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아아아아악!
왕의 비명에 흠칫 놀라자, 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곤 창백히 질린 채 더듬더듬 말했다.
―당, 넌. 너는. 넌.
붙잡힌 몸의 구속이 풀리는 것이 느껴져, 곧장 내친 후 뒤로 물러났다. 정신없이 휘둘러서 정확히 눈을 노렸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비명을 보니 성공한 듯했다.
‘방금은… 왜?’
아주 잠깐, 왕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본 왕의 얼굴은, 패닉에 빠진 얼굴에 가까웠다. 무엇에?
‘족제비가 무슨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 애초에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어떻게 지화연 씨를 제친 거지?
궁금한 점이 많았으나, 더 알 방법은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왕에게 무언가를 하고 사라졌으니까.
뒤로 물러난 내게, 지화연 씨가 다가왔다.
“한지언 씨. 혹시 백양이…”
“왕과 닿자마자 빛이 되어 사라졌어요.”
“…….”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그, 백양이가 올 수 있던 거리였나요? 지화연 씨가 위험하게 이 근처에 백양이를 뒀을 것 같진 않아서요.”
“당연하죠. 아예 끝 쪽에 있는 보호소에 맡겨놓았어요. 심지어 제가 직접 가서 맡겼는데.”
별다른 특징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협회에서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그렇게 특별해 보이는 몬스터였나? 아닌데. 내가 봐도 별다른 특징이 없었는데. 방금 잠깐 봤을 때도.
‘복잡하지만 일단은.’
가장 복잡해 보이는 것부터 해결하자. 우선. 저 왕부터.
‘잠깐이었지만.’
내 얼굴 보고 놀랐었지.
‘…윤시아의 말대로. 무언가 달라져 있었던 건가?’
예를 들어 기억 같은 거 말이다. 아니, 그것밖에 없겠지. 기억이 성격을 좌지우지하니까.
망가진 내 몸을 바라보다가 왕에게 슬쩍 다가갔다. 왕은 내 기척에 눈치채고 온몸을 비틀며 놀라더니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이렇게까지 하려던 게 아닌데. 난 그저 지키려고. 하지만 생명을 해치고 싶진 않았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러지 말 걸 그랬어. 이걸 원한 게 아니야. 고통을 주려던 게 아니야.
눈은, 빗나갔나. 눈에 의한 고통의 비명은 아니었군.
‘…죽여야 한다.’
지금.
‘죽여야만 한다.’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에.
왕에게 다가가 단검을 치켜들자 어딘가 익숙한 문장들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단지 지키고 싶었던 건데. 지키려고 한 건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어.
그 말에 무심코 단검을 고쳐 쥐었다. 나도 참 물러졌다. 저런 말에 흔들리고. 아니면 그 감정 놀음이 더 격해진 건가. 살다 보니 주책이다 나도.
그러나 검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을 끝내고 싶어 하는 시선이 너무나 강렬했고. 지친 이들의 숨소리가 귀까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지켜야 해.
왕이 겨우 마음을 다잡은 듯, 나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끝내야 해.’
너무 많은 이들이 다쳤고, 생사를 오가고, 생을 끝냈다.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친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너무나도.
살고자 했던 길이 너무나 험악했다.
그러니까 이 길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나는 새까맣게 변한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을 수놓았다. 불에 타 새빨갛게 변한 하늘이 아닌, 멋지게 별이 뜬 하늘.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 돌아다니는 도심.
‘이제.’
이걸로 끝내자.
각자의 세상의 모습으로.
콰과광! 별들이 한곳에 떨어지며.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면서까지 왕을 공격했다. 왕은 도망치지 않고 들이지 않은 비명을 맞으며, 그렇게 점점. 아스러졌다.
그렇게 수 차례 공격이 끝나고. 거대한 구덩이가 도심 한가운데에 생겼다. 나는 그 아래를 바라보다가 쑥 들어갔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얼핏 들리는 듯했지만, 뭐 어때. 어차피…….
―왜 왔지.
왕이 두 눈에서 피를 흘리고, 몸은 형체를 거의 잃은 상태로 누워있었다. 생명이 곧 꺼질 것 같은 숨소리를 내뱉으며, 내가 온 것을 유추하고 내가 답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물어볼 게 있어서.”
―…뭐지.
“왜 안 피한 거지?”
분명 싸울 준비까지 했다. 이전과 다르긴 했지만, 그 기세 하나는 같았다. 그러나 왕은 끝내 도망치지 않고 나의 공격을 전부 받았다.
―…어떻게 피해.
“뭐?”
―내가 생각의 굴레에 빠지게 한. 그 풍경을 어떻게 피하느냐는 거다.
“뜻을 잘 모르겠는데.”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그러다 죽이려는 거 아니고?”
―어차피 지금은 두 눈을 잃어. 서서히 영혼이 아스러져 가는 중이니. 우리 세상의 생명체들이 사라져가는 걸 보면 알 수 있겠지.
“여기선 안 보이지만, 뭐. 그렇다고 치지.”
―이야기를 듣겠다는 건가.
“내가 이야기를 꽤 좋아해서.”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아니. 카트렐리온은 나를 만들어 낼 때 후계나 같은 혈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후계라고 들었는데.”
―그 명목하에. 본인의 욕망을 이어가기 위한 분신을 만든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왕의 유전을 가지고 하는 실험은 계속 실패했지.
그러다 겔탄이 만들어졌고.
―그 실험은, 성공했을까?
“네가 만들어졌으니. 성공이겠지.”
―아니. 나는 하자품이었다.
“뭐?”
―아마 카트렐리온도 몰랐을 거다. 능력, 신체, 특징이 모두 같더라도. 성격이 다를 줄 몰랐겠지. 나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받아. 카트렐리온이 하는 일에 구역질하며 살아왔다. 지키려면 생명을 해쳐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의 생명이 해쳐지는 것을 두고만 보고. 왜 그것을 이용하는가.
만악의 근원은 역시 그 녀석이군. 내 손으로 죽였어야 했는데.
―그렇게 나는, 고민했다. 지키려면 어쩔 수 없이 너희를 죽여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는가. 하지만 역시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카트렐리온이 최후의 계획에 돌입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 울기만 했지. 그러다 너를 만나게 되었다.
“그랬지.”
―너는 다른 생명체임에도 생명을 소중히 하였다. 생명의 슬픔을 넘어가지 않았다. 물론 넘어가고 소중히 하지 않았다면 너는 그 자리에서 바로 목숨이 끊겼겠지. 그때의 나에겐 반사 능력이 있었으니. 물론 그 능력은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사라졌다.
오. 내 목이 썰릴 뻔했네.
그럼, 그때의 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니었던 걸까.
―그 후로. 나는 더 알 수 없는 응어리를 짊어진 채 살아갔다. 올바른 길이 정녕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같은 길을 걸음에도 이것이 올바른지 아닌지 제대로 알지도 못해 선택조차 못 하고 방치했다.
왕이 손을 쥐어 땅을 옅게 파냈다.
―하지만 끝내 나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왕이며. 나의 세상을. 생명을 지켜야만 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응어리를 분리해 버렸다. 그래. 백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이가, 나의 응어리였다.
“그래서.”
―그래서 나와 닿자마자 내게 흡수된 거였지. 그래. 그 덕분에 나는 또 선택하지 못했다. 왕으로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저버렸다.
“…있잖아. 왕의 사명감은 잘 모르겠지만. 넌 그래도 선택은 했다고 생각하는데.”
적에게 무슨 못할 말이 없는 듯싶지만. 왕은 이제 숨이 멎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죽음 끝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기억을 먹칠하는 건 취향이 아니었다.
죽음의 끝은 그 죽음의 당사자가 나쁘지 않았으면 한다. 죽어서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넌 끝내. 헤치지 않는다는 선택을 했고. 결국 이 싸움의 끝을 냈지.”
―너희에게 이득인 소리지. 우리는 세상의 끝이 찾아온 거다.
“그건 맞지.”
―솔직하군. 그래. 뭐.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른다. 오롯이 왕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세상보다 하늘의 별이 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건 각자 생각이 달렸겠지. 뭐. 왕으로서의 책임감도 좋은데, 마지막이니까 네 생각을 더 하지 그래?”
―…내 생각이라. 그래. 나는. 이 풍경들을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 이런 풍경들을 끊임없이 보고 싶었다. 누군가 만들어 내지 않은 자연적인 그 모습을. 아름다움을. 난, 역시. 왕에게 맞지 않았다.
“…풍경이라.”
―평범한 것에 닿을 수 없도록 태어났으나. 평범함을 지독하게 추구했다. 그래도. 왕으로서 나의 생명들이 싹트고 자라는 걸 더 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론 마지막 선택이 그 풍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한 거네.”
―…그런가. 그렇군.
“이만 가나 봐?”
―그래. 갈 시간이군.
“뭐 더 할 말 없어?”
―…기만적인 사죄도. 애석한 통곡도 하지 않을 거다. 네 덕분에 나의 마지막 선택이 조금 마음에 들었으니. 너에게 선물을 하나 하주지. 고맙다. 네 이름은 뭐지?
“나? 그러네. 이름을 말 안 했네. 난 한지언이야.”
―난… 카트리아나. 그리고 나의 세상의 마지막 왕이다.
“그래, 카트리아나.”
이제 완전한 끝을 내자.
카트리아나가 아스러졌다. 허공으로 흩어지며, 밤하늘의 별이 되는 것처럼 떠올랐다.
그 풍경은 구덩이 바깥에서도 일어났다. 나는 구덩이 바깥으로 빠져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 사이. 윤시아가 서 있었다.
“한지언 헌터. 이것 봐요. 저. 안 없어지나 봐요.”
선물이라는 게. 이거였나. 이건 내 선물이 아니라 윤시아랑 강희민의 선물 아닌가?
뭐. 두 사람이 기쁘니 그만이겠지.
형이 내게 다가왔다.
“지언아.”
“응. 끝났어. 다.”
마지막 왕이라고 나에게 굳이 이야기한 걸 보면. 따로 후계라든가 그런 건 만들지 않았다는 걸 말하려 한 거겠지.
“그렇구나.”
“…….”
몬스터가 아스러진다. 어두웠던 하늘이 밝게 빛나 태양을 들추었다.
‘…아니.’
신기루같이 퍼지는 풍경 너머 하얀 무언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전부 끝난 게 아니지.’
한 곳을 빤히 보았다. 그러다 눈을 한 번 깜빡인 순간. 내 앞에 새하얀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