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우리를 바라보는 붉은 눈에는 자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목을 썰 것 같은 칼날에 섣불리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저건 윤시아의 본래 모습이었다. 우리가 아는 A급 헌터 윤시아가 아니라, 한 땅의 왕인 윤시아.
‘우리를 못 알아보는 것 같은데.’
그 생각이 정답이라는 듯, 윤시아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
그 순간, 휘익! 커틀러스가 위로 휘둘러졌다. 동시에 파도가 휘몰아치며 우리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여기서 피하고 윤시아에게 공격을…….’
할 생각을 하는 거 자체가 미친 생각이었다. 모두가 손도 발도 쓰지 못했던 바다의 군주도 결국은 윤시아가 처리했는데.
하물며 그때 윤시아는 본인의 힘을 완전히 되찾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윤시아다. 본인의 힘을 전부 돌려받은. 그런 상대와 우리 셋이서 싸운다? 그냥 죽음을 자처하는 거지.
‘이것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파도가 우리를 덮치기 직전, 나는 마허윤과 강희민을 각 옆구리에 끼고 빠르게 뛰다가 땅을 박찼다. 펄럭! 단숨에 생긴 새하얀 날개를 펄럭여 빠른 속도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윤시아를 흘끗 바라보자, 따라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일전에 윤시아가 말했던 바다의 군주의 약점이 천만다행히도 똑같이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온 기력을 다해 날개를 퍼덕이다가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가서 추락했다. 나무에 치이고 떨어져 흙 위를 구르고 나서야 숨을 토해 냈다.
“헉. 허억. 후.”
탑에서 사용해 본 이후로 사용법은 알지만 기력을 죽기 직전까지 뽑는 연비 최악의 능력이라 사용하기를 꺼렸었다.
그런데 그걸 오늘 다시 쓰게 됐네. 바다의 군주 대응용 능력도 아닌데 말이야. 물론 약점을 가장 잘 파고들 수 있는 능력이긴 하지. 기력 때문에 거의 1회성인 거 빼면.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숨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윤시아는 아마 이 던전의 보스가 아닐 거야. 그랬다면 던전이 S급 이상으로 측정됐겠지. 육지로 올라올 기미도 없어 보이니 서둘러 보스를 찾고 빨리 나가야 해.”
“…심장 멎는 줄 알았네. 뜬금없이 왜 튀어나오고 난리야.”
마허윤의 졸음 가득했던 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뚱말뚱한 눈이 우리가 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 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무기력한 다리를 움직여 일어났다.
“가자.”
마허윤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지만 강희민은 영혼이라도 나간 듯 멍하니 굳어 있었다.
“희민아?”
“…….”
덥석. 강희민이 내 양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
“저 좀 도와주세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는 나를 잡은 강희민의 두 손을 떨궈 내고 그를 진정시켰다. 강희민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숨소리마저 떨리는 강희민은 제 목에 있는 펜던트를 꽉 쥐었다.
“방법, 방법이 있어요. 윤시아 씨는 단지 지금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러시는 거니까…….”
“뭔 소리야. 이렇게 맑은데.”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아무튼, 돌려놓을 방법이 있어요. 그러니까 도와주세요. 윤시아 씨에게 다가갈 수 있게만 도와주시면 나머진 제가…….”
“미칠 것 같다고 생각했지 이미 미친 놈인 줄은 몰랐네.”
마허윤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얼굴에 화가 덕지덕지 묻은 마허윤이 서 있었다.
“야, 강희민. 생각 좀 해. 세 번째 탑 갔을 때 다 뒤질 뻔했던 거 기억 안 나냐? 그나마 윤시아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없었으면 지금 지구 멸망하고도 남았어.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으로부터 도망가는 게 아니라 대치하자고? 심지어 돌려놓겠다고? 네가 무슨 수로? 아니,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쟤가 눈치를 못 챌까? 하물며 그때 윤시아도 우리의 도움이 있었으니 이긴 거지, 만약 마지막 시도 때 실수했으면 죽었을 거야. 지금은 윤시아가 그런 존재고.”
“그래도 방법이…….”
“아, X발. 야. 너 그 방법이 정말 백 퍼 완벽해? 아니잖아. 그런데 뭘 믿고 자꾸 나서려고 해? 세상에 내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어. 나서려면 과로로 뒤져 가는 네 몸이나 챙기고 나서든지. 그딴 몸으로 윤시아랑 대치하려는 것부터가 어이가 없다. 도대체 뭔 자신감이야? 윤시아가 널 알아볼 것이라는 자신감? 뭐 둘이 사귀었었어? 아니잖아. 근데 왜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세기의 사랑을 하고 앉아 있는데.”
마허윤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인지 나도 본 적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하지만은 또 뭔 하지만이야. 네가 내 목숨 책임질 거야? 어? 죽으면 살릴 수 있냐고. 그러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일단 도와 달라고 하면, 우리가 네 하인이냐? 시키는 대로 다 움직이게? 강희민아. 생각을 하자. 지금 달려들면 그냥 자살 쇼야. 난 오래오래 살고 싶거든?”
“…….”
강희민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마허윤은 이제야 좀 속이 시원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 강희민은 착잡한 듯 입술을 이로 짓누르다가 피가 나기 직전에 멈추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요. 만약에 다음번에 기회가 오면… 그때는 도와주실 수 있나요?”
“지금처럼 던전 뺑이 오지게 시키지만 않으면 당연히 가능하지.”
“…고마워요.”
나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어영부영 대화를 끝낸 우리는 곧장 보스를 찾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정리를 끝마친 후 출구로 나오자 조용했던 강희민이 대뜸 제 뺨을 쳤다.
“뭐야. 이젠 자해 공갈이야?!”
“아뇨.”
“뭔데, 그럼.”
“…형, 저랑 아이템 사러 가요.”
“…나 돈 없는데.”
“비실거리지 말고 가요.”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올 정도로 피로에 찌든 마허윤은 강희민에게 붙잡혀 빠져나오질 못했다.
“형도 가실래요?”
“아니.”
강희민이 아이템을 사러 가는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본인이 약해 윤시아의 앞에 서지도 못할 것 같기 때문이겠지.
윤시아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는 것이겠지만, 글쎄, 난 윤시아가 다시 나온다 하더라도 도와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전처럼 탑이 생겨서 층을 오를수록 보스의 힘이 깎이는 거면 몰라, 본래 가진 힘을 완벽히 사용할 수 있는 윤시아를, 과연 내가 돕는다고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와줄 거냐는 말에 답하지 않았다. 섣부른 판단은 자칫 죽음을 초래할 수 있으니.
“둘이 가. 난 할 일이 있어서.”
내 몸이 다섯 개였으면 당연히 도와주었을 거다. 그러나 나도 제 위치를 잘 아는 사람인지라.
윤시아는 현재 세 군주 중 한 명인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힘을 되돌려받기도 했으니까.
그 말은 우리와 싸우게 될 수도 있다는 거고, 둘 중 한 사람이 죽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는 싸움이 될 거라는 말이었다.
강희민은 무슨 또렷한 방법이라도 있는 건지 윤시아를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즉 다시 말해 윤시아를 되돌릴 확고한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윤시아와 접촉하는 순간 힘의 차이로 그게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그런 승산 없는 싸움에 나는…….
“형.”
“어?”
“형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
“이해해요. 지금의 윤시아 씨는 제가 봐도 강해 보였으니까요.”
“…잘 아네.”
“알아야죠. 어찌 됐건 닿아야 하니까요.”
“포기할 생각은… 없는 거구나.”
“던전이 다시 생긴 지금, 한 번 더 군주와 싸우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포기고 자시고 어찌 됐건 군주와 맞붙어야 하는 거고요. 전 그저 그날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만약 그런 날이 안 온다면?”
“올 거예요.”
반드시, 라는 단어를 당당하게 내뱉은 강희민이 펜던트를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튼, 걱정해 주신 건 고마워요. 하지만 전 포기 안 할 거예요. 무슨 일이 있건.”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요?”
“어떻게 그리 올곧아?”
“올곧다뇨?”
“그러니까…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걸 이루려는 게 대단해서.”
“그거야… 당연히 좋아하니까……. 말하기 부끄러우니까 대충 알아들으세요.”
그런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 가지고 목숨을 걸고, 목표를 가진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난 던전이 다시 생긴 지금에서야 그나마 목표가 생겼는데. 강희민은 본인이 목표를 정하고 직접 길을 만든다면, 나는 게임에서 정해진 퀘스트를 완료하는 플레이어의 캐릭터 같았다.
“원래 사랑이 사람의 공허함을 채워 줄 수 있는 가장 큰 감정이라 했어요.”
“누가 그런 말을 해. 사람마다 다르지.”
“어… 그러게요. 누가 해 줬던 것 같은데?”
“그냥 주워들은 말인가 보지.”
“그런가.”
옆에서 가만히 있던 마허윤이 성질을 부렸다.
“야, 강희민! 빨리 가자고!”
“어어, 네. 그럼 형, 나중에 또 봬요.”
두 사람이 걸음을 떼 점차 멀어졌다. 나는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