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쌓인 고통】
새하얀 카펫이, 처음부터 붉었던 것처럼 변해 갔다. 주르륵, 어깨를 붙잡은 손이 힘없이 무너져, 내 몸을 스쳐 지나갔다. 온몸에서 피 냄새가 진동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개가 먼저 움직여 아래를 바라보았다. 형이 힘없이 무너져 내려, 피를 울컥 토해 내고 있었다. 상처를 막으려는 행동 하나 하지 못하고, 힘없이 죽기를 기다리는, 회귀 전 마지막 모습처럼.
아. 돌아가는구나.
확신할 수 있다.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익숙한, 확실한…….
누군가 내 몸을 붙잡았다. 시야가 그림자에 어두컴컴해졌다. 흐릿했던 시야를 겨우 바로 해 앞을 보니 승현 헌터가 서 있었다.
“한 …… 정신 …… 괜찮 ……”
삐― 이명이 들려 무어라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형이 아직 안 죽었나? 왜 안 돌아가지?
“잠깐만요. 잠깐만 비켜 주세요.”
승현 헌터를 밀어내려 했으나, 그는 꿈쩍도 안 하고 버텼다.
“괜찮으니까… 잠깐, 잠깐만.”
정말 괜찮다. 다만 형이 목숨을 애매하게 부지하고 있으면 돌아가는 데 오래 걸리기만 하고, 그동안 형만 아픈 꼴이었다. 그럴 바에는 내가 빨리 형의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게 낫다.
툭. 나는 승현 헌터의 몸을 겨우 기울여 그 너머를 보았다. 형의 몸 위로 유아한 씨가 손을 얹어 어떻게든 피를 막으려는 듯 보였다.
형의 몸에서 울컥 피가 터져 나오기만 하고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아하니 유아한 씨가 힐을 하는 것 같은데 안 통하는 모양이었다.
“심장이 …… 빨리 뭐든 ……”
“입 좀 다물어요! 지금 …… 있는데 ……”
“형! 보지 마시고 ……”
말소리가 물에 들어간 색소처럼 번져 잘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뚫린 건 심장이었다. 아무리 헌터라도, S급이라도 죽음을 피해 가기 어려운 심장. 그게 정통으로 꿰뚫렸는데, 끽해야 5초도 못 넘길 텐데 왜.
왜.
왜.
안 돌아가는 거지?
‘죽었잖아. 숨이 멎었잖아. 심장이 기능을 안 하잖아.’
그런데 왜?
‘회귀하는 방법이 바뀌었나? 형이 죽고 나서 시간이 흘러야 회귀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직접 죽여야 회귀할 수 있는 건가?’
머리에 불이 난 것처럼 생각이 이리저리 튀었다. 아니, 애초에…….
‘형이, 죽어?’
형이 죽은 세상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이 죽는 동시에 다시 돌아가, 죽자마자 살아나니까.
그래. 그럴 리 없다. 그런데 왜 지금 눈앞의 형은 움직이지 않는 거지?
그래. 형은 살아 있는 거다. 죽을 리가 없잖아. 죽은 척하는 거잖아. 그렇지? 그렇다고 해. 빨리 일어나서 그렇다고 하라고.
“왜.”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는데.
“…….”
나는 승현 헌터의 몸을 잡은 채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승현 헌터가 내 몸을 붙잡았다.
나는 두 눈을 형에게 고정한 채 멀뚱히 있었다.
이건 환상이다. 죽은 척이야. 형이 죽을 리 없어. 죽을 수가 없어. 내가 다시 살려 내니까. 그러니까 저건 가짜다. 이 모든 게 가짜야. 그저 꿈을 꾸는 거다. 또 꿈의 군주가 나타난 거야. 나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어디 있어. 어디 있지? 꿈의 군주는 분명 내 손으로 죽였는데. 다시 살아난 건가? 그럼 이번에야말로 죽여 주마. 내 손안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주제에 이런 잔꾀를 부려? 편하게 죽는 건 포기해라. 넌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여 주마. 지옥이 두렵지 않을 만큼.
“한지언 헌터!”
“아아…….”
승현 헌터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또 누가 다쳤나?
“한지운 헌터는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진정해 주십시오!”
“어어…….”
거짓말이다. 승현 헌터의 표정에 슬픔과 불안이 한가득이었다. 내가 불안에 떨까 봐 하는 달콤한 거짓말이었다.
“형은……. 형은…….”
죽은 거지? 근데 어차피 꿈이잖아. 그렇게 많이 회귀했는데, 갑자기 형이 죽은 세상이 올 리가 없잖아. 형이 죽은 세상 따위 존재할 리 없잖아.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건데.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데. 이게 갑자기 안 될 리가 없잖아. 갑자기 끝날 리가 없잖…….
꾸득. 눈앞에 있던 승현 헌터의 머리가 기울어져, 피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진즉 문양 개방이 풀린 형의 모습 뒤로 다른 이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내 발치에 쓰러진 승현 헌터. 형의 몸 위로 엎어진 유아한 씨. 가장 멀리 쓰러져 있는 류천화 씨. 그 뒤의 유주한. 웅크린 채 있는 지화연 씨.
그 아래 새하얘야 할 카펫이 붉었다. 온통 붉다. 늘 보던 마지막. 멸망하던 세상의 하늘처럼 새빨개졌다.
무어라 말하고 있던 사람들이 단숨에 입을 다물어, 누군가의 웃음소리 말고는 들리지 않았다. 깔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어 정신을 장악하는 것만 같았다.
“이거야! 힘을 자부하던 이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 그리고 회귀자의 공포! 자아, 어떠냐, 회귀자! 이런 고통은 처음이지! 이런 공포는 없었을 거다! 모든 게 바로 이 몸이 직접 행차한 덕분에 일어난 일이니! 나 말고 이런 일이 가능한 이는 없다! 새롭지 않나? 짜릿하지 않나? 아하하하!”
“…뭘, 한 거야.”
“음? 무엇을 말이지?”
“왜, 돌아가지 않는 거지?”
“그거야 네가 안 죽었으니 그런 거 아닌가! 일부러 마지막까지 남겨 뒀지! 애피타이저 이후에 먹는 아름다운 앙트레다! 너는 나의 앙트레야! 수많은 고통을 누린 회귀자가 새로운 고통에 잠식돼 울부짖으니.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미식인가!”
“나한테 뭘 한 거야.”
“그렇게 더! 더! 고통에! 공포에! 그럴수록 더욱 맛있어지니까!”
언제 주저앉았는지 모를 내 앞으로 화려한 보석이 찰랑거렸다. 마네킹처럼 차가운 손이 내 두 뺨을 틀어쥐어 고개를 올렸다.
“아아. 이거다! 이거야! 내가 기다려 온 완벽한 만찬!”
햇살처럼 밝은 미소가 내 눈앞에 보여 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왜 형이 죽은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다. 알 리가 없었다. 이런 적은 없었다. 탑이 생긴 것도, 왕을 죽인 것도, 형이 기억이 있는 것도.
그 무엇 하나 알지 못했다. 그 무엇 하나 갑작스레 들이닥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즉, 회귀의 끝도, 갑작스레 들이닥친다는 거다.
오랫동안 반복하였던 회귀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회귀가,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세상을 구한다는 목표 아래 그 누구도 지키지 못한 채로 회귀가 끝난 거다. 인생이 끝난 거다.
드디어 끝난 걸까. 그래. 드디어 끝난 거다. 좋은 거야. 그렇게 바라 왔던 거잖아. 세상을 구한다는 목표 이전에 회귀를 끝내는 거.
어차피 세상을 구하는 게 아니라면, 헌터가 아니라면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버러지인데. 차라리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더 편할 테다.
목이 옥죄어졌지만 별다른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는 환희로 가득한 이가 아름답게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아아. 죽는다. 억지로 연결된 생의 끝이야. 그래. 그런 거다.
그런
거다.
―정신 차려라!
콱!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붙잡혀 뒤로 끌려갔다. 곧이어 나는 새하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옆으로 분홍색 물체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지금 가만히 당할 때냐! 너의 사람들을 전부 죽인 이의 손에 그렇게 죽음을 맞이할 거냐!
선생님이 처음 보는 얼굴로 호통을 쳤다.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목에 핏줄이 돋아나고, 힘을 주느라 뼈가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었다.
“왜 막으셨어요?”
―뭐?
“왜 막으셨냐고요. 끝이 바로 앞에 있는데.”
―끝이라고? 정녕 너는 이렇게 끝을 맞이하고 싶은 거냐?
“제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예요? 몰랐네.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 사람한텐 최고의 최후 아니에요? 애초에 끝이잖아. 개같이 안 보이던 끝이잖아. 근데 왜 막으셨어요. 왜 막았냐고. 아니다. 그냥 제가 할게요. 저런 버러지에게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시다는 거죠? 그럼 그냥 제가 제 목숨을 끊어 버릴게요.”
―헛소리하지 마라! 그럼 지금까지 네가 한 건 뭐냐! 그렇게 끝을 원했으면서 아득바득 군주들을 죽이고! 왕을 죽이려 들고! 다른 사람들을 구해 내고!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잖아요! 그렇게라도 해야 끝이 보일 것 같으니까!”
―정말 이런 끝을 원해서 지금까지 그렇게 한 거냐? 아니잖아! 네가 바라는 끝은, 평화로운 세상의 모습이잖아! 그곳에 너 역시 존재하길 바라는 거잖아! 그런데 뭐? 이제 와서 이런 버러지 같은 끝을 보겠다고? 네가 정녕 바라는 것을 감추고? 헛소리도 정도껏 해라!
“헛소리는! 선생님이 하시는 거고요. 저는 처음부터 이런 걸 원했어요. 완벽한 끝. 지친다고요. 나도 결국 사람이라고! 절대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형도 안식을 얻었어요. 그런데 나는 그러면 안 돼?!”
―저런 남의 고통으로 힘을 채우는 놈팡이에게 죽지 말라는 거다! 적어도 저런 녀석은 죽이고 죽으라는 거다!
“그럼 직접 죽이시든가요! 왜… 왜 저한테 이러시는 거예요. 선생님은 잘 아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그러니까 이러는 거다! 너를 잘 아니까! 세상 다 산 것처럼,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너도 결국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런다는 거! 그걸 빼면 그냥 철도 안 든 어리석은 애송이라는 거!
“…….”
―그러니까, 무너지지 말고, 제대로 싸워!
“…늦었어요, 선생님.”
꾸드득. 목에 날카로운 물체가 파고들어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모두가 죽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힘도 뭣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과거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도록 도와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런 존재다. 그러니 아무도 없으면 살 필요가 없다. 나는 거머리니까.
“우웨에엑!”
속 안이 뒤틀리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흐릿해져 갔다.
“하. 하하하.”
세상 하나 구하지 못한 회귀자의 말로다. 참으로 완벽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