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77
77화
형이 당황 섞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문양만 간신히 개방할 수 있는 기력만 남은 형은 내 손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었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놨으니까.
형이 물었다.
“뭐 하는 거야.”
“…형. 하나만 묻자.”
나는 형이 마석을 꺼내 기력을 회복할 수 없도록 형의 시계 모양 인벤토리를 짓누르며 말을 이었다.
“이곳의 파훼법은 있어?”
“파훼법이라니?”
“그러니까, 계획 같은 거.”
“…확인해야 하는 게 좀 많긴 하지만, 가능할 거야.”
“…가능한 게 아니라 ‘할’ 거라는 거구나. 저번에도 그러다 큰일 날 뻔하지 않았나?”
“그건… 실수야.”
“그래, 뭐. 실수할 수 있지. 근데.”
성큼. 형의 등에 입구가 맞닿았다.
이곳, 두 번째 탑은 누구나 쉽게 꿈속으로 먹혀드는 공간. 그건 형도 포함이었다. 그리고, 쉽게 먹혀드는 만큼 쉽게 죽을 수도 있었다. 무방비한 사람을 죽이는 것만큼 쉬운 건 없으니.
작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형은 실수가 아니라 실패를 하지 않았어?”
형은, 소설만 믿고, 빙의한 몸만 믿고, 무언가 있는 척, 잘난 척, 할 수 있는 척 앞장섰다. 나 역시 그것에 속아 형이 뭔갈 하겠지 싶었으나, 형은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게 없었다. 제대로 한 건 끽해야 절망하지 않았다는 거?
‘빙의를 해도 똑똑한 게 빙의해야지, 하필 이딴 멍청한 게 걸려서.’
형에 대한 믿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애초에 믿은 내가 잘못한 거다. 진짜 형도 아닌데, 믿은 내가 바보지.
“…그게 무슨 소리야?”
“맞잖아. 다음 층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방황만 했으면서.”
“그건 실수―”
“한 번의 실수가 사람을 죽여.”
한 걸음. 형의 몸이 서서히 입구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형이 작게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이걸 위해 형의 기력을 다 이용한 거니까.
“그래. 실수일 수 있지. 근데, 결국 이곳의 능력이 형에게는 통하는 거잖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게 아니면 아까 형이 접촉하면 꿈에 빠지는 몬스터를 피하지 않고 가까이 붙어 공격했겠지.”
“…네가 그 몬스터를 어떻게 알아?”
“알려 주던데.”
“또, 탑의 주인이 말이지.”
더 이상 안 믿는 투였다.
“진짠데.”
“…그렇다 쳐. 근데 지금 너 뭐 하는 건데?”
“뭐 하긴. 위험하니까 형을 내보내려 하는 거지.”
꿈에 먹히는 사람은 죽기도 쉽다. 그러니 내보내는 게 가장 안전하지 않을까. 내가 탑을 클리어할 수 있는데 형이 죽어 시간이 돌아가면 그것만큼 귀찮은 게 없으니까. ‘내가’ 실수를 해 돌아가는 건 그렇다 쳐도, 다 깨 놓은 판에 ‘남의’ 실수로 돌아가는 건 사양이라.
다음에 지금과 같은 길을 걸으려면 행동부터 말 하나하나까지 전부 똑같이 해야 했다. 다른 점이 조금만 있어도 결과가 뒤바뀌어 버리니까.
즉 다시 말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운이 따랐기 때문이었다. 다음 회차로 가서도 과연 운이 따를까. 싸움 동작만 달라도 결과가 바뀔 수 있는데.
“밖에 나가 사람들에게 탑의 상황을 알려 줘. 또 추가 인원을 넣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마구잡이 방식은 피하는 게 좋잖아?”
“…….”
잠시 침묵이 일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채 나를 응시하는 형의 모습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질문은 끝?”
“…아니.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럼 반대로 너는, 계획이 있는 거야?”
“아마 형보단?”
“어떻게 할 건데?”
“…….”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닫았다.
경험. 그것이 나의 근본적인 계획이었다. 이곳, 두 번째 탑의 주인은 유일하게 내게, 내 손에 죽은 것이며, 죽어 왔던 것이었다. 아무리 탑이라 해도, 층을 클리어해야 한다 해도, 결국 꿈이라는 이 탑의 근본적인 것이 내게 통하지 않기에, 나는 적어도 형처럼 당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당하지 않고 처리하는 것.
정보가 아닌 경험. 그 차이로 형은 당했고, 나는 당하지 않았다.
“말해 줘도 모를걸.”
“…너…….”
형의 멱살을 붙잡은 손목이 꽉 죄여 왔다. 의심의 눈초리를 하던 형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리고 바뀐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형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야.”
그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계획은 없어도 머리는 잘 굴러가는 게 연속으로 보였으니까.
근데 그러면 뭐 해.
“누구긴 누구야. 한지언이지.”
결국,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를 텐데.
“아니, 아니야. 너는, 내가 아는 한지언은…….”
“형. 나는 형이 알고 있는 소설의 내가 아니야. 난 예전부터 이랬고, 앞으로도 이럴 거야. 소설의 내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난, 나야.”
내 말에 형이 입을 닫았다. 아무래도 나를 소설 속의 나와 겹쳐 본 게 맞는 듯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이 탑을 깨고 다음 탑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이번에야말로 형을 입구로 내보내자 생각하고 팔에 힘을 주려던 찰나.
“아니. 소설에서의 너를 말한 게 아니야.”
바닥까지 치달았던 기력이 조금 회복됐는지, 내 손목을 쥐는 형의 힘이 한층 더 강해져 왔다.
“내가 봐 왔던 것을, 내가 본 것만을 가지고 판단한 거야.”
확신에 찬 눈이 나를 바라봤다. 이제껏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형의 표정에 드러난 감정에 무심코 예전의 형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너는 빙의한 나를 인정했고, 그대로 받아들였어. 그리고 믿는다고 했지. 그런데 지금은? 그래. 내가 실수를 좀 많이 했어. 그건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야. 하지만 사람이 실수를 안 하면, 과연 그게 사람일까 싶은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한지언은, 완벽주의자가 아니야.”
“형이 뭘 모르나 본데, 성격은 원래 바뀌는 거거든?”
“아니. 알아. 하지만 바뀌어도 틀에 맞춰서 바뀌는 거지, 사람의 본래 성격은 바뀌지 않아.”
“아니. 바뀌어.”
“…지금도 그래. 예전에 네가, 단 한 번이라도, 나와 가치관이 달랐던 적이 있어?”
“…자만이야? 가치관이야 달라질 수도 있지. 형이랑 난 몇 년이나 떨어져 지냈잖아.”
“게이트가 생겨난 날 만났을 때, 넌 그대로였어. 변함없이. 그 뒤로도 쭉, 이따금 길드와 관련된 일이 일어나서 잠깐 마주쳤을 때도, 우연히 만났을 때도, 부모님에게서 전해 들은 너도, 전부 그대로였어. 그런데…….”
“…….”
형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고요함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1초가 1분 같았고, 1분이 한 시간 같았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듯한 침묵 속, 형이 말을 이었다.
“바뀌었어. 헌터가 된 이후에.”
형의 말은 꽤 예리했다. 아니, 적중했다.
헌터가 된 이후 바뀌었다. 그건 나의 모든 것을 표현한 말일 수도 있었다. 헌터가 된 이후에 힘이 생겼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죽이고, 죽고, 회귀했으니까.
‘…무작정 보호하려는 심리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네.’
헌터가 돼서 내가 바뀐 줄 알고 헌터 생활을 못 하게 하려 했던 건가? 그런 이유로 지금껏 보호하려고 한 거라면…….
‘유감이네.’
형에게 보호받고 눈물지을 시기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라.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래서 생각했어. 헌터가 된 이후에 네가 바뀐 거라면, 헌터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닐까 하고. 그래서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권유했어. 헌터 일을 하지 말라고……. 말주변이 없어서 크게 설득력 있는 말은 못 했지만.”
형이 허탈한 듯한 웃음을 내뱉었다. 내 손목을 붙잡았던 힘이 서서히 풀렸다.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한눈팔지 않고 형을 지켜봤다.
“처음부터 이상했어. 헌터 일을 할 거라는 네 말에 의아했어. 예전부터 귀찮은 일은 질색했으면서, 몸을 움직이는 헌터 일을 왜 하려는 건지. 부모님에겐 돈을 벌어 효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고 들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너는, 돈 같은 걸 벌려는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거 같아. 그도 그럴 게, 너, 지금 돈이나 효도 같은 건 안중에도 없잖아.”
“…….”
“만약 네가 정말 한지언이라면, 뭐 하나만 묻자. 넌,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글쎄.”
만약 형이, 누군가가 빙의한 형이 미래를 알고 있다면,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것이었다.
멸망. 무너진 미래. 그것을 뜯어고치기 위해 무작정 달려온 게 이 모양이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변을 만들 수 없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 수없이 멸망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난, 그렇게 살아왔다. 멸망이 끝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이변이 찾아왔지만, 이변 역시 다시 반복되겠지.
그런 미래를, 사실을 모르는 형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필요는 없었다. 형을 믿지도 않는데, 내 개인 사정을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잖아?
“그걸 굳이 말해야 하나 싶네.”
손을 놓았다. 동시에 형의 몸을 밀쳤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형의 몸이 입구 밖으로 내던져졌다.
“바깥에 안부나 잘 전해 줘.”
뒤로 돌아 탑의 안으로 들어갔다.
‘10초간 하늘을 걸을 수 있는 아이템도 쥐여 줬으니 떨어져 죽는 멍청한 일은 안 일어나겠지.’
어느 정도 걸음을 옮기자 보랏빛 눈을 반짝이며 탑주가 눈앞에 나타났다.
―넌 특이해.
“갑작스럽네.”
―그리고 특별하지.
“글쎄.”
―난 꿈이야. 생명이 바라는 걸 알 수 있고, 생명이 상상하는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지. 그리고 생명이 바라는 걸 보고 있고, 생명이 상상하는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지. 그 모든 것이, 꿈이니까. 그리고 난 그 꿈을 이루어 주는 꿈이니, 과거에 꿨던 꿈의 잔흔도 볼 수 있지.
“뭘 말하고 싶은 건데?”
―넌, 수없이 많은 시간을 반복했어. 맞지?
그 말에 나는 여유롭게 취했던 표정을 굳혔다.
“무슨 소리지?”
―어쩌면, 첫 번째 탑의 주인보다 오랜 시간을 방황했어. 하지만 나보다는 아니야. 나는 생명이 꿈을 꾸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생겼을 때부터 존재했으니까. 넌 내게 범접할 수 없어.
“그래서? 자기 자랑을 하러 온 거면 비켜 주면 좋겠는데.”
―남의 꿈을 발설하는 것은, 꿈이 뒤틀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하지 못해. 그것이 머나먼 과거의 꿈이더라도. 그러나 꿈의 당사자인 너는 아니야. 그리고 꿈 역시 마찬가지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네가 말한 도전, 받아 줄게. 너의 잔흔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거든.
“도전이라면, 꿈이 강한지, 꿈을 이루려는 행동이 강한지?”
―그래. 나도 조금 궁금해졌거든. 너의 세상 사람들을 반복해서 보아 온, 덧없는 시간 속에 갇힌 너의 말이 맞는지,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꿈을 먹고 자란 나의 말이 맞는지 말이야. 궁금해. 엄청.
“괜찮겠어? 안 봐도 내 승리인데.”
―그거야 모르지.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너와 같진 않으니까. 자만은 곧 패배로 이르는 길이야.
“뭐, 그래. 근데 남이 살아온 인생 가지고 자꾸 덧없다느니 방황했다느니 하지 말지?”
―틀린 말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했잖아.
“그렇게 생각했었지. 근데 너, 과거의 꿈을 보고 온 거 아니야? 과거는 과거인 거, 모르냐?”
―과거도 결국 생명의 꿈이 만들어지는 기초야.
“됐다. 너랑 말씨름해 봤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냐. 그래서 할 말은 끝?”
하얀 머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가던 길을 가려던 찰나, 탑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본래 목적을 얘기할게.
“본래 목적?”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 다다른 걸 축하해. 이젠 깊은 꿈으로 갈 차례야.
“아, 직접 보내 주는 거야?”
―본래라면 넌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러면 이동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좀 깨우고 싶은데.”
―마음대로 해.
“안 말리네? 아까는 깨우지 말라고 막았으면서.”
―지금은 달라. 너와 나는 대결 중이야. 반칙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어차피, 전부 꿈으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생명이라는 건 곧 꿈을 꾸는 존재야. 그리고 꿈에 현혹되기―
“자만은 곧 패배로 이어지는 길이라며?”
―자만이 아닌 진실이야. 반드시 이루어질 미래고.
“그러겠지. 너한테만.”
내가 더 이상 대화를 이으려 하지 않고 바닥을 보며 사람을 찾고 있자 탑주가 또 말을 걸어왔다.
―누굴 찾는 거야?
“파란 귀걸이를 한 사람이랑, 붉은 망토를 한쪽 어깨에 걸친 사람.”
―그래.
철렁. 대화가 끝난 순간, 딱딱했던 물 바닥이 본연의 모습으로 변하며 내 몸을 집어삼켰다.
단숨에 물에 삼켜져 들어간 몸에 눈을 깜빡였다. 뜬 눈 앞으로, 푸른 하늘이 장장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뭐 해요?”
유아한 씨가 하늘을 등진 채 나를 바라보며 몸을 숙이고 있었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