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정체】
“아직 이 정도인가?”
바닥에 주저앉은 데이비드와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다른 사람처럼 차분해진 조카, 그리고 생뚱맞은 말까지.
“너 누구야.”
저 몸속에 다른 이가 들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릴, 릴리? 릴리, 괜찮아진 거야? 릴리?”
“아아. 네가 계속 릴리 릴리 외치던 애야? 뭐야. 내가 예전에 능력을 줬던 애잖아? 지금까지 고마웠어. 덕분에 일이 잘 풀렸고, 네가 계속 불러 준 덕에 길도 쉽게 찾을 수 있었거든.”
“릴리, 무슨 소리야, 그게?”
나는 데이비드의 등 뒤로 성큼 다가가 그를 뒤로 밀어 넘겨 떨어뜨렸다.
“무슨 소리겠어요. 저 몸 주인이 바뀌었단 소리겠죠.”
“맞아! 역시 내가 점찍어 둔 애다워!”
날 점찍었다는 건, 역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은 모두 저 녀석이 사주했다는 거겠지.
“너, 저번에 만났던 녀석 맞지?”
“으음. 저번이 언제야? 정확한 날을 말해 줄래?”
“던전에서.”
“으으으음. 언제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그러는데, 둘끼리 오붓하게 대화나 나눌까?”
“필요 없으니까 여기서―”
“그러지 말고!”
내 쪽으로 다가오려 하는 녀석의 움직임에 곧장 낫을 꺼내 들어 위협한 순간, 다리 한쪽이 무언가에 붙잡혔다.
“데이비드?”
“무기는, 무기는 쓰지 말고…….”
“허튼소리하지 말고 놓으세요!”
“아하하! 오합지졸이네!”
죽여야 한다. 아까 처음 한 ‘아직 이 정도’라는 말, 그리고 섣불리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태도. 보아하니 완벽한 상태로 넘어온 것이 아니거나, 아직 넘어오는 과정이거나. 어찌 됐건 아직은 놈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훤히 보였다. 이 틈에 처리해야 한다.
내 다리를 잡은 데이비드? 방해조차 안 된다. 본인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상황에 내가 갑작스레 행동하면 데이비드가 나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본래 몸 주인은…….’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더 큰일이 나기 전에 새싹을 도려내는 것이 몇천 배는 이득이니까.
낫을 한 번 꽉 쥐고, 단숨에 휘두르기 위해 데이비드가 고개를 숙이는 틈을 기다리던 차.
“신, 신님!”
K가 벌레처럼 설설 기어오더니 침대에 걸터앉은 녀석을 몇 번을 훑어보고는 입이 귀에 걸릴 듯이 웃었다.
“아, 아아! 접니다! 당신을 돕던 이가 접니다!”
“으응? 아, 그래.”
불쑥. 녀석이 몸을 낮춰 K와 눈을 맞추었다. 그러곤 빙그레 웃더니.
“고마워?”
녀석의 말에 K의 입에서는 연신 아아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저에게 부디 자비를! 제게 그 힘을! 제게!”
녀석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가까워지는 손에 K는 성불이라도 할 것 같은 소리를 내더니 녀석의 손이 머리에 닿는 순간, 펑! 머리가 흔적도 없이 터져 주변에 피를 흩뿌렸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필요 없는 건 필요 없는 거고.”
폴짝 일어난 녀석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핑그르르 돌았다.
“진짜 신처럼 자비란 자비는 다 베풀어 주니까 내가 뭐 정말 다 이루어 줄 것 같았나 봐. 너희 종족은 학습 능력이라는 게 없는 것 같아! 그렇게 우리에게 당하고도, 결국 또 당하고 마니까! 아, 욕망에 눈이 먼 건가?”
아무도 그 말에 답해 주지 않았다. 그 대신 단숨에 돌격해 녀석을 향해 공격을 휘둘렀다.
그러나 공격이 닿기 직전, 펑! 퍼버벙! 머리를 조아리던 신도들이 터져 나가, 코앞에서 공격을 멈췄다. 협박이 보기 좋게 통한 거였다. 우리도 단숨에 터져 나갈 수 있다는 협박이 말이다.
“이제야, 말이 통할 것 같네?”
“…….”
“뭐야. 그렇게 겁먹지 마. 아직은 너희를 죽일 생각이 없거든. 정확히는 너만.”
녀석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콕 집어 말했다.
“네가 하는 거 보고 결정할게. 죽일지, 말지.”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응? 나? 그렇게 힌트를 많이 줬는데, 아직도 못 맞힌 거야? 생각보다 이런 쪽으론 멍청하구나?”
“네가 다음 왕일 것 같진 않은데.”
“왜? 왕일 수 있지. 사실 내가 왕이야.”
“…….”
“흠. 확신하고 있네. 뭐, 맞아. 왕은 아니야. 군주일 뿐이지.”
군주라는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 아직 괜찮다. 그때처럼 군주들이 다 넘어온 게 아니니까. 하나니까. 괜찮을 거다. 하나니까…….
게다가 이쪽으로 넘어오며 힘이 많이 소진됐을 것이었다. 완벽하게 넘어오려면 탑을 심거나 해야 했을 텐데 그런 것 없이 넘어왔으니, 그렇게 강하진… 않을…….
‘아까 머리를 터뜨린 건, 허튼수작이 아니었다.’
순수한 힘.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녀석이 불쑥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있지. 무슨 군주게? 이제 정말 힌트란 힌트는 다 준 것 같은데.”
“…사이비 군주라도 되는 모양이지.”
“사이비라니. 난 저런 것들 가지고 싶지도 않았는걸. 그저 도움이 필요해 보여서 손 좀 뻗었을 뿐인데 저렇게 기대잖아. 그래서 재밌는 생각이 나서 그만 여기까지 오고 말았지 뭐야? 이전 왕은 좀 멍청했어. 이렇게 스리슬쩍 다가가면 될 것을 굳이 선전 포고를 해서. 물론 나한텐 왕이고 뭐고 꿈님이 최고였지만.”
“…꿈?”
“앗. 맞혀 보래 놓고 그냥 말해 줘 버렸네.”
“…네가, 새 꿈의 군주라도 된다는 건가?”
“맞아.”
“그런데 어떻게 나를 알고 있지?”
“하나를 알았으면 여러 개를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뭐, 내가 너무 많이 변하긴 했지. 좋아. 난 착하니까 그냥 알려 줄게.”
꿈의 군주가 긴 금발의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 넘기다가 두 갈래로 나누어 묶었다. 올백의 양 갈래, 그리고 높은 톤의 말투.
“설마.”
“이제야 알겠어?”
“…악몽 사냥꾼.”
“맞아!”
꿈의 군주가 손뼉을 짝 치곤 해맑게 웃었다.
“왜 네가…….”
“내가 워낙에 사랑받는 존재여서…는 아니고, 그만큼 강하니까 그렇지이?”
녀석의 정체를 알고 난 직후, 이해되는 것과 이해되지 않는 것이 쌓여 갔다.
“왜…….”
“으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보이네? 그런데… 방해꾼도 많고.”
그 말과 함께 꿈의 군주가 일행들을 노려보며 손을 올리려 해 나는 일행들을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도망쳐요!”
그러나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사람들이 매섭게 달려들었다. 꿈의 군주가 콧방귀를 뀌며 손을 튕겼다. 그러자 훅, 모두가 단숨에 사라졌다.
“무슨 짓이야!”
“안 죽였으니 걱정 마. 단지 대화하는 데 끼어들까 봐 그런 거니까. 그리고 대화하는 데 구경거리가 있으면 좋잖아?”
“구경거리라니, 그게 무슨…….”
휙. 휙. 꿈의 군주의 손에 단숨에 공간이 뒤바뀌었다. 새하얗던 공간에 피가 낭자했다가, 단숨에 깔끔해지며 하늘에 무언가를 투영시켰다. 방금까지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자! 여기 앉아, 얼른!”
꿈의 군주가 어느새 생긴 티 테이블에서 나를 불렀다.
“…….”
“겁먹지 말라니까?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거든. 이전 왕도 못 했고, 너무 선량하시던 우리 꿈님도 못 했던 농락을 바로 이 내가 하고 있는 상황을 말이야. 역시 난 참 똑똑한 것 같아.”
티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를 꺼내 앉기 직전, 나는 뒤죽박죽이던 머리를 겨우 정리해 말을 끄집어냈다.
“이전에 꿈의 군주가 넘어왔을 땐 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어. 뭘 어떻게 한 거지?”
“내가 말해야 할 의무가 있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하지만 내가 네 놀이에 응수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아 둬.”
“뭐, 너한테 선택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당연한 거 아닌가?”
“무슨 자신감이야? 넌 그냥 장난감이야. 톡 하면 펑 하고 터지는 풍선 같은 존재라고.”
“…너를 불러오는 데 왜 몸이 두 개 필요할까 생각해 봤어. 단순히 의식을 집어넣을 몸, 통로로 사용할 몸이라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통로에 그대로 자리 잡는 게 더 효율적일 텐데 왜 굳이 다른 몸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궁금했지. 너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라면 통로에 자리 잡는 것 정도는 쉬울 텐데 말이야. 굳이 약점을 두 개나 만드는 선택을 했어.”
“이쪽이 더 재밌을 거 같았어. 그뿐인걸? 물론 너를 가장 생각하고 있지만. 이 몸은 그저 예비용일 뿐이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은 없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하고 있거든.”
“그게 뭘까?”
“시선 분산. 만약 네가 내 몸을 통로와 껍데기 둘 모두로 쓴다면 사람들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나를 처리하려 들겠지. 하지만 네가 내가 아닌 다른 몸에 들어간다면, 대부분은 그 몸이 의식에 가장 필요한 거라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사실 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 몸이라면? 통로인 내가 끊기면 넌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글쎄? 통로를 끊을 수는 있어? 내가 본 바로는 네겐 지금의 시간이 가장 중요해서 안 죽으려는 것 같았는데.”
“제대로 보긴 했어? 이미 한 번 끊었었는데. 네가 나를 그 섬의 저택에 불러들였을 때.”
“내가 부른 건 어떻게 잘 알고 있네?”
“그 억양을 내가 어떻게 잊어. 아주 근사한 선물을 준 목소리인데.”
살아생전 없어질 리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유일하게 붙잡고 있던 것을 소멸시킬 뻔한 장본인이신데.
“잘 알고 있네? 그런데 왜 이렇게 멀쩡하지?”
“그럼 바들바들 떨면서 바닥에 설설 기기라도 할 줄 알았어?”
“뭐, 그 정도까지 바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형 옆에 붙어서 오들오들 떨기라도 할 줄 알았지.”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지금 내 생사는 네가 아니라 내가 잡고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
“그래 봐야 네 목숨인데?”
“뭐, 내 목숨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냉정하네. 그래. 내가 졌어.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느냐고 물었지?”
“그것도 있고.”
나는 의자에 덜컥 앉았다. 그러곤 꿈의 군주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네 능력, 전부 밝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