을 두드리니 내 주머니에 들어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아마 위치를 전송해 준 듯했다.
형이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곧장 몸을 일으키곤 말했다.
“가자.”
“지금? 그래, 뭐.”
나는 형을 따라 응접실을 나가, 곧장 던전으로 향했다. 위치가 가까워 도보로 이동했다.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걷는 내내, 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굳이 말을 꺼내지 않고 던전으로 향했다.
형과의 사이는… 크게 바뀌진 않았다. 던전이 사라졌던 한 달간 형제간의 흔한 대화조차 안 나누었으니까. 아니, 못 나눴다고 하는 게 맞는다. 내가 거의 폐인처럼 지냈으니.
그렇게 걷고 걸어, 우리는 던전에 도착했다. 협회 사람과 몇 마디를 나눈 후 별다른 준비 없이 형이 곧장 던전으로 들어가 나도 급히 따라갔다.
게이트를 넘어 던전으로 들어서자, 꽉 막혔던 예전 던전과 달리 하늘이 뻥 뚫려 푸르른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뭐지.’
하늘이 뻥 뚫린 것보다, 하늘 자체에서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 몰라 나는 고개만 까딱이다가 말았다.
‘주변에 몬스터는… 없네.’
주변엔 둥근 곡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있었다. 건축물의 층마다 식물이 풍성히 자라나 꼭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의 식물들이 장악한 세상 같았다.
형은 계속해서 말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나 역시 말없이 걸어 뒤에 있던 게이트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지언아.”
“어?”
형이 걷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예전에, 기억나?”
“뭐가?”
“모든 게 끝나면, 서로 말해 주기로 한 거.”
“아직 다 안 끝났잖아.”
“…….”
“농담이야.”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길기도 쓸데없이 긴 이 이야기를 말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형 먼저 이야기해 줘. 그래야 내가 어찌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거 같거든.”
“…그래. 뭐 궁금한 거 있어?”
“음, 내가 열여덟 살 때, 형이 소설에 빙의했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그 전부터 기억이 있던 거면, 왜 어릴 적에 엄마랑 아빠한테 먼저 말하지 않았어? 그 기억만 있을 뿐 사리 분별은 제대로 못 했을 텐데.”
“했지, 당연히. 네 말대로 이상한 기억을 가진 애였으니까.”
했다는 말에 되레 내 쪽이 당황스러웠다. 그랬다기엔 부모님은 아무런 말도, 행동도 안 했던 거 같은데. 형이 정신 병원에 간 적도 없고.
형이 말을 이었다.
“못 듣더라.”
“어……. 그러니까 내가 이해한 게 맞는다면, 형이 말한 게 애 장난인 줄 알고 무시했다는 거야?”
형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하는 말을 아예 듣지 못했어. 내가 소설에 대해 말을 하면, 내가 말을 했다는 것조차 잊어. 경청하던 태도는 사라지고, 아무 말도 못 들은 것처럼 행동했어.”
저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는 했으나,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형이 뭐라고 했는데? 처음 말했을 때.”
“…이상한 기억이 있다고. 문양이 생기고, 몬스터가 생겨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그런 얘기를 했어.”
형이 말을 끊었다가,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아예 못 들었고. 옷자락을 잡고 말해도, 아예 내가 없는 취급 당했지.”
“…….”
“선생님에게도 말해 보고, 친구에게도 말해 보고, 인터넷에도 글을 적어 봤어. 그런데 전부 듣지 못하고, 읽지 못하더라. 하물며 글은 내가 언제 썼냐는 듯 다음 날 깔끔히 사라졌어. 그래서 생각했지. 도대체 이 기억은, 나에게 무얼 원하길래 나한테만 기억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어쩌면 내가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생각도 했어.”
형은, 소설이라는 기억만 지닌 형이었다. 다른 사람과 별다를 바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사람에게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면……. 형이 이전 회차와 성격이 다른 게 이해가 갔다. 아니, 오히려 미치지 않은 게 대단했다.
“생각하고 생각해서 도달한 건, 어쨌건 이 몸에 빙의한 죄로 내게 책임을 지고 짊어져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이었지. 하지만 문양도 뭣도 없이 기억만 가지고 있으려니 누가 내 머리 위를 짓눌러 땅속 깊이 묻으려는 것만 같았어. 누구에게 말이라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나한테 말한 거였구나.”
“응.”
“그럼 진즉 말하지 그랬어? 엄마랑 아빠한테도 말했다며.”
“…내 기억이 미래인 게 거의 확실했었어. 그런 잔인한 미래를, 네가 모든 걸 짊어지는 미래를 어떻게 말해. 미래에 네가 강하든 어떻든, 그 시점에선 그냥 어린 내 동생이었는데.”
“…그래서.”
“그런데 어째서인지 너는 내 말을 들을 수 있었어. 난 포기한 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으리라 생각하고, 습관처럼 입을 연 것뿐이었는데.”
“그랬지.”
“…솔직히 말해서 그때의 일은 사과하고 싶어. 네가 반응을 해 준다는 것 자체에 설레서 주체하지 못했던 거 같으니까. 결과적으로 그것 때문에 사이가 틀어졌고.”
사이가 틀어진 건 그거 때문이 아닌데.
“음, 형,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난 형이 독립해서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그 기억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으니까. 몬스터가 세상으로 넘어오면서, 그제야 기억했고.”
“다행이네.”
“뭐?”
“그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울까 봐 걱정했거든. 그때라도 잊고 있었다니 다행이야. 아무튼, 그때 자취 시작하고 난 곧장 입대했어. 생각을 좀 정리하려고. 그러다 전역하고, 허무하게 살다가 던전이 등장했지. 그리고 네가 문양을 발현하고…….”
형이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나는 의아해 물었다.
“내가 문양을 발현할 건 알고 있었잖아. 그 기억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헌터 일을 말리려 했던 거야?”
“…내 기억이, 처음으로 틀렸으니까.”
나라는 존재 자체가 기억과 달랐다는 건가?
나는 흠, 하며 침음을 내뱉다 말했다.
“그럼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겠네.”
“또 뭐가 궁금한데?”
“형이 알고 있는 소설의 내용. 거기서 나는 어땠어? 형 행동도 그렇고, 말하는 것들 들어 보면 소설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달랐던 거 같아서. 많이 달랐던 거야?”
“…….”
형은 눈을 끔벅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에 답했다.
“강했어. 엄청.”
오. 저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