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2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32화
“내가?”
“네……. 정말 어디 안 좋으신 거 아니에요?”
“…….”
암브로시아 저택에서 유일하게 사라가 피를 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메이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
사라는 크게 한숨을 쉬며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 전 꿈이 아닌 듯한 꿈속에서 박혜연이 눈을 뜨던 순간이 떠올랐다.
여태 하나의 영혼으로 두 사람의 삶을 살아왔던 그녀지만 처음으로 겪어 본 일이었다.
다른 몸으로 눈을 뜬 게 아니라, 잠든 내 몸을 내 눈으로 보게 된 것이.
차원을 넘어가더라도 다른 차원에서는 겨우 하루가 지나 있었던 법칙이 오늘 무너졌다.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야. 신경을 좀 써야겠는걸.”
사라의 말에 클로드의 얼굴이 아주 울상이 되었다.
“아프지 마, 유모. 아프면 미워할 거야.”
“어머나?”
사라는 클로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작게 웃어 보였다.
복잡한 문제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이 작고 소중한 아이부터 안심시켜 줘야 할 것 같았다.
“클로드 님에게 미움받기 싫으니까, 안 아플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라는 제 목을 더듬었다. 암브로시아 공작에게 당부했던 대로 1황자가 입힌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 않았다.
약간의 딱지가 앉아 있는 상처에 사라는 마력을 불어 넣었다.
따악, 소리와 함께 사라의 목에 있던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클로드가 이제야 안심한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 이제 아픈 곳 하나 없어요. 그쵸?”
사라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목덜미를 보여 주며 말했다.
그 하얗고 여린 목덜미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것을 눈으로 확인하자 클로드의 입가에 그제야 희미한 미소가 돌아왔다.
“눈 뜨자마자 보이는 게 클로드 님이라니!”
사라는 침대 옆에 매달리듯 기대고 있는 클로드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넣어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품 안에 쏙 넣고는 클로드의 부드러운 머리칼에 뺨을 비볐다.
“역시 내 걱정 해 주는 건 클로드 님뿐이야.”
“으앗, 내려놔!”
클로드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버둥거리던 두 팔로 사라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몸짓만 그럴 뿐 힘은 하나도 주지 않았다.
좋으면서 괜히 싫은 척하는 클로드가 귀여워서 사라는 더 격렬하게 뺨을 맞댔다.
“조금만 이렇게 안아 주세요. 저 환자잖아요.”
“……조금만이야!”
“네에, 욕심 안 부릴게요.”
클로드는 못 이기는 척 사라를 꼭 끌어안았다.
기분 좋은 고동 소리를 내며 뛰는 사라의 심장 소리를 들으니 아이의 표정이 느슨하게 풀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이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집사장님과 시녀장님이 공작님을 모셔 올 테니 저는 이만 나가 볼게요. 여기 있는 걸 아시면 시녀장님이 절 남작가로 돌려보낼지도 몰라요.”
“…….”
메이가 인사를 하고 나가려 하자 아쉬운 듯한 클로드의 눈길이 따라붙었다.
메이가 벌을 받느라 제 곁에 없으니, 사라가 깨어나지 못하는 동안 클로드는 조금 외로운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늘 바쁘고, 집사와 시녀장도 덩달아 바쁘고.
가문의 사용인들은 알게 모르게 클로드의 눈치를 보며 살살 피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본 메이가 퍽 반가웠던 것이다.
메이만큼은 클로드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와 줬으니까.
“여기 있으렴. 시녀장에게는 내가 말해 둘 테니까.”
“……!”
그런 클로드의 마음을 잘 안다는 듯 사라가 메이를 붙잡자 아이의 눈이 잠시 커다래졌다.
사라는 씁쓸한 마음으로 클로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귀한 핏줄을 타고난 이 아이가 원하는 것이 고작 저런 작은 동정에 기댄 마음이라는 게, 참 안쓰러웠다.
“밀런 소백작!”
때마침 방문을 벌컥 열고 에단이 뛰어들듯이 들어왔다.
흐트러진 백금발의 머리칼이 마치 처음 두 사람이 정식으로 마주했던 때 같았다.
“이름 불러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그사이 잊으신 거예요?”
사라가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농담을 건네자 굳어 있던 에단의 얼굴이 그제야 풀어졌다.
에단은 빠르게 사라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가 꼼꼼하게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그 집요한 시선에 사라는 어쩐지 긴장이 되어 몸이 살짝 경직되었다.
그러자 클로드가 사라의 품 안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며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
아파서 몸이 굳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아…….’
에단의 시선에 귓불이 달아오르는 건지, 품 안의 사랑스러운 클로드 때문에 그러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뺨에 혈색이 도는 사라의 모습을 본 에단은 그제야 안심을 한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걱정했습니다, 사라.”
쿵, 심장에 미묘한 충격이 느껴졌다.
사라는 잠시 심장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손을 가슴께로 가져다 댔다.
이름, 괜히 불러 달라고 한 걸까.
저 얼굴을 하고선 나직하게 울리는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저런 말을 들으니, 어쩐지 심장이 꽤나 빠듯하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나도 걱정했어, 유모.”
저 남자를 쏙 빼닮은 귀여운 클로드까지 사라의 품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제 존재를 어필하니 말이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나저나 제가 삼 일 동안 못 깨어났다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밀런 백작가에선 아무 연락이 없었나요?”
“……?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네?”
“정확히는 오 일 동안 못 깨어났습니다. 중간에 한 번 깨어났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이틀 동안 잠들어 있다가 잠깐 일어나선 밀런 백작가에 아무런 연락도 하지 말라고 하곤 다시 잠들었습니다.”
에단의 말에 사라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잠시 깨어났었다니,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그 뒤로 삼 일간 또 못 깨어난 겁니다.”
“…….”
사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박혜연의 몸으로 깨어 있을 때, 혹은 사라 밀런의 몸으로 깨어 있을 때 각자의 몸이 눈을 뜬 사례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영혼이 없는 인형처럼 멍하니 눈을 뜬 상태였으면 모를까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가진 힘이 어디까지인지 한계를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힘으로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디엘린의 인생이 엉망진창이 됐을 때부터 그것이 주는 공포는 충분히 느꼈다.
마치 암브로시아의 힘이 어떤 짓을 할지 몰라 스스로를 끝없는 어둠 속으로 내몬 미래의 에단 암브로시아와, 어둠의 꽃의 클로드처럼.
“몸 상태가 아주 좋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그 뒤로 못 깨어나니 조금만 더 지켜보다가 밀런 백작가에 연락을 넣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아뇨, 아뇨. 그건 괜찮아요. 다만 제가 기억이…….”
사라는 깨질 듯이 아파 오는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그러자 에단의 커다란 손이 사라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원래부터 이랬습니까? 밀런 백작가에서 몸 상태를 봐 주던 주치의가 있었다면 부르세요. 신전에도 연락하겠습니다.”
“…….”
사라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에단과 눈을 마주했다.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 에단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리며 손바닥에 미묘한 열기가 맴돌았다.
단단하고도 견고한 성 같은 남자가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초조한 눈빛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픈 머리보다 저 조각 같은 남자의 눈빛이 더 무언가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1황자 측은 어떻게 됐나요?”
사라는 괜히 말을 돌렸다. 그녀의 몸 상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니 에단의 미간이 좁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라.”
엄격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악문 잇새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는 아무래도 그녀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그냥 넘길 생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사라는 결국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죄송해요. 공작님이 앞으로 클로드 님을 믿고 맡기려면 제가 건강해야겠죠.”
“그럼 의사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네.”
사라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딱딱하게 굳어진 에단의 얼굴이 풀렸다.
그녀의 이마에 올려 둔 에단의 손도 함께 내려갔다.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자 남은 자리에 서늘한 한기가 들었다.
“사라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모두 나가도록.”
에단의 명에 집사와 시녀장을 포함한 모든 사용인들이 일시에 방 밖으로 나갔다.
클로드는 자신도 나가야 하는 걸까 불안한 눈으로 에단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사라를 끌어안은 두 팔에 힘을 주었다.
“클로드 너도…….”
“괜찮아요. 그러니 그냥 말씀하세요.”
사라는 자신에게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클로드를 마주 끌어안으며 말했다.
에단은 그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곤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된 게 혹시……, 이 힘 때문입니까?”
암브로시아의 힘 때문이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사라를 쫓아낼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