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1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31화
사람이 이렇게 쉽게 피를 토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평생에 걸쳐 한번 토하기도 힘든 피를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 내는 걸 보니 상태가 더욱 심각해 보였다.
“마력을 운용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있어. 별거 아니야.”
“하지만 저…… 사실 들어오기 전에 사라 님이 혼자 중얼거리시는 걸 들었어요. 언제쯤 죽을 수 있을까, 라고 아까…….”
“넌 참 엿듣는 재능이 있구나. 널 첩자로 키웠어도 아주 쓸모가 많았겠어.”
사라는 메이의 말을 끊으며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메이는 여기서 자신이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걸 눈치 빠르게 깨닫고 물러섰다.
하지만 그녀의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보니 이미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사라는 이 오해를 풀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절로 피곤함이 몰려오는 듯했다.
‘……메이를 끌어들인 것이 잘한 선택일까.’
메이 첸블런은 ‘사라 밀런’이라는 유모 캐릭터가 죽고 난 후 여주인공이 나타나기 직전까지 클로드의 곁을 지켰다.
엑스트라 캐릭터였지만 그래도 남자 주인공의 옆에 있으니 그녀로 인해 발생되는 사건이나 상황이 있는 편이었다.
치워 버리기보다 차라리 똑바로 가르치고 야단쳐서 클로드의 옆에 두자는 게 사라의 판단이었다.
“이젠 정말 피곤하니까 나가 줄래? 꽃은 클로드 님이 깨어나시면 바로 볼 수 있도록 장식해 주고.”
“네.”
메이는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사라가 토한 흔적이 남아 있는 바구니를 들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조심스러운 태도와 걸음걸이를 보니 들키지 않고 잘 처리할 것 같았다.
이 점은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반성을 한 건지는 차차 지켜보면 되겠지.
‘내가 곧 죽는다는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상관없으려나.’
사라는 복잡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메이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 사정을 설명하려면 박혜연의 존재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이건 제자들과 나눴던 마법사의 맹약을 깨 버리는 일이었다.
이 맹약을 어길 시 모든 마력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해명하고 싶어도 해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피를 토하는 것은 박혜연의 몸이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제자들마저 그 말을 믿지 않고 걱정하지 않았던가.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명하기 더 힘들 것이다.
“아, 모르겠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일단 잠을 청하기로 했다.
뒤집힌 속을 달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휴식이다.
* * *
눈을 감을 때 묵직하게 가라앉았던 몸이 어느새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의식이 아주 깊고 어두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사라는 눈을 번쩍하고 떴다.
이건 사라가 박혜연으로, 박혜연이 사라의 몸으로 눈을 떴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헉.’
눈을 뜬 사라의 앞에 호흡기를 달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박혜연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몸에 생명을 연장시켜 줄 기계들을 잔뜩 달고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있었다.
‘이건 나잖아?’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제 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사라의 손은 박혜연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잠깐, 이건 설마……!’
사라는 그제야 박혜연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부터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았다.
‘나’는 내가 눈 감은 모습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사라는 지금 제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체 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손이 투명하게 보여. 마력은……, 쓸 수 없는 걸 보니 여긴 한국이 맞아.’
꿈이라기엔 생생했고, 실제라기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사라는 눈을 감고 있는 박혜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창백한 낯빛에 찌푸려진 미간, 그렇지 않아도 마른 몸은 이제 뼈밖에 남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이어트로도 빼지 못했던 살을 이런 식으로 빼게 될 줄이야.
이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에 사라는 씁쓸하게 웃었다.
“정 선생, 박혜연 환자 검사 결과는 나왔어?”
그때 병실 문을 열고 의사 둘이 대화를 나누며 걸어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도 역시 사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과는 나왔는데……, 진짜 미치겠습니다. 밤사이에 심정지만 두 번이 왔어요.”
“그건 들었어. 단순 접촉 사고인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될 수 있지? 머리 쪽 잘 찍어 봤어?”
“당연하죠. 피를 쏟은 적도 없는데 과다 출혈 증상으로 수혈까지 한 건 알고 계시죠?”
“그건 들었지.”
의사들의 대화를 듣던 사라의 미간에 미약한 실금이 갔다.
‘사라 밀런의 몸으로 피를 토한 게, 박혜연의 몸에도 영향을 줬어. 이래서 지금 이 몸으로 피를 쏟아도 체력만 부족하고 멀쩡해졌던 거구나.’
점차 죽어 가는 것은 느꼈지만 이렇게 실감하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제자들과 함께했던 연구 결과가 성공적으로 실행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사라는 심란한 얼굴을 하고선 박혜연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보일 리 없는 의사들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어요.”
“진짜야?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말입니다. 심기능이 떨어진 것 빼고는 멀쩡해요. 대체 왜 의식을 회복 못 하는 건지…….”
의사들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박혜연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깊은 한숨과 함께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의도한 대로 박혜연의 상태가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저 몸에 남아 있는 마력이 많아.’
이 몸이 죽어 줘야 저 안에 남아 있는 마력이 사라 밀런에게 전부 넘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에단과 클로드의 저주 같은 힘을 완전히 봉인하거나 잘하면 없애는 것까지 가능할지도 몰랐다.
박혜연과 이어진 영혼을 통해 마력을 운용하지 않아도 되니, 사라 밀런의 몸으로 피를 토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사라는 투명하게 보이는 손을 들어 박혜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러곤 그 손을 천천히 내려 박혜연의 목을 조르려는 것처럼 움켜쥐려 했다.
‘이 몸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사라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턱선을 따라 흐르다 툭, 하고 떨어진 눈물이 박혜연의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러자 사라의 눈이 커다래졌다.
‘물리적인 접촉이 안 됐는데 눈물이 왜…….’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거두려던 찰나.
‘……!’
박혜연이 눈을 떴다.
* * *
사라는 꿈속에서 마치 튕겨 나오듯이 눈을 떴다.
“헉!”
숨을 급하게 몰아쉬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빠듯하게 조여 오는 통증에 사라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유모!”
새하얗게 변했던 시야가 클로드의 목소리에 점차 또렷하게 돌아왔다.
고개를 돌리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울먹이는 클로드가 그녀의 옷자락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아팠던 심장의 통증이 가라앉으면서 이번엔 다른 의미로 조여 왔다.
“아……. 클로드 님?”
“완전히 일어난 거야? 괜찮아? 아직도 아파?”
클로드는 사라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질문을 쏟아 냈다.
커다랗고 동그란 눈에서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후두둑 통통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금세 눈물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을 보며 사라는 작게 웃었다.
“저 괜찮아요, 클로드 님.”
손을 들어 클로드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자 손바닥에 뺨을 비벼 온다.
손바닥에 말캉하고도 부드러운 아이의 축축한 뺨이 한가득 느껴지자 사라의 두 뺨에 붉은 홍조가 올라왔다.
‘너무 귀여워, 행복해…….’
사라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다른 손으로 입가를 막았다.
조금 전까지 심란했던 마음이 클로드의 귀여움으로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클로드의 뒤에서 사라를 보고 있던 베론과 론다는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의사를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공작님께서 방금까지 있다가 가셨습니다. 아직 저택을 나서지 않으셨을 테니 지금 바로 공작님께 알리겠습니다.”
베론은 사라가 잡을 틈도 없이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창백해진 론다가 뒤따라 나갔다.
“아…….”
사라는 곤란한 듯 두 사람이 나가 버린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열린 방문으로 기웃기웃 방 안을 들여다보는 사용인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틈에서 한껏 얼굴을 굳히고 있는 메이의 모습이 보이자 사라는 조용히 손짓했다.
“……!”
메이는 사라의 부름을 받고 부리나케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열린 방문을 꼭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근데 클로드 님은 왜 이러고 집사랑 시녀장은 왜 저러는 거니?”
그저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다들 마치 죽다가 살아난 듯한 사람을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유모가 못 일어나는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사라의 말에 클로드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에 당황스러운 건 사라 쪽이었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얼굴에서 묻어 나왔는지 클로드의 뒤에 서 있던 메이가 슬쩍 언질을 해 줬다.
“삼 일 동안 못 깨어나셨어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