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그냥 기절시켜 버리면 안 되나.’
귀찮은 상황에서 얌전히 있으니, 꼭 길가에 가만히 서 있는 안전 고깔이 된 기분이었다. 그, 왜… 술 취하면 이유도 없이 길가의 고깔부터 발로 차고 보는 인간들이 있지 않나. 내 앞의 사람들이 딱 그 술 취한 인간들 같았다.
“X발. 우리가 하는 일들에 반박 안 하는 거 보고 독종 새끼일 거라곤 생각했는데.”
남성이 계속 때리던 주먹을 멈추곤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한참 유리한 상황임에도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오히려 겁에 질리려 하고 있었다.
‘인벤토리도 안 열리네.’
주로 팔에 차고 다니던 인벤토리는 진즉 변형시켜 허리에 끈처럼 감아 둔 상태였다.
‘숨겨 놓길 잘했네.’
인벤토리가 사용 안 되는 거 보면 귀속 역시 풀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인벤토리를 빼앗겼다면 좀 곤란했을 거다.
제 분을 못 이기는 듯한 표정을 하던 남성이 말했다.
“야. 칼 줘 봐.”
“뭐? 야, 이 새끼 지금 일반인이야.”
“아, X발, 그냥 흠집만 좀 내자고! 하고 포션 뿌리면 되잖아!”
“아니, 야! 뒈지면 어쩌려고!”
“좀 긁힌다고 안 뒈지거든? 형님이 보여 준다. 딱 기다려.”
“흠집은 네 역겨운 얼굴에나 내지 그래. 그러고 포션을 바르면 좀 덜 역겨워지지 않을까? 아, 타고나길 그래서 어쩔 수 없나.”
“…뭐?”
“내가 뭐 약해졌다고 입도 벙긋 못 할 것 같아? 미안한데 너희들 그냥 자존심만 센 머저리들 같아. 하나도 안 무섭다고. 아니, 오히려 불쌍하―”
콱! 내 목 바로 옆 벽에 단검이 꽂혀 들어갔다. 동시에 남성의 손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입만 둥둥 떠다녀야 하는 신세가 된 놈이 말이 참 많다? 아까처럼 개패 줘야 하냐? 아니면 이걸로 그냥 네 목을 동강 낼까?”
“하든가. 어차피 못 하잖아?”
내가 이러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이러고 있을 바에야 어디 갇혀 있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았으니까. 화를 부추겨 맞은 후에 기절하고 일어나면 어디에 갇혀 있지 않을까. 뭐 물론, 도발하며 정보를 캐낼 수도 있겠지만 이 녀석들은 아는 게 없어 보이니…….
“난 어차피 뒈질 각오로 들어왔는데, 너희는 살아서 잘나가려고 여기 들어온 거잖아? 난 딱히 죽어도 상관없지만, 과연 너희가 나를 죽이고도 멀쩡할 수 있을까? 벌로 눈알이 뽑힌 채로 관람용으로 거대한 방을 평생 움직여야 할 수도 있고, 팔다리가 절단된 채 벌레가 들끓는 방 안에 방치될 수도 있어. 여기는 그런 곳이잖아? 너희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거짓말 덩어리의 말들을 내뱉었다. 사실 이곳은 인도적인 방법으로 처벌을 내리는 곳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몬스터의 말을 잘 들은 놈들이 잘못을 하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 알 리가 없을 거였다.
“…네가 뭘 안다고…….”
말은 그렇게 했으나 단검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단순한 말 몇 마디에 이렇게 떠는 걸 보니… 사람 하나 죽여 본 적 없는 놈이 분명했다.
“죽여도 된다니까?”
내가 비아냥거리자 놈의 얼굴이 터질 것같이 붉어졌다. 놈은 여전히 검은 휘두르지 못한 채 외쳤다.
“너 이 새―!”
“야, 너희!”
목소리가 익숙했다. 돌아보니 나를 끌고 안내하던 그 남성이었다.
“지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이런, 씹…….”
“빨리빨리 안 튀어 와?!”
자칭 선배라던 인간은 확실히 여기서의 계급이 높긴 한 모양이었다. 이 녀석들이 굽실거리며 부르는 대로 쫄쫄 가는 걸 보니 말이다.
“저런 거에 신경 쓸 시간 없는 거 너희가 더 잘 알 텐데? 구원의 날이 코앞이다!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짓 하다 걸리면 징계를 내릴 거야!”
그는 그러곤 뒤에 같이 온 금발의 남성을 툭툭 쳤다. 금발의 남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내게 다가와 내 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슬쩍 뒤를 돌아본 순간 자칭 선배라는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남성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화난 발걸음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 서 걸어갔다.
고개를 원위치로 돌리니, 금발 남성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체격이 훨씬 큰 것이, 만약 일반인이더라도 싸우면 내가 질 듯 보였다. 문양이 있을 때의 기술과 없을 때의 기술은 다르니까. 몸이 받쳐 줄 때의 기술이 지금은 없으니 얌전히 있는 게 나을 터.
‘어디까지 가는 거지.’
너무나 오래간만에 느끼는 평범한 몸이었던지라 벌써 피로감이 몰려왔다.
남성이 내 생각을 읽은 건지, 다 똑같이 생긴 문 중 하나를 열어 나를 집어넣었다. 균형을 잃을 뻔한 몸을 겨우 지탱해 서자 덜컥, 뒤에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어떻게 나간담.’
그리고 어떻게 증거를 수집해야 할지 고민하며 뒤로 도니, 금발의 남성이 떡하니 서 있었다.
“…왜 아직도 계십니까.”
흰 가면 아래로 보이는 눈이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녹색의 눈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갑자기 녹색 눈이 휘었다.
“풉.”
그러곤 대뜸, 무엇이 웃긴지 남성이 작은 웃음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이봐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이름도 모르는 남성을 부르자, 겨우 웃음을 멈춘 남성이 입을 열었다.
“눈치가 없는 거야, 그냥 잊은 거야?”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기억을 더듬어 그것이 어디서 들은 목소리인지 유추했다. 그러나 내가 기억을 떠올리기도 전, 남성이 선수를 쳤다.
“나야, 나. 데이비드.”
흰 가면 아래로 샐쭉 웃는 눈을 보이며 그가 본인의 정체를 드러냈다.
“…데이비드 씨?”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도대체 이 인간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이전부터 계속 사이비와 접점을 보였는데 설마 사이비인 건 아니겠지.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했다.
“데이비드 씨가 왜 여기에 계십니까.”
“음……. 그야 여긴 영국이니까?”
“…예?”
“너야말로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건지 궁금한데.”
여기가 영국이라니? 나는 분명히 멀쩡한 한국 땅에 있던 문양을 타고 여기에 온 건데. 이동 범위가 그렇게 넓을 수 있나?
“설명하자면… 길어요.”
“그럼 나부터 설명할까? 나는 영국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는 의문의 집단을 소탕하기 위해 여기 잠입했어. 꽤 오래 했지. 그 결과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사이비의 본거지가 여기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곳에서는 교주의 권능으로 문양을 내려 준다, 면서 사람들을 꼬드겨. 그 밖에도 뭐… 이상한 주술 쇼를 벌이거나 제물을 바치는 등 별의별 짓을 다 하지.”
이제 네 차례라는 듯 데이비드가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끌려가는 걸 보고 따라가니 웬 주택이 나왔습니다. 휴대폰으로 신고하려 했으나 휴대폰이 먹통이었고요. 그래서 직접 들어가 봤더니 거기에 사이비들의 문양이 있었고, 그 문양을 건드리니 여기로 왔습니다.”
“쓸데없이 휘말린 거구나.”
“휘말렸다기보단… 제가 자처한 거죠.”
“뭐, 누군가를 살리려 하는 마음은 보기 좋아!”
“그래서 말인데요, 데이비드 씨. 여기 출구는 아십니까?”
“알지? 왜?”
“목표를 다 달성해서 나가려고요.”
“목표?”
데이비드의 말에 나는 재킷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곤 넣어 뒀던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종료했다.
“뭐 한 거야?”
“증거 수집이요.”
나는 영상이 잘 저장된 것을 확인 후 클라우드로 백업까지 완료했다. 모든 일을 영상으로 찍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부분은 어떻게든 비추어 찍어 놨으니 괜찮을 거였다. 무엇보다 소리는 전부 저장되었을 테니. 중간에 예상치 못하게 맞아서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지만, 어찌 됐건 성공했으니.
나의 누명을 벗을 수 있는 증거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나의 문양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게 우선 목표였다. 능력을 사용 못 하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체력이나 시력이 떨어지는 것, 사람 기척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 등이 말이다. 하나같이 다 예전으로 돌아와 익숙하지가 않았다.
“데이비드 씨는 계속 남아 있을 겁니까?”
“아무래도. 오늘이 잠입 마지막 날이거든.”
“마지막 날이요?”
“소탕하라는 말을 전달받아서. 오늘 여기 싹 다 정리해.”
“…예? 혼자서요?”
“응. 멋지지?”
멋지고 자시고 위험한 거 아니야? S급도 많은 나라에서 사람 한 명으로 사이비를 쳐 버리겠다고? 그것도 본거지를?
“다른 동료 분들은요?”
“혼자인데?”
“진심이에요?”
“여기 총전력도 확인했고, 구조도 전부 외웠고, 우두머리가 누구인지도 알았는데, 뭐. 나 강하다니까? 뭐, 너희 형보다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나 이런 거 많이 해 봐서, 다른 애들 데려오는 게 더 걸리적거려. 혼자가 낫지.”
“…알아서 하세요. 그 정리라는 거 하기 전에 저 좀 출구로 안내부터 해 주시고요.”
“음. 정말 나가려고?”
“전 지금 일반인의 몸이니 여기 더 있어 봤자입니다. 오히려 있으면 더 위험하죠.”
“그거 말이야. 잠깐만 턱 좀 들어 볼래?”
데이비드의 부탁에 나는 의아해하며 턱을 치켜들었다. 내 목을 빤히 쳐다보던 데이비드가 몸을 구부정하게 수그리더니 내 턱을 이리저리 돌리며 무언갈 확인했다.
“아. 역시나 맞네. 지언, 너 지금 못 나가.”
“예?”
“그거, 일정 범위 이상 나가면 펑 하고 터지는 거야. 내가 직접 봤거든.”
“직접 보셨다고요?”
“응.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헌터 한 명이 어떻게 알고 여기를 찾아왔었거든. 그러다 걸렸고. 대장이 네가 하고 있는 거랑 똑같은 걸 걔한테 걸었었는데… 탈출을 시도하다가 바깥 땅을 밟는 순간 머리가 펑 터져 버렸지.”
“데이비드 씨는… 용케 안 걸리셨네요.”
“형식상 나는 여기에 입단해 있으니까.”
“…예?”
“잠입하려면 그게 최고지. 얼굴이 들통나도 어 너 내 편이었네, 이러고 말아 버리니까.”
“아니, 애초에 이쪽에서 위험하게 S급을 받는 것도 이상한데요? 뭐 뇌물이라도 주셨습니까?”
“줬지?”
“…예?”
“여기는 전력이 한없이 부족해. 다른 거처 쪽에는 S급을 배치한 것 같지만… 본거지에는 어째서인지 S급이 없어. 그래서 S급이 필요해 보이기에 나는 어떠냐, 내가 돈도 주겠다, 하니까 냉큼 받아 주던데?”
허술하기 그지없다. 내가 듣고 있는 게 정말 사실이 맞나.
‘그렇다고 데이비드가 거짓말을 한다기에는… 할 이유가 없지.’
데이비드는 실수로라도 내 뒤통수를 때린 적이 없으니…….
‘그럼 정말… 사이비가 허술한 거라는 건데.’
그럼 우리는 그동안 그런 놈들에게 놀아난 거라고?
멀뚱히 서서 고민하던 내 눈에 헤실헤실 웃는 데이비드의 모습이 들어왔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