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식물에게 바다는】
오래간만에 듣는 것 같은 이름에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 넌 알겠구나? 어찌 됐건 임하늘이 생전에 평가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거든.”
“평가?”
“엥? 몰라? 아, 하긴, 모를 수도 있겠다. 넌 헌터 쪽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슬슬 관심 좀 가져 보는 건 어떠냐? 이젠 직업이잖아.”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아무튼, 임하늘이 던전을 하도 많이 돌아서 돈에 미친 인간이라는 평가가 많았거든.”
저 얘기를 강희민 얘기 다음으로 하는 거라면…….
“희민이 평가가 지금 그렇다는 거야?”
“그래. 갑자기 그러니까 던전이 또 없어질까 봐 막 도는 거다, 이런 말이 많아. 나야 걔가 그런 애가 아니라는 건 아는데… 요즘 애가 전화도 잘 안 받아서 걱정되어서. 혹시 너는 무슨 일인지 아나 싶어서~ 불렀지.”
“…일단 그런 건 아니야.”
“다행이네. 아니, 그럼 왜 그러는 거래? 뭐 찾는 것 같은 사람같이.”
…찾고 있긴 하지.
“아무튼, 걱정할 만한 일이 있는 건 아니야. 그냥 하나에만 집중해서 그런 거니까.”
“그래? 하기야 걔는 대학 때도 얼굴 보기 힘들었지. 겨우 만나면 완성할 거 있어서 가야 한다고 하고……. 그런데 걔 마허윤이랑은 왜 같이 다니는 거야?”
오. 계속 같이 다녀 주고 있나 보네. 마허윤 참을성치고는 오래가는데?
“같은 팀 하면서 친해졌나 봐. 그리고 던전은 두 명이 가는 게 더 안전하니까.”
“원거리 둘 같이 가 봤자 아냐?”
“원거리 특화 능력자 혼자보단 나아. 애초에 S급 던전에 가는 것도 아니고. A급 아래는 희민이 혼자 가도 잘할걸.”
“그럼 마허윤은 왜 따라가는 거야?”
“…걱정돼서?”
“모르면 모른다고 해라, 그냥.”
내가 실없이 웃자 휴대폰을 확인하던 공화준이 어, 하며 작게 소리를 냈다.
“희민이 던전에서 다쳤다는데?”
“몇 급이었는데.”
“A급. 와, 근데 댓글이……. 희민이 뉴스 댓글 안 보지?”
“모르겠는데.”
“안 보게 해라. 꼴이 말이 아니다.”
“왜.”
“별별 글이 다 있어. 잠깐만……. 그러게 누가 나대래, 자업자득이다……. 읽기도 싫다.”
“뭐, 원래 그렇잖아.”
“아니, 그래도 희민이 예전에는 반응 좋았어. 과거도 깨끗하고 능력도 출중한 헌터여서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된다, 뭐 이랬는데, 지금은…….”
“마허윤에 관한 건?”
“걔? 걔는 뭐,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 걔는 게임에서 자주 보이다 보니까 형 현질 할 돈 떨어졌어? 이런 얘기가 많아.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네북이야.”
강희민에 관해선 딱히 별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알아서도 잘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던전만 돌고 별다른 행동을 안 하니, 더욱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다 과로사해도 이상하지 않겠네.’
저 정도 얘기를 들을 정도면 잠도 줄여서 도는 거 같은데.
‘…남 사연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강희민은… 참으로 착한 사람이다. 몇 번의 삶을 반복해도 항상 그런 존재였다. 그러니 하는 모든 일을 응원해 주고 싶었다만, 본인 몸을 상하게 해 가면서까지 그러는 모습이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나도 나름 사리면서 사는 거다.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뿐이지. 던전이나 헌터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집에서 굴러다니는 식충이가 되어 침대에 기생할 것이었다.
…회귀에 대한 모든 기억이 없다면 평범하게 회사에 취업해서 이런 생각도 안 했겠지만.
‘어찌 됐건, 희민이는 살아 줬으면 좋겠는데.’
이러다 윤시아도 못 보고 던전만 돌다 객사할지 누가 아나. 과로사일 수도 있고.
나는 이리저리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희민이는, 내가 한번 잘 말해 볼게.”
“너무 뭐라 하진 말고.”
“내가 언제 뭐라 했다고.”
♧♣♧
자숙 기간이 끝난 이른 아침. 던전 앞에 서 있자 익숙한 이들이 다가왔다.
“형. 오래간만이에요.”
“그런가. 오래간만까진 아닌 것 같은데.”
“그래요? 못 본 지 꽤 된 것 같았는데.”
강희민의 뒤로 마허윤이 어기적어기적 좀비처럼 걸어오는 게 보였다. 잘 보니 얼굴이 퀭했다. 잠도 안 자고 던전을 같이 도니 저 모양이지.
마허윤은 본인 나름대로 걱정해 하는 행동인 듯 보였지만… 정말 걱정한다면 말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거다. 만사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정답이라 생각되는 행동을 하는 게 낫다.
“형, B급인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따가 A급 하나 있는데 그때 도시는 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기 그래서 가는 거니까 상관없어.”
“그래요? 그럼 가요.”
강희민이 익숙하게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나도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쏴아아. 던전으로 들어가자마자 파도 소리가 우리를 반겼다. 발목 아래가 젖어 들어가는 감각에 주변을 살피자, 웬 해변이었다. 에메랄드빛의 쓰레기 한 줌 없는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시작부터 젖냐며 투덜대리라 생각했던 마허윤이 의외로 얌전하게 바닷물에서 빠져나와 다리를 털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바다를 응시했다.
“형? 안 가요?”
“…희민아.”
나는 말할까 말까를 수차례 고민했다. 남의 앞길을, 선택을 막는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난 모두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강희민의 선택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가? 아니다. 그럼 왜 막으려는가. 간단했다.
본인을 망치고 있으니까.
강희민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굳이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을 망치는 것 또한 본인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강희민은 가늘고 길게 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에, 이건 나를 위해 말하는 것이었다. 남의 앞길을 막고 내가 원하는 바를 택하는 이기적인 말을 말이다.
“무의미한 반복은 그만하자.”
“…무슨 소리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모른 척하지 말고.”
“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형한테는 무의미하게 보이실 수 있어요. 하지만 저한텐 아니에요. 이 바다를 볼 때마다, 이번엔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이 저를 살게 해 주고 있어요.”
“자기 자신한테 희망 고문 하는 거잖아.”
“삶의 의미인 거죠.”
…사람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는 몰라도 남의 상태는 표정만 봐도 대강 알 수 있다. 강희민은 지금… 지쳐 있었다. 그것도 엄청. 무언가에 홀린 듯한 사람의 모습과 유사했다.
“솔직히 저도 바보 같은 건 알아요. 그런데 어떡해요. 포기할 수가 없는데.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윤시아 씨는 저한테 많은 걸 보여 주고, 제 마음속에 자리 잡으셨어요. 그리고… 아무튼, 포기할 수 없는 게 인생 처음으로 생겼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요.”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너무 과해. 나도 아예 찾지 말라는 건 아니야. 다만 적당한 선이라는 게 있잖아.”
“그건 제가 정하는 거죠.”
“그래. 보통은 자기 자신이 선을 정해. 하지만 일반적인 선에서 너무 크게 벗어나지는 말아야지.”
“…형은 그냥 제게 윤시아 씨를 찾는 일을 그만두라고 하고 싶으신 거죠.”
“그래. 솔직히 나도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후배인데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걱정은 고마워요. 하지만 사양할게요.”
…역시 이런 강희민은 생소해서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이번 회차에 유독 달라 더욱 힘들었다. 사람이 원래 이렇게 급격히 변하는 존재가 아닌데. 하물며 강희민과 윤시아가 함께했던 기간은 1년이 채 안 되지 않나.
“…할 말 더 없으신 거죠? 던전이나 돌아요.”
나는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미 그는 내가 알던 강희민과는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그래. 사람은 원래 변수가 많은 생물이지. 강희민이 그동안 얌전했기에 다르다고 생각한 내 참패다. 이전과 같을 거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내가 실수한 거다. 가뜩이나 심란할 텐데.
“희민아. 미―”
“아! 언제까지 투정 부릴 건데!”
가만히 서 있던 마허윤이 대뜸 화를 냈다.
“이유를 말하든가!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
“가요.”
“으아아악!”
강희민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허윤을 지나쳐 갔다. 그런 마허윤의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이 말이다.
너희 왜 같이 다니는 거냐? 아니, 같이 다니니 저러는 건가? 예전에는 그래도 마허윤이 저러면 투닥거리는 정도는 했는데, 이제는 무시를 해 버리네. 너무 자주 있는 일이어서 그런가?
“아아악! 진짜! 진짜 이번 것만 끝나면 내가 같이 던전을 도나 봐라! 같이 돌면 내가 개다, 개야!”
“저번에는 코끼리라면서요.”
후자군.
강희민이 한참을 걷다 멈춰 서더니 나를 보지 않는 채로 말했다.
“…형은 그래도 저를 이해해 주실 줄 알았―”
서운함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왜 그러냐고 이유는 묻지 않았다. 나도 알 것 같았으니까. 초췌했던 마허윤도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폈고, 강희민은 멍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뒤를 돌아보려던 차, 철퍽! 거대한 파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 들었다. 들러붙은 머리카락만 슬쩍 치워 시야를 확보하자 내 몸보다 몇 배는 거대한 그림자가 바닥에 드리워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땀과 바닷물이 뒤섞인 손을 주먹 쥐어 떨리는 것을 억눌렀다.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거대한 배 한 척이 바다 위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저거…….”
마허윤이 말을 잇지 못하고 두 눈만 동그랗게 떴다.
배 갑판 위, 누군가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고기의 꼬리처럼 땋인 긴 머리, 뺨에 울룩불룩 올라온 비늘. 화려하게 치장된 보석 장식 아래로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해적 의상이 보이고, 붉은 눈동자가 조용히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강희민이 벅차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윤시아… 씨.”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휘익. 금색의 커틀러스를 든 윤시아가 검의 끝을 우리에게 겨누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