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2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22화
* * *
“다시 한번 말해 봐.”
에단의 얼굴은 한겨울의 서릿발보다도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제이드는 공작의 집무실로 달려오면서 이 소식을 그에게 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수없이 고민했다.
어디선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을 주워들었던 걸 떠올리며 결국 말했지만, 공작의 반응을 보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제이드.”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에서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분노가 넘실거린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공작님이 제이드 경이라고 하지 않아!
제이드는 눈물이 찔끔 나올 것만 같아 눈가에 힘을 주려 노력하며 다시 한번 말했다.
“클로드 님께서 밀런 소백작님의 동반하에 황궁에 방문하셨는데…….”
“…….”
“장미 정원 쪽에서 세르니아 길로 이동하시는 길에…….”
“…….”
“하필 폐하께 알현을 올리고 돌아가시던 1황자님을 마주쳤…….”
제이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쾅, 하고 육중한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에단이 서늘한 눈빛으로 제이드를 바라봤다.
“윽.”
제이드는 마치 칼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경은 그걸 보고도 지금 태연하게 내 집무실로 와 보고를 올리고 있는 건가?”
“태, 태연하게는 아니고 급하게 뛰어왔습니다만…….”
제이드의 변명 아닌 변명에 에단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경은 세르니아 길 주변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지나다니지 못하게 해.”
“……예? 황궁에 궁인들은 몇 명이고 귀족들도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제가!”
“해내. 지금 경의 잘못을 만회하고 싶다면.”
싸늘하게 일갈한 에단이 제이드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평소보다 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그의 발걸음만 보더라도 에단이 여유를 잠시 내려놓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으아아아!’
제이드는 결국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일 년에 몇 번 쓰지 못하는 신호구를 꺼내 들었다.
황궁에 뿌려 놓은 모든 것들을 이용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분노한 주인이 이성을 잃고 날뛰기 전까지 말이다.
“골치 아프게 됐군.”
에단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오늘 황자의 지위를 일시적으로 박탈한다는 황명을 들은 1황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점차 광증이 심해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아 오던 참이었다.
‘1황자를 지금 처리하는 건 일러. 2황자와 3황자가 합세해 암브로시아의 목줄을 쥐려 할 테지.’
그는 잠시 고심했다. 암브로시아의 힘에 관해 끊임없이 파헤치려고 하는 1황자가 거슬렸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황자들의 힘에 균형을 잡아 주어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1황자를 여기서 완전히 실각시키게 된다면 앞으로 황위 계승 문제에 암브로시아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에단이 끊임없이 경계했던 일이었다.
서로를 할퀴던 귀족들의 시선이 에단에게 집중되면, 아무리 비밀로 하려고 해도 암브로시아의 추악한 힘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에단과 클로드는 진정한 괴물이 되어 버리겠지.
“…….”
그는 무심코 버릇처럼 사라가 준 반지를 매만졌다.
일시적으로 그의 힘을 다시 제어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며 해사하게 웃던 사라의 미소를 떠올렸다.
자신이 겨우 인사를 받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던 클로드를 떠올렸다.
“하.”
그것이 뭐라고, 골치 아파질 것을 알면서도 클로드와 사라의 앞에서 미쳐 날뛰고 있을 1황자를 치워 버리고 싶었다.
선대 공작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최대한 몸을 사리고 한발 뒤에서 모든 것을 관망하며 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희생되고 고통받더라도 그것은 암브로시아의 영광 앞에서 그 의미를 잃었겠지.
“……감히.”
저 멀리서 미친 사람처럼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1황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사라는 클로드를 끌어안고 있었다.
“내 아드님을…….”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온기가 없었다.
머릿속이 붉게 물들었다. 꾹꾹 억눌러 왔던 힘이 한순간에 그의 분노를 따라 흘렀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에단의 손바닥 안에서 반지가 조각이 나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손을 펼치자 부서진 반지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에단의 두 손에, 검붉은 기운이 화악 일렁였다가 흡수된 것처럼 사라졌다.
“후.”
사라가 불어 넣어 줬던 마력이 제 몸 안으로 스미는 것을 느낀 에단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 * *
화사하게 피어나는 사라의 미소를 보며 1황자는 얼굴을 크게 찡그렸다.
1황자의 나이도 이제 오십이 다 되어 갔다.
정상적으로 황위를 이어받기만 했어도 후계 싸움을 할 때가 아닌, 후계 싸움을 지켜보았어야 할 나이었다.
그동안 계속된 절망에 한때 수려하다고 각광받던 외모도 녹이 슬었다.
결국 황제에게 꼴도 보기 싫으니 대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명까지 받게 되지 않았는가.
“감히 날 보고도 그리 웃을 수 있군, 그래.”
그의 칼날이 사라의 턱 끝에 닿았다.
“소백작이 된 기분은 어떠한가? 내가 미처 소감을 듣지 못했군 그래.”
“한 가문을 손에 넣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지요. 전하께서도 언젠가 이 기쁨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감히 네년이 내 앞에서 황위를 논해?”
분노한 1황자의 칼날이 조금씩 사라의 희고 여린 목으로 파고 들어갔다.
투툭, 하고 살결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조금씩 목선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널 죽여 버릴 수 있어. 내가 못 할 것 같은가?”
“네. 1황자께서는 유약하시니까요.”
사라에게 1황자의 저런 발작은 아주 우습기 짝이 없었다.
어둠의 꽃에 따르면 지금 이 시점이 바로 1황자가 황제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였다.
그를 가장 사랑하는 늙은 황제의 입에서 황자 자리에서 일시적으로 내려와 조금 쉬며 세상을 다시 배우라는 명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미쳐 날뛰는 거겠지.
숨이 넘어갈 듯 넘어가지 않고 정정한 황제의 곁에서 황위에 목이 말라 미쳐 버린 비운의 황자.
어둠의 꽃에선 1황자 카제르 드 크롬벨을 그렇게 정의했다.
‘황제의 신뢰를 저 열등감 덩어리가 회복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어쩌면 좋담.’
사라가 고심하는 사이 목을 타고 흐르던 피가 그녀의 품에서 벌벌 떨고 있던 클로드의 뺨에도 떨어졌다.
“유, 유모……. 흑!”
겁을 먹은 클로드의 두 눈에서 왈칵하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이의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사라의 손바닥이 금세 축축해졌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유모가 위험해…….’
자신이 앞을 보지도 않고 뛰어다닌 탓이었다.
클로드는 몸을 크게 들썩이며 사라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좀 더 힘을 주어 그를 꽉 껴안았다.
사라가 자신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아이는 알았다.
아직 어리고 약한 그는 칼로 위협받고 있는 유모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내 옆에 있어서 그래. 그래서 엄마도, 유모도 다 이렇게 된 거야. 나는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어.’
너무나 무력한 상황에 클로드의 사고는 점차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갔다.
그때였다. 클로드의 머릿속으로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쉬이, 진정하세요. 클로드 님.]“유, 유모?”
[클로드 님에게만 제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마법이에요. 잊으셨어요? 저 마법사잖아요. 그것도 아주 위대한.]“흐윽, 유모…….”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클로드 님. 어차피 제가 이겨요.]너무나 태연한, 심지어 즐거워 보이는 사라의 목소리에 클로드는 다시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라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담겨 있는 게 짜증 나고 화가 났다.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운데, 정작 유모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심이 됐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내 유모가 마법사라서. 엄청 센 마법사라서 다행이다.
[게다가 저기 보세요.]사라는 손가락 두 개를 슬쩍 벌려 클로드의 시야를 터 주었다.
저 멀리서 클로드의 아버지인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이 엄청난 얼굴을 하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긴장으로 굳어 있던 클로드의 몸이 안심한 듯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사라는 그 변화를 느끼며 생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