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4
4화
방금까지는 편한 자세였으나 지금은 어떤 자세를 취하든 불편했다.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익숙한 형이었지만 3년이라는 공백이 내 생각과는 달리 길었던 모양인지 무어라 먼저 운을 띄워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2인실이었으나 같이 병실을 쓰는 사람이 잠시 어딜 갔는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 누가 이 모습을 보고 형제라고 생각하겠는가.
“…….”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는 가시방석일 게 뻔했기에 나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그러나, 곧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들이닥쳤다.
“몸은 어때?”
“어?”
그도 그럴 것이, 형이 먼저 입을 열었으니.
형의 물음에 나는 당황한 기색을 겨우 숨기며 답했다.
“어……. 괜찮은 것 같은데.”
“다행이네.”
“…….”
나는 입을 달싹였다. 면접도 잘 보는 인간이 왜 갑자기 말을 버벅거리는지. 나 자신이 참으로 웃겼다. 하물며 상대가 상대였던지라 더욱이.
“…그…….”
“왜?”
“구해 줘서 진짜 고마…워. …진짜로. 죽겠다 싶었거든.”
멋쩍게 웃어 보이자 형이 따라 작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에 흠칫 놀라 표정을 살짝 굳혔다.
“왜?”
“아니, 그……. 아니야.”
나는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형이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당장 입으로 무슨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이걸 어떻게 질문하지.’
손톱을 딱딱거리며 조용히 허공을 응시했다. 고요함에 먹힌 병실 안에는 손톱이 부딪치는 소리 말곤 들리지 않았다.
‘…….’
조용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과거에서 과거로.
그리고 도착한 기억은, 형이 소설에 빙의했다, 라고 말한 그날의 것이었다.
「여긴 소설 속이야. 그리고 난 빙의…했고.」
‘빙의’.
게임만 해서 창작 문화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확실하게 알았다. 관심이 없다고 아예 안 본 것도 아니었으니까.
‘빙의라면…….’
현실의 사람이 소설 속 등장인물에게 빙의하는 것. 내 기억상으로는 아마 그런 것이었다.
즉, 결론은 형에게 다른 사람이 빙의…했다는 거고.
‘그러면 이 사람은…….’
침이 유독 크게 삼켜졌다.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더욱 거세게 딱딱거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고민이 깊어지고 불안해졌다. 불안하다 못해 두려워졌다. 어쩌면, 괴물에게 죽을 뻔했을 때보다 더욱 두려웠다.
‘…아니야.’
다시 한번 기억을 차근차근 되새겼다.
형은 어렸을 때부터 돌 같았으며, 때로는 부모님보다 어른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성격은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지금도 저렇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냥 차분히 서 있는 것처럼.
‘그렇다고 형이 이상 행동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머리가 팽글팽글 돌았다. 앞뒤가 맞는 것 같으면서도 맞지 않았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헤집던 와중,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 일이 있어서, 슬슬 가 볼게. 엄마랑 아빠한테는 따로 말해 뒀어.”
“어?”
“그럼 몸조심하고.”
‘이렇게 갑자기 간다고? 아직 아무것도 못 물어봤는데?’
빙글빙글 돌던 머리가 이내 펑, 터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이 삐용삐용 하며 요동쳤다.
이판사판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려는 형의 팔을 붙잡았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왜?”
“…….”
갑작스레 몸을 움직여 고통에 오소소 닭살이 돋아났지만 애써 무시하고 고개를 올려 형을 바라보았다.
뭘 물어보려고 붙잡았지? 아니, 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래도 나를 구해 줬는데. 아니, 근데 중간부터 빙의했다는 확신은 없잖아.
“한지언?”
“…….”
하지만 만약, 정말 만약에, 형이 중간부터 빙의했다면?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
나는 고개를 숙이고 붙잡았던 형의 팔을 스르륵 놔주었다. 그러곤 곧장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연락 좀 하고 살라고.”
헤실헤실 웃으며 형의 팔을 툭툭 건드린 나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혈육이 연락 한 통도 없을 수가 있어. 그것도 3년이나.”
“아……. 미안.”
“아니, 사과할 것까지야. 뭐, 산에 들어갔다 나왔어?”
“그냥. 일을 좀 해서.”
“취업?”
“…비슷하지?”
“대학 자퇴하고 뭐 하려나 싶었는데 취업은 했나 보네.”
나는 하하 웃으며 입꼬리를 내리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아, 일 있다고 했지. 붙잡아서 미안. 어서 가 봐.”
“미안할 것까지는……. 슬슬 가 볼게.”
“그래. 연락 좀 하고!”
손까지 흔들어 주며 형을 배웅했다. 그리고 덜컥, 문이 닫히자 툭 하고 손이 침구에 떨어졌다.
“멍청한 새끼.”
두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숨만 푹푹 내쉬어졌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창문 밖에서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 아래로 시선을 내려뜨리자 무너진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전부 현실이었다. 지금은 그것 말고는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내가 괴물에게 습격당한 것도, 이렇게 병실에 입원해 있는 것도, 건물들이 무너진 것도. 전부, 현실이었다.
그리고, 멀었던 형이 한 걸음 더 멀게 느껴진 것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으니 똑같은 사람이겠지, 뭐.’
머리가 영 돌아가지 않았다. 그냥 좀, 많이 피로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냥 곧이곧대로, 원하는 대로 생각했다.
‘…잠이나 자야지.’
뒤척이며 침구를 바스락거리던 나는 이내 자리를 잡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나면 복잡한 머리가 개운해지길 바라며.
♧♣♧
그 뒤로 변한 건 없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세상이 전부 아수라장이었다. 다행인 건 문양이 발현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괴물 사태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튀어나왔던 괴물들이 얼추 정리되자, 그다음에는 게이트가 생겨났다. 정체 모를 게이트의 등장에 세상은 다시 한번 더 난리가 났고,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어떤 미친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가려고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나라에서 문양이 발현된 사람 중 사형 집행 전이었던 범죄자들을 게이트에 집어넣었고, 몇 명의 죄수들이 살아 나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게이트가 사라지는 모습이 세계 각국에 송출되었다. 그로써 암울했던 세상에 다시 한번 더 빛이 생겨났다.
우리나라 역시 서둘러 문양 발현자들에 한하여 게이트 출입 신청을 받았다. 게이트를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랐기에 그 당시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했던 거였다.
그리고 지원자 중에는, 당연히 형도 있었다.
‘…벌써 몇 년 전 얘기네.’
그게 벌써 4년 전 이야기였다.
그 난리 통 속에서 나는 잘살았다. 1년 휴학하긴 했다만……. 어쨌건 세상은 언제 난리가 났었냐는 듯 평화를 되찾았으며, 현재는 안정기라고 할 수 있었다.
바뀐 것은 문양 발현자, 즉 던전에 들어가는 헌터와 공격 능력은 약하지만 대장장이 같은 능력을 지닌 기술자뿐이었으며, 아무런 능력도, 문양도 없는 일반인은 평범하게 사회로 되돌아갔다.
그래, 지금처럼…….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자 ‘졸업을 축하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꽃 무거우면 아빠보고 들라 해.”
“꽃다발이 뭐가 무겁다고 아빠를 시켜.”
오늘은, 내 졸업식이었다.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족들이 학교를 방문했다. 그렇다고 온 가족이 모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도 연락을 잘하지 않았던 형은, 현재 바쁘기 그지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애초에 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대학 졸업식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니 굳이 부를 필요는 없지.
“아.”
꽃다발을 쥔 손목을 움직이자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무심코 작게 소리를 내뱉었다. 엄마가 익숙한 듯 물었다.
“또 손목 아려?”
“별수 없지, 뭐.”
한 달 전부터 손목이 아렸다.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기에 그냥 참고 살았다만, 오늘따라 통증이 유독 심했다.
“어, 형 손목 욱신거리세요?”
“별거 아니야.”
“어……. 그럼 다행이고요.”
꽤 친하게 지내는 후배의 물음에 나는 거짓을 토했다. 동기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전부 신나 하고 그간 기대해 왔던 날인데 손목이 아프다고 분위기를 가라앉히기는 좀 그랬다.
물론 나 역시 고대해 왔던 날이었기에, 이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 아픈 손목을 뒤로하고 별거 없는 졸업식에 참석했다. 유감스럽게도 찰나의 기쁨이었지만 말이다.
“악!”
처음에는 어디선가 작은 비명이 들려왔고.
“아아아아악!”
“저게 뭐야!”
그다음에는 누구든 시선을 향하게 하는 비명들이 들려왔으며.
“누가 협회에 신고……!”
다음으로는, 누구에게나 보이는 크기의 몬스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
졸업식이 망한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고 일제히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부모님을 찾아냈다. 하필 친구들과 사진을 찍던 와중이어서 부모님과 잠시 동떨어져 있었다.
빨리 부모님을 데리고 도망쳐야……!
나는 고개를 돌려 부모님을 불렀다.
“엄마! 아ㅃ―”
부름이 끝나기도 전, 뇌가 차갑게 식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부모님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지며 부모님의 그림자를 먹어 치웠다.
그걸 본 뒤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소리도,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뒤에서 친한 후배가 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했지만 끝내 소리가 울리며 흩어져 뭐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려 오는 손목의 통증이 커졌지만 나는 무시하고 계속 뛰었다. 하지만 속도는 턱없이 느렸다. 두려움에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제대로 뛰기가 힘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무게로 버텨 겨우 달려 나갔다.
닿을 수만 있다면, 아니, 닿는 걸 넘어 저것을 없앨 수만 있다면.
목 끝까지 울음이 차올랐지만 바깥으로 나오진 않았다.
‘제발.’
몬스터의 긴 팔이 들어 올려지며, 몬스터가 마치 벌레를 잡으려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제발.’
목 끝까지 차오른 울음 대신, 비명이 바깥으로 나왔다.
“아아악!”
도대체 왜 나에게만 이딴 재앙을 퍼붓는 것인지. 억울했다. 그리고 답답했다. 멀리 떨어지지 말걸. 붙어 있을걸. 쓸데없이 신나서, 왜 이딴 일을 초래했는지. 지켜야 했는데. 옆에서 지켜야 했는데.
‘그렇게만 있어라. 제발!’
웃기게도 나는 손을 든 자세로 멈춘 몬스터를 보며 몬스터에게 빌었다.
믿지도 않는 신에게도 빌었다. 지금이라도 믿을 테니까, 제발 기도 좀 들어달라고.
하지만,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웅!
몬스터의 팔이 움직이며 커다란 손바닥이 부모님을 향해 빠르게 내려갔다. 그 모습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아주 느리게 보였다.
헐떡이는 숨이 점점 가벼워졌다. 오른쪽 손목이, 정확히는 오른쪽 손목 안쪽이, 정전기가 피어오르다 이내 벼락을 맞은 듯 저릿했다. 스파크가 튀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내 몸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닿을 수만, 저걸 치울 수만 있다면 뭐든.
“뭐든 좀! 뭐든 상관없으니까!”
쿵!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순식간이었다.
“…….”
눈이 난생 느껴 보지 못한 감각으로 뜨였다. 손에 무언가가 잡히고, 입고 있던 학위복이 다른 형태로 변한 것은, 그리고 손에 잡힌 무언가를 단숨에 휘둘러 몬스터를 발밑에 둔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쓰러진 몬스터를 본 다른 몬스터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대여섯 정도 몰려든 몬스터들이 나를 덮치려 일제히 몸을 던지자마자 나는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쾅! 몰려든 몬스터들이 서로 뒤엉켜 넘어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허공에 뛰어올랐다 내려가기 직전, 하늘로 손을 뻗었다. 퐁, 포봉.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하얀 별들이 이내 징그럽게 많아졌다.
“…쯧.”
단숨에 들어오는 정보들에 머리가 지끈거려 무의식적으로 혀를 찼다.
나는 기억을 뒤로하고 수없이 많은 별을 뒤엉킨 몬스터들을 향해 쏘았다. 콰과광! 건물 몇 개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며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바닥으로, 정확히는 죽은 몬스터의 사체들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진짜 기분 더러운 건 익숙해지질 않네.’
익숙하게 낫을 휘릭 돌리고 턱, 바닥에 고정했다.
오늘은 참으로 특별한 날이었다. 오늘은 기쁘디기쁜, 내 생에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일 대학교 졸업식이었으며.
“…….”
회귀의 기억이 제 위치로 돌아온 날이었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