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52
52화
어느 정도 쉬고 나서 나는 떨어졌던 절벽을 다시 올랐다.
가파르기 그지없는 절벽 위에 다다르기 직전, 유아한 씨를 구하러 갔을 때 승현 헌터가 주었던 아이템을 입에 물었다. 기척을 숨겨 주는 아이템. 승현 헌터가 딱히 아무 말도 없기에 내가 지니고 있었다.
절벽 위에 다다른 나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주변을 살펴봤다.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들이 하나, 둘……. 어이구, 많다.
‘무리를 짓는 몬스터인가?’
하나같이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들이었다. 버펄로처럼 생겼지만 크기는 훨씬 거대하며, 등에는 잡초와 꽃이 자라나 있었다. 풍경에 숨어들어 사냥하는 듯 보였다.
‘유대감이 있어 보이는 걸로 보아, 무리 몬스터는 맞는 것 같고. 그렇다면.’
몬스터를 하나하나 훑어봤다. 무리 몬스터의 특징 중 하나.
‘아, 저건가.’
나는 인벤토리에서 투명한 천을 꺼내 들었다.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적셔 말린 듯한 느낌의 천이었다.
비밀 상점가에서 산 5초 투명 망토. 5초라는 말에 대다수의 헌터들이 구입을 꺼리지만, 상급 헌터는 탐낼 만한 아이템이었다. 그야 상급 헌터들은 5초란 시간에 할 수 있는 게 많으니.
천을 뒤집어쓰자마자 나는 땅 위로 올라왔다. 기척과 모습을 동시에 숨겼기에 나를 알아채는 몬스터는 없었다.
4초. 몬스터들의 중심에 다다랐다.
3초. 땅을 한 번 밟고 튀어 올랐다.
2초. 낫을 꺼내 들어 크기가 가장 큰 몬스터에게 휘둘렀다.
마지막 1초. 몬스터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사라락. 천이 부서지며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거대한 몬스터가 죽은 모습에 다른 몬스터들이 혼란이 온 듯 펄쩍 날뛰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몬스터도 있었지만, 기척을 지우는 아이템까지 사용하고 있어서인지 재빨리 자리를 뜬 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피슉. 투명한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호수로 착각할 정도의 피 웅덩이가 져서야 몬스터들이 전부 죽었다.
‘그리 강하진 않았네.’
무리 몬스터. 개중 반드시 대장이 있으며, 대장을 죽이면 몬스터들에게 혼란을 줘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이런 기본 지식이 통할 줄 몰랐다만, 몬스터는 역시 몬스터인 모양이었다.
나는 몬스터를 전부 처리하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잔디밭이었나.’
무성한 잔디, 그리고 꽃과 나무, 슬며시 피어오르는 차가운 안개. 마치 저승의 문턱 같은 모습이었다.
‘꽝인가?’
나무를 살펴봤지만 평범한 나무였다. 역시 꽝이구나 싶어 뒤로 돌던 찰나,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생겨났다. 전부 읽기도 전.
풍덩―!
투명한 액체가 몸을 집어삼켰다. 나가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손끝이 저릿해지며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비 독인가?’
나는 액체를 삼키지 않기 위해 숨을 참았다. 그리고 아까 떴던 홀로그램 창을 기억해 냈다. 잠깐이었지만 얼추 시야에 들어와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분명.’
[낙원의 주인이 되었습니다.]당최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이거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낙원’이라는 것.
‘이게 무슨 낙원이야.’
숨을 참는 것이 버거워져 컥 하고 숨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투명한 액체가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그렇게 온몸의 감각이 가라앉았을 때쯤.
퍼엉!
“커헉.”
액체가 터지듯 사방으로 튀어 투명한 액체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몸속에 들어찬 듯한 액체에 기침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구역질도 튀어나왔으나 이상하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
“으…….”
도대체 혼자 무슨 생쇼를 하는 건지.
나는 입가를 닦고 아까 떴던 홀로그램 창을 살펴봤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까 읽었던 글과 함께 다른 글이 적혀 있었다.
[영지전 히든 퀘스트 등장] [낙원을 더럽힌 새로운 주인을 무찌르세요!] [낙원의 주인을 무찌를 경우 영지전이 패스되고 다음 게임으로 넘어갑니다.] [낙원의 주인의 숨을 끊은 마지막 공격자에게는 엄청난 보상이 주어집니다.] [낙원의 문이 개방됩니다.] [낙원의 주인은 ……]“…….”
망할. 왜 따로 떨어졌나 했더니 이런 거였구나 싶었다. 처음부터 이 게임은 나를 노리고 제작된 거였다. 그도 그럴 게, 홀로그램 창에 뜬 글이 나를 노리고 있었으니.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홀로그램 창에 적힌 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낙원의 주인은 한지언입니다.]허, 하고 실소가 튀어나왔다.
영지전이라 함은 팀을 이루어 (싸우다 가장 마지막에 남은 영지가 승리라는 것일 테고. 낙원의 주인을 무찌를 경우 영지전이 패스된다는 건, 즉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굳이 서로 싸울 필요 없이 평화적으로 한 명만 죽이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뻔한 전개였다.
‘괜히 건드렸나.’
내 실책도 있었다. 몬스터는 일단 죽이고 보자는 생각에 무심코 한 행동으로 인해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하지만 애초에 달리 행동할 여지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걸 노린 걸 수도.
‘뭐든 간에.’
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힘이 사용되지 않았다. 종합 능력치도 평범한 사람인 양 약해져 있었다. 아마 투명한 액체가 이런 효과를 낸 듯했다. 혹시 몰라 해독제를 마셔 봤지만 소용없었다. 문양 개방 상태는 지속됐지만, 허울뿐인 모습이었다.
텅그렁. 나는 낫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쥐고 있기 불편했다.
이어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침침했던 하늘이 언제 파래진 것인지, 마치 하늘이 바다인 것 같았다.
그렇게 푸른 하늘, 허공에서 다양한 색의 게이트가 생겨났다. 붉은색, 초록색, 보라색, 노란색, 그리고 파란색까지. 들어오기 전 봤던 문 색과 같았다.
게이트에서 사람들이 단숨에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곧장 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찾았다! 쟤 맞지?! 죽이는 건… 나다!”
“비켜! 나야! 드디어 여기에 들어온 보람을 찾겠구나!”
사람들이 자신이 죽일 거라며 너도나도 거대한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굳이 저렇게 하지 않아도 심장만 찌르면 죽을 텐데. 뭣 하러 저리 공을 들이는 건지.
누군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화살 한 대가 어깨를 파고들었다. 긴 줄이 내 팔을 붙잡아 거세게 당겼다. 몸이 휘청거렸다. 이 와중에도 든 생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라서 다행이다.’
모두가 보상에 눈이 멀어 자기가 죽일 거라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렸다. 칼날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나 하나 희생해서 다음 층 가는 거면, 뭐.’
형이 죽으면 나 역시 다시 돌아갈 테고, 설령 형이 죽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설령, 형이 죽지 않고 끝을 봐서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세상을 구하는 게 목적이었기에. 내가 죽어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평범해진 몸에 수차례 공격을 당해 금세 시야가 흐릿해졌다.
쿵!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까부터 터졌던 굉음의 연장선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쑤욱 몸이 잡아당겨지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한지언!”
“…….”
또 형이었다. 형의 머리 위에는 푸른 표식이 있었다. 어디 진영인지 알려 주는 표식인 듯했다.
왼쪽 눈이 따끔거렸다. 무언가 흘러들어간 걸로 보아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듯했다.
형이 주변을 방어하며 포션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것을 저지해 포션이 터져나감과 동시에 형의 손이 꿰뚫렸다. 그 모습에 나는 웅얼거렸다.
“그냥 죽이지 뭘, 그렇게, 피곤하게…….”
“…….”
그러나 정작 피곤한 건 나였다. 눈이 가물가물 감겼다. 저 멀리 지화연 씨의 말이 뚝뚝 끊겨 들려왔다.
“방어 …… 한지언 헌 …… 영지 ……”
입 안으로 액체가 흘러들어 왔다. 어깨에 박힌 화살이 뽑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웽웽거리던 청각이 어느새 멀쩡해지고, 무거웠던 눈이 떠졌다.
그러나 평범한 몸이 돼서일까. 포션을 사용했음에도 몸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지금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거지?”
“…….”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죽일 생각이 없어 보이는 형을 잠시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냥―”
“너한텐.”
그러나 말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묵살당했다. 형이 잠시 입술을 짓이기는 듯싶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이익을 위해 가족을 죽이는 무뢰한으로 보이나 보네.”
이후 형이 고개를 돌려 형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뜻이 아닌데.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럼 무슨 뜻이지.
내가 죽는다고 탑의 공략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겨우 한 층을 오르는 건데.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는데.
‘난 왜.’
죽어도 상관없었지.
그래. 보상이 후하다고 했다. 지금을 기회로 나를 죽여서 좋은 보상을 얻고 멸망을 막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까. 혹시 모른다. 보상이 무슨 탑 하나 지우기 이런 거일 수도.
‘…이게 무슨 생각이야.’
아무래도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듯했다.
쿠르릉. 여러 차례의 충격에 낙원의 산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창이 형의 앞으로 살짝 보였다. 나는 시선을 데굴 굴려 창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초록색 진영의 성이 부서졌습니다!] [초록색 진영 게임 오버!] [보라색 진영의 성이 부서졌습니다!] [보라색 진영 게임 오버!] [노란색 진영의 성이 부서졌습니다!] [노란색 진영 게임 오버!]아무래도 영지전의 알림인 듯했다. 알림이 뜰 때마다 색에 맞게 표식이 있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이제 파란색 진영과 붉은색 진영이 남은 상황. 달려들던 사람들을 처리한 지화연 씨가 형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해나가 전부 끝냈어요. 아무래도 한지언 씨에게 시선이 돌려져서 진영에 남은 사람이 극소수였나 봐요.”
“…….”
“보아하니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것 같네요. 한지언 헌터, 말은 할 수 있나요?”
“…네.”
“그거 다행이네요. 그럼 한지운 헌터.”
“…….”
“누가 남을래요?”
하나의 진영만 남거나, 내가 죽어야 게임이 끝나는 모양이었다.
내가 죽는 게 전적으로 이득이었다. 앞으로 게임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이렇게 사람들을 탈락시키는 건 손해였다. 소수의 인원으로는 앞으로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 필시 부담이 클 터. 지금이라도 날 죽이는 게 덜 손해였다.
“…….”
그러나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날 죽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야 사람은 대개 죽기 싫어하니까. 여기서 죽이라고 하는 건 비정상적으로 보일 게 틀림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형과 지화연 씨가 이어서 말을 나누었다.
“한지운 헌터 덕에 탈락해도 죽지 않는 게 다행이네요.”
“…….”
“한지운 헌터. 계속 입 다물고 있을 거예요?”
“제가 남겠습니다.”
“제가 남고 싶은데요.”
둘의 분위기가 단숨에 싸해졌다. 이내 지화연 씨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요, 결국.”
촤악! 지화연 씨가 허공에 레이피어를 휘두르자 레이피어에 짙게 묻어 있던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지화연 씨가 지휘를 하듯 레이피어를 움직여 형에게 겨누었다.
“오래간만에 대결이나 할까요. 진 쪽이 탈락하는 걸로.”
“…….”
형이 나를 같은 팀인 에단 씨에게 건넸다. 에단 씨가 당황하며 나를 넘겨받았다. 이어 형은 지화연 씨에게 다가가며 검은 검을 꺼내 들었다.
아니, 진짜 망할 인간들이.
‘그냥 가위바위보로 정하라고…….’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