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꺼풀에 피로가 한가득했다.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기엔 생생하게 들리는 소리와 심장 박동이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려 주었다.
눈꺼풀을 찬찬히 들어 올리자마자 보인 것은, 형의 등이었다. 형의 바로 앞으로 무언가가 재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생각할 시간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여, 형을 옆으로 밀어 버렸다.
꽈드득! 팔이 뒤틀어지는 게 느껴졌다. 새하얀 소매가 단숨에 붉게 물들었다.
나는 팔에서 떨어지는 피를 뒤로한 채 곧장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형이 쓰러져 있었다. 늦은 거다. 또.
새하얀 카펫이 붉게 물들었다. 난 결국 실패하는구나. 기회가 내려져도 실패하는 거야. 그래, 내가 그렇지.
‘내가 매번 형을 제대로 안 구해서, 그냥 없애 버리려는 건가.’
늘 제멋대로인 세상이, 운명이, 내게 세상을 구하라고 재촉하는 거다. 내가 세상을 제대로 구하지 않아서. 세상을 구하질 못해서. 나에게서 하나씩 앗아 가려는 거야.
‘그래서, 형이…….’
가쁜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소리에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아. 나한테 왜 그래,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난 그냥 끝내고 싶어서 그런 거지 나쁜 짓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내가. 내가.
콱. 손목이 잡혔다. 틀어막았던 귀가 트이며,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끝나지 않는 호흡을 내뱉으며 마주한 시선을 바라보았다.
“지언아.”
형이었다. 피투성이지만 멀쩡히 두 발로 서 있고, 살아 숨 쉬고, 말하고, 눈을 마주치는. 내가 아는 세상의 형이었다.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을, 없어지면 안 될 존재가, 내 눈앞에 있었다.
“진정해.”
“…….”
가빴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까 있었던 일이 꿈이라도 되는 듯했지만, 형의 배에는 치료가 덜 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살린 거다. 죽을 운명이었던 형을 살린 거야.
그래, 이게 정상이다. 형이 사라진 세상이라니 이상하잖아. 그런 게 올 리가 없잖아. 나는 형이 죽어야 회귀하고, 형은 그렇게 죽는 순간 다시 살아나는데. 죽은 채로 시간이 흐르는 건, 이상하잖아.
“괜찮아.”
형이 당황하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래, 괜찮다.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이제 괜찮다. 아니. 애초에 괜찮았다. 이런 거에 타격을 입는 게 이상하잖아. 내가 그동안 무슨 일들을 겪어 왔는데. 겨우 이거 가지고. 이거 가지고. 이거…….
“으응. 이상하다. 어떻게 알아챘지?”
목이 찢어진 듯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저 목소리. 저것이, 감히 넘봐선 안 될 것을 넘봤다.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안 됐다.
“…너, 남의 고통으로 힘을 키우지.”
“오? 어떻게 알았어? 그래서 네 형제를 죽이려 했는데, 실패했네. 눈치 빠르다?”
“…그 고통이라는 거, 예전에 겪은 고통도 포함되는 건가?”
“물론! 기억도 먹어! 나는 편식 안 하는 착한 아이니까!”
“그래. 하나만 더 묻지. 넌 사람인가?”
“당연하지?”
“…그래.”
“그게 끝이야? 뭐야. 내 능력을 알아서 흥미로웠는데, 겨우 그게 끝? 재미없어. 역시 난 고통에 울부짖는 걸 보는 게 제일 즐거운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그놈의 고통, 고통.”
나는 비틀거리며 형의 팔을 뿌리쳤다.
형이 어찌할지 몰라 팔을 휘적거리는 동안 나는 화려한 미소를 짓는 저 얼굴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응? 왜? 아, 혹시 가장 먼저 죽고 싶어서 그래? 고통받는 걸 좋아하는구나!”
“…….”
툭.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다다라서야 나는 걸음을 멈췄다.
“좋아! 넌 특별히 가장 고통스럽게 해 줄게! 넌 어떤 비명을 지를까?”
“…고통이고 비명이고…….”
툭. 화려한 얼굴에 내 손이 얹혔다. 이제야 안 보인다. 가증스럽고 기분 더러운 얼굴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응? 뭐 하는…….”
쩌억. 손 밑으로 입이 벌려지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끼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좋아한다며?”
나조차 기억을 떠올리면 진저리 나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인 고통을, 결국 같은 사람인 네가 한 번에 받으면, 어떻게 될까.
“이게, 도대체 무슨……. 아. 아아아아아아!”
쿵. 치장된 보석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마네킹처럼 생겼던 자가 정말 마네킹이라도 된 듯, 모든 행동이 멈추고 숨이 멎었다. 이거면 됐다. 방해꾼은 없다.
제대로 숨이 멎었는지 확인할 가치도 없었다. 겨우 이런 녀석이었다. 과한 힘을 가진 채 자만해 있다가, 더 큰 것에 부딪히면 힘없이 나가떨어질 것들.
이래서 나는 운 좋게 강한 힘을 얻은 자가 날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만심에 빠져 본인이 왕이 된 줄 아니까.
나는 몸을 틀어 다시 형에게로 돌아갔다. 찢어진 옷 아래에는 더 이상 상처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미처 닦지 못한 피를 제외하고는 멀쩡했다.
그래. 멀쩡하다. 이래야 형이다. 죽은 시체의 모습을 할 리가 없는 사람. 이게 당연한 거야. 이게. 이게.
“지언아. 괜찮아?”
“…….”
왜 갑자기 회귀가 멈춘 걸까. 왜 내가 죽으니 애매한 타이밍으로 돌아간 걸까.
그러다 문득,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앞으로 한 번.」
왕에게 죽임을 당한 이후, 살아나기 전 자신을 작가라 칭하던 이가 했던 말. 설마 그때 말했던 한 번이, 원하는 타이밍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기회였던 걸까.
그러면 이제 그 기회조차 사라진 거다.
‘이제 와서 왜.’
그동안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멀리서 구경하던 존재가, 왜 이제야 나타나 날 돕는 걸까. 하물며 그 도움도 애매하게.
나한테 대체 뭘 원하기에, 이 끝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걸까. 그럼 본인이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왜 나한테 시키는 거지. 내 의견은 상관없이.
“한지언 헌터. 방금 뭘 한 거지?”
“…….”
“아까 그 고통이니 사람이니 한 건 뭐예요? 그리고 왜 한지언 헌터가 손을 가져다 대니까 허무하게 죽어 버려요? 애초에 정보는 어떻게 알고 계신 거예요? 분명 아무것도 모른다 하시지 않으셨어요?”
“…….”
류천화 씨와 지화연 씨의 물음에 아무런 답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른다. 모른다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이제 다. 다.
“지언이 상태가 안 좋아 보입니다.”
“…그러네요. 죄송해요. 너무 황당해서 그랬어요.”
“저것을 죽이고 나더니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군. 정보를 알게 된 것과 연관이 있는지 묻고 싶지만… 지금 꼴을 보니까 들어도 답이 아닐 것 같아. 그만 나가지.”
나는 형에게 들린 채 출구로 향했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숨도 쉬기 싫다.
예전에 느꼈던 기분과 같았다. 그때는 지속되는 회귀에 지쳐 그랬는데, 막상 회귀가 끝난다고 하니까 무서웠다.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 늘 돌아왔던 것이 평생 돌아오지 않아, 사라진다는 것이. 그 모든 것이 두려웠다.
내가 무언갈 할 때마다 일이 이상하게 틀어졌다. 걸음 하나에도 모든 게 바뀔까 두려웠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은 여전히… 잠겨 있습니다.”
“어. 여기 뭐가 적혀 있어요.”
“그 작은 게 보여?”
“응. 그러니까… 어… 어?”
“무슨 일이십니까, 유주한 헌터.”
“그러니까… 그게, 적힌 게 조금 이상해서요.”
“그냥 말해.”
“그, 가장 많은 동족을 죽인 사람만이 문을 열 수 있다는데요?”
“뭔 그런 게 열쇠야.”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그냥… 낙서 같은 거 아닐까?”
“그렇다기에는 문 바로 앞에 있으니, 그냥 낙서는 아닌 것 같네요. 그럼 누구냐를 추정해야 하는데, 그냥 다 한 번씩 밀어 보면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러다가 평생 못 열 수도 있지. 기회가 한정되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일단 승현 헌터가 문을 열려고 했을 때 안 열렸으니까 승현 헌터는 아닐 테고. 참고로 전 살인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저, 저도요!”
“그럼…….”
나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뜨길 반복했다. 눈이 답답하고 뻑뻑했다.
멍하니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무얼 위해 노력하는가. 지금껏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그저 마음이 편하려고 한 거다. 남에게 짐을 떠맡기기 싫어서.
그런데 그게, 이제 그 이유가 애매해진 지금에 와서야 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떠맡기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놈의 알량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나는 바닥으로 발을 떨구어, 문으로 향했다. 뒤에서 누군가가 작게 나를 부르는 듯했으나 끝내 나는 멈추지 않고 문 앞에 다다라 손을 뻗었다. 손을 문에 가져가 앞으로 밀자, 문은 너무나도 손쉽게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