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기억을 더듬어 가장 오래된 기억을 꺼내 들었다. 어렸을 때 일이다. 크게 넘어지는 바람에 절로 눈물이 나와 우니, 애새끼처럼 시끄럽게 울지 말라는 고함에 귀를 틀어막았다. 그게 내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첫 번째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런 환경이었다. 웃으면 팔자 좋게 웃는다며 난리, 울면 힘든데 시끄럽게 운다고 난리. 담배와 술 냄새로 찌든 방구석에서 내가 살아남을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참 다행인 것은, 부모라는 작자들이 돈이 어디서 생겨난 건지 집값은 멀쩡히 내고, 냉장고는 또 가득 채워 놨다는 거였다. 반이 술이긴 했지만.
머리가 크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옆에 다한이가 있었기에 한 몸처럼 지내다시피 하였다. 폭언과 욕설이 쏟아지고 때때로는 손이 올라가는 집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학교에 오래 머물렀다.
그렇게 다한이와 늦게 하교하는 것을 반복하던 와중, 막내가 태어났다. 그리고 부모라는 작자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매달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돈만 입금하면서.
처음부터 이러지, 왜 굳이 그런 생난리를 부리며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일까. 깊이 생각해 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기에 나는 그들을 없었던 존재들로 생각했다.
이제야 집 안이 조용하겠거니 생각했건만 막내가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밤낮 가릴 것 없이, 불편한 것 없음에도, 계속.
내 머릿속은 만신창이였다. 겨우 첫째라는 이유로, 피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한 지붕 아래에 산다는 이유로 내가 무언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기분 나쁜 감각이 목까지 차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내 삶은 그랬다. 첫 번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 걸 그랬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부정한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꼴에 살고 싶었기에 잠자고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공부만 했다. 딱히 할 것도 없었고.
그렇게 내가 성인이 되던 해, 부모가 입금하는 돈이 줄어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알바를 시작했다. 사정을 안 다한이도 학교를 자퇴하고 알바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법정 대리인은 내가 아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애초에 자퇴도 불가능하고.
그래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내가 그러했듯. 휴식이란 걸 취한 적이 없다시피 하는데 의외로 쓰러지지도 않았다. 난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행복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고, 헌터가 생기고 던전이 생겼다. 그러나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들렸기에 나로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저 일자리가 줄어들겠네, 이 생각만 하며 남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날도 그랬다. 어디서 던전이 터졌네, 동기가 헌터가 됐네, 뭐가 어쨌네 하며 떠드는 것을 구석에서 조용히 듣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부모였다. 그동안 한 통의 전화도 안 한 그 작자들. 다한이가 성인이 된 이후로는 유주한의 용돈 수준의 돈만을 보내는 인간들.
전화번호는 어떻게 안 걸까. 혹시 몰라 지우지 않았던 이름이 휴대폰 화면에 뜨니 기분이 이상했다. 동시에 불안했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리고 예상은 늘 빗나가지 않는다.
―그동안 지원해 줬으니 이젠 네가 줘야지. 너 잘나간다며. 그, 뭐냐……. 레지 뭐시긴가 아무튼 의대 졸업했다며. 돈 많이 벌 거 아니야.
싫다고 답하자 귀를 찌르는 고성이 휴대폰 스피커를 통해 요란히 넘어왔다. 듣기 싫어 꺼 버리니 이번에는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온갖 협박성 말들. 이사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집까지 찾아오겠다는 말을 하였다.
나나 다한이는 괜찮았다. 이미 친권이 소멸한 성년이었으니까. 다만 유주한은 아니었다.
“…….”
나에게 유주한은 이도 저도 아닌 존재였다. 막내를 챙기는 것은 보통 다한이고, 나는 얼굴만 비치는 사이였다. 대화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친권을 포기시키고 나를 후견인으로 하는 건…….’
나는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다가 머리를 헝클었다. 왜 이런 고민을 하지? 난 그냥 독립하면 끝이잖아.
‘한 지붕 아래 살다 보니 머리가 어떻게 됐나.’
유독 멍한 날이었다. 잡생각을 하지 않으려 늘 바쁘게 뭔가를 하곤 하는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부모에게서 온 전화 때문일까 싶었지만 이유를 따질 바에야 상황을 해결하는 게 제일 나았다.
어찌해야 할까 멍때리고 있던 와중, 세 명의 사람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게 퍽 익숙했다. 자주 그러던 사람들이었으니까.
‘오늘 일진 사납네.’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앞의 사람들이 뭐라 떠들건, 침을 튀기건, 결국 나의 잘못은 없으니까.
떠드는 내용은 간단했다. 기세등등해 마라. 그것도 곧 끝난다. 주제를 알아라.
‘주제를 아는 건 누구나 그래야 하는 거고.’
햇살이 눈부셨다. 밖에 오래 앉아 있기에는 너무나 쨍한 날씨라 나는 병원 안으로 들어가려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가뿐히 자리를 떠나려 하자, 세 사람 중 누군가가 내 등을 콱 밀었다. 뭐, 손이라도 못 쓰게 하려는 건가.
최대한 충격을 받지 않게 넘어지려는 순간, 눈앞에 새파란 게 나타났다가 하얀색으로 점화했다.
“…어.”
눅눅하고 습기 가득한 동굴. 병원이 아니었다.
‘…설마.’
덜그럭덜그럭. 기계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차가운 돌바닥처럼 온몸이 빠르게 식었다.
들어왔을 때 내가 넘어지며 소리를 냈나? 단순한 F급 던전이라 나를 눈치 못 챘나?
온갖 생각을 하면서 몸을 착실히 일으켰다. 그러고는 뒤에 게이트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던질 계획까지 세웠다. …방해만 없었으면 이루어졌을 계획 말이다.
쉐엑! 갑작스레 휘둘러진 창에 어깨를 베였다. 하얀 가운에 붉은 자국이 점점 커지더니 팔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입을 뻐끔뻐끔 움직여 숨을 겨우 토해 냈다.
창을 겨눈 존재가 게이트를 막았다. 다가오면 죽여 버릴 듯이 나를 노려보아 나는 그 자리에서 곧장 도망쳤다.
온 사방에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져 귓가가 왱왱거렸다. 정말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었다. 고민 없이, 힘든 일 없이 죽어 버리면, 오히려 그게 나을 수도 있었다.
계속 산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모으는 거뿐이었다. 그리고 돈을 모으면… 뭘 하는가. 할 것도 없었다. 내가 버는 돈은 대부분 다한이와 막내에게 들어갔다.
한평생을 이리 사는 걸까. 그렇다면 굳이 살 필요가 있나?
지익. 지익. 발걸음이 느려지며 발소리가 질질 끄는 소리로 바뀌었다. 걷는 것도 뛰는 것도 무의미했다.
‘아. 지친다.’
그렇게 나는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처음엔 살고자 들어갔으나 나중에는 달랐다.
더 편하게 죽기 위해.
거대한 문이 나를 반겼다. 나는 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생각조차 안 하고 문에 손부터 가져갔다. 거대한 문은 위엄 있는 모습과 달리 너무나도 쉽게 열려, 맥이 다 빠졌다.
‘던전이… 스테이지가 뭐 어떻다던데.’
보스를 만나면 더 빠르고 쉽게 끝나지 않을까. 이럴 거면 던전에 관심 좀 가질 걸 그랬나.
그런 와중에 내가 들어갈 정도로 문이 열려, 나는 다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만난 것이 거대한 늑대였다. 몬스터도 뭣도 아닌, 그냥 상처를 입은 거대한 늑대.
몬스터를 만나면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들 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글쎄……. 그냥 좀 많이 큰 늑대처럼 보였다.
그르륵. 늑대의 감겨 있던 눈이 서서히 뜨여 나를 응시했다. 이상하게도 천천히 감겼다 뜨이는 눈을 보면서도 겁이 나거나 하진 않았다.
동굴 안.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깨진 유리병을 억지로 붙여 놓은 아이구나.
“…….”
몬스터가 말을 할 수 있다고는 못 들었는데.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던전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까.
―어느 세상에건, 힘들어하는 생명은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군. 아가, 너 같은 아이가 어째서 여기에 온 거냐.
“죽으려고.”
―어째서?
“…대답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몬스터들은 다 사람 죽이기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럼 그냥 죽여.”
―…공허하구나. 무엇이 너를 그리 만들었을까……. 정말 끝내고 싶은 게 맞더냐?
“말이 많네.”
―다 늙은 것의 잔소리라고 생각하려무나. 나는 지키던 것들에게 버려져 유폐된 보잘것없는 이지만, 너는 아니지 않니.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존재들이 있고, 네가 살기 바라는 존재들이 있다.
“글쎄. 세상은 내가 빨리 죽길 바라는 거 같은데. 온갖 불행들을 나한테 던지니까.”
―그럼에도 살아가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불행이 있으면 행복이 더 커 보이는 법이지.
“그걸 기다릴 필요성을 못 느끼겠는데.”
―그럼, 내기하지 않으련?
내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울이자 늑대가 말을 이었다.
―별거 아니다. 그저 네 행복이, 기회가 반드시 올지 안 올지를 두고 내기를 하자는 것이지.
“그럼 답은 정해져 있네. 안 와. 왜냐하면 오늘이 끝이니까.”
―그래. 답은 정해져 있다. 정답은, 반드시 온다는 거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네게 기회를 줄 것이니까.
“뭐?”
툭. 늑대의 거대한 콧잔등이 나를 치자 돌연 어지러워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져 숨을 헐떡였다.
―네게 내 힘을 줄 것이다. 다만 네 그릇은 누군가를 돕는 그릇이니, 나머지 능력은 네 주변인에게 갈 거다. 그래……. 마지막 아이가 좋겠구나.
“무슨… 짓을…….”
―…나는 그저, 나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거다. 그러나 너는 아니지. 오래되지 않은 삶. 새로운 시작보다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터. 나는 네게 기회를 주었다. 이다음의 기회는 네가 붙잡는 거다.
“뭔…….”
그 이후의 기억은 까마득했다.
…어쩌다 이 기억을 들춰 봤더라.
‘분명 막내 몸에 있는 걸 빼 주고…….’
아, 그래. 분명 그랬다.
‘그럼 방금 전 그건… 죽기 전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과거의 기억이기라도 한 건가.’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늑대였다. 이름 모를 늑대.
‘…그래도 내기가 끝난 건 아니에요.’
기회는 수차례 왔고, 얻었다. 그러나 행복은, 아직도 잘 모른다.
‘…근데 아마 내기에서 이긴 건…….’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호칭.
“…언니!”
어둠이 걷히고, 눈앞이 훤해졌다.
“그만 …… 정 ……”
타오르는 땅, 그리고 피로 물든 손바닥. 그걸 붙잡고 있는 다한이가 소리치고 있었다.
“헛소리 줄줄 늘어놓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