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
형의 얼굴을 보자 무척이나 머쓱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말은 진지하면서,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런 맥 빠지는 모습에 나 역시 덩달아 맥이 빠졌다.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이런 우울감에 빠져 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아는데. 실의에 빠져서 이도 저도 못 하고.
그래, 네가 바라던 거였잖아. 위험 요소가 전부 사라졌을 때 반복이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희망 사항이 이루어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 살아 있으면 된다. 살아… 있으면.
“…형.”
“응?”
“…몸 아껴. 죽지 말고.”
“노력해 볼게.”
그래. 노력하면 안 죽을 인간이 남 감싸다 죽지 말라고.
“그런데 지언아.”
“또 왜.”
“다른 사람들한테는, 정말 말 안 하려고?”
“해 봤자 좋아질 게 뭐 있다고.”
“그래도 너한텐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일 거 아니야.”
“그게 뭐 대수라고.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모든 걸 털어놓을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너한테는 믿을 만한 사람들인 거잖아.”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 해도 말할 게 있고 아닌 게 있는 거야.”
―그런데 사실 엄청 말하고 싶어 한다?
“겔탄, 들어가.”
헛소리하고 있어.
“지언아. 강요하려는 건 아니야. 그냥… 조금은 편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
“말하면 더 불편해져.”
“타이밍이라는 게 있잖아. 지금이 딱 적당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너랑 나를 수상하게 보고 있잖아.”
“…그걸 알고 있었다고?”
“응? 모르면 바보지.”
“그런데 그렇게 막 행동한 거라고?”
“난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길 바랐으니까.”
아.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나왔다. 그래, 형은 나 이후로도 계속 다른 사람한테 말했지만 실패했다고 했지.
‘애초에 말하려고 했으니까, 숨겨야 할 이유가 없기도 하네.’
아마 처음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거니까 오히려 더 말하고 싶었을 거다. 난 처음에…….
‘말 안 했네.’
나는 사람들이 한 번 죽었다는 것이 무서워 입을 다물었고, 영웅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들떠 있기도 했다. 물론 전과 다를 바 없고 능력 조종도 여전히 못한다는 점에서 금방 심한 자괴감에 빠졌지만.
‘회귀한다는 걸 말했을 때, 어땠더라.’
상황마다 달랐기 때문에 누구는 분명 이렇게 반응할 거라고 말은 못 하지만, 대체로 초반에 말하면 의심과 함께 병원을 추천하고, 중반에 말하면 믿긴 하지만 결국 이길 수 없다는 거에 절망하고, 죽기 전에 말하면 그랬구나 하고 말았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이유는 말해 봤자 상황만 더 안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말하는 순간 멸망이 더 빨리 찾아온다는 게 크지만.
‘지금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회귀했는데요, 이제 못 하게 됐습니다. 이전에 반복하던 삶이랑 이번 삶이 완전히 달라서 예전 기억도 있으나 마나입니다! 나만 그냥 좀 고통받고 끝난 거죠! 물론 다 죽은 거 제가 되돌리긴 했어요. 하하.
아, 그거 아십니까? 이번 회차가 저번 회차들이랑 다른 이유가 왕도 이전의 기억이 있어서랍니다. 원래는 탑이라는 것도 없었어요.
제가 처음부터 여러분들께 꽤 친근하게 다가갔죠? 제 입장에선 정말 친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거 아십니까? 세상에 작가가 있어요! 근데 무슨 작가인지는 모르겠네요!
‘정신병 걸린 거 같은데.’
했는데 끝났다. 없었는데 새로 생겼다. 막장 드라마도 안 이러겠다.
“지언아.”
“왜 또.”
“나도 이번에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말하려고.”
“뭐를.”
“소설에 빙의…한 줄 알았는데 엉뚱한 미래의 기억이 있다고.”
“저번에 말했을 땐 인식 못 했다며?”
“왕이 죽었잖아.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해 보고 싶어.”
“그래, 뭐.”
형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역시 그랬군, 그러니까 그런 불도저 같은 행동을 한 거야! 라며 쉽게 납득할지도 몰랐다. 나도 진즉 수상하게 행동할 걸 그랬나?
아니. 나도 충분히 수상하게 행동한 것 같은데. 약해서 못 미덥나? 하긴. 회귀 같은 건 보통 강한 사람이 하는 편이니까. 아니면 성장의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난 아무것도 해당 안 되니까 못 믿을 법도 하네. 능력 없어서 서럽다, 서러워.
“그러니까, 너도 같이 말할래?”
“어?”
“내가 먼저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더 잘 믿어 줄 수도 있잖아.”
“그건 형의 말이 다른 사람들한테 인식이 된다는 전제하에잖아?”
“그러니까. 만약 아무도 듣지 못한다면, 그땐 너도 말하지 말고.”
“강요 안 한다며?”
“부탁하는 거야.”
“…….”
―답답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말해! 뭔 고민을 그렇게 오래 하고 앉아 있어? 네가 생각하는 사람 동상이야?
겔탄이 갑자기 얼굴만 빼꼼 내밀고 말했다. 그 모습에 곧장 두더지 게임처럼 주먹으로 치려 하자 쑥, 들어가 놓쳤다.
“…그래, 뭐. 하자.”
형의 얼굴이 단숨에 밝아졌다.
“잘 생각했어. 혼자서 담아 놔 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그래. 내가 배신하지 않는 이상 배신 안 하는 사람들이니까. 나 혼자 기억을 가지고 있어도 계속 함께 싸운 사람들이니까. 그들에게도 알 권리가 있었다. 다만…….
‘상처만 안 받으면 좋겠는데.’
형은 내 대답을 듣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 한번 모이자고 문자를 보냈다. 다만 그 내용이, ‘제가 그동안 해 왔던 행동들을 수상하게 여기셨던 분들은 내일 온연 길드 옥상으로 와 주시길 바랍니다.’였다.
내일인 것도 모자라 뜬금없이 온연 길드 옥상이었다. 그 문자를 보내자마자 류천화 씨에게서 왜 본인 길드냐며 답신이 왔는데, 그다음으로 형이 보낸 문자가 더욱 가관이었다. 듣고 싶다면 허락해 주세요, 였으니까.
헌터 생활을 하며 형과 가장 오래 알고 지냈던 류천화 씨였던지라, 형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클 터였다. 그렇게 형은 장소를 얻었다.
띠링. 형의 휴대폰이 아닌 내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왔다. 뭔가 싶어 보니 유주한이었다.
[형. 한지운 헌터한테서 이런 문자를 받았는데 이게 도대체 뭐예요? 한지운 헌터가 수상한 행동을 한 적이 있어요?]형과 큰 접점이 없던 유주한에게도 문자를 보낸 모양이었다. 나야 유주한이 친근하지만, 형한테는 아닐 텐데.
“형. 주한이한테도 보냈어?”
“응. 만난 지는 오래 안 됐지만 그래도 기억상 마지막까지 앞에서 싸웠으니까.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형다운 생각이었다. 그리고 유주한은 사실을 알아도 의심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신기하다며 흥미를 가지는 쪽이니 큰 문제는 없을 거였다. 유주한이 과거에 나쁜 짓을 한 적도 없고.
‘별일 없겠지.’
사실은 조금 긴장됐다. 전부 다 뒤바뀐 지금, 과연 멸망이 안 찾아올까. 내가 모든 것을 말함으로써 또 무언가가 잘못된다면 그땐 정말 끝인 거 아닐까.
그런 조마조마함 속에서 형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이 안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끝내 입으로 그 생각을 꺼내진 않은 채, 다음 날이 찾아왔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은 시각. 형과 온연 길드 옥상으로 향했다.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형의 모습에 물었다.
“긴장 안 돼?”
“오히려 설레는데. 게임에서 뽑기 하는 기분이야.”
“긴장한 거 아니야, 그건?”
“그런가.”
형이 살풋 웃었다.
역시 형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형이 없는 건 상상조차 안 된다. 역시 이게 올바르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바람이 한 번 크게 불었다.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위치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빠진 사람은 없네.’
지화연 씨가 우리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한지운 씨. 이런 이벤트는 적어도 일주일 전에 알려 주세요.”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류천화 씨가 고개를 까닥이며 형을 가리켰다. 형이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 유주한이 조용히 내게 다가와 물었다.
“형. 그래서 무슨 일인 거예요?”
“그냥 들으면 알―”
“특별히 시간을 끌며 말을 하고 싶진 않으니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소설에 빙의한 사람입니다.”
형의 뜬금없는 말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말 없이 눈을 크게 뜨고 형을 바라봤다. 형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더니 숨을 크게 들이켰다.
형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린 거다. 다른 사람들이 인식을 못 한다, 는 게 어떤 건지 직접 보지 않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반응을 보면 모두가 형의 말을 뚜렷하게 들은 게 분명했다.
“태어날 때부터 소설의 기억이 있었습니다. 소설의 화자인 한지운이 던전이 생김과 동시에 문양을 얻고 S급 헌터가 되어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갑자기 몬스터가 대군단을 이끌고 쳐들어오고, 군주들이 저희 세상에 나타나 전부 죽여 버리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중간에 끊기고요.”
“잠깐. 잠깐만요.”
조금 신난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형과 다르게, 머리가 아프다는 듯, 지화연 씨가 손을 머리에 얹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저희 세상은 소설인 거고, 한지운 씨는 그 바깥 사람이라는 거예요?”
“제가 인생에서 들은 말 중 가장 어이없는 말인데요.”
유아한 씨가 조용히 중얼거리고, 그 옆의 승현 헌터는 입을 다물 생각을 안 했다. 내 몸은 유주한에 의해 미친 듯이 흔들렸다.
“형, 저거 진짜예요? 진짜로 여기 소설 속이에요? 그럼 나 소설의 등장인물인 건가? 그래서 이런 판타지 만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럼 우린 가짜인가?”
가짜라는 말을 뭐 이렇게 신나게 말하는 건지, 얘는. 나는 내 삶 자체가 가짜이고 주인공을 위해 만들어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미친 듯이 괴로웠는데. 어차피 소설 속이라는 이곳이 자신에게는 현실이라 그런가? 아니면 내가 너무 꼬인 인간일 뿐인가?
“…라고, 예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빙의한 제가 자리를 차지했고 그로 인해 바뀐 것이 많으니 모두 제 잘못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죠.”
“예전까지요?”
“여긴 현실이에요. 소설도 뭣도 아니라. 전 그저 누군가의 일기 같은 책을 읽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거였고요. 그것도 반은 다르지만. 물론 여기까진 추측이에요. 제 기억이 잘못된 기억이다, 라는 것만 확실히 알죠.”
류천화 씨가 말을 듣다가 의아했는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 던전이 알려 주던가?”
“아뇨.”
형이 뒤에 있던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을 따라, 다른 사람들도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나한테 넘긴다고?
뭐, 약속했으니까 말은 하겠다만, 저렇게 짧게 말하면 내가 다 설명해야 하잖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알려 줬어요. 겪은 거랑 달랐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