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4화
* * *
그녀가 암브로시아 공작 저택에서 요란하게 문짝을 날려 버리는 소란을 피웠음에도 제국은 작은 소문 하나 없이 잠잠했다.
몇십 년 만에 제국에 마법사가 나타난 것임에도 이토록 조용할 수 있다니.
‘이 정보를 어디에 팔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만한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사라는 암브로시아 가문의 사용인들이 가지고 있는 충성심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입을 다무는 이유에는 온전히 충성심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네, 맞아요. 곧잘 하시네요.”
“으응, 그래도 유모가 한 번만 더 봐 줘.”
“어머나, 벌써 다섯 번이나 확인하셨잖아요.”
사라는 아침 일찍부터 클로드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오늘이 클로드와 공작이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한 첫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벽부터 눈을 뜬 클로드의 득달같은 성화에 사라는 아이의 방 안에 테이블을 들여놓고 식사 예절에 관한 수업을 했다.
“그치마안……. 아버지와 둘이서 식사하는 건 처음인걸.”
클로드는 두 뺨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몇 번을 연습해도 부족했는지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했다.
몇 번이고 시각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말이다.
“제가 곁에서 계속 봐 드릴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클로드는 자그마한 두 손으로 식기를 꼭 쥔 채였다. 긴장으로 땀이 나서 식기가 미끄러지려 하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실수를 해서 아버지 눈 밖에 나게 될까 두려워하는 클로드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꾸 이렇게 긴장을 하게 되면 정말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연습을 할 기세인 클로드를 보며 사라는 잠시 고심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클로드 님, 저랑 내기 하나 안 하실래요?”
“내기?”
흥미로운 이야기에 식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클로드의 눈이 사라를 향했다.
귀를 쫑긋하고 세우는 토끼 같은 모습에 사라는 잠시 제 팔을 꼬집었다.
“주방에 물어보니 오늘 메뉴는 갓 구운 빵과 비프스튜, 그리고 신선한 연어 샐러드라고 하더라고요. 원래대로라면 순서에 맞춰 음식이 나와야 하겠지만……. 바쁘신 공작님을 위해 순서를 생략하고 동시에 내온다고 해요.”
“정말?”
순간 코스에 맞춘 식기 순서를 외우던 클로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음식이 순서대로 안 나오면 대체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거지?
단 한 번도 그렇게 먹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아이의 얼굴은 금방 울상이 되었다.
“클로드 님 생각에는, 공작님께서 어떤 음식을 먼저 드실 것 같으세요? 빵? 스튜? 샐러드?”
“으음, 아버지는…….”
클로드는 아까까지 식사 예법에 대해 고민하던 것도 잊고 생각에 잠겼다.
손을 턱에 괴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골몰하는 클로드의 모습이 귀여워서.
사라는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아이의 머리에 살짝 손을 얹었다.
가늘고 부드러운 백금발이 손가락에 부드럽게 얽히는데, 감촉이 아주 일품이었다.
클로드는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는지, 사라가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이 자그마한 행복을 즐길 대로 즐긴 뒤 사라가 손을 떼자마자 클로드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빵!”
“빵이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주방장은 식전 빵을 항상 먼저 내어 줬어! 그러니까 아버지도 빵을 먼저 드실 거야!”
클로드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며 사라는 생글생글 웃었다.
“그럼 저는 샐러드로 하겠어요.”
“좋아!”
“만일 클로드 님이 이기면, 오늘 공작님께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나 만들어 줄게요.”
“정말?”
사라의 말에 클로드의 두 뺨에 예쁜 홍조가 올라왔다.
“그럼요, 저는 거짓말은 안 해요.”
사라는 오만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턱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이 참 든든해 보여서 클로드는 의자에서 내려와 사라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빨리 가자, 유모.”
“네, 클로드 님.”
* * *
함께 식당으로 내려가자 사용인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 있는 가주와 소가주의 식사 자리 때문에 모두가 분주해 보였다.
그들은 사라가 미리 일러둔 대로 식탁 위에 꽃병을 두고 생화를 꽂아 화사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라의 의견을 들은 집사와 시녀장도 감탄을 금치 못하며 입이 마르게 칭찬하였다.
‘클로드 님께서 굉장히 기뻐하실 겁니다.’
‘주인님께서는 조금 어색해하시겠지만 말이에요.’
왠지 기를 팍팍 찍어 누를 것 같은 고풍스럽기 그지없는 식당은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변화를 조금 주려고 했던 것인데, 그 분위기가 이전보다는 한층 더 따뜻해진 것 같아서 사라는 만족스러웠다.
역시 아이가 있는 집은 이렇게 생기가 돌아야 하는 게 맞았다.
“공작님께선 아직 안 내려오셨군요.”
“으응…….”
클로드는 화사하게 꾸며진 식탁이 어색한지 천천히 둘러보며 구경했다.
고풍스럽지만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게 삭막했던 식당이 하루아침에 뒤바뀌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 유모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변한 것이 신기해서 클로드는 자신이 평생 살아온 저택마저 낯설어졌다.
“…….”
클로드는 제 의자에 누가 보아도 커다랗고 폭신해 보이는 방석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키에 맞춘 의자를 따로 썼지만, 지나치게 딱딱해서 늘 엉덩이가 아팠다.
하지만 괜히 아프다고 투정 부리면 어른스럽지 못한 것 같아서 꾸욱 참고 있었더랬다.
“이거 유모가 시켰어?”
“네! 어떠세요? 마음에 드시나요?”
클로드는 대답하지 않고 사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만 마주치면 생글생글. 말만 걸어도 까르르, 하하, 호호.
얼마 전 크게 앓은 뒤로 사용인들마저 병이 옮을까 피하는데.
전혀 어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그를 대하는 사라가 낯설었다.
낯설고, 제멋대로 하는 게 싫고, 내 말을 잘 들어주지도 않는데.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잘했어.”
결국 붉게 달아오른 뺨으로 고개를 휙 돌리며 웅얼거리는 말에, 사라는 환히 웃었다.
“주인님께서 내려오십니다.”
그때 집사가 식당으로 내려오는 계단 앞에서 공작의 거동을 알렸다.
그러자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용인들이 일제히 계단 앞으로 달려가 일렬로 섰다.
클로드도 사용인들을 따라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각진 제복을 정갈하게 갖춰 입고 백금발의 머리칼을 단정히 쓸어 올려 고정한 에단은 마치 그림에서 툭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아.”
에단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다가 클로드와 그 뒤에 서 있는 사라를 발견했다.
“일찍 오셨군요, 밀런 소백작.”
“클로드 님의 곁에 늘 붙어 있어야 하니 부지런해야지요.”
사라는 허리를 숙여 아이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여 주었다.
“공작님께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건네 보세요.”
“내가 그래도 될까?”
“그럼요.”
사라는 사르르 웃으며 클로드의 등을 툭, 하고 밀어 주었다.
얼결에 앞으로 한 걸음 나선 클로드가 까마득하게 큰 공작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 좋은 아침입니다, 아버지.”
클로드의 인사에 에단은 잠시 멈칫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두 뺨을 붉히며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의 뽀얀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라 있는 게 보였다.
에단은 클로드의 뒤에 서 있는 사라를 바라보았다.
사라는 그런 그에게 웃어 보였다.
어색함에 미간을 좁히던 것도 잠시, 공작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아침이구나, 클로드.”
그렇게 에단은 아이를 스쳐 지나가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뻣뻣하게 굳어 있던 클로드가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사라를 바라보았다.
‘잘하셨어요.’
사라가 입 모양으로 속삭이자 클로드의 입가에 그제야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공작이 먼저 식탁에 자리하자 그 뒤를 이어 클로드가 공작의 맞은편에 앉았다.
사라는 얌전히 클로드의 뒤에 섰다.
“……?”
에단이 사용인들과 같이 클로드의 뒤에 서 있는 사라를 보며 미세하게 미간을 좁혔다.
주인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재빠르게 눈치챈 집사가 의자를 가져와 클로드의 옆에 놓아 주며 말했다.
“밀런 소백작님의 자리는 여기입니다.”
“함께 식사하시지요. 그리 서 계시면 제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공작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사라에게 자리를 권했다.
형식적으로 권하는 것이 아닌 정말 진정으로 권하는 것이었지만, 사라는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제 손님이 아닌 어엿한 클로드 님의 유모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밀런 소백작은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까.”
“호의는 감사드리지만 저는 앞으로 암브로시아에서 클로드 님의 유모, 그 이상의 대우는 바라지 않습니다.”
클로드는 아버지 앞에서도 당당하게 제 할 말을 다 하는 유모가 조금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사라가 격식 있게 거절을 하니 더는 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에단은 조용히 한숨을 쉬며 식기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클로드와 사라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
방금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