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무지개】
꿈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다.
나는 벙진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싸움에 집중한 헌터뿐이었다.
멍하니 귀를 툭 건드렸다. 지쳐서 환청까지 들리는 건가? 생각할 무렵.
―바다를 구하고 싶지 않니?
그 말에 곧장 윤시아 씨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소리를 누가 묻는 거지? 아니. 애초에 누구야? 대체 왜. 자꾸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 거야?
누가.
대체 누가?
―아가. 구하고 싶다면, 이리 오렴.
…처음에는 분명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운 감정은 금방 사라지고, 편안한 감각이 내 마음을 적셨다.
그리고 지금은 어째서 믿음이 가는 걸까.
‘…됐어.’
이것이 악마든 몬스터든 문양이든, 윤시아 씨를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 목숨을 바쳐 구할 거다.
‘가면 되잖아!’
그 순간. 화악 퍼져오는 맑은 공기에 절로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난장판이던 주변이 고요해지고, 주변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 가운데, 거대한 나무가 바람에 살랑이며 그 밑에 나뭇잎을 쌓았다.
그 광경에 눈을 감기도 아까울 지경이었다. 사진으로라도, 하다못해 그림으로라도 남기고 싶을 정도의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그런… 신비한 나무였다.
“그. 당신이 제 문양인가요?”
파스스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며 나뭇잎이 서로 부딪쳐 시원한 소리를 냈다.
―그렇다.
“왜 계속 절 부르셨어요?”
―내 아가를 보겠다는데. 이유가 필요할까.
“…윤시아 씨를 구하고 싶다면 오라 하셨잖아요.”
―그래.
그 후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설마 나 속은 건가?
“무슨. 뭐라도 말 좀 해주세요. 윤시아 씨를 구하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 목숨이라도 드려야 하나요?”
―오. 아가. 나는 그렇게 잔인한 이가 아니다. 평범하게 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냥 사라질 수도 있지만… 너와 대화를 잠깐 나누고 싶었다. 혹 번거로웠다면 미안하구나. 늙은이가 주책이라.
“어. 아뇨. 아뇨 아니. 그. 그러니까. 뭐가 궁금하세요?”
―…너에 대해 알고 있기에, 내가 너에게 온 것이다. 나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부른 거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조금 길어질 텐데 괜찮을는지 모르겠구나. 물론 바깥에선 고작 4~5초의 시간이겠지만.
“그러면 저야… 좋죠. 사실 지금 많이 불안하거든요. 윤시아 씨를 구할 수 있을지, 내가 할 수 있을지. 뭐 그런 거요.”
이 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나도 참 말이 많다. 적군이 정보를 빼가는 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지만… 몸이 너무 편해서 그런 꼬인 생각을 하기 너무 지쳤다.
―…그 아이는. 천방지축인 무해한 아이였다.
“윤시아 씨를 아세요?”
―바다를 누가 모를까. 물론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바다를 보았지. 바다가 늘 찾아왔거든. 아주 어릴 때부터. 어쩌면 저 바다가 왕이 되기까지 쭉 봐왔다고 볼 수 있지.
“…그러고 보니 예전에 탑에서 윤시아 씨를 본떠 만든 분신이 그랬어요. 세계수를 보고 싶다고.”
―그래. 나도 보았다.
“그때는 단순히 나무를 보고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그.”
―내가 세계수가 맞다.
“그러면 제 문양이 세계수인 거예요? 아니. 세계수 님께서 제 문양이 되신 거예요?”
―…참으로 맑고 투명한 아이야. 그렇기에 내가 택하기도 했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너와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으니.
그 말에 내가 너무 말이 많았구나 싶어 조용히 입을 닫았다.
―미안하구나.
“아녜요!”
―바다는, 생명을 해치길 싫어하고 제 백성을 사랑하던 아이였다. 그렇기에 땅의 세계수였던 나 역시 바다를 사랑하였지. 그러나 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 왕이 나를 죽였다.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지. 그러다가 너를 만나고. 바다를 다시 보았다. 그러니 아가. 사과를 먼저 하고 싶구나.
“네? 사과요?”
―네 마음은. 어쩌면 나에게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 말에 처음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되새기고 나서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꼭, 내 마음이 거짓된 거라고 말하는 듯해서.
그러나. 그건 분명 아니었다.
“…어쩌면 처음은 당신에게 영향을 받았을지 몰라요.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지금은, 오롯이 제 선택이에요. 그러니까 부탁드려요. 윤시아 씨를, 생명을 해치기 싫어하고 지금도 싫어하는 윤시아 씨를 구할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지 않나?
“네?”
―계속 전진해라. 미안하고, 고맙구나. 앞으로 바다를 잘 부탁한다.
텅.
내쫓기는 듯한 감각과 함께, 난장판인 현실로 돌아왔다.
신서하 헌터가 황급히 내게 물었다.
“강희민 헌터! 괜찮아요? 왜 넋을 놓고 있어요!”
“…….”
나는 지팡이를 쥐락펴락하다가 너저분한 손바닥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양이 그려져 있을 심장 부근을 살짝 내려다보니, 문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힘낼게요.”
“강희민 헌터?”
“신서하 헌터. 허윤 형이랑 박주완 헌터. 지금부터 제 옆에서 떨어지지 말아 주세요.”
“네. 네? 아니. 강희민 헌터. 머리에 나무가 자랐는데요?”
모습도 변했나 보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윤시아 씨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오지 않으신다면, 내가 가야 한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윤시아 씨를 찾아 이 던전 저 던전 다 갔던 것처럼.
천천히 걷자 발밑으로 식물이 자라났다. 그 식물은 단숨에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 역시 진정시켰다.
‘할 수 있어.’
콱! 지팡이를 콘크리트 바닥에 박았다. 처음에는 아무런 일도 없다가 지반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사방에서 거대한 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집중했다.
파아앗! 지팡이가 거대해지며, 작은 세계수를 피워냈다. 내가 보았던 세계수보단 아니지만, 그대로 이 정도면 선방했다.
‘신기해.’
지금까지 능력을 사용할 때는 대야에 담긴 걸 그릇에 옮기고, 또 옮기고 옮겨 사용하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대야째 들어 옮기는 기분이었다.
‘이러면. 닿을 수 있―’
순간. 소름 돋는 감각에 닭살이 돋았다. 옆에 서 있던 신서하 씨가 허억! 하며 큰 숨을 들이마셨다.
첨벙.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방관하던 윤시아 씨가 움직여,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어. 다가온다! 조심해!”
“지금 죽여!”
“저 나무가 문제인 건가? 야! 나무 치워!”
“우리 다 죽을 거야!”
차갑다 못해 얼어붙은 시선에 온몸이 굳을 것 같았지만. 저건 윤시아 씨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세계수 앞에 섰다. 세계수 앞에 선 내 모습에, 윤시아 씨가 걸음을 멈추곤 나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세계수의 힘을 가져갔나 보지?”
“그렇습니다.”
“감히 그걸. 그게 뭔지 알고 지닌 건가?”
“당신을 바다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지금. 도발하나?”
만약 기억이 있더라면, 당신은 어떻게 알았냐며 놀랐을까. 아니면 그랬죠 하며 능청스레 답했을까.
난 아직 당신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더 대화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구나. 내가 생명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능력을 본 이상 너 하니만큼은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분수도 모르게 가져간 네 탓을 해라.”
“세계수 님께선 맑고 투명한 저였기에 택했다고 하셨어요.”
“그 입. 다물어.”
콰앙! 파도가 거세지고, 윤시아 씨가 내게 성큼 다가와 공격했다. 이전보다 자유로워진 나무를 자유분방하게 움직여 방어하고, 때로는 바다 밑바닥까지 나무로 메워 내가 다가갔다.
‘이렇게 해서는 끝도 없을 거야.’
무언가. 닿을 수 있을 한 방이 필요했다.
턱. 그 순간 어깨가 누군가에게 잡혔다.
“왜 혼자 그러고 있냐?”
“…허윤 형.”
“너 새끼 뒤꽁무니 졸졸 따라다닌 게 얼마나 긴데. 네 표정 하나 모르겠냐? 그래서. 뭐가 부족한 건데. 내가 보기엔 다른 놈들도 못 낄 정도로 강하더만. 지금도 대화하면서 방어하고 있고.”
“…이것도 잠깐이에요. 계속 지속하게 되면 결국 제가 패하겠죠. 저는 한방을 줄 수 있는 충격이 없어요. 물론 있었더라도 그건 안 썼겠지만요.”
“그래서. 어쩔 건데? 뭐 약점이 비행 불가니까 날기라도 하게? 보아하니 뚜벅이인 건 여전한 것 같은데. 너나 쟤나.”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어요. 지금은 힘도 강하니까. 하지만 그럴 방법이…….”
“내가 있잖냐.”
“허윤 형이요?”
“내 능력으로 너를 묶으면, 너는 윤시아를 붙잡아. 그럼 곧장 하늘로 날려줄게.”
“지금 저보고 그걸 들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나도 노력이라는 걸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어떻게든 해볼게. 혼자 하려 하니까 꼴 보기 싫어서 도와준다잖냐.”
“…형은 참. 말만 잘하면 좋았을 텐데요.”
“내가 뭐! 그래서 어쨌든. 할 거야? 어차피 방법 없다며.”
“윤시아 씨를 구하려면. 당장은 뭐든 해봐야죠. 그러니 해요 그 방법.”
허윤 형이 씨익 웃으며 곧장 내 허리에 빛으로 이루어진 끈을 둘둘 감쌌다. 이게 이렇게 이용할 수 있던 건가?
“내가 이 끈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넌 모르지?”
개발한 능력이었구나. 능력을 개발하려면 정말 큰 노력이 필요할 텐데…….
“됐다. 그러면.”
“…갈게요. 혹시 제가 실패하면―”
“그럴 리 없고. 없게 할 거고. 내가 실패할 리 없으니까. 빨리해.”
“…….”
그 말에 나는 작게 심호흡했다. 그러곤 윤시아 씨를 바라보고. 곧장 뛰었다.
“하. 직접 죽으러 나와주는 거냐?”
“아뇨.”
세계수의 힘을 이용해 사방을 나무로 감쌌다. 단숨에 사방이 막혀버린 윤시아 씨였지만, 당황하지 않고 커틀러스를 옆으로 들었다. 나는 그 틈을 노려 파고들었다.
텅! 주변을 막은 나무가 단숨에 잘려가고. 동시에 내 옆구리 역시 커틀러스에 관통되어 고통이 물밀듯 찾아왔다.
난 괜찮아. 괜찮으니까. 허윤 형.
뒤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허윤 형이 표정을 구긴 채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 허윤 형이 활을 고쳐 들자, 아까보다 활이 더 크게. 다른 능력처럼 빛나다가 하늘로 쏘아졌다.
퉁! 내 몸이 하늘 위로 오르며, 붙잡고 있던 윤시아 씨 역시 함께 하늘 위로 떠 올랐다. 단숨에 높은 상공까지 오르자, 윤시아 씨가 잠시 놀란 기색을 내뱉었다가 한심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잔재주는 좋지만. 어차피 나는 떨어져도 큰 타격이 없다. 오히려 타격이 있는 건 너겠지. 이렇게, 내 공격에 맞았고.”
윤시아 씨가 커틀러스를 작게 뒤틀자, 절로 기침이 튀어나왔다.
“…괜찮아요. 괜찮아.”
“네게 괜찮은 건 없어 보이는데.”
“아뇨 전 괜찮아요. 그리고.”
윤시아 씨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펜던트를 윤시아 씨 손에 쥐게 해. 내 손이 뜯어지는 한이 있더라고 놓치지 않게 하려 힘을 주었다.
그러니 그걸 이상하게 여긴 윤시아 씨가 나를 콱 밀쳤다.
“지금 뭘 하려는 거―!”
아. 힘을 다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며, 동시에 커틀러스가 옆구리에서 빠져나갔다.
‘…실패인가?’
나 정말. 무능하다.
선명한 햇빛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떨어지다가,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졌다.
콰앙! 땅으로 추락했는지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으나, 특별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고… 시원했다. 천국인가?
“진짜 바보 같다.”
차가운 목소리가 아니었다. 익숙하고. 돌아오길 바랐던 그 목소리.
“미안해요. 정말. 정말 미안해요. 이런 짐을 떠맡게 해서. 미안해요. 고마워요. 정말…….”
햇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윤시아 씨의 얼굴이 이제야 보였다. 단지 기억만 변했음에도 달라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건데… 그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이 울고 있었다.
“…다시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우시면 어떡해요.”
“정말. 내가. 내가 이럴 줄은. 내가.”
“…윤시아 씨.”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몇 번을 되뇌고. 되새기고. 반복해왔던 그 말.
“정말. 좋아해요.”
파도가 친 바다에는, 이윽고 무지개가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