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그걸 저한테 묻는 의도를 모르겠네요. 전 기억 조작은 당한 적 없어요.”
“그냥,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까 누군가가 답해 주길 바라나 봐.”
“정확하게 답변드리긴 어렵습니다. 다만, 적어도 조카를 편하게 해 주고 싶다는 데이비드 씨의 마음은 진심이겠죠. 결코 남이 조작한 게 아니라.”
“…넌, 가족이 사라지는 고통을 많이 느꼈지? 어땠어?”
“너무 비인간적인 질문 아닙니까?”
“그냥, 별다른 의도는 없어.”
나는 남의 가족이 죽는 것에 큰 동정은 하지 않았다. 특별히 동질감도 느낀 적도 없고.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데이비드에게 흔들리는 걸까.
간단히 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 역시, 형을 영영 잃을 뻔했으니까.
늘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이 무너져 사라지는 그 상실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무겁다. 새로운 감각에 아직도 어찌할 바 몰라, 시기 비슷하게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데이비드에게 동질감을 느껴 특별한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건 뻔한 사연이면서, 슬픈 얘기다.
“저와 데이비드 씨가 그런 사적인 얘기를 나눌 사이였던가요.”
“차갑네.”
“다른 분들한테도 제대로 얘기 안 했는데, 데이비드 씨가 먼저 듣는 건 새치기잖아요.”
“그런 게 중요해?”
“아뇨. 그냥 말해 봤어요.”
지화연 씨나 다른 사람들은 하얀 공간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거나, 여전히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이들을 건드려 보고 있었다. 유아한 씨는 아직 기절 상태고.
“뭐든 과거는 과거예요.”
“너한테도 그랬어?”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애초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과연 과거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분명 실제로 겪은 일이지만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는데 이걸 뭐라고 정의할까요. 꿈?”
“그것도 그렇네. 그치. 과거는 과거로 내버려 둬야 하지.”
데이비드가 무어라 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그가 무얼 말하려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그럼에도 과거로 돌아가려는 욕망에 대한 얘기일 것이었다. 다만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사람인 이상 과거로 갈 수 없다는 것을 데이비드도 알기에 더 말하지 않은 것일 테고.
과거로 가려는 사람의 욕망은 욕망이라 표현할 수도 없다. 그저 허황된 꿈이고, 닿을 수 없는 것이니. 그렇기에 내가 지금까지 제자리걸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별생각을 다…….’
데이비드랑 더 대화하다가는 별말을 다 할 것 같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 보기로 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승현 헌터에게 다가가 보니, 그는 아직까지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K가 뭘 어찌한 건지 돌처럼 굳은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고 싶은 모양이지.
“류천화 씨 능력도 안 통했나요?”
“무력화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예. 몸을 편안한 자세로 바꿔 주기라도 하고 싶지만 억지로 움직였다간 부러질 듯해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가짜일 가능성은요?”
“…0에 가깝다고 봅니다만, 그렇게 생각하신 사유가 있습니까?”
“정확히 무슨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데이비드 씨한테 공간 조종 능력이 있는 것 같아서요. 환상의 일종일 수도 있고요. 저 상태에서 무슨 능력을 사용하겠냐마는, 혹 모르잖아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까 확인해 봤지만 능력의 흔적이 있는 곳은 이 공간 말고 없습니다.”
“그럼 공간 자체는 확실한 가짜라는 거네요.”
“다만 제 능력으로는 탐색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참고만 하시길 바랍니다.”
가짜임을 앎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건 나갈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거겠지.
그때 승현 헌터가 한층 진지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한지언 헌터.”
“예?”
“저희가 한지언 헌터를 믿어도 괜찮은 겁니까?”
“…그런 건 보통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아요?”
“단순히, 한지언 헌터가 그간의 시간으로 인해 저희를 미워하지 않느냐고 묻는 겁니다.”
“제가 왜 여러분을 미워해요?”
“한지언 헌터는 자신이 회귀함에도 계속 세상이 멸망한다며 그것이 마치 본인의 잘못인 것처럼 저희에게 말씀하셨습니다만, 그 과정에는 분명 저희의 책임도 있을 테니까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멸망을 막으려고만 하셨는데 무슨 책임이 있어요.”
“저희는 각기 다른 힘을 가졌지만 하나 같은 건, 강한 힘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멸망을 막지 못하고 한지언 헌터가 계속 삶을 되풀이한 거라면, 거기에는 저희의 책임도 있는 겁니다.”
무척 승현 헌터다운 말에 나는 눈만 껌뻑였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글…쎄요. 상대가 너무 강해서 네 탓이니 뭐니 할 것도 없었네요.”
그 말에 승현 헌터가 작게 웃었다.
“한지언 헌터는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저였다면 남한테 괜한 화풀이를 했을 거예요.”
“승현 헌터가요?”
“예. 어차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라면 한 번쯤은 상관없겠지 생각하고 계속 그랬을 겁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러니 한지언 헌터가 대단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띄워 주셔도 전 뭐 드릴 것도 없어요.”
“뭘 얻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번에 한지언 헌터가 저에게 칭찬을 해 주셨으니 그에 대한 답을 하는 것뿐입니다.”
“저번에라면…….”
설마 네 번째 탑에서 둘이 다른 곳으로 이동됐을 때를 말하는 건가. 당연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말한 건데. 은혜 갚은 까치도 이렇게까진 안 하겠다.
“…승현 헌터는 뭐 궁금하신 거 없으세요?”
승현 헌터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한참을 구부려 앉아 사람들을 보던 몸을 일으켜 내게 물었다.
“이전에도 저한테 회귀하였다 말씀하신 적 있으십니까?”
“없진 않죠?”
“그때 제가 무얼 물었습니까?”
“…무얼 물어보셨었냐고요?”
그 말에 나는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이때는 조용히 정신 병원을 추천해 주셨고, 이때는 다 죽어 가는 마당이어서 특별히 뭘 물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고, 이때는… 어.
‘생각해 보니…….’
승현 헌터는 나에게 뭘 물어본 것이 없었다. 정말 안 좋은 기억력이나마 발휘해 끝까지 다 생각해 봤음에도, 없다.
“제가 무언가를 물었다면, 그건 아마 제가 아니라 제 탈을 쓴 다른 사람이었을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전 제가 무슨 상황이건 간에 특별하게 변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요. 상황이 좋지 못했을 때, 한지언 헌터가 저에게 회귀했노라 말했어도 특별히 무언갈 묻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무엇보다 아픈 기억일지 모르는 남의 과거를 굳이 들출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평범했더라면 로또 번호 같은 걸 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돈이 아쉽지도 않고요. 그러니 전 궁금한 게 없습니다.”
그 말에 나는 눈만 껌뻑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놀랍거나 하진 않았다. 승현 헌터는 원래 그랬으니까.
“그것보다 한지언 헌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네? 어떤 거요?”
“한지운 헌터는 어디 가셨습니까.”
“형이요? 그, 아는 분한테 보내서 지금 상황을 말해 달라고 했는데……. 그러게요. 지금쯤이면 와야 하는데 왜 안 오지.”
“아는 분이라면 누구십니까.”
“…나중에 설명드릴게요.”
보낸 지가 언젠데 왜 아직도 안 오는 걸까 싶어 나는 몸을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혹시 중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확인을 위해 게이트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 순간, 퉁! 게이트가 나를 거부하듯, 몸이 튕겨져 나왔다. 곧이어 단숨에 게이트가 모습을 감췄다.
“…선생님?”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옆쪽에서 데이비드가 큰 소리로 제 조카를 불렀다.
“릴리! 정신 차려! 그만해, 릴리! 릴리!”
아까와 다르게 데이비드의 조카는 이젠 침구까지 손으로 뜯어 가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곧장 다가가 상태를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난 멀쩡한데 대체 왜 이러는 거지? K를 깨워야 하나? 아니 가장 먼저.
“데이비드! 이 공간부터 없애 주세요!”
“릴리! 릴리!”
망할. 말이 안 통하잖아.
“데이비드 씨!”
“놔! 지금 릴리가!”
“이 공간을 없애야지 저희가 다른 곳에 도움을 요청하든 할 거 아닙니까!”
“공간……?”
그 말과 함께 데이비드가 주변을 살폈다. 휑한 하얀 공간과 머리를 조아린 이들.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야!”
“예? 무슨 소립니까! 분명 데이비드 씨가 행동을 한 이후 변한 공간인데!”
“중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조종하지 않았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말에 나는 데이비드를 놓았다.
‘…지금 의식의 단계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곧장 K에게 달려가 뺨을 몇 번 치자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K가 깨어났다.
‘처음부터 이럴 걸 그랬어.’
어차피 아무도 상황을 모르는 거, K를 기절시키지 말고 깨워 둔 채 상황을 읊게 할걸. 그냥 손만 쪽쪽 빨며 기다린 꼴이 됐잖아.
‘아무것도 도움 되는 게 없을 줄이야.’
이렇게까지 방법이 없었던 적은 없는데. 꼭 무언가가 생각하는 걸 방해해, 나갈 방법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 같았다. 애초에 우리가 갇혀 있긴 한 건가? 처음에 보았던 그 저택이긴 한 건가?
으어어 하며 신음하던 K가 날뛰는 데이비드의 조카의 모습을 보더니 징그럽게 웃음을 보였다.
“곧! 곧 오신다! 곧 오신다!”
“뭐가 오냐고.”
내가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음에도 아까 겁에 질려 아파하던 녀석은 어디 가고 K는 세상 황홀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오신다! 오셔!”
“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질문을 채 하기도 전, 꽈지지직, 뒤에서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