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뚝.
무대 아래까지 흘러내리는 핏방울의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한지언 헌터?”
뚝. 뚝. 금세 흥건해진 피가 빠르게 무대 아래를 적셔 들어갔다. 아무런 대답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목각 인형이 빛나는 검을 즐겁게 휘두르며 승리의 영광을 만끽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이내, 커튼이 닫혔다.
“무슨…….”
류천화는 곧장 닫힌 커튼을 붙잡았다. 옆으로 잡아당겼지만 커튼은 꿈쩍도 하지 않고 무대를 감췄다.
“…곤란한데.”
류천화에게 사람이, 헌터가 죽는 건 익숙했다. 그러나 이번은 조금 달랐다. 죽은 대상은 오래간만에 등장한 S급 헌터였으며, 이제 막 한 달 된 헌터, 그리고 한지운의 동생이었다. 상대가 상대였고, 류천화와 함께 다녔기에 그의 책임이 컸다.
“큰일 났군.”
류천화는 잡은 커튼을 놓고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며 침음을 내뱉었다.
심장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죽은 건 확실했다.
“S급 헌터니 죽지는 않을 줄 알았건만.”
두 번째 스프레드 게이트 던전 공략이었다. S급들만 모아 들어온 터라 적어도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 류천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일단은 시체 회수라도 해야 할 듯싶어 다시 커튼을 쥐었다.
꾹. 다시 커튼을 잡고 옆으로 당겼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류천화는 한숨을 내쉬고 뒤로 돌아 걸음을 입구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서 도움이라도 요청해야―”
촤아악! 그리 잡아당겨도 움직이지 않던 커튼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에 곧장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
“놀라셨어요?”
“…허.”
“저도 놀랐어요.”
죽은 줄 알았던 한지언이 무대 위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류천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대가 끝난 뒤의 커튼콜이었다.
♧♣♧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느낀 거였지.
예전에 여기서 많이 막혔다. 검에 찔리고 피가 흐르며 고통이 느껴지는데, 누가 죽겠다고 생각을 안 할까.
여기는 그런 함정이었다. 어디까지나 연극. 모든 것이 소품이며 그럴싸하게 꾸민 가짜. 그런 그럴싸한 것들에 속아 죽었다고 생각하게 해서는 정말 죽게 만드는 형식의 트릭이었다.
처음에는 죽었나 안 죽었나 헷갈려 했더니 살았고, 두 번째는 죽었다고 생각했더니 정말 죽었었다.
‘죽었다고 바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때 알았었나.’
나는 과하게 숙인 허리를 쭉 펴며 무대 아래에 있는 류천화 씨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예상한 건가?”
“아뇨? 누가 죽는 걸 예상해요.”
“근데 왜 그리 태연하지?”
“사람이 정말 당황하면 되레 침착해진다잖아요. 저도 진짜, 진짜 엄청나게 놀랐어요.”
“진짜?”
“진짜. 아, 그리고 연극 끝나면 하는 인사는 그냥 해 보고 싶었어요.”
사실 댁 놀라는 거 보고 놀리려고 한 거지만.
생글 웃어 보이는 내 모습을 보며 류천화 씨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풀고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시체 회수를 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다행이네.”
“…너무하시네.”
나는 폴짝 무대 아래로 내려와 어색한 듯 배 부분을 만졌다. 뚫렸던 배가 멀쩡한 것도 모자라 옷마저 멀쩡했다. 배가 뚫리기 전 베였던 어깨마저 멀쩡했다.
“그런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주변을 살펴본 나는 바뀐 것이 없다는 게 확실해지자 말했다.
“아무 일도 없네요.”
“이곳에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은 보통 바깥이 바뀌었다는 뜻이지.”
류천화 씨가 뒤로 돌아 들어왔던 계단으로 향했다. 그러곤 다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나 역시 류천화 씨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텅. 텅. 벽이 다시 녹슬며 계단의 소리가 점차 커졌다. 이윽고 다시 출구에 다다르고, 류천화 씨가 계단 문을 열었다. 끼이익거리며 열린 문을 통해 류천화 씨가 먼저 한 걸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뒤따라 나 역시 나가자.
“…어?”
앞서 나간 류천화 씨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잠만. 이게 무슨…….”
연기가 아니었다. 이런 적은 없었다.
“왜, 잠만. 여긴 어디…….”
분명 문밖으로 나서면 다음 스테이지로 향해야 하는데. 왜.
“아직도 여기지?”
빽빽한 건물. 지나가는 검은 주민들. 위치만 바뀌었지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다음 스테이지는 분명 알록달록한 곳이었을 텐데.”
그 정신 나갈 것 같은 알록달록함은 어디 가고 왜 또 도시인 거지.
‘일단 류천화 씨랑 합류해야―’
훅. 순간 느껴진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낫을 겨누었다. 무언가 잡힌 듯한 기척에 고개를 돌려 보자.
“…….”
어두운 밤 아래에 새하얗게, 밝게 빛나는 사람의 형체가 이상한 옷을 입고 내 뒤에 서 있었다.
“뭐야, 이건.”
연속적인 상황에 머리가 다 지끈거려 왔다. 나는 눈을 잠시 질끈 감았다 떴다. 하얀 몬스터는 환상이 아니라는 듯 똑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죽이는 게 낫겠지.’
툭. 날이 하얀 몬스터에게 가까워졌다.
“…….”
사악. 날을 옆으로 움직이자 아까부터 떨었던 하얀 몬스터가 더욱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허.”
휙. 낫을 치우고 하얀 몬스터를 지긋이 쳐다봤다. 이상한 차림새는 다시 보니 무언가가 연상되는 듯했지만 정확히 무언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말이 통할 리는 없고.”
하얀 몬스터를 너무 지긋이 쳐다봤는지 몬스터의 몸이 덜컥 떨리다가 몬스터가 이내 무언갈 허둥지둥 꺼내 들었다. 벙어리장갑을 껴서인지 몬스터는 겨우 무언갈 집어 나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뭔…….”
평범한 종이였으나, 내용이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산타?”
말 그대로, 어디선가 찢은 듯한 종이에는 산타가 아이에게 몰래 선물을 주고 다음 날 선물을 받은 아이가 미소를 짓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설마.’
시선을 다시 하얀 몬스터에게 가져가자, 이번에는 몬스터의 차림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산타.
그림에 나온 산타와 아주 유사한 복장이었다.
“…….”
그래. 확실히 산타였다. 지금 다시 보니 뒤에 커다란 보따리가 있고, 그 안으로 미세하게 하얀 물체들도 보였다.
이런 존재도 있었구나 싶었지만, 딱히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예 신경을 쓰지 않기에는 생전 처음 보는 거니… 조금만 더 지켜보고 싶은데.
“흠…….”
잠시 고민을 하는 척하다 이내 고개를 휙 젖혀 가라는 듯 행동하자, 하얀 몬스터는 밝게 빛나며 주섬주섬 제 물건을 챙기고는 어디론가 이동했다. 나는 그 뒤를 대놓고 따라갔다.
그 후 하얀 몬스터를 따라다닌 지 몇 분쯤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하얀 몬스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얀 몬스터는 딱 산타 그대로였다. 건물에 몰래 들어가 검은 주민에게 만들다 만 것 같은 하얀 물체를 주고 빠져나오고, 다시 주고 빠져나오길 반복했다.
“도대체 뭐 하는 건지.”
선물…을 받은 검은 주민은 잠시 멍을 때리다가 이내 하얀 물체를 집어삼켜 먹었다. 장난감도 뭣도 아니고 그냥 먹을 것이었다. 그 사실에 어이가 없었지만, 애초에 몬스터니 금세 수긍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멍청하게 뭐 하는 짓이지.
한숨이 푹 내쉬어졌다. 아무리 새로운 일이 일어나도 본래 일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움직이지는 않았는데. 형이 아닌 다른 새로운 것이었던지라 잠시 정신이 팔렸던 모양이었다.
‘류천화 씨한테 가야지.’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다니면 누구라도 만나겠지.
하얀 몬스터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고 움직이려 하자, 쿵! 익숙한 굉음이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보자 하얀 몬스터가 갑옷 주민에게 쫓기고 있었다. 하얀 몬스터는 최대한 빨리 도망가는 듯 보였지만, 갑옷 주민의 덩치와 속도에 못 이겨 거의 다 잡히기 직전.
“참…….”
몸이 반사적으로 나가 하얀 몬스터를 낚아채고는 빠르게 건물 위로 올라갔다.
건물 옥상, 바람이 거세게 부는 곳까지는 갑옷 주민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내 한쪽 손에 덜렁 잡혀 매달린 하얀 몬스터를 쳐다보았다.
“…이게 다음 스테이지인가.”
스테이지가 바뀐 것일 수도 있었다. 애초에 갑자기 이런 몬스터가 튀어나온 것 자체가 이상하니, 스테이지가 바뀌었다는 것이 가장 유력했다.
‘그럼 이걸 돕는 게 이번 스테이지인가?’
툭. 손에 잡고 있던 몬스터를 놓자 몬스터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몬스터는 바닥에 어디를 잘못 박은 듯 잠시 바들바들 떨다가 나를 쳐다보는 듯 고개를 들었다.
나는 하얀 몬스터를 잠시 바라보다가 턱짓을 해 가라는 듯 행동했다. 하얀 몬스터가 제 짐을 주섬주섬 줍고는 이번에는 나에게 꾸벅 감사 인사를 한 뒤 건물의 벽을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꼭 달팽이 같네.’
하얀 몬스터가 골목 바닥으로 내려가자마자 나 역시 곧장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런 나의 행동에 하얀 몬스터가 흠칫 당황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하얀 몬스터에게 손짓하며 하던 일을 마저 하라는 신호를 취했다.
쭈뼛. 하얀 몬스터는 나의 시선에 긴장한 듯하다가 이내 통통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그 뒤로 하얀 몬스터는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검은 주민에게 하얀 물체를 주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시 검은 주민에게 하얀 물체를 주고. 나는 이따금 하얀 몬스터가 갑옷 주민에게 걸려 도망치는 것을 돕기도, 올라가지 못하는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돕기도 했다.
‘언제 끝나지.’
상대적으로 낮은 건물 옥상. 하얀 몬스터가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듯 옥상에서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이런 짓은 왜 하는 거야.”
한숨을 내쉬고 하얀 몬스터를 바라보자, 이번에는 먼저 나를 바라보고 있던 하얀 몬스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얀 몬스터는 잠시 빤히 나를 쳐다보다가 주섬주섬 보따리에서 아까 내게 보여 주었던 종이를 꺼내 다시 보여 주며 종이 한쪽에 그려진 무언가를 가리켰다.
하얀 몬스터는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게 뭐―”
잠만. 설마 이거 대답인가?
“말이 통해?”
나는 번쩍 고개를 들고 하얀 몬스터를 쳐다보았다. 하얀 몬스터는 말을 못 알아들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그렇지.”
내가 한숨을 푹 내쉬자 하얀 몬스터가 또다시 웃는 아이의 그림을 가리켰다.
“웃으라고?”
염병.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괜히 도왔다는 생각이 장작에 붙은 불씨처럼 커지며, 짜증이 나기 시작할 무렵, 불쑥, 하얀 물체가 얼굴 가까이 들이밀어졌다.
“…뭐.”
하얀 몬스터가 하얀 물체를 나에게 건네고 있었다. 또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그놈의 웃음 좀 지으라는 뜻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인 모양이었다.
“…….”
그래. 태어난 놈이 잘못은 아니지. 환경이 잘못된 거다.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다 나왔다. 내가 잠시 웃음을 내뱉고 하얀 물체를 받자 몬스터는 기쁜 듯이 이리저리 방방 뛰었다.
‘이것도 어디에는 쓰이겠지.’
나는 하얀 물체를 인벤토리에 넣고 아직 방방 뛰고 있을 하얀 몬스터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건 내 희망 사항이었나 보다.
“…….”
내가 고개를 들자 보인 건, 기쁜 듯 방방 뛰는 몬스터가 아니라, 가슴에 검이 처박힌 하얀 몬스터였으니까.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