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열쇠】
내가 형의 뒷깃을 잡은 건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두루마기인지라 뒷깃을 잡아도 목이 졸릴 일이 없었고, 두 번째로는 소매 부분을 잡으면 걸리적거릴까 봐 그런 거였다. 마지막으로는 그냥 손이 가서 잡았다.
“그냥 같이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니야?”
“자칫하면 내가 형 속도에 뒤처질 수도 있고, 몬스터가―”
쿠르릉, 바닥이 갈라지며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낫과 검이 엇비슷하게 움직여 몬스터를 갈라냈다.
“…이렇게 튀어나올 수도 있고.”
투둑. 몬스터의 사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움직여서 재빨리 이동하는 게 낫지.”
형은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쉬곤 입을 열었다.
“여기 잡아.”
그러며 형이 가리킨 것은 붉은 허리끈이었다. 허리끈을 잡으면 행동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본인이 잡으라니 그냥 별생각 없이 잡았다.
형의 허리끈을 잡자마자 훅, 단숨에 몸이 붕 뜨며 앞쪽으로 빠르게 이동됐다.
‘별말 없이 움직이니 편하네.’
무언가 수차례 부서지고 장소가 뒤바뀌었다. 간혹 튀어나오는 몬스터는 내가 처리하고, 형은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렇게 열댓 번쯤 장소가 바뀌었을 때.
“어.”
지이익. 나는 형을 멈춰 세우기 위해 발을 바닥에 끌었다. 무게가 실리자 형이 멈춰 서 무슨 일이냐 물어봤다.
나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바닥을 무시하고 일단 주위부터 둘러보았다. 주변 풍경은 딱히 볼 것이 없었다. 타닥거리며 타는 불에 건물들이 무너질 뿐이었으니.
그러나,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지언아?”
“형, 이거 익숙……. 아, 형은 모르겠구나.”
“응?”
확실한 정보를 위해 나는 불타는 마을 깊숙이 들어갔다. 그래 봤자 불에 타는 집들밖에 없었지만, 분명 이쯤에…….
벌컥. 나는 어느 불타는 집의 문을 열었다. 불은 어떤 능력도 없는 평범한 불이어서인지 따끔한 통증조차 없었다.
“지언아?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아니고.”
부서진 식탁과 침대, 뜯어진 창문. 난장판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구조가 같았다.
“여기, 첫 번째 게임을 했던 장소인 것 같아서.”
“응?”
“형은 시작 위치가 달라서 모를 수 있는데, 아마 맞는 것 같아.”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밖은 여전히 불에 타고 있었다. 누군가 여기서 싸워서 이 꼴이 된 걸까. 아니면 원래부터 이랬던 걸까.
‘게임과 연관이 돼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상관할 바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형의 허리끈을 부여잡았다.
“가자. 확인했으니까.”
“…….”
그러나 이번엔 형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묻자 형은 갑자기 마을 외곽으로 몸을 옮겼다. 그러고는 마을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자리에 멈춰 섰다.
“아무래도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응?”
나는 몸을 움직여 앞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형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휑한 초원, 그리고 뒤로 돌면 불타는 거대한 마을.
“오.”
두 번째 게임이 있었던 장소. 지금 그 풍경이 내 시야에 펼쳐져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까지 같은 장소가 나왔다는 건…….’
적어도 ‘우연’일 리는 없었다.
‘그러면.’
나는 바닥을 슬쩍 바라봤다. 아까부터 불규칙적으로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때 형이 물었다.
“여기가 맞는 것 같지?”
“응? 어… 아직은 잘.”
“여기 맞는 것 같아.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어.”
“그러면…….”
“거의 확실해.”
화악. 형의 등 뒤로 지독한 검은 연기가 흩뿌려졌다. 연기는 이내 길게 뻗어 나가더니, 마을 깊숙이 들어갔다.
“가자.”
“어? 어.”
형은 수색 능력이 없었을 텐데.
‘소설 속 정보로 얻었나.’
우리는 뻗어 나간 연기를 따라 이동했다.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바닥을 울리는 진동이 강해졌다. 그렇게 마을 중앙에 다다랐을 때쯤.
쿵!
옆쪽으로 누군가가 날아와 건물에 박혔다. 그러더니 곧장 튀어나와 어디론가 달려갔다.
‘방금 분명…….’
해적 의상. 분명 윤시아였다.
우리 역시 서둘러 연기를 따라 이동하자 연기가 허공에서 끊겨 있었다. 자리에 멈춰 주위를 돌아보다 연기의 앞쪽으로 한 발 내딛자.
우웅. 허공에서 물결이 요동쳐 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빼냈다. 그런 내 모습에 형이 앞으로 걸어갔다. 허공에서 다시 물결이 요동치며 형의 모습이 점차 사라져 갔다.
나 역시 형을 따라 물결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온갖 소음이 귀를 강타했다.
“밖으로 나가려 한다! 잡아!”
“그쪽으로 간다!”
하늘에 크게 뚫린 구멍, 그리고 떨어지는 몬스터와 이미 모여 있는 헌터들.
“한지운 헌터, 한지언 헌터!”
형과 나를 발견한 지화연 씨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띠링, 알림음이 들리며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띄워졌다.
[탈출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탈출구는 몬스터들에 의해 가로막힌 상황!] [결계를 빠져나가려는 몬스터를 전부 처리하고 열쇠를 찾아 탈출구로 나가세요!]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또다시 알림음이 들려왔다.
[인원이 추가됩니다. 난이도 평가 중…….] [평가 완료]쿵!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곧장 주변을 둘러보자, 검게 물든 하늘의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등급 측정 불가 몬스터 나온다! 전부 준비해!”
붉은 손톱의 거대한 검은 손. 그것이 천천히 구멍 밖으로 튀어나왔다.
손은 이내 땅에 진동을 일으키며 바닥에 안착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공격을 가했지만, 검은 손은 어림도 없다는 듯 공격을 집어삼켰다.
“공격이 안 통하는 부류입니다! 공격 아껴요!”
지화연 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몇몇은 뚫을 수 있다며 공격을 가했지만, 대다수가 공격을 멈췄다.
그렇게 몬스터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우뚝 솟은 기둥처럼 자리를 유지했다.
나는 아까 떴던 홀로그램 창을 흘긋 쳐다봤다.
[난이도: ■¿&※△]음. 망한 거 같은데.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쿠르릉, 검은 구멍에서 지독한 연기로 뒤덮인 얼굴의 형태가 드러나더니, 번뜩, 중앙에 있는 붉은 눈이 뜨였다. 동시에 금으로 둘린 입이 벌려지더니…….
“모두 후퇴! 후퇴해!”
부우웅. 에너지가 모이며 거대한 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투쾅! 에너지의 구가 바닥에 쏘아지며 검은 액체가 단숨에 주변을 뒤덮었다. 검은 액체에 맞은 사람들은 하나둘 형태가 사라졌다.
‘녹는 건 아닐 테고. 이동인가.’
검은 액체가 퍼지는 와중,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익숙한 거대 몬스터를 바라봤다.
‘저거 분명…….’
철퍽. 그 상태로 액체에 뒤덮였다.
검은 해수에 뒤덮인 감각에 눈을 뜬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른 생각에 집중했다.
‘분명.’
검은 몸체에 기다란 팔, 붉은 손톱과 붉은 외눈, 금으로 둘러싸인 입까지. 몸체가 전부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 상체 부분은 전선으로 뒤얽혀 있을 테다. 그리고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것은.
‘탑주의 본모습.’
그간 내가 상대했던 탑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온 게 탑주 본인이라고 하기에는 꺼림칙한 부분이 많았다. 우선 최종 보스는 마지막에 나온다고 늘 외치던 탑주였으니 지금 나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탑주가 우리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지금, 인제 와서 본모습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본모습을 해야 본연의 힘을 낼 수 있다고 하기에는 멀쩡히 힘을 사용하는 것 같았고.
그러면 답은 하나.
‘과거의 잔흔 정도인가.’
혹은 환상.
‘뭐가 됐든 공격이 통하지 않게 했다는 건, 일단 우리가 상대할 대상이 아니라는 거일 텐데.’
열쇠를 찾으라 했었다. 열쇠… 열쇠라.
‘또 보물찾기 같은 건가.’
그렇게 검은 액체 속에서 두둥실 떠다니며 생각하고 있을 때, 무언가가 내 뒷깃을 붙잡았다. 뭐가 날 잡았는지 확인하려 뒤로 돌았지만 검은 액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휙! 철퍽이는 소리와 함께 검은 액체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잠시 바라봤다.
“한지언 씨 낚으셨네요. 이거 축하드려야 하나.”
형 뒤로 지화연 씨가 시야에 들어왔다.
쑤욱. 몸이 검은 액체에서 완전히 빠지며 바닥에 안착했다. 물에 젖은 듯한 감각에 나는 고개를 저어 물을 털어 냈다.
“저희 쪽 사람은 다 건진 것 같으니 이제 낚시는 안 하셔도 될 것 같네요.”
그 말 그대로 한국 쪽 헌터들은 거의 있는 것 같았다. 낙오자가 한두 명쯤 있는 것 같았지만, 전부 찾을 순 없는 상황이니 별수 없고.
‘되레 이 정도 찾은 게 더 대단한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검은 액체 속에서 한국 쪽 헌터만 쏙쏙 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같은데, 아닌 모양이었다.
검은 액체가 강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떠밀려 내려온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릴 듯했다. 애초에 가 봤자 열쇠라는 게 없는 이상 스테이지를 깰 수 없겠지만.
“아,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나는 그러며 지화연 씨를 바라봤다. 지화연 씨가 뭐냐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길을 찾으셨어요?”
“싸움 거는 헌터 만나셨죠?”
“예? 어… 네.”
“저희도 다 한 번씩 만나 봤거든요. 친히 공간을 부수고 다른 곳으로 가 주시는데, 그걸 보고도 눈치 못 채고 가만히 있는 게 바보죠.”
“아, 그렇구……. 잠만. 형?”
“응?”
분명 형은 공간을 부숴서 왔다는 말만 했지, 누구와 싸우다 그 방법을 알아냈다는 말은 없었다. 나는 내가 듣지 못한 건가 싶어 물었다.
“형도 그러면 나랑 만나기 전에 만났었어?”
“…뭘?”
“그… 싸움 거는 헌터들.”
“아니?”
“그러면 형은 어떻게 길을 찾아낸 거야?”
날 찾아낸 건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지만, 공간을 부순다, 라는 생각을 하긴 힘들 터. 형 역시 탑은 처음이니 아무것도 모를 확률이 높을 텐데, 힌트도 없이 어떻게 움직인 거지? 설마 이것마저 알고 있나?
그렇게 생각을 깊게 한 것이 무색하게 형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 허무했다.
“부수다 보니까… 됐어.”
“…응?”
…그렇구나. 부수다 보니까 됐구나. 그렇구나…….
‘말이 되냐?’
상식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걸 부순다고 생각하지, 그 누가 공간 자체를 부숴 버린다고 생각을……. 형이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몬스터만 죽여 댔으니 발견을 못 한 게 당연하고……. 진짜 운도 실력인가.’
이쯤 되면 정말 형은…….
“근데 지언아.”
“응?”
“아까 말인데.”
형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어 말을 이었다.
“왜 가만히 있었어?”
“무슨 소리야?”
“아까 검은 액체가 사람들을 뒤덮을 때. 몬스터만 쳐다봤었잖아.”
“…아아.”
나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겁먹어서 그랬지. 그런 걸 뭘 또 굳이 묻고 그래, 형. 사람 부끄럽게.”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형은 잠시 뜸을 들이다,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의외로 감이 좋단 말이야.’
아니면, 형이 아는 한지언이 거기서 도망치지 않은 게 이상한 건가.
클리어 신경 쓰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인식하는 것에 신경 쓰랴, 둘 다 신경 쓰긴 귀찮아서 마침 혼자다 싶기에 클리어에 집중했는데. 그게 무의식적으로 이어진 듯 보였다.
‘조심해야지.’
현재 상황에서 이상한 부분을 들켜 봤자 혼란만 초래하지 별 좋은 점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잠잠―’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쿠르릉! 검은 액체가 흐르는 강에 소용돌이가 치며 거대한 몬스터가 형태를 잡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지화연 씨가 단숨에 앞장서 입을 열었다.
“훈련한 걸 드디어 써먹겠네요. 그래 봤자 인원수가 꽤 빠져서 완벽하진 못하겠지만.”
하나둘 전투태세를 취했다. 앞장선 지화연 씨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손톱으로 한쪽 팔을 길게 그었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