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81
81화
【꿈의 대리인】
시원한 파괴음이 귀를 찔러 왔다.
류천화 씨가 허공에 생기는 벽을 없애면, 그 뒤로 수없이 많은 벽이 일렁였다. 유아한 씨가 틈을 노려 공격을 가하면, 가뿐히 흘려보내고 반격했다. 내가 낫을 휘두르자, 일렁이는 벽에 잡아먹혔다.
놈이 우주를 담은 듯한 검을 한 번 휘둘렀다. 말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었는지 주변이 초토화됐다.
주변에 펼쳐진 하얀 장벽 때문일까. 마치 철창 안에서 싸우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기분 나쁜 감각이,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는 싸움에서 멀리 떨어져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빈 도화지처럼,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뚫린 하늘이었다.
‘이 정도면 확실하다.’
처음에는 벽에 붙은 눈알이 우리를 쳐다봐 느껴지는 감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눈알을 다 처리하고 난 뒤에도 똑같은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져, 장벽 너머, 하얀 날개의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하얀 날개가 잠들어 있었을 때도,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싸움을 할 때도, 하얀 날개와는 별개로 위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 답은 하나.’
기분 나쁜 감각. 그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어 생겨난 감각이었다. 문제는 ‘누가’ 우리를 보고 있느냐였지. 무엇보다.
‘저 두 사람이 이걸 못 느꼈을 리가 없는데.’
―어딜 보고 있는 거지?
단숨에 다가온 검이 내 목을 겨누고 베려던 찰나에 피했다.
―꽤 감이 예리하군그래.
빛이 들어갈 틈이 없는 검은 눈이 나를 주시했다. 그리고 그 뒤로, 다른 두 사람이 달려들었다.
―좋다. 본능에 충실한 것만 있는 게 아니었군. 마음에 들었다.
도대체 뭘 보고.
―시련은 통과다.
“누구 마음대로.”
쿵!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하며 공격을 가했다.
―참으로 끈질기구나.
놈이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시련을 끝내 주겠다는 자비를 베풀었거늘, 왜 공격을 가하는 것이지?
그 말에 유아한 씨가 답했다.
“마음대로 시련을 안 주겠다, 주겠다, 끝내겠다 하면 누가 기분이 좋을까.”
―참으로 의아한 생명체군. 마음대로 판단하고 말이지. 나는 어디까지나 시련을 주는 존재일 뿐. 너희가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건 모르지.”
―…좋다. 시련을 통과한 자여. 넌 어찌하고 싶으냐.
시선이 내게 쏠렸다. 두 사람은 계속 진행하라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으며, 하얀 것은 여전히 감정 없는 시선이었다.
그리 시선을 보내도,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뻔하지.”
그 말을 끝으로, 낫을 치켜들었다.
“나 역시 제 마음대로 뭘 하느니 마느니 정하는 모습이 영 별로여서 말이지.”
―…결국, 시련을 통과했다 한들 똑같은 것들이었구나. 제명을 다하지 못할 것들끼리 뭉쳤으니 너희의 생명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분명, 이른 시일 내에 꺼질 것이다.
“그건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마저 진행해야지?”
유아한 씨가 말함과 동시에 하얀 것의 뒤로 달려들어 날개를 붙잡아 뜯어냈다. 하얀 것은 고통의 비명도 내지르지 않고 귀찮다는 듯 쳐 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근처에 있던 류천화 씨에게 다가가 물었다.
“류천화 씨, 혹시 누가 보고 있다거나… 그런 느낌은 안 드시나요?”
“무슨 소리지?”
“…어쩐지.”
누군가 지켜보는 게 느껴졌다면, 두 사람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지.
‘그렇다면 문제는, 왜 나한테만 느껴지냐인데.’
꿈에 대한 내성이 있어서? 아니, 그런 이유라면 유아한 씨에게 역시 느껴졌을 것이었다.
‘…아니. 의외로 간단한 문제일 수도.’
분명 하얀 것이 그리 말했다. 감이 꽤 예리하다고.
회귀하며 유일하게 성장한 것. 그건, 수도 없는 반복으로 예민해진 감이었다. 그런 이유라면 나만 눈치챈 게 이해가 됐다. 단순한 생을 산 사람들에겐 있을 수 없는, 있을 리가 없는 내 유일한 장점이었으니.
‘분명 하늘을 올려다볼 때 그리 말했으니, 하늘에 무언가 있는 건 확실한데.’
그리고 보통 하늘에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중심에 있기 마련이지.
나는 몬스터의 공격에 튕겨 나온 류천화 씨에게 다가가 말했다.
“류천화 씨, 저 좀 던져 주세요.”
“…어디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류천화 씨가 무슨 헛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생글 웃었다. 류천화 씨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이상한 짓을 하려는 거지?”
“이상한 짓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짓이에요.”
“…아까 말했던, 누가 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 건가.”
“정확해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류천화 씨였다만, 부탁은 승낙했다.
예고 없이 몸이 붙잡히며, 하늘 높이 던져졌다. 힘이 주 능력인 류천화 씨여서인지는 몰라도 몸은 금세 장벽 끝까지 다다랐다.
‘잠만, 아까 장벽 위로 오를 때 류천화 씨가 올려 줬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
갑자기 든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정작 류천화 씨는 올라오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것이었다. 누군갈 던져 주는 것과 본인이 점프하는 건 전혀 다르니까. 애초에 지나간 일이니 잊자.
올라가는 힘이 상실되기 직전. 몸이 장벽 너머로 진입했다. 아직까진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아 허탕일지도―
―역시, 시련을 통과한 것답군그래.
하얀 날개가 팔락였다. 저 밑에서 유아한 씨가 무어라 입을 벙긋거렸으나 너무 멀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카가강! 검과 낫이 맞붙었다. 그 탓에 몸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다다른 생명체가 있는 건 참 오래간만이다.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수없이 많은 별이 주위에 생겨나며 마구잡이로 쏘아졌다. 하얀 날개에 타격이 있었지만, 하얀 것의 상처는 금세 메워졌다. 나는 혀를 찼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 얻은 건 아니었다.
나는 시선을 굴려 하얀 것의 뒤를 바라봤다. 마구잡이로 쏜 별 중 하나가, 어느 벽에 막혔다가 구멍을 살짝 내며 사라졌다.
‘저기구나.’
약점.
몸을 뒤집어 하얀 것의 위로 가볍게 올라탔다. 추락하던 몸이 이윽고, 쿵! 바닥에 닿으며 자욱한 안개와 굉음이 퍼져 나갔다.
바닥에 닿으며 무게를 실어 하얀 것의 몸을 꺾었다. 그러나 여전히, 하얀 것은 타격이 없는 듯 아무런 비명도, 신음도 내지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확실해졌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며 말했다.
“너, 이 몸 진짜 아니지.”
―무슨 헛소리지?
“내가 본 게 있어서 말이야. 몸이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금세 수복되는 자식을. 그건 날개가 힘의 원천이었지만, 넌 그런 것 같진 않고. 그러니 하나 가정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몸 자체가 거짓, 조종되고 있는 가짜라는 거겠지.”
그리고 진짜는.
“겁쟁이처럼 우리가 닿기 어려운 하늘에 있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지 그래? 우리는 실제 모습 그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시련을 내 주는 당사자가 이런 모습이니, 누가 어리석은 잔불인지 모르겠네.”
―…….
하얀 것이 말을 하지 않았다. 곁에서 대화를 듣던 두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미동 없는 하얀 것을 지켜보았다.
잠깐의 침묵이 일다, 하얀 것이 말했다.
―도발하려는 것이라면 칭양해 주지. 다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내가 누르고 있던 하얀 것이, 마치 환영이었다는 듯 사라졌다. 허공에서는 여전히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그것은 가짜가 아니다. 나의 일부분이지. 그리고 두 번째. 나는 겁쟁이처럼 숨은 것이 아니라, 너희를 향한 일종의 배려를 한 것이다.
“무슨 헛소리를…….”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라.
도화지 같던 하늘이 갈라졌다. 우주를 담은 듯한 몬스터의 검이 하늘로 퍼져 나간 것처럼, 하늘에 우주가 그려졌다.
그 사이로, 무언가가 형태를 잡으며 생겨났다. 고리의 형태로 된 머리와, 고리에 자라난 보랏빛 눈들. 하나로 이어지지 않은 하얀 몸. 수갑과 족쇄처럼 길게 늘어진 보랏빛 노끈.
그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반사적으로 헛구역질이 튀어나왔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유아한 씨가 중얼거렸다.
“저게 뭔…….”
―다시 한번 더 소개하지.
펄럭. 거대한 날개가 솟아나며, 신성한 자태를 뽐냈다.
―우리는 선택을 돕기 위한 시련을 내는 자들. 시련 그 자체. 시련을 꿈꾸는 자들을 위한 신성(新星)의 존재.
그것이 날개를 살랑이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가까이 다가오니 몸이 무너질 것만 같은 강한 기운의 압박이 강해졌다.
―나는 왕의 다음으로 긴 생을 지닌 꿈의 주인의 대리인이며, 정리된 꿈의 장소의 주인.
대리인. 분명 첫 번째 탑에서도…….
‘아, 생각하기도 어렵네.’
문양 개방이 강제로 해제될 것 같은 압박이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무언가로 이루어진 지독한 힘이 대리인의 말대로 모든 면에서 놈이 우리를 배려해 줬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줬다.
…괜히 건드렸나.
―우리의 왕, 꿈의 주인께선 다른 군주들과 다르시다. 모두를 받아 주시고, 모두를 포용해 주신다. 어떤 군주처럼 만들어진 존재도 아니며, 어떤 군주처럼 강제로 거느리시는 것이 아닌, 그저 존재하시는 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따르는 자들이 생겨나는 분. 그런 자들을 쳐 내지 않고 받으시며, 역할을 내려 주시는 분.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왕.
“그…래서, 결론이, 뭔데.”
힘겹게 묻자 하얀 것이 내게 다가왔다. 수없이 많은 보랏빛 눈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우리들의 진정한 왕께선, 깊고 아득한 힘을 지니고 계신다. 그리고 그 대리인인 나는, 그분의 힘을 조금 지니고 있지.
걔가 그렇게 강했었나. 별거 없었는데. 대리인이라는 것도 없이 혼자 나타났었지.
―그렇기에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그분을 따라, 나 역시 너희를 배려했다. 하지만 너희는 계속해서 내 배려를 무시해 왔지. 이것은 너희의 업보다. 나의 존재에 굴복하고, 엎드려 복종해라.
말을 따를 생각은 없었지만, 압박감에 몸이 저절로 기울어지며 바닥에 웅크려졌다. 그 순간 무언가 팍! 터져 나가는 감각이 느껴지더니 주변에 푸릇한 풀들이 자라났다.
―…그래, 이것이 네가 첫 번째 탑의 군주를 죽인 힘인가 보군. 다만.
녀석의 한쪽 앞꿈치가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퍼석. 앞꿈치가 내려옴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풀들이 환상처럼 사그라졌다.
―이곳은 꿈, 그리고 시련. 그런 잔기술은 통하지 않는다.
하얀 손이 뻗어 나와 웅크린 내 머리를 짓눌렀다.
―꿈을 꿔라. 방금처럼 시련을 이겨 내려고 행동해라. 언제까지 웅크리고만 있을 거지?
그런 말 할 거면 그 망할 존재감부터 어떻게 하지 그러냐.
말을 하려 입을 열었으나, 무언가에 막힌 듯 입만 벙긋거려졌다.
―…날 찾은 것을 높이 사 귀띔을 해 주었거늘. 역시 여기까지인가.
내 머리를 누르던 손이 사라졌다. 직후, 검이 목 옆 바닥에 박혔다.
―너는 아는가. 나의 존재감에 고통을 느끼는 건 꿈을 꾸지 않는 자들이다. 너는 그런 존재이기에 내 존재를 눈치챘던 것이겠지. 다만, 꿈을 꾸지 않는 것에겐 시련을 받을 자격조차 없다. 꿈을 꾸지 않는 건, 우리의 왕을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오, 그러냐. 네 왕은 꿈을 안 꾸면 아무것도 못 하던데. 이건 좀 의외네. 그리고… 망했네.
까드득. 검이 바닥에서 돌아가며, 날이 목 가까이 다가왔다.
―존재할 가치도 없는 것아. 행복한 꿈은커녕 꿈조차 취할 수 없는 죽음에서 영원히 방황하여라.
“참으로 광적인 애정이군그래.”
꾸득. 어느새 다가온 류천화 씨가 대리인의 목을 쥐어 올렸다.
―…그래. 다 꿈을 꾸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더군.
“덕분에 여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게 되어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고민이야.”
―의외의 것이 시련을 해결할 자격이 되니, 참으로 놀랍구나.
“내가 의외로 꿈을 꾸는 순수한 존재라.”
옆에서 비틀거리던 유아한 씨가 진심으로 썩은 표정을 지었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