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납치】
“…겪은 거라뇨?”
유주한이 먼저 반응해 내 답에 되물었다.
일단 운을 뗐지만,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형처럼 시큰둥하게 말을 할 성격도 못 됐다. 아. 왜 이렇게 심장 박동이 크냐.
‘괜찮다. 예전에도 몇 번 말한 거야. 이미 경험이 있으니까 괜찮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회귀의 끝이 찾아왔다고 생각하니, 이 사람들이 내가 회귀했다는 기억을 끝까지 가져갈 거라고 생각하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말해도 괜찮을까. 평생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할 사람들에게 정말 회귀에 대해 말해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때, 형과 눈이 마주쳤다. 형은 말없이 입만 움직였다.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건지.’
앞으로 어찌 될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괜찮다고 하는 건 참으로 무책임하지 않은가.
‘…아니다.’
내가 생각이 많은 거다, 그냥.
“말 그대로예요. 형이 말한 내용 중 절반은 겪은 일이었지만, 절반은 제가 모르는 것투성이였거든요. 기억만 있는 쪽과 직접 경험한 쪽. 둘 중 어느 쪽이 더 신빙성 있겠어요.”
“…내가 이해한 게 맞는다면, 한지언 헌터도 마찬가지로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 같은데.”
“뭐, 형처럼 처음부터 기억이 있지는 않고요. 저는 각성 이후에 기억이 돌아와요.”
“그러니까…….”
지화연 씨가 나와 형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두 분이 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계셨다, 이건가요? 한지언 씨는 미래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온 거고.”
“네.”
“뭔 미친.”
가만히 듣고 있던 유아한 씨가 다음으로 말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건 아시죠?”
“잘 알죠.”
“…좋아요. 한지운 씨야 기억만 있다 쳐도, 한지언 씨는 전부 겪었고, 다시 돌아왔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돌아온 이유가 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다 죽어서요. 이전뿐만 아니라 한참 전에도, 그 전에도, 그 전의 전에도, 세상이 망하고, 다 죽어서요.”
“돌아간 게 한 번이 아니라는 거네요.”
“…우리가 두 사람을 의심하던 원인이, 그거였단 말이지.”
“그렇죠.”
각자 생각에 잠겨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한숨만 푹푹 내쉬거나, 이 대화를 따라가기 위해 머리를 부여잡거나 할 뿐. 또 다른 질문을 하진 않았다. 그러다 옆에 있던 유주한이 물었다.
“그럼… 이번에도 세상이 망할 확률이 크다는 거예요?”
“아니. 이번은 아예 달라.”
“다르다뇨? 매번 망했다면서요.”
“이번에 완전히 뒤틀렸거든. 첫 번째로 형이 바뀌었고, 두 번째로 탑이 생겼고, 세 번째로 왕이 처음으로 죽었어. 이 모든 게 이번에 처음 일어난 일이야.”
“그 정도면 다 바뀐 거 아니에요?”
“그치. 그래서 내 기억이나 형 기억은 쓸모없는 기억이나 마찬가지가 됐고.”
지화연 씨가 머리를 부여잡고 하던 생각을 끝냈는지 고개를 올려 나를 바라봤다.
“어쩐지… 한지운 씨야 처음 던전이 생겼을 때부터 S급이었던 데다가 강하셨으니 그렇다 쳐도, 한지언 씨는 그렇지 않음에도 저희에게 기죽지 않고 친밀하게 다가온다 싶었어요.”
“그것도 최대한 거리감 있게 다가간 건데, 아무래도 영 쉽지 않아서요. 이미 다 알고 있고 매번 함께 싸우고 대화하던 사람들인데 이제 와서 다시 모른 척해야 하는 거니까요.”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말없이 듣기만 했던 승현 헌터의 물음에 나는 무엇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지운 씨와 한지언 씨의 기억에 다른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 그건 어떤 겁니까.”
“일단 형 기억 속에선 제가 엄청 강했다네요. 아무도 못 이길 정도로. 근데 전 그렇게 강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확실히 거짓이군그래. 한지언 헌터의 말이 더 신빙성 있군.”
“…….”
맞는 말이라 딱히 무어라 반박은 못 하겠는데, 이 와중에 그런 소릴 하고 싶나!
“그래서, 뭐 더 물으실 분 계신가요?”
내 물음에 지화연 씨가 먼저 답했다.
“…솔직히 묻고 싶은 건 많아요. 정리가 안 될 뿐이지. 그동안 한지언 씨가 고통에 무감각했던 것도 같은 일을 반복했다, 라는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고, 헌터 일에 능숙해 보였던 것도 이걸로 설명이 가능하니까……. 솔직히 묻고 싶은 건 전부 개인적 일이에요.”
“저도 동감해요. 이전에 저는 어땠는지 좀 궁금하거든요.”
지화연 씨와 유아한 씨의 말에 류천화 씨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연 씨가 머리를 부여잡고 나와 형을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우선 각자 할 일을 하러 가죠. 아직 머리 정리도 안 되고,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까요. 무엇보다 이미 세상이 망한 전적이 있다는 말이 제일 충격적이에요.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번에 그런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또 망했을 거라는 거잖아요. 그리고 만약 두 분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저는 그런 기억도 없이 계속 멸망을 막으려고 애썼을 거고요. 어차피 망하는데.”
“…형은 그런 기억을 가지고도 계속 멸망을 막으려고 했던 거예요?”
“뭐… 아니라곤 못 하지.”
반쯤은 거짓말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안 지켜지는 세상을 누가 지키려 들겠는가. 나는 회귀하기에 의무적으로 노력했을 뿐이지.
“전 가 볼게요. 더 있다간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네요. 한지운 씨랑 한지언 씨 말은… 정말 믿을 만한 근거가 없는 말이긴 하지만, 갑자기 그런 만우절 농담 같은 얘기를 할 사람들도 아니니까 일단… 생각은 해 볼게요.”
“나도 지화연 헌터의 말에 동감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믿기도 애매한 입장이야.”
“전 믿어요.”
유아한 씨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의외라는 듯 시선을 던졌다.
“사람이 피에 익숙해지는 건 꽤 오래 걸리는 일이거든요. 아무리 비위가 좋다 해도 사람의 살갗이 찢어져 그대로 드러나거나 하는 걸 실제로 보면 거북해하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한지언 씨는… 익숙한 듯 보고 말죠.”
“저도… 믿는데요. 하나 궁금한 게 있어요. 형, 그럼 왜 그동안 말 안 하신 거예요?”
“그건―”
“그건 제가 말하겠습니다.”
형이 유주한의 말에 대신 답했다.
“그동안 말을 안 했다. 이 말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으니까요.”
“…저는 한지운 헌터랑 둘이 얘기를 나눈 적이 없는데요?”
“물론 유주한 헌터와는… 따로 대화를 한 적이 없지만, 제가 말하는 건 다른 분들입니다. 류천화 헌터와 지화연 헌터, 유아한 헌터, 승현 헌터 말입니다. 여러분에겐 이미 수차례 말한 전적이 있습니다.”
“소설의 ‘소’ 자도 들은 적 없는데.”
류천화 씨의 말에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가 소설에 빙의했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그동안 지언이뿐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저희가 듣지 못하게 무언가가 방해를 했다는 거네요.”
“잠깐만. 저 더 이상 들었다간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 먼저 일어날게요.”
지화연 씨가 초췌한 표정으로 벤치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쿵. 몸이 추락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같은 감각을 느꼈는지 방금 전과 다른 분위기를 내며 주변을 살폈다.
지지직. 하늘에서 나는 기분 나쁜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리자.
“저건 또 무슨…….”
당황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게이트가, 아니, 게이트가 맞긴 한가? 하늘에 생긴 거대한 게이트가, 꼭 하늘에 균열이 난 것처럼 보였다.
류천화 씨가 심각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다 우리에게 물었다.
“한지운 헌터, 한지언 헌터. 저것에 대해 혹시 알고 있나?”
“아뇨.”
형은 단박에 말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몸을 감싸는 기분 나쁜 감각.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 저건 분명, 왕이다. 하지만 어떻게?
‘분명 왕은, 왕은…….’
아니. 이건 내가 아는 정보 중 하나지, 확실하다곤 할 수 없었다. 그래, 왕은 왕이다. 강하디강한 왕. 그런 왕에게 무엇이 불가능할까.
“한지언 헌터?”
“저건… 분명, 왕이에요.”
내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잘못이에요.”
“형?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건 분명, 내가 회귀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 멸망이 일찍 다가오는 거였다. 멸망이 이렇게 일찍 다가온 적은 없지만, 전부 바뀐 지금 그게 무슨 대수일까? 아니다. 이건 또 내가 실수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 때문에.
“한지언!”
“…….”
단숨에 문양 개방을 한 형이 내 몸을 흔들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신 차려!”
“…형, 이건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또 내가 책임감 없이 남에게 책임을 덜려고 해서. 역시 말하는 게 아니었다. 형 말에 현혹되는 게 아니었는데.
저 왕이, 그 강한 왕이, 군주만 와도 난리 나는 세상인데 왕이 여기까지 오면 세상은 정말 뭐도 해 보지 못하고 망해 버릴 거였다. 그럼 이번엔 정말 끝이다.
이제야 겨우, 겨우 마음을 다잡았는데, 또 나를 무너뜨린다. 드디어 마지막이 되어, 나도 조금, 아주 조금 미래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게이트에서 새하얀 팔들이 뻗어 나와 바닥에 박히고, 다른 사람들을 공격했다. 반격해도 형태만 잠깐 무너졌다가 금세 수복됐다.
고개를 숙였다가 겨우 비틀거리며 들어 보자, 아름다웠던 옥상 정원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꽃은 뭉개져 시들고, 풀들은 바삭 썩어 갔다. 벤치는 반으로 갈라지고, 옥상 바닥은 금이 가 위태로웠다.
그 사이로 형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 하얀 손이 형을 내려치려는 게 보여,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문양 개방을 하지도 않은 채 움직여, 형을 밀어냈다.
쾅! 하얀 손 하나가 나를 붙잡더니 곧바로 다른 손들이 합류해 내 몸을 엘리베이터 벽에 박았다. 문양 개방을 안 하긴 했지만 이 정도 타격은 괜찮았다.
빨리 손들을 풀어내고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든 해야지 싶어 문양 개방을 하려던 차, 목이 뜨거워졌다. 곧이어 조금 전 벽에 몸을 박았을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고통이 몰려와 커헉, 절로 숨이 토해 내졌다. 앞머리가 살랑이는 게 눈에 보이다, 모든 게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