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나는 나에게 뻗어온 손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실소를 내뱉으며 말했다.
“그냥 좀 봐주지 그래.”
―…내가 얼마나 봐줬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정말 많이 봐주었다. 너희들에게 날 이길 힘은 존재하지 않으니. 적어도 명예롭게 죽을 수 있도록 봐주고, 또 봐주었다. 아슬한 차이로 졌다. 이 명예를 주기 위해.
“뭘 모르나 본데. 그건 명예가 아니라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 거야.”
―나의 이런 배려도 모른 채 계속 밀리는 꼴을 보니 우스워서 싸울 마음도 안 드는군. 제대로 할 생각은 있는 건가? 하물며 너는, 이전의 왕을 죽였으며, 그런 그릇을 가지고 있음에도 하는 꼴이 어이가 없군.
“…네가 뭘 착각하나 본데. 네 왕을 죽인 건 내가 아니야.”
―질 상황이니 인제 와서 발뺌하는 건가? 제 명예를 더럽히는 꼴이 참으로 더럽군 그래.
“억울하네…….”
―이제 됐다. 칼을 맞붙기도 역겹다. 힘을 겨루는 것도 하찮다.
쿵. 밝았던 하늘이 단숨에 어두워졌다. 나의 능력과는 다른 차원의 능력이었다. 달도, 별도. 구름도 없는 새까만 하늘. 하늘에 먹을 부은 것만 같은 암흑이었다. 그 암흑은, 하늘로 끝낼 생각이 없는지 점점 가까워졌다. 하늘이 가까워질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저 암흑은 분명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물러나요!”
“어디로요! 차라리 왕을 처리하는 게 빠르겠네!”
내 말에 답한 유아한 씨가 곧장 왕을 공격했으나, 왕은 코웃음을 치며 유아한 씨에게 손을 뻗었다. 단숨에 위험을 직감한 나는 곧장 유아한 씨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으니.
“유아한―”
촤아악! 거대한 물살에 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화가 난 듯한 모습으로 작게 웅얼거리며, 제 앞을 바라봤다.
―폰티나.
윤시아가 왕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승현 헌터도. 유아한 씨가 승현 헌터에게 말했다.
“잠은 푹 자셨나 보네요.”
“…문양과 싸웠습니다.”
“그건 또 새로운 케이스네요.”
“두 세상에 진정한 왕이 없으니, 본인이 진짜 왕이 되겠다며 몸을 내놓으라더군요.”
윤시아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내쫓아드렸죠. 겁먹고 도망치던데요. 아무리 물의 정령 왕이라고 해도 바다의 군주 앞에서는 어찌하지 못하나 봐요. 뭐. 저희 세상에선 군주가 왕 다음가는 힘을 가졌으니 그렇긴 하지만. 그나저나…….”
윤시아가 왕을 바라봤다. 그리곤 아까와 다른 목소리로 왕에게 말했다.
“…예전에 이러시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폰티나. 지금 저쪽 편에 서는 건가. 이미 한 번 적군을 했음에도 받아주었거늘. 기어코 또다시 적이 되려는 거구나.
“그건 애초에 이전 왕이 저를 버린 거였고요. 그리고 제가 죽을 각오로 왕님 앞에 온 것도 이유가 있어요. 왕님이라면, 이전 왕이랑 다르니까. 그러니까 잘 말하면, 어쩌면 이 상황을 끝낼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제 착각이었나 봐요.”
―저쪽 편에 서더니 헛소리만 구구절절 늘어뜨리는군. 폰티나. 너의 백성들을 구할 생각은 없는 건가?
“…이미 바다는 만신창이예요. 아시잖아요. 그 녀석에 의해 망가진 바다는, 제가 바꾸려 해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한 번 오염된 바다는 끝도 없이 망가져요. 기억이 없던 채로 바다를 봤을 때. 그때부터 저는 이미 절망에 가득 차 반쯤 포기한 상태였어요.”
―그렇다고 남은 백성마저 잃을 셈인 건가? 난. 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세상의 길을 여는 거다.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러니까! 이전 왕부터 이어져 왔던 그 욕망을. 왕님이 끊으셔야 한다는 거예요. 애초에 처음 시작한 건 저희였고요. 저희의 생명이 죽듯, 이쪽의 생명도 죽어 나갔어요. 욕망을 멈추기만 하면 그 굴레는 끊어질 텐데, 어째서 멈추지 않는 거예요! 이쪽은 저희가 멈추기만 해도 싸움을 끝낼 수 있는데!”
―폰티나. 아니, 윤시아던가.
텅! 윤시아의 어깨부터 시작해 아래로 구멍이 났다. 윤시아가 단숨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배반자 주제에 말이 많군.
“당신도! 내가 당신의 군주로서 지낼 때의 기억을 계속 곱씹어봤어. 하지만 답은 늘 같았지. 당신도 분명! 생명을 해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고! 기억이 없어도 그건 느꼈어! 나도…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 것 치고는 엄청나게 헤친 것 같은데. 초 쳐봤자 좋을 거 없으니 입 다물고 몬스터나 처리해야지.
―난 그런 적 없다. 이젠 헛소리까지 하는군.
“…부탁이에요. 제발 싸움을 끝내요……. 끝없이 고민했잖아요…! 이게 맞는 건지!”
―말이 많다.
텅! 윤시아에게 향했던 공격을 막아내자마자 팔이 저렸다. 윤시아는 이걸 맞고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하는 거지? 아니. 이미 제정신이 아닌가? 왕이 생명을 소중히 한다는 헛소리를 하니까.
“윤시아 헌터. 뒤로 물러나 계세요.”
그러나 윤시아는 내 발목을 잡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한지언 헌터… 왕님이 원래. 이러시는 분이 아닌데. 물론 이 세상이 소중하지만, 왕님도 왕님대로 세상을 좋게 만들려고 하셨어요. 생명을 소중히 하려고 하셨고… 이전의 왕의 방식대로 해야 하는지 고민하셨어요… 그러니까 지금. 뭔가 이상해요.”
“…윤시아 헌터 말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인제 와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건 알지만… 뭔가 이상해요. 이상하단 말이에요. 저렇게 매정하신 분이 아니었는데. 이전 왕과는 달랐는데…….”
“매정하지 않았더라면 하늘에 저런 짓은 안 했겠죠.”
난 뒤에 있던 유아한 씨에게 눈짓했다. 유아한 씨가 내 시선의 뜻을 이해하고, 곧장 윤시아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지금 공격해 봤자 맞지는 않겠지. 그럼 역시 대화로 시간을 끌어야 하나. 보아하니, 하늘이 내려오는 건 멈춘 것 같은데.
“이봐―”
―이제, 됐다.
쿵! 수없이 많은 기둥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땅이 계속 울릴 정도로 거침없이 떨어지는 기둥에 의아해하기도 전. 가까이 있는 기둥에 무언가 팔을 쭉 뻗었다.
‘몬스터.’
주위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온다며 소란스럽게 외쳤다. 그나마 남아있던 헌터들이 몰려드는 몬스터를 처리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시간을 끄는 선택이 잘못된 거였나? 망할. 생각해 보니 그렇네, 몬스터들이 넘어오려면 저쪽도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지. 너무 내 중심적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정말 뒤는 없다. 기다림도 없다. 앞만 봐야 한다. 그 앞이 절벽이라 하더라도.
온 힘을 다해 낫을 휘둘렀다. 왕은 아무런 감정 없이 나를 바라보며 공격에 대응했다. 이제는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에 온 힘을 다해. 조금 희미해진 문양의 의미를 부여해. 내가 할 수 있을 모든 것을 이제서야 꺼냈다.
콱! 낫을 쥔 팔이 붙잡히고, 꺾였다. 곧이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검은손에 온몸이 할퀴어지고, 움직임을 억제당했다. 곧이어 가시가 돋아나 몸에 숭숭 구멍을 냈다.
―포기하지 그래. 어차피, 평생 이기지 못했던 거. 이번에도 다른 이변 없이 똑같이 반복하는 거니.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똑같이 반복?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난 지금 소중한 걸 잃고, 소중한 걸 얻었어. 나 하나 바뀐다고 이야기 전체가 바뀌진 않겠지만, 이미 많은 게 바뀌었다고. 그리고 더 돌아가지도 못해. 그러니까 포기 안 해.”
―애석한 감정 놀음에 본인 명줄을 끊어버리는구나.
“뭐 어때. 이제껏 하지 못한 감정 놀음, 죽기 직전에 하는 건데!”
화악. 다른 한 손에 단검을 꺼내 들어 왕의 얼굴에 가져갔다. 오만으로 방심하던 왕의 눈 바로 앞. 단검의 날이 닿을락 말락 했다. 더. 더 힘을 주면. 여기서 더.
콰직. 파직. 온갖 능력을 이용해 힘을 주다 보니 눈이 아플 정도로 사방이 빛났다.
이제야 내 마음을 조금 알았는데. 이제야 하고 싶었던 말, 못했던 말. 다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알아갈 걸 그랬어. 너무 혼자만 걸었나 봐.
후회와 다짐이 오락가락하며 나를 좌지우지했다. 그러나 오락가락하는 마음과 달리, 손은, 팔은 힘을 계속해서 주었다. 아예 타 재가 될 것 같은 감각에도 계속.
그렇게 끝나지 않는 힘겨루기 너머.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백양아?! 안 돼! 멈춰! 백양아!”
폴짝! 하얀 덩어리가 왕의 옆으로 나타났다. 왕은 제 옆에까지 날아온 것을 뒤늦게 눈치채곤, 한껏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존재가 안 느껴지는 것이 어디서―
꿍! 지화연 씨의 족제비와 왕이 부딪쳤다. 그러자 새하얀 빛이 일어났다. 빛이 사방으로 산란해 눈이 아플 때쯤. 족제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었다.
“백양아! 백양… 아?”
다급히 제 반려를 부른 지화연 씨가, 처절한 목소리로 우리 쪽을 바라봤다.
휘청. 왕이 고개를 숙이고 제 머리를 쥐어 잡았다. 동시에 내 손을 붙잡은 왕의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고. 나는 곧바로 왕의 손을 쳐내,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