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97
97화
【공허】
“우연이라 해도… 안 믿을 거지?”
“믿을 리가.”
“근데 이번엔 진짜 우연이야. 너희는 원래 이곳에 오면 안 돼.”
일단은 ‘너희’라고 한 걸 보아 다른 사람들이 여기 있는 건 확실하네.
“입구가 열려서 온 건데 오면 안 된다니?”
“그 입구 잘못 열린 거야. 원래는 다른 입구가 열려야 했어. 해야 했던 일을 안 하고 다른 짓을 벌이니 여기로 오는 입구로 빠진 거지.”
“잘못 빠졌다기에는 익숙한 곳인데.”
“애초에 여기는 꿈의 영역이니까.”
“그러니까, 본래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거야?”
“비슷해.”
잘못 빠졌다는 건… 클리어해야 하는 층이 아니라는 뜻일 터.
“그렇다면 너는 왜 여기에 있지?”
“그야… 비밀!”
“…쓸데없는 비밀이 참 많네.”
“일단 너희가 잘못된 곳으로 빠졌다는 것만 알아 줘.”
부탁을 들어준 게 실수였나. 아니, 그건 잘한 짓 같은데.
“뭐, 더 안 궁금해?”
“별로.”
“예를 들어~ 내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라든가!”
“더 안 궁금해.”
“나는 그동안 쉬고 있었어! 너희 세상 문물 재밌더라.”
“안 궁금하다고.”
“너희 음식도 만들어 봤는데, 느껴지는 맛이 달라서 음식은 조금 그랬어.”
“안 궁금하다―”
“왜 그리 선을 그을까.”
휙. 얼굴 바로 옆에 겔탄의 꼬리에 달린 입이 다가왔다. 꼬리의 입이 벙긋거려서 꼬리가 말하는 줄 알았다.
“…적과 살갑게 지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혹시 몰라. 적이 사실은 아군일 수도 있잖아~”
“…그래?”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럼 네가 이유 없이 죽인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자부할 수 있어?”
“…나름의 이유는 다 있었는걸?”
“그거 봐. 넌 이미 사람을 죽였어. 분별없는 몬스터일 뿐이야.”
…그런 이유로 몬스터라면, 나도 다를 거 없겠지만.
“몬스터는 아닌데…….”
“그럼 뭔데? 대리인도 아니잖아?”
애초에 대리인도 우리에겐 몬스터의 종류 중 하나이지만, 이것들에게는 아닌 것 같으니 말은 맞춰 줘야겠지.
“대리인은 아니지만, 동시에 몬스터도 아닌 존재.”
“명칭은?”
“딱히 없어. 어차피 너희와 비등하게 대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흥거리인걸. 그런 어중간한 존재이니 명칭이 있을 리가 없지.”
누구의 유흥거리라는 거지. 왕인가? 아니면 던전 전체?
‘…이거랑 대화할 시간 없는데.’
별 실없는 대화였다. 당장 겔탄에게서 들어야 할 대답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찾아야 해.’
우선으로 찾아야 할 건, 강희민, 윤시아, 마허윤. 이 셋이었다. 겔탄 혼자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면 더욱 위험할 터. 어중간한 존재라곤 하지만 결코 약한 게 아니니까.
그렇게 내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어디 가려고?”
어딘가 섬찟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공격을 가했다. 낫이 벽에 박혔고, 그 앞으로 겔탄이 두 손을 들고 서 있었다.
“그냥 묻는 건데 날 세우기는!”
“…….”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찾는 것은 아마 어려울 터. 이곳은 거대한 공간이니 시간이 많이 소모될 것이었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아니, 잠만.’
낫을 없앴다. 그 모습에 겔탄이 작게 화색을 띠는 듯 보였다.
‘이곳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건, 이 공간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일 터.’
…내키진 않는다만, 다른 사람들을 한시라도 빨리 찾으려면 겔탄이 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계속 따라올 것 같긴 하지만.’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조용히 따라오는 녀석의 모습을 흘끔 쳐다봤다.
‘예상대로 따라오네.’
처음부터 일행이었다는 양 자연스레 뒤에서 따라오는 겔탄의 모습에 저것도 대단하다 싶었다. 도대체 내 뭐가 마음에 들길래 저렇게까지 하는 건지.
“하나 궁금한 게 생겼는데.”
“응? 뭔데?”
“넌 어째서 내게 이리 우호적인 거지?”
“내가 말 안 했었나?”
“성격 때문에 그렇다는 이유는 안 받아.”
“아니, 성격 때문도 맞긴 하는데 근본적인 이유가 있어.”
그러곤 말을 하지 않아 뒤로 돌자 겔탄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너라면, 왕을 죽일 수 있을 것 같거든.”
“…왕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그 왕?”
“그래.”
“그런 거라면 헛짚었는데.”
“응? 왜?”
“나는 아무것도 못 해.”
특별한 거라곤 생을 좀 반복한 것. 그것뿐이었다. 능력도, 힘도 평범했다. 아니, 평범하다 못해 조금 떨어진다. 그런 내가 왕을 죽이는 건 아마 불가능.
왕을 죽이는 파티에 껴 있는 거라면 모를까, 내가 왕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군주들의 힘이 그 정도인데, 그것들이 모시는 왕의 힘은 얼마나 될까.
“왜 아무것도 못 한다고 생각하는데?”
“약하니까.”
“음……. 보다시피 내가 눈이 가려져 안 보여서 확답은 못 하지만, 저번에 폰이 떠들었던 거 기억해? 왕께서 원하시는 힘이라는 말 말이야.”
“그랬던 것 같긴 한데.”
“넌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너, 내 말 못 들었어? 나한테 그 정도의 강함은 없어.”
“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그렇게 말하면 굳이 부정은 안 할게. 다만, 강함이라는 뜻이 꼭 힘만 뜻하는 건 아니잖아? 특별함도 강함이야.”
“…그건 그렇긴 하지만, 말했잖아. 특별할 거 없는 능력이라고.”
“흠…….”
겔탄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다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다! 눈이 이 모양이니까 볼 수 있는 게 없거든!”
“아까부터 계속 눈 타령인데, 가려져서 안 보이는 거라면 안대를 벗으면 되는 거 아니야?”
“아……. 그건 못 해. 왕이 싫어하거든.”
“왕이?”
“아잇참! 알려고 하지 마! 시크릿! 개인 정보라고!”
“…지 혼자 떠들어 놓고.”
잠만, 앞이 안 보인다면, 지금 죽여 버리는 게 맞지 않나.
‘…됐다. 눈이 안 보여도 잘만 움직이는데.’
아직까지 큰 피해를 주지는 않았으니 일단 내버려 둬야지. 혹시 모른다. 나중에 사용 가치가 있을―
“근데 너는 약하다고 해 놓고 왜 탑에 들어오는 거야?”
…있을까.
“…우연이야.”
“그래?”
십여 분쯤 지났을까. 아무리 돌아다녀도 보이는 거라곤 검은 몬스터들뿐, 일행들은 보이지 않았다.
‘저것도 딱히 알려 줄 생각이 없어 보이고.’
반복되는 건물에 뜻이 없는 것 같은 몬스터들.
‘도대체 이 공간은 뭐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최종 보스도 죽었거늘.
“겔탄.”
“으응?”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
“이 건물? 아무것도 아닌데?”
“건물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그치?”
“…….”
“농담! 농담이라고! 그런 표정 짓지 마! 나도 상처받는다?”
제발 상처 좀 받아라.
“그러니까… 이 공간이 뭐 하는 곳이냐고?”
“그래. 꿈의 영역이니 뭐니 말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봤던 꿈의 개념과는 거리가 좀 먼 것 같아서. 뭐, 악몽이라도 되나?”
“비슷해.”
“…응?”
“뭐, 정확히는 꿈이 없지.”
“꿈이 없다는 게, 말 그대로의 의미인가?”
“맞아.”
“그럼,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왜 나가려고 해?”
“…뭐?”
설마 이 자식, 저번에 같이 가지 않겠냐는 말을 강제로 이행하려고―
“아니, 그렇게 의심하듯 보지 말아 줄래?”
“…왜 그런 질문을 한 거지?”
“그야 그렇잖아. 탑을 클리어하려는 거니, 여기서 그냥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되는 거잖아.”
“아래층이라니?”
“응? 너희가 지금까지 각 층을 클리어하며 아래층으로 내려왔잖아.”
“우린 올라온 거야.”
“아니, 내려왔어.”
“…자세히 설명해.”
“너 뭔가 오해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저번 탑을 올라가며 클리어했다고 여기도 올라가는 걸로 생각하는 거야? 여기의 근본적인 주체는 꿈인데?”
“그게 무슨 상관인데?”
“꿈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강해지잖아. 깊어진다는 말을 단순 해석 하면 아래로 내려간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음, 그래. 너희 쪽 세상의 바다와 비유하자. 바다는 심해와 가까워질수록 어두워지잖아. 위험해지고. 나가기 힘들어지지.”
“그래서, 꿈도 그렇다?”
“꿈은 어두워지지는 않지만, 깊은 꿈을 꿀수록 깨어나기 어렵잖아? 그런 거야.”
“…뭐가 그런 건데.”
“자세히는 나도 몰라. 다만 꿈은 깊어지기에, 너희는 1층, 2층 이렇게 올라가며 클리어하는 게 아니라 -1층, -2층 이렇게 클리어하는 거로 생각하면 돼.”
“…그래서 탑이 거꾸로 되어 있던 건가?”
“아마 그럴 거야.”
“쓸데없이 심오하네.”
말을 하는 와중에도 구석구석 다 돌아다녀 봤지만 역시나 꽝이었다.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내 모습에 겔탄이 물었다.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왔다 갔다 해?”
“…….”
내가 일행을 찾는 것조차 모르는 건가. 그 정도의 눈치도 없냐.
“눈으로 욕하지 마. 농담이니까.”
그놈의 농담 좀 정도껏 해라, 정도껏.
“아니, 나도 네가 일행을 찾아다니는 것쯤은 알고 있지. 근데 네가 일행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일행들이 널 찾아다니는 게 더 안전하지 않아? 네 말대로라면 넌 약하잖아. 돌아다니다가 위험한 거랑 맞닥뜨리면 어떡해.”
“내가 약하긴 해도, 나보다 더 약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만약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면 구해 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더 낫잖아.”
아니, 내가 이걸 왜 대답하고 있지. 아까부터 실없는 대화만 나누는 게, 하나도 쓸모가 없는데. 꺼져 주면 안 되나.
“어쨌든 신경 쓰지 말고 이제 네 갈 길이나―”
“일행들을 많이 아끼는구나?”
“…당연한 소리야.”
“이상하다?”
“뭐가.”
“아니, 그치만, 저번에 죽였을 땐 슬픔도, 분노도, 그 어느 감정 하나 안 보였던 것 같은데. 멀리서 봐서 못 알아봤나? 아니면 그 일행을 안 아낀 거였나?”
“…죽이다니?”
“그, 머리가 이렇게 길게 묶여 있고, 붉은 코트를 입은 애!”
…일행이었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 중에 그런 모습을 한 건…….
‘임하늘…인가.’
죽였다는 건, 자기 손으로 죽였다는 거겠지.
“그때 말이지, 너와 같이 다니던 것들을 전부 죽이려 했는데, 걔가 갑자기 나타나서 길을 막아섰거든? 근데 막 자기 피를 마시더니 조금 강해진 거 있지. 그거 때문에 살짝 밀리기는 했는데 그때 딱 집합 시간이 돼서 말이야. 왕이 빨리 처리하고 오라고 힘을 줘서 바로 죽여 버렸지!”
궁금하지 않다.
“야.”
“응? 왜?”
“그냥 뒈져라.”
“…엥?”
쾅! 무수히 많은 별이 추락하며 주변의 건물이 무너졌다. 그 가운데 연기가 흩어지며 겔탄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장 강한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겔탄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나 참, 갑자기 왜 공격을 하고 그래!”
“이거 하나만 묻자.”
“뭔데?”
“넌 왜, 내 일행들을 죽이려 했지?”
“그야 네가 뭔가 큰 노력을 하지 않아서, 일행을 좀 죽이면 복수심에 불타 노력할 것 같아서?”
고민하지 않고 내뱉은 말. 그리고 가벼운 말이 아님에도 가벼운 말투.
“겔탄, 누누이 얘기했지.”
변할 일 없고, 변할 생각 없는 내 입장.
“난 너와 같이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응, 내가 적이니까?”
“그게 가장 큰 이유지만, 넌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거든.”
“잘못되다니? 뭐가?”
“그걸 굳이 내가 알려 줘야 하나?”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무너진 거리를 뒤로하고 걸었다. 그러다 겔탄이 따라오려는 기척에, 입을 열었다.
“따라오지 마. 지금까지 내가 널 상대했다는 거에 어이가 없어서 뒤질 거 같으니까.”
겔탄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걸었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