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58
58화
“…….”
눈을 의심했다.
탑의 주인은 제트리스. 즉 다시 말해 이 창을 관리하는 것도 제트리스의 일일 터였다. 하지만 제트리스는 내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흥미를 잃은 듯 행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제트리스가 지금 내게 뜬 창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정산이 완료됐다니.’
뭐, 무슨 보상이라도 주려나.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인제 와서 뭘 받건 상대가 안 될 것 같은데.
[보상이 지급됩□■]문장이 써졌다 지워졌다. 의문스러운 현상에 나는 잠시 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문장이 써졌다.
새롭다 못해, 조금 놀라운 문장이었다. 나는 하나하나 써 내려져 가는 문장들을 쳐다보았다. 익숙한 문장들이 두 눈에 담겼다.
[도와줄 테니.] [포기하지 마라.]화악. 꽃향기가 나를 집어삼킨 듯 향기로운 바람이 불었다. 달큼하고 따듯하며 화려한 향기에 누군가가 잠시 떠올랐다.
불어온 바람에 잠시 다른 곳으로 돌아갔던 시선을 다시 창으로 옮기자, 아까와 다른 문장이 쓰여 있었다.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그 밑으로 YES, NO가 적혀 있었다.
“…….”
아까 그것이 환상이 아니라면, 믿어도 되는 걸까. 혹시 제트리스의 속임수가 아닐까.
“…아무렴 어때.”
나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살포시, 글자 위를 눌렀다.
YES. 그게 내 선택이었다.
나는 에단 씨를 조심히 바닥에 눕혔다. 바닥에 얹힌 손가락 사이로 포근한 풀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낌새에 제트리스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너, 뭐야.
나는 몸을 일으켰다. 불 리가 없는 바람이 부는 듯했다. 내 발아래로부터 푸릇한 풀과 여러 색의 꽃들이 영역을 넓혀 갔다. 그와 동시에 그 영역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힘없이 풀썩 주저앉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나는 걸음을 움직여 제트리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 과정에서 푸른 장미로 장식된 검을 만들어 내 뽑았다.
달큼하며 화려한 향기가 공간을 장악했다. 어두웠던 하늘이 옅은 분홍으로 물들었다.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내 모습에 제트리스가 물었다.
―너, 어째서 그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 힘은 분명 나한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뭐, 근데, 이유는 알 것 같다.”
나는 시선을 옮겨 아직도 떠 있는 창을 바라봤다.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보상 내역: 피어오른 꽃봉오리의 기적] [누군가의 보답]“네 업보인 것 같은데.”
―뭐?
“네 업보라고. 누가 시스템을 건드린 모양이지. 도대체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으면 본인 영역의 것이 우리를 도와.”
―그게 무슨……. 잠깐. 설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도 잘 몰라. 근데 적어도.”
나는 칼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지금 할 일은 알 것 같네.”
포기하지 마라.
내가 한 말인데, 정작 내가 포기했다. 참 바보 같았다.
‘그러니 도와준 거겠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무너져 내리는 걸 가만두고 볼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으니까.’
단편적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아마 맞지 않을까. 달리 떠오르는 생각이 없으니까. 그만큼 확고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제트리스 역시 힘이 빠져나간 듯 몸을 주춤거렸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고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어떻게 말했더라.’
기억을 되감았다. 그러자 하나의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떠오른 기억을 잠시 반추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나의 왕국, 나의 세상, 그리고.」
“…모든 것은 나의 나라, 나의 세상, 그리고.”
나는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러곤 부드럽게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해.”
쿠르릉! 가볍게 휘두른 검의 검기가 매서운 기운을 뽐내며 제트리스를 공격했다.
―…어째서 이 힘을……. 설마. 아니, 그럴 리가.
“뭘 자꾸 생각해. 그냥 네가 저지른 일의 업보라니까.”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설마.
제트리스가 이를 바득 갈며 땅에 발을 박아 밀려나는 걸 막아 냈다. 그러며 짐승처럼 그르륵거리는 소리를 내곤 중얼거렸다.
―잠시 이어져 있었다고 그새 틈을 파고들 줄이야……!
이어져 있었다는 건… 머리를 말하는 건가?
생각하기도 잠시, 제트리스의 머리가 검게 물들었다. 담화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몸이 부드럽게 움직여졌다. 깔끔하면서도 화려하게,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몸을 조종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내가 몸을 움직이는 건 확실했다.
파고든 검이 제트리스의 팔을 절단했다. 절단하기 무섭게 금방 다시 자라났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재차 제트리스의 팔을 잘라 냈다.
‘그때, 어떻게 죽였더라.’
제트리스의 상체와 하체를 분리했지만 실로 이어진 듯 떨어져 나가지 않고 몸이 다시 붙었다. 제트리스는 통 죽지 않았다. 아예 으깨 버려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질겼다.
내가 공격을 이어 나가자, 제트리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감히, 감히…….
이내 퍼엉!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겨 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액체를 맞은 식물들이 순식간에 시들었다.
겉에 뒤집어쓰고 있던 검은색이 사라진 제트리스의 모습은, 유리로 된 마네킹과도 같았다. 예전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저게, 본모습인가.’
그동안 보지 못한 모습으로 제트리스는 매섭게 공격을 가했다. 지금껏 제트리스는 검은 형태로 나와 싸웠었는데, 이전엔 진심이 아니었던 모양이지.
‘…지금이라도 봤으니 됐나.’
투명한 머리 안, 눈알이 데굴데굴 굴렀다.
머리. 담화가 가짜 제트리스를 죽였을 때 분명 머리를 동강 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제트리스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검은 제트리스의 목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내가, 쉽게, 당할 것, 같아?
뚝뚝 끊기는 문장에 승산이 느껴졌다.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왜 머리일까.’
물론 머리가 동강 나 죽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이지.
다만 상대는 몬스터였다. 약점이 제각기 다른 몬스터 말이다. 실제로 심장이 뻥 뚫려도 죽지 않은 것이었기에 더욱.
나는 유리로 된 제트리스의 머리를 쳐다봤다. 무엇이 약점일까.
그리고 내 시선은, 붉은 눈알로 향했다. 뇌 대신 데굴 굴러가는 눈알로.
―어딜 보는 것이냐?
콰드득! 검을 쥔 쪽의 어깨가 뚫렸다. 자연스레 풀린 힘에 검이 바닥을 뒹굴었다.
“…진짜 적당히 좀―”
덜컥. 말을 이을 수가 없어졌다. 뚫린 어깨를 중심으로 무언가가 빨려 나갔다. 그러자 별안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하. 하. 그래. 내 힘이야. 너 같은 것에게 줄 수 없는 힘이라고. 자, 봐라. 힘도, 주인을, 알아보잖아?
“적당히…….”
유리로 뒤덮였던 제트리스의 머리의 모습이 변했다. 청록색 머리칼의 익숙한 외모. 또 외형을 담화로 바꿔치기했다.
―그래. 이 힘은 내 것이야!
드드드득. 사방에 자라났던 푸릇한 식물들이 단숨에 썩어 들어갔다. 식물들은 이내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져 내릴 지경에 이르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담화의 힘에 이어 내 힘까지 제트리스에게 빨려 들어가는 감각에 몸 전체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다 우뚝.
―이게 뭐…….
어깨를 꿰뚫었던 손이 빠져나갔다. 뒤로 물러서는 제트리스는 어느새 담화의 모습을 없애고 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건……. 이건……. 이거는…….
번쩍. 제트리스가 숙였던 고개를 들곤 나를 쳐다봤다. 데굴 한 바퀴 구른 붉은 눈알이 오로지 나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하. 하하하하하!
광기에 전 듯한 웃음을 내뱉으며 제트리스가 내게 달려들었다.
‘아직, 아직 남아 있으니까.’
나는 서둘러 바닥에 나뒹굴던 푸른 장미의 검을 집었다. 그러나 붙잡은 검의 날이 부러져 나갔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때는 늦은 듯, 거대한 공격이 코앞까지 다다라 있었다.
콰드득! 매서운 공격이 비껴 나가 내 바로 옆 바닥을 긁었다. 몸을 방어하기 위해 들어 올렸던 팔을 치우자,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신 똑바로 차려요!”
윤시아가 검을 겨우 쥐고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한지언 씨가 저희 기력을 다 흡수해 가서 이 모습도 겨우 회복한 거라고요! 힘을 빌려 갔으면 제대로 좀 해요!”
제트리스의 뒤에서 곧 무너질 것 같은 붉은 액체가 공격에 가세했다. 그 옆에서는 검은 손톱을 세운 박우윤이 제트리스의 팔을 깨뜨렸다가 공격에 튕겨 나갔다.
담화의 힘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걸 증명하듯, 푸른 장미로 장식된 검이 부서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내 힘으로 해야 했다. 내 힘으로.
나는 밑바닥까지 기력을 긁어모아, 손아귀에 낫을 만들어 냈다.
심호흡을 한 나는 제트리스를 바라봤다. 벌레가 붙어 짜증 난 듯, 제트리스는 헌터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성을 잃었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 터.
‘…가능하다.’
가능해야 한다.
한계까지 다다른 몸의 상태에 손이 떨려 왔다. 나는 힘이 풀리지 않게 낫을 억세게 쥐어 그대로.
쾅! 낫이 제트리스의 머리에 닿았다. 나는 근육이 터질 것 같은 감각을 뒤로하고 공격을 이어 나갔다.
꽈득. 제트리스의 투명한 손에 팔을 붙잡혔다. 저항하려 하기도 전, 날아온 주먹에 얼굴을 맞아 그대로 날아갔다. 제트리스는 내가 날아가는 와중에도 집요하게 따라와 공격을 가했다. 그러다.
툭. 누군가가 뒤에서 받쳐 줘 날아가던 몸이 멈춰 섰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검은 안개가 공격을 막아 내기도 잠시, 제트리스는 포효하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됐다.
‘그렇다고 여기서 뭘 해야…….’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은 지금, 내겐 그게 최고이자 최후의 방법이었다. 게다가 낭비한 것도 많았기에 더욱.
퍼석. 시든 풀잎이 밟혔다.
‘…잠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공간, 그 바닥은 시들어 버린 식물로 가득했다. 그러나 중간중간, 푸릇하게 생명을 유지하는 식물들도 눈에 띄었다.
‘어쩌면…….’
형의 공격은 제트리스에게 닿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닿아도 타격이 없었다. 즉 다시 말해 제트리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그 힘뿐이었다.
나는 형의 팔을 떼어 내고 곧장 어디론가 달려갔다. 확률은 반반이었다.
퍼석한 식물이 발에 밟혔다.
「포기하지 마라.」
달리던 걸음을 멈췄다. 사각거리며 푸릇한 식물이 발아래 밟혔다.
“…….”
아무것도… 없었다. 기력을 흡수하던 능력도, 장미에 둘러싸인 검도. 그저 푸릇한 식물만이 자리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실패인가.’
그럼 그렇지. 뭘 바란 건지.
뒤에서 누군가가 날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드디어!
제트리스가 날아와 공격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주춤거릴 틈도 없이.
콰장창!
“…….”
바람이 살랑였다.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수없이 많은 가시가 돋은 줄기가 제트리스를 막아 내고 있었다. 가시가 박힌 줄기 끝에는 활짝 핀 보라색 꽃이 있었다.
제트리스가 바둥거리며 줄기를 뜯어냈다. 그러나 줄기는 쉴 틈 없이 자라났다. 그리고 그 아래, 풀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후웅.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포기하지 않아 줘 고맙다.”
바람과 함께 작은 목소리가 내게 말을 속삭이고는 사라졌다.
“…허.”
헛웃음이 나왔다. 그 말이 뭐라고 이렇게 이어지는 건지.
바닥에 닿아 있던 낫날에서 푸른 장미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장미는 내 팔 한쪽을 완전히 감쌀 정도로 자라나고 나서야 성장을 멈췄다.
나는 낫을 치켜들고 작게 심호흡을 했다.
‘이번엔.’
가시가 달린 줄기를 겨우 뜯고 나온 제트리스가 포효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나 역시 낫을 휘둘렀다.
“끝내자, 좀.”
콰장창! 제트리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발로 제트리스를 짓밟아 머리에 낫날을 겨누었다. 기괴한 목소리로 무어라 소리치는 제트리스를 무시하고, 콰직.
붉은 눈알이 터져 나갔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