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8화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멈춰 있는 에단 암브로시아를 뒤로하고 사라는 클로드의 옆에 섰다.
사라는 허리를 숙여 클로드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는 은밀히 속삭였다.
“클로드 님께서 배웅 인사를 한번 건네 보시는 게 어때요?”
“내가? 하지만…….”
클로드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힐금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는 아침 인사도 잘하셨잖아요.”
“지금은 아버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단 말이야.”
“방금까지 저랑 말씀 잘 나눴는데 그게 무슨 소리세요.”
사라는 클로드를 따라서 힐긋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의 얼굴을 살폈다. 공작의 수려한 얼굴이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과연 아이가 겁을 먹을 만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뭐가 문제지?’
사라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억울해졌다.
어제 피를 토한 탓에 마력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었어도, 겨우겨우 힘겹게 짜내어 아티팩트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을 복구까지 해 줬는데!
간단하게 끝난 것처럼 보여도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등에는 아직도 싸늘하게 흘러내린 식은땀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입 안에는 작게나마 울컥하고 넘어온 핏물의 맛도 같이 남아 있었다.
차마 모두가 보는 앞에서 피를 토할 수 없어 그 비릿한 것을 도로 삼켜 내느라 곤욕을 치렀다.
‘안 되겠어. 이 고생을 했는데 소득 하나 없이 보낼 순 없지.’
이대로 가다간 클로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공작을 보내 버리게 생겼다.
사라는 클로드에게 평범한 여느 가정에서 늘 있는 일상을 선물하고 싶었다.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고, 잘 다녀오라며 배웅하고, 잘 다녀오셨냐 반갑게 맞이하는. 이런 작은 일상부터 애정에 굶주린 아이에게 하나씩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사라는 허리를 숙여 클로드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겨우 말 한마디인걸요. 잘하시면 아까 했던 내기에서 클로드 님이 이긴 걸로 해 줄게요.”
“……진짜?”
“그럼요. 저는 거짓말 안 한다니까요?”
살랑살랑. 사라의 유혹에 클로드의 마음이 흔들렸다.
없던 용기도 샘솟게 만드는 제안이었다.
클로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두 주먹을 꼭 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버지!”
“……음?”
클로드가 소리 내어 부르자 에단은 깊은 상념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을 깜빡이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그게…….”
클로드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안절부절못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아이의 태도에 에단은 잠깐 뒤를 돌아 마부의 안색을 살폈다.
제시간 안에 그를 황궁까지 모셔야 할 의무가 있는 마부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에단이 암브로시아 공작 작위를 받은 이후 최초로 지각이라는 것을 할지도 몰랐다.
에단은 작게 한숨을 쉬며 다시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제 아비에게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쯤은 클로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잘 다녀오세요!”
“…….”
그 순간 공작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 안에 청명하게 빛나는 푸른 보석 같은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에단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옅은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다녀오마, 클로드. 배웅해 줘서 고맙구나.”
그렇게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은 마차에 올라탔다.
시간을 많이 지체해 초조해하던 마부는 집사가 마차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급하게 말을 몰았다.
공작을 태운 마차가 순식간에 정원을 가로질러 정문을 향해 내달렸다.
“…….”
에단은 마차에 올라 버릇처럼 서류를 확인하려다 멈칫했다.
그러곤 마차에 난 창으로 저 멀리 멀어지고 있는 클로드와 사라의 모습을 보았다.
“어째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이십니다, 주군? 저는 어제 1황자 측을 상대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말이죠.”
마차 안에서 쉼 없이 서류를 넘기며 정신없이 일하고 있던 제이드가 공작의 얼굴을 보곤 작게 투덜거렸다.
에단은 창에서 시선을 떼고는 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그래 보이나?”
“그래 보이고말고요. 거울을 한번 보십시오. 이 상태로 황궁에 입궁했다가는 지나가면서 보이는 레이디들을 전부 다 쓰러지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실 겁니다.”
제이드는 저택으로 날아드는 초대장이나 청혼서를 처리하는 건 지긋지긋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암브로시아 공작의 입궁 때와 퇴궁 때를 맞춰서 주변을 서성이는 레이디들과 귀부인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제이드는 피곤했다.
정작 암브로시아 공작에게는 말 한마디 걸지 못하면서 제이드에게 달려들어 조금이라도 정보를 캐내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연애 못 하는 거 다 주군 때문인 거 아셔야 합니다. 네?”
제이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지만 에단은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제 입매를 가만히 매만지고 있었다.
꾸며 낸 것이 아닌 미소를 짓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나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앗, 그러고 보니 밀런 소백작님께서 배웅을 나오셨습니까? 아까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는데…….”
“그랬지.”
“그럼 저도, 저도 인사를……!”
제이드는 재빨리 마부와 연결된 창문을 열어젖혔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마부가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며 급히 말고삐를 잡아당기려 했다.
에단은 그런 제이드의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얼른 가지.”
“으읍!”
제이드는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찡얼거렸으나 에단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고작 사라 밀런이라는 여자 하나가 공작가의 유모로서 들어왔을 뿐인데, 저택의 분위기와 그와 클로드까지 단숨에 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위화감이 불러오는 느낌이 싫지 않았다.
* * *
“들었어? 들었어, 유모?”
클로드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하고선 펄쩍펄쩍 뛰었다.
흥분으로 색색거리며 나오는 숨소리만 들어도 아이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라는 뿌듯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당연히 들었지요. 공작님께서 배웅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잖아요.”
“맞아! 아버지가 나한테 고맙다고 하셨어. 다녀오겠다고도 하셨어!”
“네네, 틀림없이 그러셨어요.”
사라는 웃으며 클로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다정한 손길을 받으며 클로드는 환히 웃었다.
“다녀오실 거야!”
“물론 다녀오시겠죠.”
“잘 다녀오시겠지?”
“그럼요, 그럼요.”
방방 뛰며 좋아하는 클로드의 모습에 이를 지켜보던 사용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그들 눈에는 처음으로 클로드가 제 나이의 아이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집사 베론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작은 주인님, 아직 아침인지라 날씨가 아주 쌀쌀합니다. 이만 들어가시지요.”
“아! 응, 알았어.”
집사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클로드는 제 입술에서 입김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걸음을 옮겨 다시 저택으로 들어가기 전, 클로드는 제 뒤에서 미소 짓고 있는 사라를 바라보았다.
“……사라도 같이 들어가자.”
클로드는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사라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어머나, 세상에!
사라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클로드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내 이름을 불러 줬어, 클로드가! 내 이름을!’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기뻐하는 사라를 론다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라의 눈이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 좀 보세요, 동네 사람들. 우리 클로드가 내 이름을 불러 줬다고요! 내 이름을!
이렇게 외치고 싶은 걸, 입을 틀어막고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클로드의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가는 와중에, 기둥 뒤에 숨어 있는 시녀 하나가 사라의 눈에 들어왔다.
입술을 꽉 깨물고 손이 새하얗게 될 정도로 주먹을 강하게 쥐고 있던 시녀는 사라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기둥 뒤로 숨었다.
‘저 애는…….’
사라에게 혼쭐이 난 클로드의 전속 시녀‘였던’ 메이 첸블런이었다.
일전에 사라는 시녀장에게 메이를 클로드의 곁에서 떼어 놓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녀장 또한 메이가 클로드의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려 해서 곤란하던 차였다며 흔쾌히 사라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메이의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공작가에서 입지가 무너졌으니 사라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들 만도 했다.
일부러 지팡이에 무게를 늘리는 마법을 써서 골려 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라는 메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 미움의 대상이 자신이 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저 애……, 왜 내가 아닌 클로드를 노려보고 있었던 거지?’
메이의 날카로운 시선은 사라가 아닌 클로드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