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79
79화
【꿈의 파편】
금발에 짙은 이목구비. 흡사 모델 같은 남성이 다가오더니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응? 누군가 했더니 아한이잖아. 언제부터 있었어?”
“…데이비드.”
유아한 씨가 보기 드물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이런 우연이 다 있네!”
“한국이 명단을 빨리 작성해서 진작에 내가 올 거란 걸 알았겠지.”
“그랬어? 근데 정말 몰랐어. 이번엔 진짜 우연이야.”
“그러든가.”
“그래서, 그 건은 생각해 봤어?”
“국적을 옮기라는 제안에 대해선 수천 번이나 의사를 밝혔던 것 같은데.”
“그랬나~?”
“그래서, 왜 만지지 말라 하는 건데?”
“응? 모르고 있어?”
유아한 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데이비드는 잠시 고민을 하다 방향을 틀었다.
“따라와. 설명해 줄게. 둘도 따라와.”
그렇게 데이비드를 따라 도착한 곳은, 이곳의 끝자락인 듯한 문이었다.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 가운데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데이비드가 문을 향해 손을 뻗자 문에 글씨가 생겨났다.
[깊은 꿈에 빠지려는 자, 꿈의 파편을 얻어 문을 열라. 가장 깊은 꿈을 지닐수록 색이 적어지리라. 얻은 자는 통과하고 얻은 자의 일행 역시 통과할지어니. 판단은 오롯이 문이 하노라.]“언어는 다르겠지만 다 똑같은 뜻일 거야. 꿈의 파편은 저것들을 통해 얻을 수 있어. 실제로 얻어서 넘어간 헌터들도 있고.”
“그래서, 왜 만지지 말라 한 건데?”
“꿈이 깊을수록 색이 적다. 여기서 ‘깊다’는 건 위험도를 뜻하는 것 같아. 전시된 것을 만져서 안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색이 단조로운 것들은 하나같이 난이도가 높았다더라. S급 이상? 그 정도.”
“들어갔다가 나와? 도대체 저 전시된 것들이 뭔데?”
“글쎄? 우리야 잘은 모르지. 다만 하나 알고 있는 건, 저게 어딘가로 이동되는 포털 같은 거라는 거야. 각각의 생김새는 이동되는 곳을 축약해 표현한 거고.”
그 말에 내가 물었다.
“꿈의 파편이라는 것을 얻어 문을 넘은 사람은 몇이나 되나요?”
“의외에 질문이네. 보통 몬스터의 강함을 물어봤었는데. 음, 지금까지 내가 본 꿈의 파편은 일곱 개 정도고, 넘어간 사람은 일행까지 포함하면 서른 명 안팎? 이번 탑에 들어온 사람의 수 자체가 적으니까.”
그럼 이 인원에 서른 정도가 더 있었다는 뜻인가.
‘꽤 많네.’
그리고 순서 상관없이 꿈의 파편을 얻기만 하면 문을 넘어갈 수 있는 것 같고. 24시간 열려 있는 입구만큼이나 자유로운 곳이구만.
“꿈의 파편이라는 거, 어떤 것을 선택하든 다 얻을 수 있는 거야?”
“아마 그런 듯해. 난이도가 높은 물품이건 낮은 물품이건 꿈의 파편을 얻었었거든. 그냥 이동하고 나면 이동된 공간 어딘가에 있었대.”
“그런데 넌 왜 여기 남아 있어? 파편을 얻을 시간은 충분했잖아.”
“일행이 안 보여서. 문에 일행이라는 말이 있었잖아? 그래서 다음 층에선 일행이 필요하겠구나 싶어 찾고 있었지.”
“확실히…….”
“아한이 동행해 준다면 가겠지만.”
“내가 널 일행으로 판단 안 해서 홀로 남겠지.”
“매정해.”
그러며 데이비드는 눈물을 훔치는 모션을 취했다.
“아한은 지금 당장 꿈의 파편을 얻을 거지?”
“그럴 거예요?”
“난 그럴 생각이다만.”
“저도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대.”
“그럼 이만 헤어져야겠네. 나중에 봐.”
말을 끝낸 데이비드가 유아한 씨의 손을 잡은 찰나, 그의 손이 가차 없이 구겨졌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웃는 얼굴을 조금도 무너뜨리지 않은 채 손을 쑥 빼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데이비드면, 푸른 포션을 가장 많이 소유하기로 유명한 데이비드 애런인가.”
“네, 맞아요.”
“아.”
설명을 들으니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게 저 사람이었어? 게다가 헌터? 아니, 헌터가 포션을 사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또 뭐 포션 수집이 취미인 부자 같은 줄 알았거늘. 그게 더 이상한가?
“근데 포션을 얼마나 가지고 있길래 유명하기까지 해요?”
“경매에서 푸른 포션이 낙찰되면, 열에 아홉은 데이비드가 낙찰받은 거였어요. 저 사람 때문에 제 포션에 인당 소유 제한이 걸렸죠.”
“유아한 씨의 팬…인 건가요?”
“제 포션의 팬인 거죠. 그래서 계속 영국에 오라고 하고.”
“팬심이 깊네요.”
“…그 말을 듣고 그런 말이 나와요?”
“그나저나 어딜 클리어할 거지?”
류천화 씨의 말에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최대한 빠르고 쉽게 꿈의 파편을 얻는 게 좋을 터.
‘…하지만 뭔가 걸린다.’
모든 파편에 아무 차이도 없다면, 난이도 같은 게 왜 있는 거지?
‘꿈이 깊을수록 색이 적다…….’
이곳은 꿈이라는 주제의 탑이니, 꿈을 꿀수록, 꿈이 깊어질수록 위험해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왜…….
“…아?”
“한지언 씨, 무슨 일 있어요?”
“아까, 여기 오기 전에 탑의 주인이 했던 말 있잖아요.”
“꿈의 끝자락에서 보자는 말 말인가?”
“꿈의 끝자락이면… 깊은 꿈이라는 뜻 아닐까요?”
“일리 있네요. 그렇다면 깊은 꿈이 곧 지름길일 수도 있겠고요.”
“그렇다면 색이 단조로운 쪽으로 가는 게 나을까요?”
내 물음에 아무런 답이 없었다. 침묵에 의아해 전시품들을 둘러보던 시선을 두 사람에게 옮기자, 나와 눈을 마주치며 멋쩍게 웃는 유아한 씨와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하는 류천화 씨가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 유아한 씨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색이 단조로운 곳으로 가려고… 했어요.”
“…위험한데도요?”
“보통 난이도가 높은 쪽이, 돌아오는 게 큰 법이니까.”
둘이 상의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이럴 땐 생각이 잘 맞는다니까.
“그럼 뭘 선택하실 건가요?”
“글쎄요. 제가 아까 만질 뻔했던 날개 그림은 어때요? 티 하나 없이 하야니 꿈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검은 밤하늘이 담긴 보석이 더 꿈과 연관 있어 보이지 않나?”
“아니죠. 하얀 건 도화지 같잖아요. 꿈은 하얀 도화지에 여러 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니 하얀 도화지는 꿈의 기초 틀 같은 거니, 이 그림이 맞죠.”
“아니, 이미 여러 가지 내용이 뒤섞여 검은 것이 더 꿈에 가까워.”
그럼 그렇지. 잘 맞는다는 거 취소.
“한지언 헌터, 누구 말이 더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싸울 거면 타협해서 회색을 선택해요.”
“아뇨. 두 개가 정해졌으니 이 두 개 안에서 골라야 해요.”
“되게 쓸데없는 규칙이네요. 그냥 척척박사로 고르면 안 돼요?”
“네. 신중하게 고르셔야죠.”
나는 흠, 하며 침음을 내뱉고 보석과 그림을 번갈아 바라봤다. 더 위험해 보이는 것은 그림이었으나, 꿈과 가깝다고 느껴지는 건 보석이었다. 꿈이 깊을수록 색이 적으니…….
“그럼 저는 유아한 씨 쪽이요.”
내 말에 유아한 씨가 생글 웃었다. 유아한 씨가 류천화 씨를 보며 말했다.
“다수결로 제가 이겼어요.”
“왜 그림을 골랐지?”
류천화 씨의 물음에 나는 되레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꿈이 깊을수록 색이 적다고 했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당연히 유아한 씨가 고른 그림을 택하는 게 맞죠. 유아한 씨가 고른 그림에 쓰인 색이 하얀색과 날개를 표현하기 위한 명암뿐이라면, 류천화 씨가 고른 보석엔 노란색이나 붉은색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검은색보단 하얀색을 좋아해서.”
“마지막 이유가 팔 할인 듯한데.”
“티 났나.”
“그럼 결정된 거죠? 그냥 건드리면 되는 건가?”
그러며 유아한 씨가 손을 뻗은 순간, 훅, 유아한 씨가 단숨에 사라졌다. 나 역시 서둘러 손을 뻗자 곧바로 새로운 장소로 이동됐다.
직후 들려오는 유아한 씨의 목소리에 나는 행동을 멈췄다.
“가만히 있어요.”
“유아한 씨?”
유아한 씨의 목소리가 조금 불안정했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뒤에 있는 유아한 씨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움직이면 공격하는 듯하군.”
류천화 씨의 목소리 역시 뒤에서 들려왔다.
‘유아한 씨가 공격당했나?’
주변을 살폈다. 거대하고 둥굴게 우리를 감싼 하얀 장벽. 중간중간 심어진 눈알. 기분 나쁜 감각.
‘저건… 날개?’
장벽 바깥. 겹겹이 쌓인 듯한 날개가 숨을 쉬듯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장벽의 크기가 어마어마한데 그 장벽을 넘어 모습이 보인다는 거.
장벽에 박힌 눈이 감겼다.
“눈이 감겼는데,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것 같아요. 저기서 공격이 왔으니까.”
어느새 안정된 유아한 씨의 목소리에 뒤로 돌자, 옷이 피투성이가 된 유아한 씨가 시야에 들어왔다.
“공격, 엄청 빠르고 강해요. 괜히 난이도가 높은 게 아니네요.”
“공격이 어떻게 왔는데요?”
“레이저같이 쏘아졌어요.”
“그럼 눈을 먼저 공략해야 하나?”
그러며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류천화 씨의 멈추라는 말에 나는 즉시 행동을 멈췄다. 이어 장벽에 박힌 눈이 다시 떠졌다.
“대략 30초에서 1분 주기로 움직이는 것 같군.”
“애매하네요.”
“계속 움직이면 못 피할 정도는 아닌데, 어쩌실래요?”
“확인을 해 봐야겠지.”
눈이 감겼다. 그와 동시에 류천화 씨의 손에 날카롭게 깨진 마석들이 들렸다. 잠시 짤그락거리는 듯싶다가, 슉! 앞에 보이는 네 개의 눈을 향해 마석들이 하나씩 날아갔다. 정확히 박힌 마석에 눈이 장벽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툭. 투두둑. 떨어진 눈 뒤에서 거대한 가시가 끝에 자리 잡은 여러 갈래의 촉수가 생겨나더니 눈이 거미처럼 기어 오기 시작했다.
“…저걸 벌레라고 해야 하는 건지.”
중얼거리는 유아한 씨의 주위에, 유아한 씨의 무기인 연하늘색 천이 생겨났다. 장벽에 있는 눈들이 떠지고, 떨어진 눈들이 재빠르게 기어 왔다. 유아한 씨의 천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다가오는 눈들을 쳐 냈다. 장벽의 눈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게 생명체만 아니면 되나 봐요.”
“그러면…….”
유일하게 원거리 능력이 있는 내가 가장 이곳과 상성이 맞을지도.
퍼벙! 나는 다가오는 눈에 별을 쏘았다. 터지는 소리에 통하나 싶었지만, 공격이 촉수에 막혀서 통하지 않았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
“난 여기서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뭐라도 생각해 봐요, 온연 길드장님. 저희 공격도 안 통하니까요.”
“능력이 안 통하면…….”
장벽의 눈이 감겼다. 그와 동시에 류천화 씨의 몸이 재빠르게 움직이더니 기어 다니는 눈 하나를 잡아 촉수와 분리했다.
“손으로 직접 처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
진짜 힘센 인간들 생각하는 건 똑같아서…….
우리는 우선 장벽에 박힌 눈들을 떨구었다. 전부 떨구고 나니 시간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그 뒤론 뭐, 파티였다. 몬스터 피 파티.
막 뜯긴 촉수가 꿈틀거렸다. 짓밟혀 터진 눈 안에서 괴상한 액체들이 흘러나왔다.
‘자동 사냥도 아니고.’
이미 죽은 눈들을 지나, 나는 둘을 바라봤다. 유아한 씨는 손목을 돌리고 있었고, 류천화 씨는 손에 묻은 액체를 털고 있었다.
“그런데 몬스터를 처리해도 소용없는 거 아녜요?”
“그렇죠? 목표는 꿈의 파편을 찾는 거니까요.”
“여긴 없는 것 같은데. 장벽을 넘어야 할 것 같군.”
그러며 류천화 씨는 아득한 장벽을 바라봤다. 장벽 너머, 여전히 오르락내리락하는 날개가 보였다.
“딱 그림과 똑같이 생겼을 것 같네요.”
“그러면 저것에 꿈의 파편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일단 넘어가죠?”
내 말에 동의한 사람들이 걸음을 옮겼다.
장벽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장벽의 장엄함이 물씬 느껴졌다. 무엇보다…….
“넘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구름에 닿을 정도의 높이였다. 이 정도의 높이인데, 이 너머에 있는 날개는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벽은… 못 부수겠네요. 무언갈 박아 넣는 것도 힘들어요.”
벽을 두드리던 유아한 씨가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 한지언 씨나 류천화 씨 중에 하늘을 날 수 있는 아이템 있으신 분 계신가요?”
“요즘 귀한 물품인지라, 아쉽게도 저기까지 올라갈 정도의 아이템은 없어.”
“저도…….”
침묵이 일었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