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2화
피. 아주 새빨갛고도 검붉은 피가 사라의 입가에서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미처 막지 못한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사라는 다시 한번 울컥하고 차오르는 피를 더 토해 낸 후에야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쯧. 이 정도까지는 무리인가.”
암브로시아의 힘은 생명력을 탐하고 빼앗는 힘.
그 힘을 되돌리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생명력을 담은 마력이 필요했다.
클로드의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 작은 아이에게 발현된 이 저주의 싹을 지워 버려야만 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사라 밀런의 마력과 생명력은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생명력을 담은 마나를 쭉쭉 썼다간 아마 일찍 죽을 것이다.
그녀는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클로드의 곁에서 그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오래 살아야지. 난 오래 살 거야.’
그녀는 클로드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사라는 아직도 그녀와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영혼인 박혜연의 마력을 끌어와 쓰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은 무려 6년.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박혜연이 가지고 있는 마력을 사라 밀런의 몸에 받아 내는 연구를 가장 메인으로 진행했다.
그 연구의 최종 목표는 사라의 또 다른 자신인 박혜연의 죽음이었다.
“이 정도까지 희미해졌다면, 죽을 만도 하잖아.”
영혼이 이어져 있으니 박혜연이 받는 타격 중 일부 증상이 사라에게서도 나타났다.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 ‘박혜연’의 생명력이니만큼 실은 사라의 몸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을 테지만.
그저 피를 좀 쏟아 내는 것뿐이고, 약한 빈혈에 시달리는 것뿐이었다. 체력도 좀 달리고.
“욱.”
사라는 다시 한번 피를 토할 것만 같아 입을 틀어막았다.
피를 토해 낼 때마다 내부가 진탕 휘저어지는 느낌은 오랜 세월 겪다 보니 익숙해진 상태였다.
아마 박혜연의 몸은 지금 그녀가 느끼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몇 번 더 피를 토하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박혜연은 죽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저쪽 세계로 가 소설을 수정한다고 해도 이미 뒤틀린 이 운명을 바꿀 순 없었다.
평생 두 가지의 삶을 동시에 살아왔다. 전혀 다른 두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게 저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신분제가 없는 세상에서 살던 박혜연이 강력한 신분제가 있는 사라 밀런이 사는 세계로 돌아왔을 때의 괴리감.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기분과, 그녀에게 주어진 지나친 능력을 최대한 숨기고 평범하게 살고자 발버둥 쳤던 시간들.
“후…….”
사라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박혜연의 삶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을 때, 기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하게 오고 갔던 두 가지의 삶을 끝낼 수 있게 됐으니까.
이제는 어서 빨리 박혜연의 삶을 끝내고 영혼을 분리한 후 그 마력까지도 온전히 사라 밀런의 것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암브로시아의 힘을 깔끔하게 지워 낼 수 있을 만한 마력을 모을 수 있었다.
오직 사라 밀런만이, 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질긴 목숨일 줄은 몰랐네, 박혜연.”
홀로 중얼거리는 사라의 목소리가 씁쓸하게 갈라졌다.
박혜연이 가지고 있는 마력을 전부 끌어오기엔 6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몇 번이고 피를 토해야만 하는 것 또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보기에도 좋지 않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의 불필요한 걱정을 사기에도 딱이었다.
어쩐지 피를 토할 때마다, 기묘하게 좋지 않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론상으론 완벽했음에도 말이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유모 노릇을 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죽겠는걸.”
사라는 자조적으로 읊조리며 작게 웃었다.
그러곤 품에서 작은 아티팩트 하나를 꺼냈다.
회중시계에 메시지 마법을 걸어 둔 것이었다.
마탑에 있던 시절 사라와 제자들이 발명한 이 아티팩트는 서로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다.
시계 뚜껑을 열자 옅은 마법진이 그려진 거울이 투명하게 빛났다.
사라의 시선이 닿자마자 붉은빛으로 빛나며 거울에 수많은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돌아와요. 돌아오세요, 스승님 제발.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나의 스승님, 스승님…….대체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뭡니까. 아직은 위험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스승님의 몸이 견뎌 주질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피를 토하는 데 아무 이상도 없을 거라뇨.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못 믿습니다. 만일 내가 스승님을 찾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그러니 제가 아직 제정신일 때 돌아와 주세요. 제기랄. 내가 이렇게 빌겠습니다. 제발 스승님…….] [스승님, 벤야민이 반쯤 미친 거 같은데 알고 계세요? 이 새끼, 아니 이 자식 눈깔, 아니 얘 눈이 반쯤 돌았어요. 저 너무 무서워요, 흑흑.
대체 어딜 가신 거예요……. 벤야민한테 절대 말 안 할게요. 저한테만 살짝 말씀해 주세요. 저 믿죠? 네? 저 스승님이 머리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잠도 못 자는 거 아시잖아요.
‘우리 올리븐은 나 없으면 잠도 못 자는 거니?’라고 걱정해 주셨던 거 다 잊으셨어요? 대체 어떤 새끼들이 스승님을 6년 동안 고생시킨 걸로도 모자라서 이젠 내게서 스승님까지 빼앗아 가요? 절대 가만 안 둘 거예요. 진짜예요!] [스승님, 저 벨루나입니다. 스승님께서 친히 거두신 두 짐승 새끼들은 제가 잘 처리해서 묶어 놨습니다. 영원한 잠의 늪에 빠뜨렸으니 불면증에 절어 있는 두 새끼 다 당분간 쉽게 빠져나오진 못할 겁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스승님께서 저희에게 말씀도 없이 사라지셨다는 겁니다. 이번 일로 저희는 스승님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승님의 얼굴도, 목소리도, 하다못해 나이도 모르는 제자라니.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언제까지고 곁에 계실 줄 알고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최선을 다해 스승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실은 저 또한 눈에 뵈는 것이 슬슬 없어지려 해서 이렇게 메시지를 남겨 둡니다. 그럼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아티팩트에 가득한 메시지에는 사라진 사라를 찾는 제자들의 집착 섞인 걱정이 뚝뚝 묻어 나왔다.
수없이 쌓인 메시지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녀의 굳은 맹세를 흔들기엔 역부족이었다.
‘겨우 빈혈 증상 하나 있는 것 가지고 내가 당장 죽을 것처럼 유난 떨기는.’
암브로시아가 가지고 있는 힘과 다른 세계에 있는 박혜연의 영혼을 다루는 연구를 홀로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사라는 그녀의 비밀을 제자들에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제자들은 그녀를 과보호하려는 경향이 심해졌다.
누구든 이 비밀을 입 밖으로 꺼내는 자는 모든 마력과 함께 영혼마저도 소멸할 것이라는 맹약까지 망설임 없이 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로 마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더는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곁을 떠날 날이 올 거라고 당부했었는데.’
씁쓸한 미소를 짓던 입가가 파르르 떨려 왔다.
아마 그녀의 제자들은 지금쯤 탑에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사라를 미친 듯이 찾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물론이고 마탑에서조차 그녀가 크롬벨 제국의 사라 밀런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마탑에서는 늘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목소리 또한 내지 않고 종이와 펜을 이용하거나 마법으로 글자를 만들어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철저하게 정체를 숨겼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지금쯤 그녀의 이름 한 자도 모른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갈 길이 정말 멀구나…….”
사라는 눈을 감고 그녀의 소중한 친우, 디엘린을 떠올렸다.
지금쯤 디엘린은 휘겔을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공작가에 두고 온 그녀의 아이, 클로드는 생각나지 않을까.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사라의 입매가 단단하게 굳어졌다.
‘사라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겪었든 다 상관없어. 넌 내게 소중한 사람이고 그건 변하지 않아. 사라 넌 괴물이 아니야.’
어릴 적 백치처럼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던 그녀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던 디엘린이 떠올랐다.
그 작은 손에 구원을 받았던 사라는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 힘낼게, 디엘린.”
몸 안에 잠들어 있는 마나를 일으키며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사라의 입가 가득히 묻었던 피와 드레스, 소파에 튀긴 핏자국까지 깨끗하게 지워졌다.
“윽.”
이미 속이 한번 진탕 뒤집힌 뒤라 이런 간단한 마법에도 다시 핏물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 했다.
이러니 제자들이 난리를 치며 그녀를 과보호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실은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마나를 쓸 때마다 박혜연의 몸이 망가져 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것이 디엘린을 향한 속죄라고 생각한다면, 이마저도 달았다.
사라는 치밀어 오르는 핏물을 꿀꺽 삼켜 내며 다시 눈을 감았다.
베론과 론다가 다시 응접실로 돌아오기 전까지 휴식을 취해 볼 작정이었다.
“…….”
그래서 사라는 아주 미세하게 열려 있던 응접실의 문이 그 누구도 모르게 닫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