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연극】
“뭐 어쩌라는 걸까요.”
어느 지하. 불이 밝게 켜졌지만 그뿐이었다.
“글쎄.”
작은 콘서트장 같기도 한 공간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별다를 건 없었다.
불이 켜진 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곳저곳 뒤져 본 탓에 주위는 엉망이었다. 철로 이루어진 의자는 부서지거나 한쪽으로 밀려 있었고, 곳곳에 놓여 있던 소품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게 부서져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개판이었다.
“뭐, 연극이라도 하라는 뜻인가.”
나는 투덜거리며 무대 앞에 정리된 붉은 커튼을 쭉 잡아당겨 커튼을 닫았다. 다음엔 반대쪽 커튼까지 당겨 무대를 커튼으로 막고 커튼 옆에 있는 줄을 붙잡았다.
“커튼 줄이 있었네요. 이거 잡아당기면 그냥 열리나?”
“아마.”
이미 흥미를 잃은 류천화 씨는 나에겐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고 어떤 기계를 분해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냥 부수고 있었다.
쭈욱. 나는 낡아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줄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연극을 보면 이제 커튼이 열리면서 연극이―”
팟.
커튼이 열리자마자 순식간에 밝았던 주변이 어두워지며 모든 빛이 무대 위를 비추었다.
“…오.”
덜커덩. 류천화 씨가 손에 쥐고 있던 고철 덩어리를 아무 데나 던지고 무대 앞으로 왔다.
무대 위에서는 연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전혀 꾸며지지 않은 사람만 한 목각 인형이 붉은 실에 매달려 실을 따라 움직였다. 연극 같기도, 인형극 같기도 한 무대. 딱 그 정도였다.
딱히 흥미나 관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관심 끌기용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나저나…….
‘내가 생각해도 연기를 꽤 잘하는 것 같단 말이지.’
커튼을 닫는 것도, 줄을 찾아 한 번에 여는 것도 전부 고의적. 말 그대로 나 혼자 짜고 친 연기였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 빠르게 끝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
“상대 배우가 없군.”
“그러게요.”
목각 인형 하나만이 무대 위에서 삐걱삐걱 움직였다. 오롯이 혼자서.
“배우를 하라는 걸까요? 아니면 관객?”
“둘 다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네?”
“마침 둘이니.”
류천화 씨를 바라보자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치 하나는 빨라서 좋다니까, 참.
“음……. 그럼 제가 올라갈게요.”
나는 인심 쓰듯 말하곤 무대 위로 폴짝 올라갔다.
“…….”
“…….”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조용한 정적에 멋쩍은 듯 머리를 매만지다가 손아귀에 낫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가볍게 휘둘러 목각 인형의 목을 잘라 냈다.
퉁. 투두둥.
잠시 바닥에서 구르던 목각 인형의 머리가 이내 시간을 되돌린 듯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 모습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붉은 실을 끊어 내자 덜그럭, 텅, 목각 인형의 몸이 분해되며 무대 위에 힘없이 늘어졌다.
“…끝. 끝?”
“위.”
후욱. 단숨에 무대 위로 올라온 류천화 씨가 내 머리 위를 스쳤다. 그는 무언가를 붙잡고는 이내 내 옆에 안착했다.
“무슨…….”
“감각이 둔한 편인가?”
류천화 씨의 손에서 끊어진 붉은 실들이 후드득 떨어져 나갔다.
“…실?”
바닥에 떨어진 붉은 실을 보다 말고 곧장 위를 바라보자, 붉은 실들이 벌레처럼 천장에 득실거렸다.
“뭔…….”
의문에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쿵! 무대에 무언가가 착지하며 거대한 진동을 냈다.
“퍼즐이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하나.”
류천화 씨가 작게 중얼거렸다.
큰 소리에 바닥으로 향했던 고개를 들어 올리자 진동의 정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되는 크기. 얼굴의 주위를 떠다니는 다양한 표정의 가면. 깔끔한 정장 차림의 목각 인형이 서 있었다.
“중간 보스겠죠?”
“아마 그런 것 같은데. 혹은 열쇠일 수도 있고.”
“그런데 왜 목각 인형일까요?”
“무슨 뜻이지?”
“그렇잖아요. 지금까지 검은 주민들이 득실댔고 심지어 갑옷 안에도 검은 형체가 있었는데 중요한 보스 몬스터는 그냥 목각 인형이고. 아무런 연관이 없지 않아요?”
“꽤 그럴싸한 의문이긴 하지만―”
쾅! 어느새 달려온 목각 인형의 주먹이 류천화 씨의 팔에 막혔다.
“어차피 죽여야 할 것에 큰 의미는 두지 않는 걸 추천하는데.”
“…그렇죠.”
나는 손아귀에 낫을 만들어 내 한 번 빙글 돌린 후 바로 앞에 있는 목각 인형을 향해 휘둘렀다.
까가각! 힘껏 휘두른 낫의 날이 깊게 베지 못하고 멈춰 섰다. 정확히는 처음부터 베지 못하고 목각 인형의 손에 잡혀 막혔다.
“등급 없었죠, 여기.”
“측정 불가였었지.”
“그러면 얘가 S급일 수도 있겠네요.”
“아마.”
콰앙! 류천화 씨가 반대 손으로 목각 인형을 강하게 강타하자 거대한 진동과 함께 목각 인형이 반대쪽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잠시 삐거덕거리던 목각 인형이 이내 다시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다가.
“어.”
딸깍. 아무것도 없던 목각 인형의 얼굴 부분에 우는 가면이 쓰였다. 그와 동시에 무대가 거세게 흔들리며 종이로 만든 것 같은 가시넝쿨이 무대를 장악했다.
“이건 또 뭔…….”
넝쿨들은 쉴 틈 없이 우리에게 달려들어 우리가 목각 인형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막았다.
캉! 캉! 나는 낫으로 종이 넝쿨을 내려쳤다. 분명 종이로 만든 것 같은데 어째서 이리 단단한 것인지. 게다가 낫을 내려칠 때마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넝쿨에 본격적으로 대응하려던 찰나, 목각 인형의 가면이 화난 가면으로 바뀌며 무대 위에 있던 넝쿨들이 사라졌다. 곧이어 목각 인형의 손에 거대한 검이 쥐어졌다.
“이러다간 끝도 없겠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좀 해 봐요.”
“우선 저걸 부숴 보면 알겠지.”
팔락. 순간 시야에 들어온 붉은 무언가에 고개를 돌려 보자 어느새 한쪽 어깨에 하얀 털과 붉은 천으로 이루어진 왕의 망토와도 같은 것을 두른 류천화 씨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완전한 문양 개방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다만.’
류천화 씨의 문양 개방 모습은 그와 참 잘 어울렸다. 거만한 태도임에도 일 하나는 잘하고, 입만 벌리면 없는 호감도 떨어지는데 얼굴은 나쁘지 않고. 딱 괴팍한 왕이랑 같지 않나.
“무슨 할 말 있나?”
“아뇨. 그냥 잘 어울려서요.”
쾅! 거센 바람이 불 정도로 강하게 목각 인형이 칼을 휘둘렀다. 나는 곧장 날아오는 공격에 맞대응하여 거센 별을 쏘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류천화 씨가 의아한 듯 물었다.
“무슨 일 있나?”
“문득 생각난 건데요. 일단 여기 테마가 연극이잖아요.”
휙. 나는 목각 인형의 공격을 피하고 말을 마저 이었다.
“그럼 저건 무슨 역일까요?”
“…용사?”
“역시 그렇겠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저쪽이 용사면, 저희는 악당일까요?”
“…생각이 풍부하군그래.”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요.”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온 말이었지만 어차피 이 뒤로도 자연스레 말할 타이밍은 없었기에 아무 때나 말해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한편에 혹시? 라는 생각을 심어 두기만 하면 됐으니까.
지이익. 류천화 씨의 주먹에 맞은 목각 인형이 뒤로 밀리며 고통에 배를 쥐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다 달그락, 가면이 바뀌었다.
진하게 웃는 가면.
그리고 동시에, 아무런 것도 없던 평범한 검이 밝게 빛을 내고 자잘한 보석들이 박혔다.
“장난이 지나친데.”
콰앙! 빠른 속도로 목각 인형에게 날아간 류천화 씨가 그대로 목각 인형의 목을 쥐고는 뿌득, 목을 가볍게 부숴 바닥에 던졌다. 머리를 잃은 목각 인형의 몸은 힘없이 바닥에 너부러졌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힘.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우리 둘 다 힘을 조절하여 사용했으니. 이번에는 조금 참을 줄 알았건만, 그럼 그렇지.
“연극이고 뭐고, 몬스터는 그냥 죽이면―”
달그락. 끼기기긱.
목각 인형이 몸을 뒤틀며 다시 일어나 부서져 나뒹구는 제 머리를 몸에 끼워 맞췄다. 그러곤 아까 처음에 썼던 우는 가면을 얼굴에 써 가시넝쿨을 만들어 냈다. 그 모습에 류천화 씨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목각 인형을 향해 다시 거센 주먹을 날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그냥 부수는 거는 소용이 없나 봐요.”
목각 인형의 몸이 부서져도, 몸 부위들을 다른 데에 던져 보아도, 목각 인형은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연극을 이어 갔다.
“무슨 조건이 필요한 모양인데.”
“그런가 봐요. 제가 말한 대로 해 보실래요?”
류천화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려가 계세요.”
“무슨 소리…….”
“본래 연극에 악당은 한 명이잖아요. 두 명이면 용사 죽어요. 그리고 관객 없는 연극은 쓸쓸하잖아요.”
“…….”
류천화 씨는 내 말에 미간을 잠시 찌푸리다가 이내 조용히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사실 두 명이 해도 되긴 하지만.’
저 사람이 무대 위에 있으면 한 번에 깨는 것은 물 건너가기에 나 혼자 하는 것이 편했다.
지직. 발을 살짝 돌리고 무대 위, 반대편을 바라보자 목각 인형이 다시 우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뚜두둑. 가시넝쿨이 무대 위로 나타나 이내 꾸물꾸물 움직였다. 나는 곧장 전투태세를 취하고 다가올 넝쿨에 대비했으나.
“…어.”
넝쿨은 꾸물거리며 목각 인형을 보호할 뿐, 나에게 다가오지도, 공격하지도 않았다.
넝쿨은 공주 곁에 그 누구도 다가가지 못하게 막는 수단. 그걸 만들어 낸 것은 악당 역할인 나였기에 아무런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조금 전에는 역할에 맞지 않게 행동했기에 공격했던 것이고.
이내 목각 인형의 가면이 화난 가면으로 바뀌며, 거대한 검을 쥔 목각 인형이 빠르게 다가와 나를 공격했다. 거대한 검은 날이 내 어깨를 스쳤다.
‘그래도 싸울 때는 류천화 씨가 있는 게 제일 편하긴 한데.’
퍼버벙! 목각 인형에게 닿은 별들이 터지며 목각 인형의 가지런한 정장이 너덜너덜해졌다.
콱! 갑자기 붙잡힌 목에 켁 하는 소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대한 검의 날이 반짝이며 나를 향했다. 나는 곧장 내 목을 잡은 목각 인형의 팔을 잡고 으스러뜨린 다음 목각 인형의 배를 걷어찼다.
“으…….”
목각 인형이 부서지지 않게, 약하게 공격하느라 이따금 공격에 맞는 상황이 생겼지만 이 스테이지를 깨는 게 중요했다.
이 연극을 끝내는 것이, 스테이지의 클리어 조건이고, 클리어하려면 이 목각 인형이 끝까지 연극을 해야 했으니까.
쿠당탕 날아가 벽에 부딪친 목각 인형이 다시 일어나더니 가면을 웃는 가면으로 바꿔 썼다. 그러곤 곧이어.
‘이제야 마지막이네.’
검이 성검처럼 밝게 빛나며 나에게 겨누어졌다. 목각 인형은 아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공격을 받기 위해 낫을 쥐고 방어 태세를 취하려고 한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당황한 듯 몸을 이리저리 버둥거렸으나 어느새 몸에 엮여 있는 붉은 실에 꿈쩍도 하지 못하고 두 팔이 벌려졌다.
옆에서 류천화 씨가 곧장 무대로 올라오려고 하자, 이내 수없이 많은 붉은 실들이 그런 류천화 씨를 밀어냈다. 류천화 씨는 붉은 실을 끊어 내고 올라오려고 했지만 수없이 많은 붉은 실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라나 소용이 없었다.
“…어.”
나는 멍청한 소리를 내뱉으며 달려오는 목각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류천화 씨를 향해 삐거덕 고개를 돌린 순간.
푸욱.
정확히 몸 한가운데, 거대한 검이 박혔다.
툭. 투둑. 내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시야가 흐려지며 주변이 흐리멍덩하게 보였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 입이 뻐끔거렸지만 쇳소리만 나올 뿐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으나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흩어져 들리지 않았다.
툭.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더 이상 몸이 서 있을 수가 없게 됐다. 그리고 이내.
촤아악!
몸에서 검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내 모든 의식이 멈췄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