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6화
* * *
식사는 무사히 끝났다.
사라는 어색한 부자 사이에서 적당한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다.
그 덕분에 클로드는 아버지와 몇 마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라는 기분 좋은 얼굴로 디저트로 나온 푸딩을 먹는 클로드의 머리칼을 무심코 쓰다듬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클로드는 사라가 먼저 그에게 손대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얌전히 사라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사사건건 발톱을 세우며 곁을 내어 주지 않던 고양이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고롱거리는 소리를 들려준다면 이런 기분일까.
사라는 야무지게 숟가락을 쥐고 푸딩을 푹푹 떠먹는 클로드의 앙증맞은 손과, 열심히 우물거리느라 실룩거리는 볼살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귀여워. 너무 귀여워. 푸딩을 먹는 클로드가 너무 귀여워.’
그녀의 시선에서 클로드를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 나왔다.
“…….”
차를 마시며 그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던 에단은 새삼스러운 감정에 휩싸였다.
이토록 아이와 함께 평화로운 아침을 먹는 날이 오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분명 클로드에게 암브로시아의 힘이 발현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사라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듯했다.
그래서 에단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툭 하고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클로드가 왜 좋습니까?”
“우리 클로드 님이 이렇게 의젓하시고, 이렇게 귀여우신데. 어떻게 좋지 않을 수 있겠어요?”
뭘 그렇게 당연한 것을 묻냐는 태도에 도리어 민망해진 것은 클로드였다.
민망한 듯 고개를 휙 돌려 버린 아이의 귓불은 은은한 붉은빛으로 물든 채였다.
아닌 척해도 사라의 말이 기뻤던 것이다.
“아앗, 제가 이렇게 공작님 앞에서 칭찬을 해 드렸는데. 잘했다고 한 번만 웃어 주세요, 클로드 님.”
사라는 이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아이의 볼살을 쿡쿡 찔렀다.
클로드에게 온통 신경을 빼앗긴 사라를 보며 에단은 작게 중얼거렸다.
“……고작 그런 이유로.”
마법사인 사라가 클로드의 옆에 저렇게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에단은 그녀에게 감사해야만 했다.
친우의 아이라며 귀애하고 예뻐하는 것 이상으로 사라는 클로드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클로드의 보호자로서 아이를 잘 돌봤냐고 누가 묻는다면, 에단은 쉬이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동생과 도망가 버린 공작 부인이 다시 돌아와 제 아이를 방치했다며 뺨을 때린다고 해도 에단은 순순히 맞아 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 저런 얼굴을 한 적은 없으니 말이야.’
그는 사라가 귀찮게 굴자 입술을 삐죽 내밀며 그녀를 밀어내는 클로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애써 퉁명스러운 체를 하고 있었지만, 아이의 입가에 희미하게 걸린 미소는 숨길 수 없었다.
그게 참, 딱 제 나이 또래 같아서 에단은 눈을 감았다.
‘거짓된 애정을 경계할 줄은 알아야 할 텐데. 무리인가.’
곧 입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슬슬 이 기묘했던 아침 식사를 끝낼 때가 온 것이다.
“마차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주인님.”
모든 준비를 마친 집사가 다가와 에단에게 속삭이자 그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밀런 소백작.”
“벌써 가시나요? 아직 차도 다 못 드신 것 같은데요.”
“본래라면 마차에서 급하게 때웠을 식사 시간을 소백작 덕분에 이리 호화롭게 누렸으니, 서둘러야지요.”
“세상에, 아쉬워라.”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에단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녀의 눈은 에단을 빤히 바라보는 클로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가 아쉬운 게 아니라, 아버지와 일찍 헤어져야 하는 클로드가 아쉬운 거였다.
에단 또한 아이의 저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진 않았다.
그는 오늘따라 발걸음이 무거운 것을 느끼며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아, 저희 공작님을 배웅하러 갈까요?”
사라의 말에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던 클로드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정말?”
“그럼요. 공작님께서 열심히 일하시러 가는데, 클로드 님이 배웅해 주시지 않으면 누가 배웅하겠어요?”
등 뒤에서 들리는 대화에 에단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뒤를 돌아보든 말든, 클로드와 사라는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하기 바빴다.
“클로드 님이 배웅해 주신다면 공작님이 더 힘을 내실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럴까?”
“그럼요! 저기 보세요, 혼자서 일하러 가시는 공작님이 얼마나 외로워 보여요! 서러움이 뚝뚝 묻어져 나오는 거 안 보이세요?”
사라는 손으로 공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무심코 돌아봤던 후여서 그런지 사라의 말대로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본 것 같은 모양새였다.
“…….”
아이의 동정을 담은 처연한 눈동자가 그에게로 와 닿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배웅할래.”
“세상에, 우리 클로드 님. 기특하기도 하셔라!”
사라는 두 팔을 벌려 클로드를 끌어안고는 번쩍 안아 들어 올렸다.
클로드는 그런 사라의 품에 안겨서 울먹울먹한 눈으로 에단을 바라보았다.
“……하.”
아이에게 처음으로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아 본 에단이 헛웃음을 삼켰다.
이 모든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낸 사라는 클로드를 품에 안은 채 에단을 보며 눈짓했다.
어서 가지 않고 뭐 하냐는 얼굴이었다.
“작은 주인님은 제가 안겠습니다.”
사라가 힘들 것을 염려한 집사가 다가와 말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싫어요. 클로드 님이 너무 따뜻해서 기분 좋단 말이에요.”
사라는 클로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부비적부비적거렸다.
클로드는 간지러움에 까르르 웃으며 뒤로 넘어갔다.
단정하게 틀어 올렸던 사라의 연갈색 머리카락이 부스스해졌다.
그렇게 걸어 저택의 입구를 나서자 마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를 이쪽으로 몰고 왔다.
“사실 아버지를 배웅하는 건 처음이야.”
클로드는 마치 대단한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사라에게 속삭였다.
아버지를 배웅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들뜬 기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클로드는.
사라는 아이만큼이나 어색하게 배웅을 기다리고 있던 에단에게 다가갔다.
“듣자 하니 클로드 님에게 배웅받는 것이 처음이라면서요? 어색하세요?”
“그것도 처음이긴 하지만…….”
사라의 물음에 에단은 말끝을 흐리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소 입궁할 때는 집사와 시녀장만이 곁에 있었다.
그마저도 보필을 하기 위해서지 배웅을 위해서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는 오늘 처음 배웅을 받아 보는 것이었다.
클로드와 사라가 그를 배웅하겠다고 나서니, 공작저 대부분의 사용인들이 전부 다 나와 있었다.
“이렇게 거창한 배웅은 필요 없는데.”
“후후. 떠들썩하고 좋지 않나요? 사람 사는 저택 같잖아요.”
“……조금은 번거롭지만 말입니다.”
이런 풍경이 에단에겐 무척이나 어색하긴 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클로드, 저 아이가 기뻐한다면 말이다.
“아, 그런데 넥타이가…….”
그때 에단의 넥타이가 조금 비뚤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사라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에단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노골적인 거부에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에단이었다. 그는 저가 이렇게 물러설 줄은 몰랐는지 희미하게 눈썹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제겐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밀런 소백작.”
“왜죠?”
사라는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위험하니까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조적으로 답하는 에단의 목소리에는, 클로드보다 더욱 진한 체념이 섞여 있었다.
“괜한 일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사라에게 원하던 것 그 이상을 요구하게 되는 일은 사양하고 싶었다.
클로드에게서 발현된 암브로시아의 힘을 억눌러 주는 것. 그래서 클로드에게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게 하지 않는 것.
그가 사라에게 바라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순수한 호의 따위는 없으니까. 클로드 앞으로 저 여자가 달아 둘 빚을 늘릴 필요는 없지.’
앞으로 암브로시아가 그녀에게 지불할 대가가 얼마가 될지는 몰라도 아마 그는 엄청난 것을 내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는 사라를 이 저택에 초청했을 때부터 그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공작님께서는 제 능력을 어디까지 믿으세요?”
“그대가 내게 준 아티팩트의 쓸모, 그 정도까지 신뢰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혹시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없으신가요?”
사라의 말에 에단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 말에 사라의 눈동자에 오기가 스며든 것은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