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46
46화
축축하게 젖은 벽과 물이 얕게 차오른 바닥. 그 중앙, 갈무리되지 않은 돌덩이에 누군가가 기대어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헝클어진 청록색 머리. 어두운 곳과 대비되는 새하얗고 고고한 외모.
뚝.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아무래도 이게 열쇠인 것 같네요.”
“예? 사람이 어떻게 열쇠……. 엇! 불빛이에요!”
임하늘이 맞장구를 치다 말고 또 다른 곳으로 샜다. 빛이 보인다는 말은…….
나는 곧장 임하늘이 나아가려는 곳을 바라봤다. 조금 집중해서 바라보니 보랏빛 연기가 일렁거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들이 보이자마자 나는 박우윤에게 속삭였다.
“박우윤 헌터.”
“빛이……. 네?”
“보라색 연기가 입구 밖으로 나가려 하면 능력을 사용해 잡아 삼켜 주세요.”
“네에……. 빛이 있네요.”
…가능하겠지. 놓치면 놓치는 대로 그러려니 하겠다만, 여기가 환상의 근원지인 것 같으니 뿌리를 뽑는 편이 좋을 터. 박우윤이 영 조절을 못 하면 윤시아가 해 줄 테고.
휘릭. 낫을 돌렸다. 그리고 자리를 박차 연기를 향해 휘둘렀다. 또다시 귓가를 파고드는 웃음소리가 나를 지나가 입구 쪽으로 향했다.
―끼히히! 통통통!
통통거리던 건 이것들의 짓이었나.
“박우윤 헌터!”
내가 소리치자 박우윤이 화들짝 놀라며 무작정 능력을 사용했다. 검은 액체가 거대하게 생겨나 입구를 막았다. 그러고는 이내 신속히 달려오는 몬스터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였을까. 몬스터가 깔깔 웃으며 검은 액체를 피해 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액체가 사방으로 솟아나며 단숨에 연기를 덮쳐들었다. 윤시아가 손을 살짝 휘적이는 걸로 보아 아마 윤시아의 작품일 터.
―끼아아아악!
몬스터가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임하늘과 박우윤의 비명이 귀를 찔렀다. 그들은 이내 풀썩, 주저앉았다.
‘정신 공격인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돌에 기대 죽은 듯 잠을 자던 왕녀마저 제 몸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박우윤의 공격 능력이 방향을 잃은 듯 흐물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곧장 소리쳤다.
“윤시아 헌터!”
“네네!”
윤시아가 지휘하듯 손을 움직이며 검은 액체를 움직였다. 검은 액체가 넘실거리며 둥글게 뭉치다 휘릭, 휘핑크림처럼 솟아올랐다. 그리고 이내, 쿠웅! 가운데부터 움푹 파고들어 가 그대로 출렁이며 압축됐다.
―께엑, 에에. 엑.
푸쉬식, 보랏빛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왜 여기 몬스터들은 아이템이 안 떨어진담.’
어쨌거나 몬스터는 보이지 않으니 그걸로 다행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아마 왕녀는 환상에 취해 있던 것일 터. 몬스터를 죽였으니 곧 깨어날 것이었다.
‘일단 다른 사람부터 챙겨야지.’
그렇게 박우윤과 임하늘을 일으켜 세우던 와중, 청록색 머리카락이 움찔 떨렸다. 그 이후 왕녀의 눈이 서서히 떠지며 청록색 눈이 드러났다. 왕녀의 눈은 전과 달리 조금 빛나는 듯싶었다.
계속해서 쳐다보자, 왕녀는 이번에는 제 팔을 들더니 확인하듯 손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번쩍 고개를 들곤 나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시선에 나는 떨떠름하게 물었다.
“어, 음. 괜찮으세요?”
“…….”
“아는 사이예요?”
임하늘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박우윤이 작게 속삭이며 설명해 줬다.
“…너.”
왕녀가 찰박이는 바닥을 짚고 손톱으로 돌바닥을 긁었다.
“어째서…….”
“제가 여기 왜 있냐면요. 그러니까―”
“어째서 이제야 나타난 거냐.”
“…네?”
후드득, 왕녀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 싶은 찰나에, 뒤에서 윤시아가 무어라 속삭였다.
“울렸대요.”
“…울렸어요?”
“아니에요.”
이 인간들이 뭐라는 거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왕녀를 쳐다봤다. 보아하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상황에 맞게 얘기를 해야겠지.
“…사정이 있었습니다.”
“사정. 그래, 사정이라.”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왕녀가 입술을 짓이겼다. 그녀가 손톱으로 돌바닥을 마저 긁어내자, 파인 돌바닥에 작은 꽃이 피어올랐다. 왕녀가 고개를 올리며 말했다.
“다 죽었다. 제국도, 왕국도 존재하지 않는다. 왕국의 유물인 비녀도 부서졌다. 지상은 더 이상, 우리들의 것이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국 것들이… 이상한 것을 섬겼다. 감당하지 못할 것을 만들었다. 이제, 모든 게 다 끝났어.”
삶의 의지를 잃은 듯, 왕녀는 다시 돌에 기대어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흐르는 눈물이 젖은 바닥에 떨어졌다.
“다… 끝났다고.”
“그래서요?”
시큰둥한 내 반응에 왕녀가 시선을 내려 살기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지금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그런 의미는 아닌데요.”
“그럼 뭐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 말을 들은 왕녀가 잠시 생각하다 이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못 해. 더 이상 되찾을 것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래.”
“그럼 더 쉽네요.”
“뭐?”
단숨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곧이어 식물이 자라나기 힘든 공간에 우두둑, 바닥을 가르며 꽃이 피어올랐다.
“아까부터 무슨 망언이지?”
“망언이라뇨. 잃을 게 없으니 복수하기 쉽다는 뜻인데.”
“…….”
꽃이 시들며 땅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도와드릴게요.”
“…….”
“포기하지 마세요.”
나는 어떠한 감정도 싣지 않고 말을 꺼냈다. 얼핏 보면 멍청한 듯 보였지만, 지금만큼은 진실한 표정을 짓는 게 가장 바람직했다. 왕녀는 이미 절벽 밑으로 떨어진 사람이니까.
‘감정적인 말로 위로해 주면 오히려 포기할 수도 있고.’
그나저나, 탑주는 창의력이라는 게 없나? 왜 자꾸 같은 것만 우려먹지.
‘보물이나 열쇠나, 똑같은 거로 해 놓으면 어려워질 줄 알았나.’
슬쩍 왕녀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걸 보아, 왕녀에게도 시간이 조금 필요한 듯싶었다.
“그럼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가만히 있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인지.”
이후 나는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저렇게 둬도 되는 거예요?”
“몰라요. 시간 지나도 안 나오면 그냥 가야지, 뭐.”
“네? 저게 열쇠라고 하지 않았어요?”
“정확히는 ‘후보’죠.”
임하늘이 영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담이나 나누고 있죠, 뭐.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안 나오면 마저 갈 길 가고요.”
“음…….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도 괜찮을까요?”
“…글쎄요. 당장 방법이 없는지라.”
“어차피 이 층 클리어하면 볼 일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억지로라도 데려가면 안 돼요?”
솔직히 나도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애초에 왕녀가 이곳에 있는 이상, 사실상 왕녀는 열쇠가 분명했다. 후보라 한 거는 그냥 안심시키기 위함이었고.
하지만 1층에서 어땠는가. 만약 왕녀가 공간 이동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영원히 지하로 가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이번 층도 그렇겠지. 왕녀가 직접 움직이게 하는 게, 이 게임의 주요 목적인 것 같으니까.
‘…탈출구라고 떴던 곳에 분명 몬스터가 가득했지.’
그리고 분명, 제국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만들어 냈다고 했고.
‘그렇게 몬스터가 탄생했다, 같은 탄생 비화 스토리인가?’
그리고 탑주가 우리를 용사, 자기를 마왕이라고 했던 걸 보면 아마 우리가 지금 클리어하고 있는 이것도 용사와 마왕 스토리인 듯하고. 물론 용사는 왕녀.
‘헷갈리네.’
그냥 평소대로 피가 튀는 게임이나 하지, 뭐 이런 스토리를 다 넣은 것인지. 설마 형 말대로 자기 이야기인 건가? 얼굴이 똑같은 걸 보면 가능성 있는데.
“…….”
경계를 조금 해야 하나.
♧♣♧
뚝. 천장에서 물이 흘러내려 바닥에 고인 물과 맞장구를 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이곳은 지하, 아니, 그보다 더 깊은 어딘가. 나의 사람들은 오직 나만을 이곳으로 숨겨 내 목숨을 살렸다. 나는, 당신들을 살리기 위해 있던 것이거늘.
「왕녀님, 당신은 저희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무릎을 당겨 껴안았다. 그러곤 작게 중얼거렸다.
“…리오나, 세냐, 아르, 구향, 천비, 그리고 테오, 알리아, 그리고…….”
이미 사라진 자들의 이름을 부르니, 마치 부름에 답하듯 가지각색의 꽃들이 돌바닥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눈물이 새어 나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수백 명의 사람을 잃었다. 난,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분명 왕국을 되찾아서 웃음꽃이 만개한 왕국 사람들을 다시 보기 위해 여태껏…….
“여태껏 버티며 온 거란 말이다.”
더 이상 웃음을 지을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웃음을 지을 사람이 사라져 나 또한 웃음을 잃었다. 화려한 꽃들이 만개했던 왕국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평안한 집도, 가족도, 친구도, 내가 책임져야 할 것도 전부.
“…아젤.”
―끼우우…….
퐁. 하얀색과 분홍색으로 이루어진 작은 정령이 튀어나왔다. 제 주인이 슬퍼하고 있다는 걸 아는 듯, 정령은 슬픈 표정을 짓고, 슬픈 목소리를 내뱉었다.
“난 왜, 왜 아직 살아 있는 걸까.”
―끼우, 끼우우.
“난 나의 사람들을 방패로 숨은 겁쟁이인데, 내게 살아 있을 자격은 있을까?”
―…끼우.
사실, 왕국이 제국에 먹힌 뒤로 왕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담화’라는 인물만이 살아 있고, 존재할 뿐이었다. 제국에 패한 뒤로 이미 내게는 왕녀의 자격이 없었다. 국민을 잃고, 국민의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국민이 있을 곳을 빼앗겼는데.
어쩌면 내 이기심이었다.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고 허울뿐인 ‘왕녀’의 자리를 유지한, 나의 이기심이 모두를 죽였다. 봉인된 힘을 되찾으면 무얼 하는가. 이기지 못하는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들 무얼 하는가. 내 사람들을 전부 잃었는데. 힘이 있다고 한들…….
「망언이라뇨. 잃을 게 없으니 복수하기 쉽다는 뜻인데.」
“…….”
픽, 웃음이 튀어나왔다. 얼마나 무너졌으면, 이런 말 따위를 생각하는 건지.
‘…복수라.’
애초에 나는, 처음부터 복수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일은 당연했고, 지면 빼앗기는 것 역시 당연했다. 그래, 모든 게 당연한 순리였다. 단지, 아직 남은 나의 사람들이 원하니까. 그러니까…….
“…….”
―꺄우우?
왕국이 제국에 진 시점부터, 이미 그들은 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왜 나의 사람들이 그러기에, 라고 생각하는 거지?’
왕녀 담화가, 평범한 담화가 된 시점부터, 나의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 왜 왕녀의 자리를 유지하고, 사람들을 이끌고, 왕국을 되찾으려 한 거지?
“…….”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답을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철퍽이는 바닥을 짚고 휘청이며 일어났다. 돌바닥에 피어오른 꽃들을 사박사박 밟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너희는 왜, 더 이상 왕녀도 뭣도 아닌, 오히려 너희를 죽음의 구렁텅이에 밀어 버린 나를, 왜 살린 거지?’
어릴 적부터 영리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머리였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날 왜?’
그리고 난, 왜?
키기긱, 뻑뻑한 돌문이 바닥을 긁으며 열렸다. 문을 활짝 열자, 옛적 만났던 사내가 서 있었다. 한순간에 사라져 정체를 알아내지도 못했지만, 어째서일까. 왜, 그래서 더 믿음직한 것일까.
열린 문 너머에 있는 인물들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입을 벙긋거렸다.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난 왜, 왜 당연한 순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태껏 제국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거지?”
그러자 사내가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야 복수하고 싶었으니까요. 모든 것을 앗아 간 것들에게 말이에요.”
“…….”
긴 고민이었다. 왕국의 마지막 왕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웃음을, 행복을 되찾으려는 이들 앞에 설 자격이 있는 것인가.
그러나 아니었다. 나 역시 그저 그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웃음을 보면 나 역시 웃음이 났고, 그들이 행복하다면 나 역시 행복했다.
그렇기에, 되찾고 싶었다. 왕녀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나를 앞에 세워 주었던 너희를, 앞에 서 있던 나의 뒤를 받치어 준 너희를, 이제는 없는 너희를 위해, 마지막 남은 내가 칼을 쥐겠다.
왕녀가 아닌 담화로서, 이 순리를, 거스를 것이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