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9화
그러고 보니 시녀장인 론다는 메이의 성격을 알면서도 그녀를 클로드의 곁에 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클로드에게서 암브로시아의 힘이 발현됐을 때 두려움에 가까이 가려는 이들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메이를 쓰게 된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난 뒤 사라의 마음은 복잡해졌었다.
‘어둠의 꽃에서는 메이가 출세를 위해 클로드의 곁에 남았다고 썼지만……. 암브로시아의 힘을 직접 목격했다면 속물적인 메이라도 도망갈 만도 해. 어찌 됐든 귀족 영애니까…….’
사라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아무래도 그녀가 알지 못하는 것이 더 있는 것 같았다.
“유모, 유모!”
클로드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 잠겨 있던 사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네, 클로드 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한참 불렀는데 대답도 안 하고…….”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이제 이름은 또 안 불러 주는 거예요?”
사라는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저 오밀조밀한 입술에서 그녀의 이름이 흘러나왔을 때 얼마나 좋았던지.
현기증이 다 날 지경이었었다.
사라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아주 그득그득 담겨 있었다.
“내, 내가 언제 이름을 불렀어? 흥.”
클로드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마저 귀여워 미소 짓다가도, 사라는 메이가 서 있었던 기둥 쪽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모습을 감췄는지 메이는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를 찝찝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의 예감은 대체로 틀리지 않는 편이라서 더욱 걱정이 되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그 증오가 향했으면 모를까, 클로드를 향한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아무튼 내기에서 내가 이긴 걸로 해 준다고 약속했으니까! 유모는 약속 지켜!”
“아아, 그랬었죠.”
클로드가 공작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나 만들어 준다고 약속했었지.
사실 클로드가 내기에서 이기지 않았어도 그렇게 해 주려고 했지만, 사라는 그 사실을 말해 주지 않기로 했다.
“짠.”
사라는 품 안에서 고급 재질의 봉투 하나를 꺼내 클로드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한번 봐 보세요.”
클로드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봉투를 열어 보았다.
빳빳한 재질의 종이로 만든 카드 하나가 클로드의 작은 손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6살이지만 이제 제국어를 얼추 읽을 수 있는 클로드가 더듬더듬 카드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황궁, 출입증. 에단 암브로시아…….”
클로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우리 클로드 님 똑똑하기도 하지, 라고 생각하며 생글생글 웃고 있는 사라 밀런을 제외하곤 말이다.
클로드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사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걸 왜 유모가 가지고 있어?”
제아무리 어린 나이더라도 클로드 또한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황궁에 입궁할 때마다 늘 확인하며 챙겼던 것이 아닌가.
아니, 애초에 이 황궁 출입증이 중요하고 말고를 떠나서 아버지의 물건이 왜 유모의 품에서 나왔는지 당최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당연히 훔쳤죠.”
“언제?”
“아까 공작님의 넥타이를 고쳐 주는 척하면서요.”
“어떻게?”
“저의 유능한 마법으로!”
너무나 태연하게 흘러나오는 대범한 범죄 자백에 클로드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사라를 바라보았다.
클로드의 삐걱거리는 고개가 베론과 론다를 향했다.
이 저택에서 가장 똑똑하고 가장 유능한 쌍둥이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살며시 클로드의 눈길을 피했다.
저택의 모든 사용인들이 클로드를 피해도 그 둘만은 클로드를 피한 적이 없는데.
집사와 시녀장은 처음으로 제 작은 주인의 시선을 외면했다.
“자, 이제 황궁 출입증도 없이 입궁하게 된 공작님께서 곤란에 처하기 전에 전해 드리러 갈까요?”
사라는 생글생글 웃으며 굳어 있는 클로드의 등을 떠밀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클로드가 서둘러 제 방으로 뛰어갔다.
칭찬이고 뭐고 일단 곤경에 처할 아버지를 제 손으로 구해 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역시 유모 너무 미워.”
“세상에! 제가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도 밉다고요?”
“몰라, 유모 미워!”
클로드는 빼액 소리를 지르며 콩콩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난데없이 작은 주인의 입궁을 도와야만 하는 베론과 사용인들이 그 뒤를 황급히 뒤따랐다.
“하하, 귀여워라.”
정작 저택을 발칵 뒤집어 놓은 당사자인 사라는 클로드의 조막만 한 뒤통수를 보며 깔깔 웃었다.
클로드에게 미움받는 건 싫었는데, 클로드를 놀리는 건 너무 재밌었다.
저렇게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빼액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정말 성난 병아리 그 자체였다.
사라는 저런 삐약이들에게 약한 편이었다.
“자아, 그럼 못난 아이를 찾으러 가 볼까.”
사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메이가 사라졌던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청색 눈동자가 시리게 빛났다.
* * *
사라가 메이를 찾았을 때, 그녀는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며 세탁물을 콱콱 밟고 있었다.
화가 묻어 나오는 발길질과 함께 뾰로통하게 튀어나온 입술도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망할 마법사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녀는 잠시 분한 듯 치맛자락을 강하게 쥐었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세탁물을 밟기 시작했다.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난 꼬맹이가 뭐가 귀엽다고!”
메이가 이렇게 투덜거리던 순간이었다.
“아악!”
세탁물을 빨고 있던 물이 순식간에 위로 솟구쳐 오르며 메이의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
갑자기 물벼락을 맞아 흠뻑 젖어 버린 메이는 자신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보고 있는 사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헉.”
항상 미소 짓고 있던 사라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자 전에 느꼈던 압박감이 메이의 온몸을 감쌌다.
그녀는 사라가 자신이 한 말을 다 들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갑게 뒤집어쓴 물보다 더 차가운 것이 그녀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마법사의 분노는 작은 왕궁을 멸망시킬 정도라고 책에서 읽은 적 있었다. 메이는 그 분노한 마법사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 버렸다.
“클로드 님을 왜 미워해?”
“무, 무슨…….”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물어보는데. 말하지 못하겠어?”
“…….”
“나는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네 입을 열 수 있단다.”
사라의 두 손에서 일전에 봤던 푸른 마력이 연기처럼 일렁거렸다.
그것을 본 메이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만 같은 처연한 모습이었다.
“하.”
사라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악!”
그러자 메이의 위로 다시 한번 물벼락이 떨어졌다.
“허튼짓하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렴.”
그녀는 사라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일말의 자비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이는 젖은 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클로드 님이 미웠어요. 사랑받는 주제에 사랑받지 못한다고 청승을 떠는 게 가증스러워서.”
조금 전까지 달달 떨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메이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진실 된 메이의 모습이었다.
“……엄마를 잡아먹고 태어난 주제에, 사랑을 바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메이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엄마를 잡아먹고 태어난 아이예요. 그래서 나는 늘 살아남아야 했어요.”
“…….”
“난 아버지의 눈에 띄면 날 죽일까 봐 숨어 살아야 했고, 형제들한테는 맞아야 했고, 집안사람들은 내게 먹을 것도 잘 주지 않으려고 했어요.”
아주 어릴 적, 메이에게 또렷하게 남은 기억이 있었다.
깜깜한 밤에 아버지가 들어와 그녀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며 조르려고 했던 기억.
눈을 뜬 그녀가 살려 달라고 빌자 도망치듯 방에서 빠져나갔던 기억.
너 때문에 엄마를 잃었다며 그녀를 괴롭히던 언니, 오빠들과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아버지의 모습.
남작님은 당신이 죽기를 바란다고 속삭이던 고용인들의 얼굴.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발버둥을 쳤다고요. 사랑 따위 바랄 수도 없었는데, 그건 엄마를 잡아먹고 태어난 나한테는 사치였는데. 클로드 님은 그걸 바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았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그게 축복이라고 생각해?”
“축복이 아니면요? 클로드 님은 적어도 나처럼, 아버지 눈에 띄면 죽을까 봐 덜덜 떨지 않아도 되잖아요!”
사라는 비명처럼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둠의 꽃’에 나왔던 메이 첸블런을 떠올렸다.
메이 첸블런이라는 인물은 클로드 암브로시아를 미워하는 캐릭터라서 이런 운명을 가지게 된 걸까.
아니면 이런 운명을 가졌기에 ‘메이 첸블런’이라는 인물이 되어 사라의 눈앞에 나타나게 된 걸까.
알 수가 없어졌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었다.
‘박혜연이었던 내가 쓴 소설 때문에 저 아이가 저렇게 된 거라면……, 어쩌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